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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서학동 사진관' 개관전 가보니…골목길 풍경 '찰~ 칵' 사람 냄새 그득

"또 사고 쳤어" 사진 갤러리를 열게 된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돌아온 답변이다. 이번에는 어떤 '반갑고' '의미 있는' 사고를 쳤는지 궁금해졌다. 장수에서 공동체박물관 계남 정미소를 운영하는 사진작가 김지연씨가 지난 14일 전주 서학동에 '사진관'을 열었다. 일반적인 사진관은 사진을 찍는 장소이지만 김 관장에게는 그렇지 않다. 사진관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아날로그적 향수와 사람 냄새가 존재하는 곳이다. 갤러리 대신 사진관으로 이름을 정할 때 주변 사람들은 칭찬보다 걱정을 앞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한적한 골목 사이에 위치한 사진관을 방문하게 된다면 그 우려들을 말끔히 떨칠 것 같다. 김 관장은 1972년 지어진 주택의 기본 구조를 유지하면서 건물 곳곳에 자신만의 색을 담았다. 그의 세심한 손길을 발견하는 것도 서학동 사진관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 김 관장은 골목이 가진 한적함과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멋에 반해 서학동 사진관의 위치를 정했다고 했다. 개관전으로 삼은 테마는 '우리 동네(Our Town)'. 전주대 대학원 공연영상예술학과에서 사진을 전공한 김창곤, 류철희, 성창호, 황태문 작가가 참여했다. 각 작가들의 개성이 듬뿍 들어가 있는 작품이 25점 전시돼 있다. 김창곤 작가는 무속인들의 이야기를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류철희 작가는 비 오는 날 골목길이 가진 촉촉함과 충만함이 표현했으며, 성창호 작가는 밤을 배경으로 한 여러 풍경을 사진에 담아냈다. 그리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씁쓸함과 애정을 담은 황태문 작가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4명의 작가들이 담아낸 사진 속 인물들은 우리의 이웃이고, 사진의 배경은 우리의 삶에서 출발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개관전은 다음달 28일까지 계속된다.

  • 문화일반
  • 김원용
  • 2013.03.18 23:02

사진으로 소통하는 문화공간…전주 '서학동사진관' 문 열다

농촌 정미소를 개조해 박물관으로 변신시킨(공동체 박물관'계남정미소') 사진작가 김지연씨가 이번에는 전주 서학동에 '사진관'을 차렸다. 계남정미소를 통해 잊혀져가는 풍경과 인정을 풀어놓았던 그가 '서학동 사진관'을 통해 도시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질 지 궁금하다.서학동은 학이 깃든다는 유래로 시작된 마을이지만, 지금은 전주천을 사이에 두고 한옥마을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변변한 빌딩 하나 없이 이발소와 철물점, 선술집, 양은그릇가게, 양복점, 옷 수선집, 쌀집, 세탁소, 고물상 등이 있는 전형적으로 낙후된 변두리. '서학동사진관'은 거기서도 골목으로 들어가 주택가에 들어선 공간이다. 개발되지 않은 서학동의 현재 자리에 공간을 둔 것과 같은 맥락에서 갤러리나 전시관 등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사진관'이라는 이름을 고집했다. 사진 찍는 일을 영업으로 삼을 때 사진관이라고 하지만, 그의 사진관은 사진으로 소통하는 장소로서 전시장 및 사진 체험의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왜 사진관이라는 간판을 붙이는가를 굳이 묻는다면 사라지는 구식 사진관의 오마쥬라고나 할까, 아니면 갤러리나 전시장의 이름보다는 일반인들에게 좀 더 친숙한 이미지를 제시하자는 뜻도 있습니다. 디지털시대에 조금은 늦게 가는 사진 공간으로 보다 더 친숙하고 다정다감한 곳으로 다가서고자 합니다."사진관은 개관전으로 '우리 동네(Our Town)'를 준비했다(14일부터 4월 25일까지). "'우리 동네'는 고층빌딩으로 뒤덮여 화려하거나 세련되지 못하고 변두리에서 작고 사소한 것에 익숙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또 내 의식의 '우리'는 주요범주 밖의 소소한 것이며 '동네'는 공동체의 근원을 상징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전주대교 대학원 공연영상학과 사진전공자 김창곤·류철희·성창호·황태문씨 등 4인이 개관전 작가로 참여한다. 현대의원 원장이기도 한 김창곤씨의 작품은 도시 개발에서 낙후된 서학동 골목에서 켜켜이 엉켜있는 삶의 고뇌를 주술로 풀어가는 서민들의 삶의 한 단면을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보여 주고 있다. "가장 오래된 주술문화와 가장 현대화된 복제술인 사진이 공존하고 있다.류철희씨는 젊은 날의 추억과 자신의 흔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서학동 골목길의 비오는 밤의 풍경을 그렸고, 현대 사진미디어 연구소 연구팀장인 성창호씨는 밤의 풍경을 주 소재로 삼았다. 완주중 교사인 황태문씨는 서학동에서 가장 성실하게 살고 있지만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들의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오픈식은 14일 오후 6시.

