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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인간다운 아파트 공동체

전주시민의 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한다고 한다. 이제 아파트 주거시대가 이미 시작된 셈이다. 그 동안 13개 시민운동단체로 조직된 전북시민운동연합에서는 시민의 삶에서 아파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아파트 시민 법률학교를 계속 열어왔다. 아파트를 살맛나는 삶의 터전으로 하자는 아파트 공동체 운동이다. 위 학교에서 아파트 주민들이 안고 있는 아파트에 관련된 문제들을 숱하게 부딪치게 되었다.법률적으로 소유권이나 대항력 있는 임차권을 취득하기 전에 많은 법률적 문제의 벽에 부딪치게 된다. 모델하우스와 실제 입주 아파트의 차이 혹은 다른 하자 보수 문제로 계속 아파트 건설회사와 문제점을 남기고 있다. 아파트 문제는 주택을 통한 인간다운 생활의 질을 확보해야 한다는 사회 보장적 논리가 강하게 강조되어야 한다고 본다.인간생활의 질은 적정수준의 주택을 필요로 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주거 환경이 필수적이다는 말이다. 만일 시장에서 구매력이 전혀 없는 저소득층의 주거문제까지 순수한 자유경제의 시장 매카니즘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는 뻔하다.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주택은 일반 상품과 다르다. 인간이면 누구나 갖추어야할 기초 수요 또는 기본적인 생활욕구에 관련된 문제이다.아파트 시장기능의 실패최근 도내 임대아파트 공급업체의 연속적인 부도로 도내에서만 34개 단지 1만2천3백76가구 주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임대아파트의 건설업체의 20%가 이미 부도가 났다는 것이다. 땀의 결정체인 보증금을 떼이는 입주자는 하늘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실제 입주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주택임대차의 경우 입주하면서 주민등록전입, 계약서의 확정 일자등이 필요하다.그런데 위 입주이전에 이미 상당한 정도의 근저당권 설정등기가 경로된 경우가 허다하여 사실상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부동산, 주택의 투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정책과오의 결과이다. 지금과 같이 아파트 특히 임대아파트를 자율적인 시장 기능에만 의존할 경우 주택이라는 희소자원은 불공평하게 배분될 수 밖에 없다. 이는 보호 받지 못한 임자권자 보다 선순위 저당권자 및 경락자가 우선하여 계층간, 지역간 갈등을 유발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주택의 생산과 배분이 실질적 정의원칙에 따라 장단기적으로 안정되지 못하면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제 중앙 및 지방 정부는 머뭇거림 없이 주택시장에 개입해야 된다. 주택의 문제는 사회보장적 성격에 비추어 시장에 지닌 모순점과 문제점을 시정보완하는데서 그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주택건설업체 보호명분하에 아파트가 투기대상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필생에 모은 자산인 서민의 임차아파트를 잃는 일도 있을 수 있다. 분양아파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입주한 후 발견되는 수많은 하자에 대해서 법적으로 속수무책이다. 특히 상품은 그 상품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확인한 후 매수하는 것이 원칙이다.그러나 아파트의 경우 미원성 상태에서 계약할 수 밖에 없는 아파트 소비자측의 절대적인 취악성이 있다. 모델하우스를 가보면 대개 잘 꾸며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 입주할 때 보면 모델하우스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또한 입주할 때쯤이면 모델하우스는 이미 없어진 뒤다. 따라서 주택정책의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는 측면에서 대폭적인 민법, 주택임차대보호법등 법규정의 미비점을 과감히 보완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우리아파트시민법률학교는 분양자들에게 분양자 집회를 만들도록 권유하고 있다. 소비자가 뭉쳐 자신의 작은 권리도 지키자는 이야기다.임대주택의 보호를 위해서 소액보증금에 한정하던 우선변제력을 제한없이 모든 임차보증금에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주거 또는 아파트의 담보가치가 하락하겠지만 그것은 주택이 갖고 있는 사회재의 성격, 집합재적 성격에서 감수해야 된다고 본다. 시장 매카니즘으로 맡겨서는 적정한 주거 안정책은 요원하다.또한 임대아파트 보증금에 대한 보험제도, 임대주택 건설업자의 기준 강화등이 논의되고 있다. 이제 주택은 단순 상품과 다르고 더더욱 투기의 대상이 될 수 없어야 한다.주민참여속에 새 문화 싹터흔히 아파트를 닫힌 주거공간, 단절된 이웃, 이로인한 인간소외의 상징으로 말한다. 우리는 전통 촌락사회에서 인간다운 공동체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차츰 주거형식이 아파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이웃간 관계는 삭막해졌다. 이에 따른 새로운 공동체 문화가 절실한 형편이다. 한편 지방자치시대에 있어서 주민참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아파트도 어떻게 보면 작은 자치단체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자치단체처럼 자신들이 낸 관리비로 아파트가 운영되고 자신이 뽑은 입주자 대표가 아파트 관리를 총괄하게 한다. 그런데 현실을 보라. 실제 전북시민운동연합에서 아파트 공동체 운동을 벌이며 느끼는 것은 주민의 참여 저조였다.아파트시민법률학교를 거듭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려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었다. 주민의 무관심, 그로 인한 아파트 운영에 고나한 소수의 임의적 관리가 대부분 지적되었다. 지방자치의 성패가 그 지역 주민참여도에 달려 있다. 마찬가지로 아파트 공동체운동도 역시 아파트 입주민의 아파트 운영에 적극적 참여정도에 달려있다. 흔지 지방자치가 민주주의 학교라 한다. 그렇다면 아파트 공동체는 지방자치의 학교라해도 좋지 않을까.아파트가 인간다운 삶의 터전이 되려면 먼저 아파트가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된다. 문을 열고 서로 이웃과 공동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아파트 운영에 있어서 전 주민들의 관심하에 관리비 사용등 운영에 대한 참여 및 철저한 감시가 절실하다.또한 이웃간에 단절과 소외의 극복을 위하여 각 아파트에 맞는 고유의 공동체 문화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아직 많은 아파트의 공동체에서 건강한 문화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입주민의 참여가 적었기 때문이다. / 전봉호(전북시민운동연합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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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4.20 23:02

[전북칼럼] '축제' 官 주도 벗어나야

일본엔 '마쯔리'라고 불리는 크고 작은 축제가 어느 지방이든 반드시 있다. 그 '마쯔리'를 볼 때마다 감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은 '마쯔리'에 참가한 지역 주민들의 정신 자세다. 그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돈을 모으고, 스스로 행사의 리더를 뽑아 그의 명령에 따라 기꺼이 준비를 하고, 일사불란하게 행사를 치른다. 정말 철저히 자율적이고 질서정연하다.대개는 그 지역의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행사를 주관하는 모양인데 '마쯔리'의 행사에 참가하는 팀들은 온 가족이 모두 총동원된다. 이를테면 젊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행진이나 경기에 함께 참가하며 일정한 곳에 이르러 휴식과 함께 같은 조의 팀들이 마을 사람들과 점심 식사를 하게 되면 거기엔 또 아내들이 협동하여 한 몫을 한다. 그야말로 그날은 온 가족이 '마쯔리'의 행사장에서 하루종일 다른 가족들과 함께 어울려 마음을 합하고 손발을 맞추어 행동을 통일하는 협동의 시간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스스로 자신들이 세운 질서와 규칙에 기꺼이 엄격하게 따른다.문득 패전국 일본이 우리와 달라 병역의무가 없고 절로 향토예비군도 없겠지만 이런 '마쯔리'의 행사를 통해 자율적인 훈련을 대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 정도이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율적인 정신 아래 무장하고 있으니 더욱 강도가 높고 질이 우수한 민방위의 훈련이 절로 되겠다 싶다.반대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축제들은 너무 문제가 많아 일본의 '마쯔리'가 더욱 부럽다. 우리 나라는 어디를 가나 관이 주도하고, 앞장서고, 중심이 되는 선심 축제가 판을 치고, 원호 대상자들의 프리미엄을 빌미로 떠돌이 장사치들이 한몫 보는 행사가 이어진다. 특히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이후엔 더욱 이런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때문에 선심 축제의 과다한 예산 편성으로 말도 많고 과연 이런 축제가 필요한 것인가? 하는 부정적인 여론도 당연히 형성되고 있다.세시기에 의하면 원래 우리 나라에도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훌륭한 민속 축제가 연중 쉬지 않고 자율적으로 이어져 왔다고 한다. 설, 정월대보름, 곡우, 삼월 삼짇날, 사월초파일, 오월 단오, 유월 백중, 칠월 칠석, 팔월 추석 등, 크고 작은 축제가 민속으로 치러졌던 모양인데 일제의 탄압과 박해 속에서 그 근본이 일그러지고, 오그라들고, 마침내는 사라지고 만 것들도 많다.해방과 전쟁, 분단의 우여곡절 끝에 남쪽만이라도 겨우 가난에서 면할 무렵부터 이즈막에 이르러 서서히 축제가 부활되어 고개를 드는 것까지는 좋은데 관이 서둘러 앞장서면서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조짐이다. 무엇보다 축제를 위해선 민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축제를 위한 준비 모임도, 행사의 리더를 뽑는 것도, 조금씩 추렴해서 행사비용을 모으는 것도 모두 민간이 중심이 되어 스스로 이루어지게 하고, 무엇보다 모든 행사 프로그램을 주민들 자신이 꾸며 즐길 수 있어야 한다.걸핏하면 중앙 무대의 연예인들을 불러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을 시키고 가수들을 불러다 노래를 부르게 하는 등등, 낭비가 심한 축제가 지역의 이익을 위해, 문화를 위해 전혀 이득이 될 리 없다. 한 나라의 문화는 여러 가지 부분문화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일테면 상층문화와 하층문화, 도시문화와 농경문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그 가운데 민속문화는 상층문화나 고급문화에 대칭 되는 하층문화로 다시 말하면 기층문화라 할 수 있다. 상층문화가 외국문화를 수용하는 성격이 강한 데 비해 고유한 성격의 민속문화는 서민의 것이 되어,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문화가 되어야 한다.그야말로 전북 지역의 모든 민속문화 축제는 이제 지방자치단체의 관 주도에서 해방되어 도민들의 자발적인 추렴과 준비와 주관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오히려 전북 관광의 핵심이 되어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축제를 이웃에게 보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덧붙여 전주국제영화제와 세계소리축제도 비록 기층문화적 민속축제는 아니지만 전통 위에 새로운 전북의 이미지를 살리는 이런 맥락에서 고유의 빛깔을 더했으면 좋겠다.특히 전주국제영화제는 부산과 부천의 도시 이미지 영화제와 차별하여 대안영화제라는 프로그램 주제와는 별도로 전주와 전북지방의 특색을 살리고 지역주민과 관광을 위한 부속 행사를 민간이 주도하여 마련되었으면 한다.이왕이면 개막식과 폐막식에서도 칸느가 턱시도와 이브닝드레스를 엄격하게 고집하듯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선 한복을 엄격하게 고집하고, 그것으로도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절대로 이상주의자의 의견이 아니다. 현실적이고 다분히 장삿속이 있는 제안이다.우선 영화제의 성격을 강하게 보이게 하고 엄격한 개막식, 폐막식 입장으로 유명해질 수 있고, 모처럼 한복을 즐기는 국내외 게스트들에게는 개량 한복을 임대해줄 수도 있고 선물할 수도 있다. 한복 페스티벌과 한복 쇼, 디자인 개발 등으로 전주의 한복은 판매와 임대로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국제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가 바로 영화제라는 상품의 포장을 세계의 눈에 돋보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이장호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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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3.17 23:02

[전북칼럼] 대체에너니 개발 안성맞춤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의 중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에너지가(ET)정보통신(IT) 생명공학(BT) 신소재(MT)와 함께 21세기 유망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4T산업 중에서도 특히 에너지분야(ET)는 화석연료(석유,석탄,가스등)의 고갈과 환경문제로 인하여 새로운 대안을 찾기 시작했으며 선진국에서는 風力과 地熱 그리고 太陽熱, BIOMASS등을 포함한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고 그동안 산업과 가정에 공급되었던 고전적인 방법의 에너지 즉, 수력과 화력 그리고 원자력으로 생산된 전기대신 대체에너지를 공급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예컨대 독일의 경우를 보면 지하 1천미터 이상을 시추하여 지열을 이용한 냉난방과 전기로 전국의 신축되는 공공건물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법안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고 풍력발전은 이미 전력생산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한편 기존에 건설된 원자력 발전소는 30년 안에 모두 해체한다는 친환경적 대안을 국민들에게 제시한바 있다.더불어 2050년이 되면 독일의 에너지 총 생산량중 대체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차지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이렇게 선진국들에서는 유한적인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대체에너지를 찾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선진국에 비해 10여년이 뒤떨어져 있고 이에 대한 중앙정부의 의지와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화석연료는 지역적으로 제한적이고 유한해서 우리나라 같은 비산유국들은 전량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대체에너지는 땅속의 지열과 바다와 산의 바람 그리고 태양열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자원이 부족했던 우리나라에 안성맞춤인 것이다.산업자원부의 최근자료에 의하면 대체에너지 보급이 확대되면 연간 1조3천억원이 절약되고 석유등의 수입 감소로 무역수지가 큰 폭으로 개선된다고 한다.대체에너지를 고부가가치형, 환경친화적 미래사업으로 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전라북도의 경우 최근에 대체에너지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새만금지역에 풍력발전기 750kw급 50기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사업비 750억원중 600억원의 중앙정부 예산 지원이 본 사업의 관건으로 대두되고 있다.본인은 대체에너지의 중요성과 경제성 그리고 친환경적인 문제 까지를 포함한 다각적인 검토를 해왔으며 최근에 유럽을 방문하고 돌아와 대체에너지에 대한 벤치마킹을 전라북도에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첫 번째 사업으로 군장국가산업단지에 건설 예정인 열병합발전소를 대체에너지를 이용하여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독일기업과 추진중이다. 이 사업이 성사가 된다면 군산에 3억달러 이상의 해외자본을 유치하게되며 수백명의 노동자 고용과 선진 기술을 이전 받는데 획기적 전기가 될 것이다.그리고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친환경적이고 영구적인 대체에너지 사용으로 경제적인 문제까지 해결되어 WIN-WIN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업성공의 키워드는 최상의 투자환경을 조성하는 것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산업자원부 및 관련 기관과 활발히 진행중에 있다.더 나아가 현재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KEDO의 북한 경수로 건설 사업에 본인은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 대체에너지 발전소 건설을 제안하고 싶다.우리 정부는 앞으로 부담금 3조5천억원으로 북한 경수로 건설비용에 투입될 예정이고 빨라야 2008년에 경수로 2기가 완공 될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경수로를 대체에너지 발전소로 건설한다면 수천억원이 절약되고 원전에서 발생되는 프로트늄 문제도 일시에 해소가 될것으로 예상한다.더불어 북한 진출에 호의적인 독일같은 나라의 자금으로 건설비용을 충당한다면 우리 정부의 부담도 덜수 있을 것이다.일각에서는 경수로 대신 화력발전소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또 다른 환경 문제가 발생되기 때문에 다가올 통일시대를 위해서 우리는 반대를 분명히 해야한다.앞서 언급했지만 이제라도 우리 정부와 전라북도가 대체에너지의 중요성에 대해 새로이 인식하고 연구와 개발에 앞장 서기를 바라며 대체에너지로 경제를 활성화 시키고 환경을 지키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길 희망한다./김연종 (군산상공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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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3.16 23:02

[전북칼럼] IT가 일등국가를 만든다

아일랜드와 핀란드에 본 전북 Vision역전의 드라마를 보는 것은 즐겁다. 프로야구나 축구 경기뿐만이 아니라 국가 간의 경쟁이나 역사발전 과정에서도 역전의 장면을 보는 것은 감동과 기쁨을 준다. 최근 아일랜드와 핀란드를 돌아보고 느낀 것은 바로 역사의 현장에서 전개되고 있는 역전의 드라마를 구경하는 것 같은 소감이었다.아일랜드와 핀란드는 유럽의 열등생이었다. 이들의 성공 스토리는 마치 소작을 부치던 사람이 서울에 가 기업으로 성공한 이야기와 흡사하다. 어쩌면 수천년 동안 쌀농사를 짓고 살아온 농도 전북이 가야할 길을 밝혀준 등불같은 이야기이다.아일랜드는 감자로 유명하고, 핀란드는 목재로 유명하다. 가난한 나라 아일랜드에 150년전 감자 기근이 들었다. 인구 400만 가운데 100만이 굵어 죽었다. 식민 본국 영국에 감자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지만 영국은 외면했다. 150년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아일랜드 사람 가슴에는 못이 박혀 있다. 20세기 초반 인구의 절반이 일자리와 식량을 찾아 이민을 떠났다.20세기말 못살고 가난했던 아일랜드에 새로운 등불이 켜졌다. 그것은 - from potatoes to chips - 감자로부터 반도체칩 속의 소프트웨어로의 전환이 가져다 준 행복이었다. 요즘 더블린에는 활기가 넘친다. 사무실이 없고 빈 아파트가 없다. 식당마다 사람이 붐빈다.작년 성장률이 10%로 유럽 최고를 기록했다. 일인당 GNP는 이미 영국을 추월했다. 일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떠났던 젊은이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델(Dell), 게이트웨이(Gateway), 인텔(Intel), 휴렛팩커드(HP), 오라클(Oracle) 등 세계 최고의 IT업체 1,200여 개가 아일랜드에 둥지를 틀었다. 동시에 아일랜드 토착 IT기업이 불같이 일어나고 있다. 작년 한해 소프트웨어 수출만 70억 달러로 세계최고를 기록했다.핀란드의 성공은 노키아의 성공으로 대표된다. 세계 휴대전화기 시장의 35%를 점령한 노키아는 회사 이름 때문에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본 기업인줄 알았다. 노키아는 핀란드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 이름이다. 원래 목재소에서 시작해 제지 재벌로 일어섰고 타이어, 화학, 케이블, 가전제품 등 문어발식 확장을 계속하다가 80년대말 거품 경제의 퇴조와 함께 서리를 맞았다. 노키아는 정보통신회사 하나만을 남기고 모두 팔아치웠다. 가혹한 구조조정이었지만 그것이 노키아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노키아 직원 6만명 가운데 삼분의 일은 R&D(연구개발)에 종사한다. 노키아의 두뇌를 제공하는 원천은 헬싱키대학이다. 한국에 한 대밖에 없는 연구용 슈퍼컴퓨터가 헬싱키 공대에만 6대가 있다. 대학 졸업생의 70%가 이공계 출신이다. 핀란드는 우랄알타이어 계통이기 때문에 영어와는 뿌리가 다르지만 국민의 80%가 영어를 능숙하게 한다. 핀란드 역시 일인당 GNP 25,000불로 수백년 동안 자신을 지배해왔던 스웨덴을 추월했다.농도 전북을 아일랜드와 핀란드처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대학을 키워야 한다. 이공계 대학에 집중해야 한다. 도내에 IT(정보통신)기업과 BT(생명공학)기업을 집중 유치해야 한다. 한국에서 전북 학생들이 가장 영어를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차피 개방과 국제화는 피할 수 없는 세계화의 대세이다. 이것이 아일랜드와 핀란드에서 바라본 전북의 비전이다. /정동영 (국회의원, 민주당 최고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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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3.09 23:02