  • 문화일반
  • 김원용
  • 2013.03.14 23:02

조해준씨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타나

첫 술에 배부르기는 힘든 법. 그렇다 해도 이것은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구절과 같다. 한국화를 전공했으나 다큐멘터리 드로잉으로 예술의 의미를 묻던 미술가 조해준씨(41)가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최종 후보 4인에 올랐다. 그에겐 전북 출신 작가로는 설치미술가 전수천씨(1995) 이례로 두번 째로 선정된 낭보(朗報)이자 우진문화재단(이사장 양상희·회장 김경곤)의 '제55회 청년작가상'에 선정된 데 이은 겹경사.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해부터 SBS문화재단과 손을 잡고 변신시킨 '올해의 작가상'은 역량있는 작가들이 세계 미술계에 진출할 수 있도록 교두보가 되는 상이다. 1995년 처음 시작된 '올해의 작가상'은 국내·외 심사위원들이 매년 거르고 걸러 최종 1팀(개인 포함)을 선정해왔으나 지난해 4팀을 추리는 1차 심사와 마지막 1팀을 정하는 2차 심사로 재정비됐다. 사회와 시대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각기 다른 촉수로 감지해온 4개의 개인전을 2차 심사에 반영시켜 다시 한 팀을 선정하는 방식. 그는 2008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부친 조동환씨와 함께 지역사가 포함된 근현대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드로잉을 선보여 그해 광주비엔날레 기념작품상을 수상한 유망주였다. 가난하고 궁핍했던 근·현대 삶의 편린을 개인 생활사 속에서 끄집어내 경외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새로운 전시 모델을 제시하기도 한 작가.그가 2008년 이스탄불 비엔날레에 진출한 데 이어 2011년 서울 리움미술관이 기획한 '코리안 랩소디-역사와 기억의 몽타주' 에도 초대되면서 일찌감치 성공 가능성이 점쳐졌다. 하지만 이 모든 공은 늘 아내의 몫. "내가 조심스레 상상했던 일에 날개를 달아준 건 일찍 만난 아내 덕분"이라고 할 만큼 소문난 애처가이기도 하다.원광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전문사를 졸업한 뒤 독일 뉘른베르크 쿤스트 아카데미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독일 프랑크푸르트 해외작가 레지던시 작가로도 선정됐다. 7월에 열리는 4인전을 거쳐 그가 최종 1인이 될 경우 국립현대미술관 국제기획전 우선 참여와 세계 유수 미술관에 관장 명의 서신 송부, 작품 매입, 도록 제작, 작가 다큐멘터리 제작 등 전폭적 지원을 받게 된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3.03.14 23:02