[전북칼럼] ˝인프라구축 시급하다˝

그동안 낙후와 소외로 점철되어 왔던 전라북도를 동북아의 전략적 관문으로 육성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논의되어야 한다.그러나 도민 모두 이러한 발전방향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소지역주의와 집단이기주의등으로 통일되고 합리적인 지역발전에 대한 해결책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매년 전북의 국가예산확보를 위해 정치인과 자치단체들은 힘겨운 노력들을 하고 있지만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이 아니어서 지적하고 싶다. 그동안 전북지역의 예산확보 활동은 대형 국책사업과 정치인, 단체장들의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한 일환으로 치우친 점을 일정부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물론 전북지역의 발전을 위해 예산을 많이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발전계획과 지역별 전문화와 특성에 맞게 시,군의 네트웍이 필요하다. 예컨대 전통문화의 도시 전주, 레져 휴양의 무주, 서해안 관광벨트로 이어지는 군산-부안-고창등 전문기능도시로 특화가 필요한 것이다.특히 우리가 주목하고 개발의 필요성을 인식해야될 것은 서해안 관광벨트라고 판단된다. 즉 군산내항권인 연안도로의 철새 군락지에서 시작하여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새만금둑과 고군산열도의 해양관광타운을 거쳐 부안의 격포와 고창의 선운사를 연결하는 부창대교에서 해넘이를 관광하고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고창의 고인돌군으로 연계된 관광코스는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관광자원이 풍부한 전라북도가 본 받아야할 대표적인 도시를 소개할까 한다. 이태리에 있는 베로나라는 도시는 전형적인 산업도시로 개발이 되어 발전을 했지만 공황 때문에 근로자들이 거리로 몰리는 실업대란을 겪고 엄청난 경제 불황을 맞이해야만 했다.하지만 베로나 시장은 변화하고 개혁해야만 시민과 도시를 살릴수 있다고 판단해서 산업형도시를 관광문화 도시로 바꾸게 되었던 것이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2만명을 수용하는 야외 오페라극장인데 이 극장 하나만으로도 베로나가 발전할 수 있는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이다.이렇게 발상의 전환과 굴뚝없는 산업인 관광의 중요성이 우리에게도 시급히 적용되어야 하고 이에 필요한 인프라를 전북지역에 구축해야만 한다.건설교통부의 제4차 국토종합계획안에 따르면 전라북도가 포함된 환황해권은 중국의 성장에 대응하는 신산업벨트로 조성한다는 계획으로 국토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거점지역으로 개발예정인 군산자유무역지역의 중요성은 국가적으로도 인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집중적인 투자와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전문화된 인프라구축을 통하여 낙후된 전북을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지역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대형 국책사업도 친환경적으로 추진해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들이 실질적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안을 연구해야만 사업추진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된다.지역발전을 위해 화합이제는 우리 전라북도의 발전을 위해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활동이 필요하며 모두에서 지적한데로 지역발전을 위해 서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동서간의 지역감정이 우리 전라북도에서는 소지역주의로 변질되어 반목과 대립을 자초하는 우를 범하여서는 결코 전북발전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도민과 정치인 그리고 각급 기관장들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현재 각 자치단체에서 2002년 국가예산 확보를 위한 사업들에 대해 검토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루 빨리 실질적인 협의체를 구성하여 내년 전북 예산과 효율적인 인프라 구축을 위해 노력할 때이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이 주체가 되어야 하지만 지역 정치인, 경제인과 지역 주민들을 포함한 각 주체들과 함께 논의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군산상공회의소 회장 金 然 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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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2.09 23:02

[전북칼럼] 쓰레기와의 전쟁

설명절이 끝나니 전주시내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있다.또한 쓰레기 매립장을 가보라. 연일 버려지는 생활 쓰레기는 거대한 산을 이루고 있다.금수강산도 쓰레기로 덮히고 오염되어 쓰레기 강산이 되었다.그러나 "버리면 쓰레기 다시쓰면 자원이다."라는 말이 절실할때다. 무엇이든지 값있게 생각을 하지 않고 버리면 쓰레기가 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쓰레기는 효용가치가 충분한 자원이다. 과거 본래 우리의 옛 생활문화속에서는 쓰레기가 거의 없었다.다시 고쳐쓰기도 하고 거의 버리지는 않았으며 나누어 쓰고 재활용은 철저히 이루어졌다. 구멍난 냄비를 수선해주는 사람은 물론 고물상이나 넝마주의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주 볼 수 있었다. 고쳐서 도저히 쓸수 없는 것들은 다른 쓸만한 물품으로 바꾸어 쓰기도 하였다.쓸만한 물건을 엿으로 바꾸어 먹던 어릴적 일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음식물쓰레기는 남은 음식물찌꺼기라고 불렀으며, 대부분 가축의 먹이로, 퇴비로 알뜰하게 사용하였다. 모든 것은 다시 자연순환체계에 포함되어 있었다.하지만 편리함과 빠름이 행복의 척도로 생각되면서 상품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쉽게 구입하여 쓰고 버리는 일회적인 소비행태까지 가세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의 삶을 짧은 기간동안 풍요롭게 한 것 같지만 많은 자원을 쓰레기로 만들었다.자원고갈은 물론 생물과 인간이 살아야 할 삶의 터젼을 파괴하고 오염시켰다. 이는 결국 인간들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연적 자정작용의 한계를 초과한 쓰레기에 지구는 몸살을 앓고 순환체계의 단절을 가져왔다.순환체계를 이탈한 엄청난 양의 쓰레기는 이제 더 이상 자원이 아니다. 이는 자연생태계의 파괴이고 환경재앙의 주범이 되고 있다. 이를 막고 깨끗하게 청소하여 없애버리기 위해 매립하자 역으로 같은 양의 침출수로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되는 등 환경재앙으로 나타나고 있다.쓰레기, 이제 자연순환체계로 되돌려야 한다.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라 자원으로 보아야 한다. 환경기술이나 공학적인 연구는 쓰레기 처리 차원이 아니라 자원재활용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그동안 많은 시민환경단체들은 이 문제의 핵심고리인 감량화-재사용-재활용과 도시-농촌간 순환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알뜰가게를 만들어 쓰지 않는 물품을 싸게 사고 파는 일을 해왔다.환경마크제도가 도입되도록 하여 환경상품의 생산과 구매에 대한 초석을 다졌으며, 일회용품 사용규제와 과대포장 줄이기, 우유병 사용하기, 음식물쓰레기 사료화ㆍ퇴비화 하기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등 쓰레기문제의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나서고 있다.환경부의 발표에 의하면,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1991년도 까지는 연평균 9% 가량의 증가하다가, 1992년 이후 부터는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폐기물발생량의 감소요인은 국민들의 감량화 노력과 함께 종량제 실시에 따른 쓰레기 분리수거 및 재활용율 활성화 등에 따른 것이기는 하나, 절대적인 발생량은 많은 실정에서 매립방식에 한계가 오게되었다.전주시 역시 쓰레기 감량화ㆍ재활용ㆍ재사용에 정책의 우선을 두지 않고 처리 방식에 급급하다 보니, 대부분의 예산이 매립장이나 소각장 건설에 투자하고 있는 실정이다. 매립이 65%, 소각이 7%인 반면 재활용은 28%밖에 차지 하고 있지 못하다.이렇게 쓰레기 처리방식 중 큰 비중을 차지 하고 있는 매립은 폐기물의 효율적인 처리라는 관점에서 우리 지역은 처음에 매립 방식에 의존하였다. 지가 및 공사설비의 상승, 일부 비위생적으로 조성된 매립장에서 배출되는 침출수 및 악취 등의 환경오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이에따라 매립장의 확보나 증설은 해당 지역주민의 반발로 지방자치단체의 골치아픈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여 전주시등은 그 타개책으로 쓰레기를 소각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그러나 소각방식은 소각시설의 초기 건설 투자비와 처리비용이 비싸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더구나 소각때 발생하는 다이옥신 등 인체에 치명적인 오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소각로 건설에 대한 환경운동단체의 반대에 부딪쳤고,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게 제기될 것은 뻔하다.그런데 이미 전주시와 전라북도는 광역소각장 건설계획을 수립하고 예산확보를 하여 토지매입에 들어갈 예정이다.또한 보다 더욱 심각한 사업장폐기물은 그 발생량이 생활폐기물의 약 3배 이상이 되는데 상대적으로 유가물 회수 등이 용이한 관계로 1998년 기준 재활용 비율이 66.1%(1994년 60.7%)로 매립비율 25.2%보다 휠씬 높다.그러나 양적으로는 매립량이 36,753톤/일을 나타내어 생활쓰레기 매립처리량 25,074톤/일보다 많은 양을 보인다. 이에 매립지 확보가 어렵고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그런데 최근 환경부가 폐유와 폐산성물질 등 유독물질인 지정폐기물을 처리하는 군산을 비롯한 5군데 지역의 지정폐기물소각장을 민영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많은 시민환경단체들은 환경재앙을 우려하면서 민영화 계획 철회를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군산처리장은 1999년 9월부터 하루 60톤씩의 지정폐기물을 처리하고 있는데, 작년 11월 410억원에 매각 공고를 냈지만 응찰자가 없어 1, 2차 입찰이 무산된 상태에 있다.이제 쓰레기 행정은 근본으로 돌아가야한다.즉 적극적 시민 참여유도에 의한 감량화, 분리수거문제로 말이다.이에 따른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문제는 쓰레기와의 전쟁에 이기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본다.전북 환경운동연합의장 전봉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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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1.27 23:02

[전북칼럼] 전북영화산업 발전전략

우리 나라는 억압과 고통의 때가 더 잦았다. 중국으로부터 비롯되는 정치적 억압뿐만 아니라 신분에 따른 계급적 억압, 그리고 환난과 천재지변에 의한 궁핍으로 오랫동안 끊임없이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이러한 억압과 결핍은 오히려 우리의 문화에 독특하고 강인한 아름다움을 은밀하게 압축하는 창조적 지혜를 기르게 했다.그렇다면 억압과 결핍의 미학이 우리 영화산업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할리우드 영화의 제작 방식은 마치 공장에서 하나의 제품을 만들 듯이 철저한 분업화로 이루어진다. 그것이 특징과 장점이다.일례로 B급 이하의 감독은 엄격한 계약에 의해 영화의 편집 과정에 결코 참여할 수 없다.할리우드는 아이디어와 돈과 통계와 각종 수치, 그리고 이것들을 담당하는 수많은 전문인력이 오랜 경험 속에 확보된 여러 코드의 흥행 논리에 맞추어 마치 컨베어벨트의 통조림 캔처럼 영화를 만든다. 여기에 작가의 정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반대로 영세한 자본과 열악한 시설, 절대 부족한 전문인력, 허술한 마케팅 등 할리우드와는 비교조차 어려운 국내 영화계는 상업 영화조차 대부분 감독에 의해 작가의 작업처럼 진행된다. 기획에서부터 시나리오, 각색, 콘티뉴이티는 물론, 촬영, 편집, 녹음, 심지어는 광고에 이르기까지 감독이 참여하는 일은 다양하다. 이러한 제작 구조에서 세계시장을 뒤흔들 블록버스터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환상이다.21세기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서 진정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은 할리우드와 같은 거대한 자본의 조성이나 합리적인 제작 시스템의 구축이 아니라 오직 감독과 제작자의 '작가정신'이다. 또는 다른 말로 '독립영화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의 이런 제작 방식은 어쩌면 지혜로서 장점일수도 있다.오직 정신력으로 세계의 주목과 찬사를 받은 영화운동 가운데 패전 후의 이탈리안 네오리얼리즘과 또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기의 프랑스의 누벨바그 영화 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한때 할리우드를 탈출해 뉴욕을 본거지로 일어났던 뉴 아메리칸 시네마 운동, 그리고 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란 영화 역시 그 중 하나가 되겠다.우리 문화의 뿌리는 '정신'에 있다. 우리가 의지할 것은 빼어난 미의식이지 자본의 규모나 앞선 기술력이 아니다.그러나 영화는 적정한 투자와 수익이 지속적으로 필요해 흥행이 중요하고 그러자니 오락적이어야 하고 규모가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작가영화의 제작이 어렵다. 두 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흥행에 관한 경쟁력을 오로지 작가정신의 미적 완성도에만 의존하는 '적은 예산의 독립영화'다.디지털시네마는 이 실험 체계에 큰 희망을 준다. 물론 '적은 예산의 독립영화'를 완성도가 높은 작가의 영화로 만들어내는 작업은 쉽지 않다.우리는 궁핍과 억압과 시련에서 오히려 에너지를 얻어내는 이 땅의 장인들처럼 강인한 '작가정신' '독립영화정신' 또는 '헝그리정신'이라 일컫는 가능한 기적을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전북에서 영화 작업을 하려는 나에게 묻는다.어떻게 전북에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가? 그야말로 나는 한국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북영화를 만들려는 꿈을 갖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니라 메이드 인 전라북도다. 충무로는 이미 없다.그러나 충무로 없는 충무로에서 한국영화는 리틀 할리우드의 망상에 젖어있다. 전북의 영화산업의 발전전략은 '리틀헐리우드의 망상' 對 전북의 '적은 예산의 독립영화'의 대립구조를 만들어 가는 길이다.전북 안에서만 유통되는 '디지털시네마 전용관', 전북인 만 보는 '적은 예산의 독립영화' 그리하여 마침내 국제사회에 무성한 소문을 뿌리게 되는 전북영화의 물결, 이른바 "작가정신의영화" "헝그리정신의 디지털시네마" "적은 예산의 독립영화" "큰 정신 작은 영화"가 바로 전북 영화의 예술화 작업이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전북영화산업의 발전전략이다.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문화운동이 지방자치단체보다 시민과 도민에 의한 민간단체의 자율적인 의지와 실천으로 이루어져야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성경 말씀이 있다."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신명기 제7장. 6절, 7절)/영화감독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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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1.19 23:02

[전북칼럼] 프랑크푸르트 想念

20년만의 폭설이 내리는 지난 7일에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떠나기 위해 김포공항에 도착했지만, 폭설로 인해 꼬박 30시간을 기다린 후 대기자 명단에 등록하여 겨우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일행 중 한명이 일정을 다음달로 연기하고 돌아가자고 했지만 독일에서의 일정은 그렇게 소홀히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항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계약서와 투자의향서 내용을 검토하며 기다려야만 했다.지금 나는 프랑크푸르트 호텔에 짐을 풀고 이 글을 쓰고 있다.낙후와 소외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 전라북도를 위한 새천년의 전북발전과 희망의 화두는 감히 '군산자유무역지역'의 활성화와 외국기업 유치라고 말하고 싶다.지난 10월에 대통령께서 군산자유무역지역 기공식전 식사장소에서 "군산자유무역지역은 새천년 전라북도에게 최대의 선물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우리 전북도민과 기업인들의 얼굴에서 실로 오랜만에 환한 웃음을 볼수 있었다.38만여평에 조성되는 군산자유무역지역은 2003년부터 입주가 시작되며 제조, 물류, 무역등으로 특화된 21세기 동북아지역의 국제 무역전진기지로 육성될 예정이다.3년 후에는 인근의 군산항을 자유무역지역으로 편입시켜 물류기능을 보강하고, 익산자유무역지역의 기능을 고도화시킨 후 전주과학산업단지와 연계하면 그야말로 군산-전주-익산을 연결하는 광역자유무역지역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이렇게 된다면 군산자유무역지역에는 100여개의 외국기업들이 입주하고 2만여명의 우리 근로자들의 고용 창출과 7천억원의 부가가치 창출 그리고 연간 40억 달러의 수출이 이루어질 것이다.2000년 한해에 전라북도가 이룩한 약 27억 달러의 수출액에 비교한다면 군산자유무역지역의 활성화가 가져다주는 전북발전의 시너지 효과를 짐작할 수 있다.그동안 전북발전을 위한 대형 SOC사업들은 새만금과 용담댐사업이었다.하지만 새만금사업은 환경단체와 일부 주민들의 반대, 그리고 야당의 지역이기주의에 발목을 잡혀 지금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고, 용담댐은 지난해 완공되면서 담수를 시작했다.그렇기 때문에 전북발전을 위한 새로운 대형 SOC사업의 구상도 필요하지만 정부의 긴축예산 편성 때문에 신규사업을 반영하기가 어려울 전망이다.이제 우리 전라북도는 모든 행정력과 도민들의 의사를 결집해서 군산자유무역지역의 조속한 완공과 외국기업유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한편 군산자유무역지역의 SOC시설 즉 항만과 인입철도등이 2003년 준공에 맞춰 건설되도록 관계기관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더불어 많은 외국인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조성도 중요할 것이기 때문에 주거공간과 교육문화시설, 레져시설등도 함께 조성하여 군산이 국제도시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해야 한다.천하가 흰눈으로 덮힌 한반도를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보며 나는 각오하고 다짐한 것이 있다.이 좁은 땅덩어리 그 중에서도 전라북도의 희망과 발전의 키워드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군산자유무역지역'이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중국과 동남아 그리고 북한으로 진출하려는 세계의 일류기업들이 반드시 우리 전북, 군산으로 찾아오도록 이제 백방으로 노력할 것이다.내일 아침부터 독일에서의 5박6일의 공식 일정이 시작되면 뉘른베르그시 상공회의소와 함께 군산자유무역지역에 대한 독일기업의 유치 그리고 독일과의 합작회사 설립과 전북에 관광휴양단지 조성을 위해 투자문제를 집중 논의하고 계약서와 투자의향서를 체결할 예정이다.그리고 풍력(風力)과 지열(地熱)에너지등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인 대체에너지를 우리 전북지역에 적용하기 위해 관련 시설을 방문하기로 일정이 잡혀있다.나는 지구의 반대편 독일에서 전북도민과 함께 생각하고자 한다.전북이 낙후와 소외지역이라는 오명을 벗고 동북아시대의 핵심지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군산자유무역지역의 준공이며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고 외국기업유치를 위해 도민과 함께 혼신의 힘으로 노력할 것인가?오늘 이 글을 한국에 보내면서 나는 프랑크푸르트 한 작은 호텔 방에서 깊은 상념(想念)에 빠져있다./김연종(군산상공회의소 회장)■ 약 력52년 군산출생군산고, 건국대, 원광대 공학박사대우건설 호남지사장, 원우건설(주) 대표이사, 호원대 강사전북애향운동본부 이사군산상공회의소 회장(현), 원우건설 회장(현), 원광대학교 총동 창회 부회장(현), 군산개항 100주년 기념장학회 운영위원장(현), 군산고등학교 총동창회 이사(현), 원우아트홀 대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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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1.13 23:02

[전북칼럼] 어려울수록 꿈이있어야 산다

새해 아침 나는 인후동 성당에 갔다. 안 가브리엘 신부님께서 좋은 축복의 말씀을 주셨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깨끗한 화선지 한 장을 받은 것과 같다. 지난 해 그림을 망친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절망스럽겠는가? 새해를 맞아 새롭게 받아든 하얀 화선지 위에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새로운 그림을 시작해야 한다." 꿈을 다른 말로 바꾸면 비전이다.1960년 케네디는 냉전에 지친 미국 국민들을 향해 새로운 비전 -우주를 향한 뉴프론티어-를 제창했다. 우주공간을 목표로 한 미국인들의 도전은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낳았고, 1969년 인간을 달에 착륙케 했다. 그 후 미국은 우주항공 분야에서 확실하게 세계 최고 최강 불패의 경쟁력을 누리고 있다.2001년 신사년(辛巳年) 우리의 비전은 두 가지 방향에 있다. 하나는 주식값이 꾸준히 오르는 나라를 향한 비전이다. 새해 벽두 주식값이 연 사흘째 올라 모처럼 웃음을 되찾았다. 이것이 한 순간의 반짝 상승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상승으로 이어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첫째는 투명화 작업이다. 오늘 한국의 증권거래소와 코스닥 시장을 통틀어 주식의 시가총액은 250조원, 약 2,000억 달러이다. 반면, 일본의 일개 통신회사인 NTT의 시가총액은 650조원, 5,000억 달러를 상회한다. 아무리 대한민국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일본의 일개 통신회사 주식의 40%에 불과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부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핵심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돈을 가진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과 한국기업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데 있다. 그들을 믿게 하는 것- 그것이 투명화 작업이고, 다른 말로 바꾸면 구조조정 작업이다. 구조조정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나, 그 고통을 뚫고 나가야만 우리 앞에 다시 꿈과 희망을 세울 수 있다.둘째는 디지털 경제강국의 건설이다. 지난 연말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誌는 "Korea gets wired"(거미줄처럼 네트워킹되고 있는 한국)이라는 제목과 함께 한국의 인터넷 열풍을 표지 특집기사로 다뤘다. 불과 3년만에 일본을 따라잡고 미국을 제외한 여타 산업국가 가운데 정보화의 인프라(하부구조)와 인터넷 부문에서 선두그룹으로 떠오른 한국을 주목하라는 이 기사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제 시작이지만, 디지털과 인터넷에 우리의 사활이 달려있다. 정치와 관료가 정보화의 물길을 앞장서 선도해 내기만 하면, 인터넷의 물결은 우리를 정보화 강국의 자리로 인도해줄 것이다.불과 7-8년만에 세계 최고의 정보화 경쟁력을 건설한 핀란드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1990년대초 핀란드는 한국과 비슷했다. 그러나 한국의 낡은 정치 리더십과 관료들이 고철덩어리로 변한 한보철강에 5조원을 쏟아 붓고 물류해소에 아무 구실도 못할 경부고속철도에 20조원을 투하하고 있을 때 핀란드는 국가 투명화와 정보화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는 세계 최고의 나라와 IMF 구제금융 국가라는 극명한 대비로 나타났다. 같은 이치로 전라북도도 "산업화에서는 뒤졌지만 정보화에서는 앞서가야" 한다. 공해없는 고부가가치 산업인 디지털산업과 관광산업에서 앞서가는 데 21세기 전라북도의 꿈과 비전이 있다.또 하나의 비전은 북방 프론티어이다. 평화의 깃발로 북방을 뚫고 가야 희망이 열린다. 역사의 대문이 열렸을 때 망설이지 말고 확실하게 뛰어 들어가야 한다. 냉전의식의 감옥에서 탈출해 탈냉전의 세계사에 합류해야만 한다. 평화가 긴장보다 싸다. 2001년 국가예산 100조, 국방예산 15조(15%). 70년대와 80년대 거의 30%를 차지했던 국방비의 비중이 많이 줄었다. 그리고 줄어든 만큼의 예산을 정보통신 등 다른 부문에 분산시켜 국가발전을 도모하고 있다.이제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독일 통일의 과정에서 서독이 동독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역시 북한에 시장을 만들어 줘야 한다.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지만 과거의 중국이나 베트남이 아니다.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 돈이 들어가야 시장이 생기고 북한이 뒤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 속도조절론은 착각이다. 오히려 때를 놓치지 않고 변화를 끈질기게 추구해야 한다. 특히 남북간 체제 대결은 이미 끝났다. 더 이상 남북의 격차를 벌이는 일은 오히려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남북의 격차를 줄여가야 한다. 이것이 현실적인 평화를 보장한다. 북방 비전의 실현없이 7,000만 민족의 내일은 열리지 않는다.주식값이 꾸준히 오르는 나라를 만드는 것, 디지털 정보강국을 실현하는 것, 그리고 냉전을 허물고 북방으로 가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의 꿈이자 비전이다. /정동영의원 (민주당 최고위원,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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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1.05 23:02