'조선어 독립운동' 옥고 치른 14인 판결문 공개

조선어를 통해 민족관념을 배양하고, 민족문화의 향상, 민족의식의 양양 등 조선독립에 기여한 혐의로 옥고를 치른 '조선어학회' 연루자들에 대한 당시 판결문(사진)이 공개됐다.익산의 고서화 수집가 김인기씨(75)가 공개한 조선어학회 사건의 예심종결결정문에는 조선독립을 위해 조선어를 체계화한 혐의로 옥고를 치른 14명의 조선어 운동가들의 혐의가 세부적으로 기록되어 있다.이번에 공개된 예심종결결정문은 이 사건으로 2년10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건재 정인승 박사가 소장하다 한글학회에 기증해 번역된 사본으로, 조선어학회와 관련된 국내 유일의 역사적 기록문으로 평가받는다.함흥지방법원의 일본인 판사가 소화19년(1944년) 9월30일 작성한 예심종결결정문에는 정인승 박사를 비롯한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이중화, 김법린 선생 등 조선어학회 회원 14명이 조선어를 체계화 한 혐의로 옥고를 치른 내용들이 담겨 있다.판결문에는 조선어학자들이 민족 고유의 어문 정리를 하는 조선어학회를 결사해 조선독립을 실현하려는 혐의의 '치안유지법'으로 기소에 붙여진다는 내용들이다.특히 정인승 박사는 1942년 조선민중의 민족의식을 환기, 앙양시키기 위해 기관지 '한글'이라는 월간 잡지를 최저 600부에서 최고 3000부 발행했다는 내용이 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 문화일반
  • 김진만
  • 2013.03.12 23:02

【전주문화사랑회 '전주재발견 현장답사'】숨은 역사 이야기에 '눈이 번쩍 귀가 쫑긋'

지난 9일 오후 2시 전주 경기전. 낮 최고 온도가 28도가 될 만큼 날씨가 풀리자 전주 한옥마을은 예전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한 바퀴 휙 둘러보면 볼 것이 없다고 푸념하는, 어쩌면 전주 사람들도 잘 모르는 전주의 숨은 역사를 알리기 위해 전주문화사랑회의 '전주재발견 현장답사'가 이날도 진행됐다.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의 안내로 '전주의 속살'을 탐방한 전국 각지에서 모인 30여 명의 탐방객들은 예향(藝鄕) 전주의 자부심을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한옥마을에 오면 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대로 '경기전=태조어진'이라는 공식대로 겉만 훑어보고 갔다"라고 말한 김유빈(22·전주대)씨는 첫 설명부터 호기심을 보였다. 평소 별다른 생각없이 들어갔던 경기전 정문에서부터 이 관장의 설명이 시작됐기 때문."대문을 만들때 이어 붙인 나무판이 짝수면 못을 홀수로 밖아 문 하나하나에도 우리 조상들은 음양의 조화를 생각했다"는 설명을 듣자 탐방객들은 문을 유심히 살펴보며 못의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정문을 지나 태조 어진이 봉안돼 있던 진전으로 향하는 짧은 길에서도 경기전의 숨은 이야기는 계속됐다. 조선시대에는 진전과 정문이 같은 높이에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정문 쪽에 도로가 들어서며 진전의 높이가 낮아진 것. 또 현재 정문의 위치도 원래의 장소에서 옮겨졌다.이는 일본의 '조선 역사 지우기'작업의 일환으로 왕조의 시작인 태조 어진이 봉안된 곳의 원형을 훼손해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고 지배의 합당성을 부여코자 시작됐다는 게 이 관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일본은 큰 틀에서 경기전의 원형을 훼손했지만 작은 부분들은 그대로 남겨둬 전주의 숨어 있는 이야기가 현재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이 관장은 "우리나라의 건축물은 중국처럼 웅장하진 않지만 소소한 재미들이 곳곳에 묻어있다"며 설명을 이어가자 탐방단 외에도 이날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즉석에서 합류하기도 했다.김소영씨(45·대전)는 "그간 한옥마을에 와서 자세한 이야기를 못 들었는데 우연히 지나다 설명이 흥미로워 아이들에게 좋을 것 같아서 합류하게 됐다"며 이날 6시까지 이어진 탐방을 완주했다.답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동 중에도 쉴새 없이 질의응답을 통해 현장 답사를 복습하기도 했다.조경묘로 이동하는 길에 이 관장은 "조경묘에 누구의 위패가 있죠?"라는 질문을 던지자 가장 앞자리에 있던 김온유양(6)이 "전주 이씨요"라고 대답해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이밖에도 오목대 이목대 전주향교 한벽당으로 이어지는 이번 답사에는 더운 날씨와 4시간 탐방에도 참여했던 사람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켜 눈길을 끌었다. 강원구씨(81·서울)는 "50년 전에 서울로 이사해 전주에 대해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알았는데 오늘 설명을 듣고 질문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서울에 돌아가 친구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소감을 전했다.

  • 문화일반
  • 김정엽
  • 2013.03.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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