[전북칼럼] 세계화 구호와 모국어 경시풍조

문민정부(文民政府)가 들어선 이후 우리 사회에 등장한 구호가 '세계화'였다. 정부당국과 언론 매체를 비롯하여 지식인집단 사이에서 그것이 중요한 주제의 하나로 부각되었다. 그 내용은 한국이 국제 경쟁을 피할 수 없다는 것과 국제교류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인과의 교류를 확대하고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제 공용어로 사용되는 영어를 습득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세계에 유통되는 지식정보 자료의 80% 정도가 영어로 되어 있고 지구촌 주민의 4분의 1이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영어를 국어나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가 75개국에 이르고 있는 현실도 국제화 시대의 영어 위상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영어구사력이 그 사람의 능력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제화 시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당위성만을 성급하게 강조할 때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이 사회에 불어닥친 영어 교육 열풍이 그것이다. 교육당국이 어린 학생의 유학을 금지시킬 정도로 그 부작용이 심각했고, 자녀들에게 영어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을 만큼 우리 사회는 영어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전주를 비롯한 상당수의 도시에 위치한 이름 있는 유치원에서는 한 두 명의 영어권 원주민을 초빙하여 강사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찍부터 영어를 습득케 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우리 사회에 번지고 있는데, 그것이 세계화에 부응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한국어에 관한 기초적인 소양을 갖추지도 않은 미래의 새싹들에게 외국어를 배우게 하는 것은 그들의 민족적 자아를 부정하거나 흔들어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족의 정서와 사상을 담아내는 그릇이 모국어이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본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가 말했듯이 "언어는 정신의 지문"에 해당한다.새 천년 이전의 10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근대화가 대부분 서구화를 뜻했고 그것은 민족적 자아를 버리고 고유한 생활문화를 부정하는 것을 의미했다. '서구 닮아가기'와 '서구 따라잡기' 식의 무분별한 모방과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 조성된 영어 조기교육 풍조가 20세기 초와 유사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진단이 가능하다. 국제화 시대가 가속화되고 전통적인 의미의 국경개념이 무너져버린다 해도 여전히 정해진 국토에서 각각의 민족이 그 나름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신자유주의 자본시장의 가치관이 스며든 '세계화 구호'는 상당히 위험하다. 자칫하면 그것은 민족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의 구분을 없애버리면서 지구촌 한가족의 환상을 심어줄 우려가 있고, 나아가 민족적 정체성을 부정하면서 민족단위의 존재근거를 위협할 수도 있다.특히 우려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세계화가 효용성과 기능성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평가하려는 풍조로 변질된 점이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어린 세대의 언어생활 현장에 그 징후의 일단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폐단은 심각한 문제를 불러오게 될 것이다. 민족 구성원으로서의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의 어린 세대에게 영어를 주입시키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에 부응하는 길인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세계인류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서는 다양한 언어와 복합적인 문화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것이 세계화를 실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유치원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젊은 세대 모두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이 세계화를 실현하고 국제화 시대를 앞당기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국어문장 하나 작성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수두룩한 것이 대학사회의 현실이다. 그러한 현실의 이면에는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습득하도록 부추김으로써 생겨난 모국어 경시풍조가 자리잡고 있고, 그것은 왜곡된 세계화의 진행이 빚어낸 부정적 결과이다. 모국어에 대한 올바른 사용법도 익히지 못한 젊은 세대가 냉혹한 국제경쟁의 시대를 헤쳐나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최명희가 지적했듯이, "모국어는 우리 삶의 토양에서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품고 길러 정신의 꽃으로 피워주는 씨앗"이다. 첨단 기술문명이 펼쳐놓은 영상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그 씨앗이 "단순한 기호"로 흩어져버릴 것을 우려하여 최명희는 자신의 생명을 녹여 '혼불'을 썼다. 세계화의 잘못된 풍조에 감염된 젊은 세대 사이에서 수천년 동안 우리민족의 삶이 면면히 녹아 있는 모국어가 "단순한 기호"로 흩어져 버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전정구(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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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12.29 23:02

[전북칼럼] '사슴사냥'의 교훈

한 무리의 사냥꾼들이 사슴을 잡기 위해 사냥을 시작한다. 사슴이 있을 법한 산을 둘러싸고 사슴을 몰아 조금씩 올라가면서 정상에서 잡기로 약속한다. 사슴을 잡으면 모든 사냥꾼들이 고기를 골고루 나누어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사슴사냥이 무르익을 즈음 한 사냥꾼의 옆으로 토끼가 지나간다. 순간, 사냥꾼은 망설인다. 그 사냥꾼은 토끼를 잡아 배불리 먹을 수도 있지만, 그가 토끼를 잡으려는 사이에 사슴은 그의 자리가 빈 틈을 이용해 달아날 수도 있다. 사냥꾼은 생각한다. 다른 사냥꾼도 토끼를 보면 사슴사냥의 대열에서 이탈할 것이라는 의심을 버리지 못한다. 결국 그 사냥꾼은 자신의 옆으로 지나가는 토끼를 잡기 위해 정상에서 사슴을 잡자는 약속을 배반하게 되고, 사슴사냥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루소는 '사슴사냥 우화'를 통해, 국제사회의 무정부적인 특성 때문에 결국 국제사회에서 협력이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모든 사냥꾼들이 사슴만을 잡도록 통제할 수 있는 중앙 권위체가 존재하지 않는 국제사회에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사슴사냥, 즉 국제협력은 도무지 어렵다는 것이다.국제사회와 달리 개별 국가는 '강제력'을 가진 중앙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루소의 사슴사냥 우화가 적용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다양화분권화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한 국가의 중앙권력이 완벽한 통제를 한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위해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집단, 그리고 개별 구성원을 강제한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속한 집단 혹은 계층의 희생이 요구된다고 느껴질 때는 더욱 그렇다.따라서, 현대 사회에서 정부의 역할은 사냥꾼들에게 사슴을 잡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냥꾼들이 사슴을 잡는데 협력할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사슴고기가 모든 사냥꾼에게 골고루 나누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최소한의 조건이다.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경제에 쏠려있다. 다가오는 2001년, 우리가 잡아야 할 사슴은 자연스럽게 '경제 살리기'에 맞추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순조로와 보이지 않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경제 회생에 대한 여전한 불안감, 연일 신문에 오르내리는 부정부패 사건들, 빈부격차의 심화에서 느껴야 하는 상대적 박탈감, 불안과 불신이 좀처럼 가셔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국민이 경제를 살리기 위한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는 믿음도, 국민 모두의 이익을 위해 공평하게 감수해야할 어려움이라는 인식도 많이 부족한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경제 살리기'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당면과제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어느 한 집단의 혹은 특정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공통의 이익이라는 믿음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득을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도록 자발적인 협력을 이끌어 내는 일이다. '토끼를 잡기 위한 배반'보다 '사슴을 잡기 위한 협력'을 선택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새천년의 설레임으로 시작했던 한해가 어느새 저물어 가고 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정부와 국민 모두가 '사슴사냥'의 지혜를 모아 경제회생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도록 슬기롭게 대처해 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국회의원 정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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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12.22 23:02

[전북칼럼] 언론보도와 은행

일부 언론에서는 수시로 각 은행의 수신고와 그 추세를 비교하여 지상에 발표하고 있다. 수신고 중심으로 보도하게 되면 기자가 보도자료를 만들기도 쉽고, 또한 독자가 이해하기도 쉽다. 그런데 이러한 보도는 결과적으로 수신고가 건전성, 신인도, 경쟁력 등 은행평가를 위한 중요한 지표임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된다. 그러나 언론이 수신고를 손쉬운 은행 평가자료로서 보도하는 것이라면 이는 언론이 은행영업을 잘 모르는 단순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은행산업과 경제에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먼저 수신고 증가의 경우를 보면 우량은행의 수신고만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예금보장한도제도 시행을 앞두고 출시된 자유만기예금은 유동성이 높은 자금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개발된 상품이다. 예금자가 일단 고금리로 예금한 후 나중에 불안해지면 조기해약에 따른 이자손실이 거의 없이 해약할 수 있기 때문에 거액 예금자들이 비우량은행에도 위험부담 없이 예금할 수 있는 상품이다. 이러한 예금은 위기시 제일 먼저 빠져나갈 자금이므로 은행이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차원에서는 실질적 도움이 안되겠지만 예금계수를 높여 언론보도시 대외 이미지를 좋게 하는 효과는 일반 예금과 다를 바 없다. 비우량은행의 수신고가 증가하는 또 하나의 경우로는, 부실이 커지더라도 향후 공적자금을 받아 클린뱅크화 될 것이 확실시되는 비우량은행은 이율이나 그 외의 조건만 좋다면 현재의 부실상태에도 불구하고 예금을 유치한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이런 은행은 고금리로 인하여 적자가 커지더라도 차후에 공적자금으로 손실을 메울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하게 높은 금리로도 예금을 유치할 수가 있으며, 이 점에서는 공적자금을 받지 않는 우량은행보다 유리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비우량은행도 예금계수를 우량은행과 같이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수신고 증가는 허수인 측면이 있지만, 이와는 반대로 수신고가 감소하거나 정체된 것이 언론에 보도될 경우에는, 이유에 상관없이 불리해진다. 구체적으로는, 영업정책상 예금고를 무리해서 늘리지 않는 은행의 경우 현재 이익이 정상적으로 나고 있을 지라도 언론보도로 인하여 시장에서는 경쟁력을 의심받을 수 있다. 비우량은행의 경우에는 수신고가 어쩌다가 일시적으로 감소하여 이것이 보도되면 신인도에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이렇게 언론보도는 다수의 은행들로 하여금 예금계수를 무조건 늘리도록 압력을 행사하는데, 이에 따른 부작용이 은행산업과 경제에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 중 첫째는 적정 운용규모를 초과하여 예금을 받음으로써 마진이 감소한다는 사실이다. 즉, 적정수준을 초과한 예금은 MMF나 CD 등 예금이자보다도 낮은 금리로 운용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과다한 예금보유로 인하여 고민하는 건실한 은행 중에는 더 높은 예금금리를 주는 비우량은행에 예금을 하여 수신영업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모면해보려는 은행도 나타났다. 은행산업의 과다수신규모를 반증하는 또 다른 증거로는 수신액은 감소했지만 반대로 업무이익은 증가하는 은행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수신고가 줄면 대출액도 줄어 이것이 업무이익 감소로 이어지던 IMF관리체제 이전시대의 현상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두 번째 부작용으로는 예금유치에 지나치게 노력한 결과로 나타나는 대출부분의 상대적 위축이다. 리스크가 없는 담보대출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담보는 없지만 리스크가 적은 신규 대출고객을 개발하면 마진이 높은 줄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수신증가에 노력을 집중하다보니 이러한 알짜 대출부문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관리된다.결론적으로 현재 다수의 은행들은 언론의 단순한 수신고 보도로 인하여 과다한 규모의 예금을 고금리로 유지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은행들은 구조조정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예금을 유치하나 그럴수록 손실이 커지는 상황에 처해져 있다. 이렇게 열심히 잘못하고 있는 은행대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은행들의 노력은 시장에서 영업력이 떨어지는 은행으로 오해받을 가능성으로 인하여 평판리스크를 증가시킨다. 따라서 결자해지라는 용어가 의미하듯이 과다수신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는 언론 편에서 먼저 수신고 보도를 중단하는 것이 문제해결 방안으로서 정석이 된다. 이러한 결단은 또한 국가경제를 위해서도 유익하다. 왜냐하면 수신고 증강의 노예가 되어 오합지졸이 된 은행원들의 생산성을 제고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혈세부담도 줄여주기 때문이다. 문제가 방치되어 적자가 커지면 결국은 국민들이 혈세로써 은행부실을 부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전북은행 김동식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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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12.15 23:02

[전북칼럼] 조화와 부조화

전주 시내의 도심이나 변두리 지역에 웬지 어색한 상업용 건물들이 심심치 않게 들어서는 것에 많은 이들이 반신반의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건물 자체보다도 주변 환경과 전혀 조화롭지 못하다는 점과 전주시의 일상적 도시 이미지를 흐트러뜨린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한편 그러한 건축물이 가능하게 한 우리의 건축법이 너무 유약하기까지 하지 않나 하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독일같은 경우 집의 지붕 형태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 있고 창문을 보수할 때도 그 지역의 전체 경관을 거스르지 않나에 대하여 고심하기 때문에 이웃집의 동의를 받아야 할 정도로 까다롭다. 하물며 건물 전체 형태야 말할 것이 없다. 지난 11월에 서울 코엑스 아셈 회의장과 인디언 홀에서 열흘간이나 열린 새천년건설환경디자인 세계대회가 성황리에 이루어진 것은 21세기의 우리나라 주거환경을 발전시키는 큰 촉진제가 될 것 을 기대하게 하였다. 이 대회에는 각국의 유수한 학자들을 초빙하고 한국 뿐만 아니라 외국의 학부 및 대학원생들을 대회에 참여토록 유도하므로써 수준높은 학술대회의 성과를 보여주었다. 우리 전주지역에서도 여러 학생들이 참가하여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좋아하였다. 이 대회의 구성은 크게 유니버설 디자인, 그린디자인, 문화디자인의 세 주제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유니버설디자인이란 말 그대로 보편적 디자인을 의미한다.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건 없건, 젊은이건 노약자건 누구에게나 가장 편안하고 유용한 공간 환경 디자인을 의미한다. 그린디자인은 생태적 환경디자인으로 사람들이 지어내는 인공환경과 자연환경과의 가장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이 유지될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환경을 지향하는 것이다. 문화디자인은 그 민족과 지역의 전통적 정서에 부합되면서 고유한 특성을 지니는 환경디자인을 의미한다. 우리가 사는 주거환경은 이제 나 개인에 한정하지 않고 공동체 환경으로 구성된다는 점이 후기 산업사회의 주요 특징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세가지 측면의 조화로운 공간디자인이야말로 중요한 현안이라고 할 수 있다. 조화로운 집이나 건물은 한마디로 세련된 풍모를 주면서도 주변과 어울려 눈에 두드러지지 않고 편안하고 지속적인 아름다움을 주는 것이다.집을 자신의 몸과 비교하면 재미있다. 우리는 모델하우스에 가서 그 깨끗하고 정돈된 환경에 기분좋은 느낌을 받는다. 새로운 아파트에 입주하여 그러한 모습으로 생활하고픈 마음은 누구나 같다. 몸에 잘 맞고 편안한 옷을 입을 때는 마음도 편안하지만 매우 격식적이거나 화려한 옷을 입을 때는 불편하다. 과식을 하면 살이 찌거나 위가 약한 사람은 체하기를 자주 하고 결국 질병으로 이어진다. 탐식과 별식, 그리고 미식을 즐기는 사람들은 얼굴에서 풍기는 느낌도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가끔은 경험하게 된다. 집도 마찬가지이다. 공간의 크기에 비하여 너무 가구나 물품이 많다든지 또는 요란한 실내 마감이나 재료를 쓴다든지, 또는 화려한 실내장식용 가구나 장식품이 많은 경우는 공간감이 상실되어 그러한 물건들로 하여금 오히려 거주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게 될 것이다. 가장 조화로운 집은 거주자에게 가장 합당하고 편안하며 정신적으로 충분히 휴식을 줄 수 있는 공간을 꾸미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물질환경에 현혹되지 말되 가족의 건강한 주생활을 위해 필요한 곳은 과감하게 개선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우리나라도 이제 집의 리모델링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기보다는 기존의 공간 환경을 적은 비용으로 늘 새롭게 개선할 수 있는 지혜와 정보를 받아들이도록 거주자나 건물 소유주의 관리 능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것 역시 조화로움에 대한 의식과 태도로써 21세기에 가서는 더욱 중요하게 요구될 거주 의식이다. 실내공간의 조화는 내 가족을 위한 것이고 실외 공간이나 외관의 조화는 이웃과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동체 생활을 위하여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결국 이러한 행위는 무엇보다도 본인들에게 큰 정신적 기쁨을 안겨주고 거주자의 정체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 그리고 이웃 주민들과 조화의 중요성을 인지하도록 깨닫게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박선희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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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12.08 23:02

[전북칼럼] 신춘문예와 예비문인

문인이 되려는 사람마다 신춘문예의 열병을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초겨울이 다가오면 마음이 조급해 지고 기대감이 부풀면서 지난 세월의 습작품 모두를 갈기갈기 찢으며 온밤을 밝히는 퇴고의 고통을 겪는다. 그 고통의 결실이 바로 당선의 영광인데, 중요한 것은 문학적 글쓰기가 그의 삶에서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고라도 지속시켜나갈 가치 있는 생의 절대적인 목표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문학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은, 인간과 예술 앞에 가로놓인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가능성으로서의 고통을 짊어진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점에서 등단의 영광 그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응모하는 예비문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되는지 의아스럽다. 당선을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는 통과제의의 절차 정도로 간주하는 태도가 팽배해 있는데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사르뜨르는 구토에서 예술가가 겪고 있는 고통과 갈등과 절망을 너무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는바, 문학의 길은 고통스런 투쟁이며 그칠 줄 모르는 갈등이 연속되는 가시밭길에 비유될 수 있다. 그 길에 들어선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의 신춘문예 당선작에서 문학예술 본연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는 외로운 구도자의 의지를 발견하기 어렵다. 새로운 예술정신에 장애가 되는 기성문학의 사고를 거부하는 반항정신이나, 논리와 이성을 뛰어넘어 인간 내부와 외부에 존재하는 추상적이고 신비스런 그 모든 현상들과 맞서서 대결하려는 고통스런 의지와 집념의 자세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모험과 혁신을 외면하는 상식적인 글쓰기가 팽배하면 진정한 예술의 빛이 꺼져버린다. 좋은 작품이란 시류의 거부로부터 탄생될 수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황당하게 늘어놓아 무엇이 무엇인지를 모르게 만드는 난삽한 잡설이 되어버리거나, 혹은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소재에서 문학적 메시지의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현 문단의 유행병이 신인들의 작품에 그대로 추수되는 현상이 문제이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기성 문단에서 이해 받지 못하는 실험성과 통상적인 문학의 잣대로 잴 수 없는 참신성, 그리고 나아가 나태한 우리 문단을 쇄신할 수 있는 혁신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신인의 작품을 기대하는 것이 연목구어(緣木求魚)의 헛된 소망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것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매년 반복되는 상식적인 글쓰기의 범용성이 만들어 내는 문학의 소품화(小品化) 현상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춘문예 제도는 평균적 글쓰기의 능력을 선별하는 제도가 아니다. 기성 문단의 모든 관행에 굴복하고 작금의 문단 기류에 영합하는 문학적 글쓰기를 공인하는 제도로 전락한다면 그것의 존재가치나 의의는 반감되거나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적 삶의 법칙에 매몰되는 기성 문단의 부정적 흐름을 과감히 떨쳐버리는 패기의 정신이 신인들에게 요구되는데, 그러한 정신은 평균적 글쓰기의 상식을 깨뜨리면서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도전정신과 상통한다. 위대한 예술에서 그것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살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해 왔다. 일상의 삶에 고귀한 예술정신을 주입하는 방법이나, 현대적인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해 영원히 살아있는 예술정신의 구현에 목적을 두지 않고 기교와 수사의 세련미만을 추구하는 신인들의 글쓰기는 그들의 작품에서 진한 감동을 스스로 추방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인간성에 대한 통찰을 깊이 있게 추구한 작품, 미래의 비전을 탐색하면서 민족정신을 형상화한 작품, 왜소화된 정신문명과 황폐한 현대적 삶의 고뇌를 천착한 작품을 찾기 어려운 것이 최근의 신춘문예 응모자들의 작품에 나타난 한계이다. 올해의 선별작업에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한 작품이 당선의 영예를 안기를 희망하면서 마지막으로 심사에 참여하는 문인들과 제도 시행의 주체인 신문사 관련 당사자들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심사료를 챙기는 연례행사의 일환으로 착각하여 온 생애를 문학에 바칠 각오로 젊음을 불태운 신인들의 원고뭉치를 가벼운 손짓으로 날려버림으로써, 진짜 당선작이 소외되는 사례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심사자들의 심사과정도 문제이지만, 특히 그들의 선정작업에 따른 부조리한 관행과 모순 때문에 신춘문예 등단의 영광을 안아야 할 예비문인들이 패배와 절망을 맛보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직도 외국문학 전공 교수가 동원되는 현실, 상아탑에 안주하며 기득권을 누리는 기성 문인들의 보수적 성향, 중앙문단의 이름 있는 작가들이 해갈이 하듯이 교대로 심사하는 모순, 지방문인들이 소외되고 지역문학의 특색이 무시되는 현상 등이 어떤 식으로든지 해결되어야 한다. 미래의 한국문학을 건설할 전사들을 선발하는 신춘문예 등단제도의 투명성과 공정성은 이 모든 모순과 부조리한 관행들이 타파될 때 가능하다./전정구(전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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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12.01 23:02

[전북칼럼] 느림의 미덕

어느 순간 '속도'는 이 시대의 맹목적인 신앙이 되어버렸다. 속도, 그 중에서도 '빠름'만을 신봉하는 현대사회는 '1초라도 빨리'를 외쳐대며 사람들을 몰아간다. 현기증 나도록 빠르게 움직이는 시대에 여유를 갖고 천천히 생각하는 사람은 자칫 게으른 사람으로 생각되기 쉽다. 이 시대의 유일한 미덕은 '빠름'이며, 따라서 '느림'은 곧 악덕이다. 비록 한국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한국인의 빠름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 중 하나가 '빨리빨리'라는 것, 마치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난 듯 빠른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모습, 앞지르고 끼어들고 차선을 바꾸지 못해 안달하는 운전자들, 5초를 기다리지 못해 '닫힘' 버튼을 눌러대는 엘리베이터 안의 풍경...'빠름'의 가치에 지배당하고 있는 한국인의 모습은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빨리빨리'는 후발 산업국가로서의 한국이 지난 수십년 간 압축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를 짓눌러온 강박관념일지도 모른다. 출발이 늦었기 때문에 남보다 빨리 가야하고, 행여 머뭇거리다 남보다 늦어지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기묘한 압박감이 만들어낸 산물인 것이다. 어쨌든, 빠름에 대한 한국인의 신앙은 결국 빠른 성장을 이룩했으며, 빨리 성장하고 싶은 나라들의 모범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우리는 빠른 성장에 우쭐해 했으며, '빠름'에 대한 열렬한 신봉자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빠름의 가치만을 신봉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생각과 생활에서 '느림'을 몰아내면서 무엇을 잃었을까? 조기완공을 자축하던 건물들이 힘없이 무너지고, 역사에 남을만한 '빠른성장'은 그것이 과연 '성장'이었는가를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왜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단 한번이라도 뒤돌아보며 생각해보는 여유를 잃고 있다. 느림의 미덕을 잃고 있는 것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느림은 게으름도 무능력도 아니다. 시간이 없으면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느림은 그저 '조롱'받아야 할 악덕이 아니라 일상이 뒤죽박죽 되지 않도록 하는 지혜이며 능력이다. 도무지 풀릴 것 같지 않은 사건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능력, 서두르는 사람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 비록 느리더라도 차분히 생각할 줄 아는 사람만이 후회하지 않을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느림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느림, 느긋함 그리고 여유가 무조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해야 하는 일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신속한 처방이 요구되는 일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이처럼 우리는 경우에 따라서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해야 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빨리 해야할 것과 천천히 해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는 '빨리빨리'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우리의 앞엔 빨리 풀어야 할 과제들이 셀 수 없이 많다. 빨리 풀지 않으면 위기가 올 것이라는 우려가 우리의 조바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또 '빨리빨리'에만 집착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똑같은 문제에 다시 부닥쳐야 할 지도 모른다.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중요한 문제라면, 오히려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서두르면 안된다. 빠름보다는 오히려 느림의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조급함을 누르고,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서 차분하게 풀어나가려는 마음가짐, 그것이 우리가 회복해야할 '느림의 미덕'이다./국회의원 정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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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11.24 23:02

[전북칼럼] 신뢰부국(信賴富國)

국내에서 많이 듣는 단어가 경제선진화, 경영선진화 등 선진화다. 선진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지만 문제는 선진화 가능성이다. 선진화에 필수불가결한 자원들 중 유형의 자원에만 마음을 빼앗겨 간과하고 있는 자원은 없는지? 동일한 유형자원을 가진 경제라도 이들 자원이 결합될 수 있는 범위와 방식에 따라 생산능력에서 큰 차이가 나며 선진과 후진의 차이가 드러난다. 결합을 쉽고 강하게 하는 자원 중 형태는 없지만 중요한 것이 계약의 기반이 되는 신뢰다. 신뢰가 없으면 결합자체가 어려워지고, 특히 약속이 장기간에 걸쳐 이행되어야 하거나 배신할 경우에 큰 손실이 따르는 결합은 비록 약속이행에 따른 이익이 커도 이에 따른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회피하게 된다.신뢰가 부족할 경우에 치르는 손실은 일부 국내기업들이 자금 조달할 때 잘 나타난다. 회계처리가 불투명하여 실제의 부채액과 현금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운 기업은 저금리의 장기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조달을 할 수 없고 대신에 단기의 고금리 차입을 통해 투자를 해야하기 때문에 그만큼 경쟁력이 떨어진다.인사관리에 있어서도 원칙보다 파벌이익을 선호하여 인사관리에 대한 조직원들의 신뢰가 줄면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우수한 직원들이 이탈한다. 인사관리에 대한 신뢰도가 낮기 때문에 기업합병에 따른 시너지효과도 작다. 인사정책의 합리성에 대한 신뢰가 타민족에 비해 높은 앵글로색슨계통의 기업문화권에서는 합병이 빠르고 순조롭게 진행되고 시너지효과도 나타나는 반면, 국내에서는 합병에 따른 인원조정의 규모가 크지 않아도 자신들에 관한 인사결정이 합병 후에도 공정하게 처리되리라는 믿음이 없어 합병자체에 강한 저항이 따른다. 서로를 믿기 어려워 합병 후에도 한 지붕아래 두 살림을 하는 기업이 나타날 수도 있다.국가의 정책입안자들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경우에는 국가경제 전체가 이로 인한 손실을 입게된다. 한번 결정된 정책이 그때 그때마다의 이익집단의 힘에 따라 수정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 정책결정의 확고성(finality)이 낮은 경우에는 경제에 드리운 불확실성이 짙게 되어 투자를 위한 장기전망이 불가능하게 되어 장기사업계획이 유보되고 자금시장의 투자자들이 관망세를 지속하게 되어 주가가 침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국내적으로 보면 현정부는 그 동안 여러 차례 경제개혁에 관한 정책을 발표하였지만 이에 따른 해외 반응은 기대 이하였고 주가에 미친 영향도 미미했다. 해외투자자들이 현 정부의 경제개혁을 향한 의지에 대하여 크게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정치분야에 있어서는 민주주의와 남북화합을 위한 현정부의 소신과 정책결정의 확고성에 대하여 신뢰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따라서 현 정부의 남북관계에 대한 정책결정의 발표는 즉각적으로 주변국들의 대북정책에 변화를 유발시키는 힘이 있다. 이렇게 동일한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이라 하더라도 그 동안 해당분야에서 쌓은 신뢰의 정도에 따라 해외에서의 반응이 다르고 효과도 달라지는 것이다.신뢰란 이렇게 서로의 이익을 증대시키며 결합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는 중요한 자원이지만 자동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고 우수한 문화가 뒷받침될 때 신뢰부국(信賴富國)이 될 수 있다. 신뢰수준이 교육수준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관찰된 바로는 종교의 영향이 더 크다. 이제까지의 신뢰부국은 서구 중에서도 신교도의 비중이 높은 국가들이다. 종교개혁을 통해 이룩된 새로운 신교전통은 사회 전반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개인과 조직을 배출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국내의 경우 우리 인격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끼친 유교는 불행히도 명분과 체면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형식주의로 인하여 신뢰부국을 이룩하는데 실패했다. 국내 기독교 역시 교인 숫자는 늘었지만 사회 저변에 깔린 형식주의와 기복신앙으로 인하여 신뢰 면에서는 더 기여한 바가 없다.결론적으로 한국은 현재 신뢰부국이 아니며 가까운 장래에 신뢰부국권으로 진입할 수 있는 문화적 받침대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40년전 4.19내각과 5.16정권이 경제적 빈국임을 통감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했듯이 지금이라도 우리 지도층이 신뢰빈국임을 통감하고 이를 탈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정도의 국민이라면 이미 신뢰부국을 이룰 수 있는 씨앗을 내면에 가졌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개혁신앙에 따라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3백80년전 추운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들에게도 이러한 씨앗이 있었다./김동식(전북은행 리스크관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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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11.17 23:02

[전북칼럼] 복지행정의 사례

1993년 여름 우리 부부는 1년간의 해외 연구를 목적으로 도쿄의 나리타공항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외국인 거주 신고를 하기 위해 우리가 찾아간 곳은 미나토구 구청이었다. 그런데 우선 눈에 띈 것은 직원의 친절하고 신속한 일처리 태도였다. 그리고 담당 부서별로 다양한 책자와 홍보물이 잘 비치되어 있어 필요한 사람은 누구든지 가져갈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인상적이었다.더욱이 놀라운 것은 외국인은 물론 다른 곳에서 이주한 사람들을 위해만들어진 '미나토구 생활가이드'라는 책자가 일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제작된 것이었다. 알찬 살림을 위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자 속에는 그야말로 온갖 자세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었다. 여가정보, 문화정보, 생활정보, 행정정보 등 네가지 주제로 구분이 수록된 이 책 속의 몇가지 정보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여가정보'에는 공공시설 정보가 안내돼 있었다. 복지회관이나 아동관, 사회교육시설 등의 집회시설, 테니스 및 수영 등의 각종 스포츠시설, 도서관, 박물관이나 미술관, 식물원 등과 구내 및 도내의 유적지등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담겨져 있다.'문화정보'에는 식생활 문화로 대표적인 식당 음식에 대한 소개, 관혼상제에 대한 풍습, 일상적 생활에서의 예절이나 금기사항, 여행을 위한 교통안내 및 숙박의 상식, 그리고 국제교류 기관에 대한 소개가 들어 있다.'생활정보'에는 우선 외국인을 배려한 수입식품 취급점과 백화점 사용안내, 소비자센터, 공예품안내, 이발소와 미장원, 목욕탕과 코인세탁실(빨래방) 소개, 주택 거주에 대한 자세한 임대비 소개, 이사문제, 쓰레기 처리방법, 금융기관, 해외통신 및 우편, 교통안내에 이르기까지 아주 자세한 정보가 들어 있다.'행정정보'에는 구청 청사의 주요 창구 안내 및 등록과 신고절차, 인감등록, 외국인 상담, 세금제도와 연금제도, 고령자복지 및 심신장애자 지원과 시설안내, 비상시 연락번호, 지진 대비 상황 및 대응, 건강보험, 어린이 출산 및 양육과 교육기관 등이 실려 있다. 이러한 주된 내용과 더불어 마지막 장에는 각 기관에 대한 전화번호 안내 및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는 간단한 회화안내가 마련이 되어 있어 일어가 능숙치 못한 외국인들을 위한 배려에 많은 관심을 가진, 노력하는 복지 행정의 일면을 볼 수 있었다.필자가 이것을 장황하게 소개한 이유는 우리 전주를 비롯한 전북지역에서도 외국인들의 증가에 따른 선진 복지행정 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이다. 다른 것도 아닌 위와 같은 정보책자야말로 소중한 생활지침서로서 복지 행정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전북대학교만 하더라도 국제교류에 따른 정책으로 중국, 일본 및 동남아시아권의 방문 유학생 및 언어 교육을 위한 서구권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학교 뿐만 아니라 영어학원을 비롯한 몇몇 회화교육을 위한 각종 기관에는 해당 외국인 강사가 늘고 있으며 또 이전부터 공단에도 외국인들이 들어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이 단 1년 정도 체류한다 하더라도 낯설은 이곳에서의 1년은 짧지 않은 기간이다. 그들이 체험한 이 곳에 대한 인식은 한국에 대한 전체 이미지로 동일시 될 수 있다. 선진국의 지표는 복지 행정의 수준과 밀접하다고 볼 때 우리도 이제 이런 부분에 다각도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외국인들을 위해 배려할 수 있는 태도의 수준이라면 내국인들에게는 이미 편안하고 믿을 수 있는 행정적 복지를 체득하고 있을 테니까./박선희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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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11.10 23:02

[전북칼럼] 서정주 시인과 그의 문학

서정주 시인과 그의 문학에 대한 단상 우리 세대는 미당 서정주의 시와 더불어 감동을 그물질하며 젊음의 한때를 보냈었다.그 시절 우리는 시인이 던져 주던 크고 작은 언어의 매력에 취했었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에 이끌려 감미로운 시어를 질겅질겅 씹으면 감동의 향기가 우리의 입안 가득히 번졌었다. 서정주는 그만큼 우리의 젊은 시절을 들뜨게 했던 시인이었다.그러나 우리가 미당 문학에 깊이 있게 다가서면 설수록 석연치 않은 그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한 것도 사실이다. 그의 삶이 보여주었던 영광과 오욕으로 인해 우리는 그를 비난하기도 했고 사모하기도 했었다.분명 그의 시는 우리 문학사에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웠고 동시에찬란한 빛이 되기도 했다.식민지 말기에 쓰여진 몇 편의 친일시에 대한 것이라든지, 폭력이 난무하던 광란의 그 시절 독재자와 관련된 뜬소문이 우리를 실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건재했고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자리에 우뚝 서있었다.그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빛나는 시문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애송시로 자리잡은 [菊花 옆에서]는 물론이고 수많은 그의 작품이 한국시문학사의 재보(財寶)에 속하는 것들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영원히 우리 곁에 있으면서 국화꽃 같은 모습으로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줄 것 같던 미당이 지금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 병석에 누워 있다.아내를 잃어버리고 극도의 탈진 상태에서 입원한 그가 곡기를 거부한다는 소식이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든다. 스무 살 젊음의 고개에서 방황하며 뜬구름 같은 보들레르병(病)을 앓았던 서정주라는 시인이 있었기에 근대시의 아버지 보들레르의 상징주의를 한국어로 영접(迎接)할 수 있었고, 불란서 문학과 우리 시의 감동적인 조우가 가능했다."麝香薄荷의 뒤안 길이다./아름다운 배암....../을마나 크다란 음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중략)... 바늘에 꼬여 두를가보다--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크레오파투라의 피 먹은양 붉게 타오르는/고흔 입설이다-- 슴여라 배암!//우리 順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슴여라 배암!"([花蛇]).'꽃다님' 보다도 아름다운 빛이 감도는 그의 언어는 아직도 우리를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또 다른 그의 대표작 [自畵像]도 마찬가지이다."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었다./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싶다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손톱이 깜한 에미의아들/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않는다하는 外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그 크다란눈이 나는 닮었다한다.//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八割이 바람이다./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어떤이는 내눈에서 罪人을 읽고가고/어떤이는 내입에서 天痴를 읽고가나/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이마우에 언친 詩의 이슬에는/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껴있어/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自畵像]).근대 시인의 자화상을 그려낸 서정주가 한국시의 정부(政府)라는 극찬을 받은 것은 문학사에 남을 만한 수작을 썼던 것에서 연유하기도 하지만, 백제인의 후예로서 거의 유일하게 신라정신을 탐구해 왔던 점도 빠뜨릴 수 없다. {新羅抄}(1961)와 {질마재 神話}(1975)에서 그는 지배층의 문화뿐만이 아니라 민중의 생활세계에 자리잡은 설화를 오늘의 그것으로 되살려 냈다.어디 그뿐이랴. 그는 우리 언어의 경이로운 생명력을 발견하고 그것의 부활과 약동을 노래해 왔다. 빛과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웠던 그의 삶이었지만, 그는 민족어의 사지(死地)였던 식민지 조선에서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는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펼쳐냈던 시인이기도 했다.그 누구도 찾지 않고 아무도 목말라하지 않는 시예술를 붙잡고 평생을 매진해온 노시인 서정주가 상배(喪配)의 상실감으로 외부인과의 만남을 극력 꺼려하며 말년의 삶을 외로이 견뎌내고 있다. 우리는 그의 빛나는 예술을 배반해 왔던 그 모든 오욕의 것들을 질곡의 근대사가 강요했던 민족의 불행으로 받아들이는 아량을 가져야 할 것이다.한국어의 동산에 만개할 시혼(詩魂)을 꽃피우기 위해 세속의 영욕을 함께 해온 미당 서정주의 삶과 그의 문학을 애정 어린 눈길로 감싸안아야 할 필요가 있다. '찬란히 티워오는 詩의 이슬'을 향해 '병든 수캐만양 헐덕어리며' 살아왔던 그의 생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전정구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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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11.03 23:02

[전북칼럼] 국회의 가을

국회엔 가을이 없다. 기승을 부리던 팔월의 더위가 한풀 꺾이는가 싶으면 그때부터는 계절의 변화에 둔감해진다.왜냐하면 가을의 한 복판에 국정감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20일간의 국정감사가 끝나고 나서 책상 위의 서류들을 정리할 때쯤 되면 계절은 어느새 초겨울로 접어드는 것이 국회의 가을 풍경이다.국회의원에게 국정감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 나라의 살림을 제대로 꾸려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고쳐야 할 것은 없는지를 조목조목 따져보아, 한해를 평가하고 반성하는 동시에 다음해를 준비하는 것이 바로 국정감사이기 때문이다.또한 국회의원 개인에게 있어 국정감사는, 그동안 얼마나 성실하게 소임을 다 해왔는지, 혹시 자기 책임을 미루거나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를 평가받는 기간이기도 하다.계절의 변화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러나 국정감사가 국회의원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회의원보다 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하는 사람은 바로 이 나라의 국민들이다. 왜냐하면 국회의원은 그들을 대신해서 국정감사의 현장에 자리하고 있는 것일 뿐, 정작 국정을 평가하고 비판해야 할 당사자는 바로 국민 개개인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별로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이제 '불신'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더 위험한 '무관심'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매번 투표 때마다 국민의 참여를 호소하지만 그 결과는 해마다 나빠지고 있으며, '정치', '정치인'이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모습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사실 그럴만한 이유도 있다.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한 '정치'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이미 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이런 상황이다 보니. 정치를 외면하는 국민들에게 '국정감사'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더 필요한 것이 국민의 '관심'이다. 왜냐하면, '정치'가 바른 길로 안내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바로 국민의 '비판'이기 때문이다.'무관심' 속에서는 따끔한 '비판'을 기대하기 어렵고, '국민을 위한' 정치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욕심'을 부려서라도 '정치'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국정감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국민의 입장에서 직접 국정을 평가하는 동시에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 그들의 임무를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가를 지켜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국민이 '정치'에 그리고 '국정감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그러나 이러한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노력도 결국 '국민 모두의 관심'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진정한 결실을 맺기 어려울 것이다.'정치'를 바른 길로 안내하기 위한 '정치인'과 '국민'의 힘이 모아져야 할 때다. 가을을 잊은 국회의 모습이 국민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불러 올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국회의원 정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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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10.27 23:02

[전북칼럼] 구조조정의 중요성

근래에 게재된 국내 경제상황에 관한 기사들을 보면 위기 가능성에 대하여 엇갈린 주장들이 보인다. 국내 경제의 펀드멘털이 양호하니 경제위기는 없다는 내용이 있는 반면, 금융위기로 인해 경제가 파탄 날 수 있다는 내용의 기사들도 자주 보인다. 어느 쪽 주장이 진실일까? 금융위기는 올 것인가? 대책은 무엇인가? 등의 의문이 생길 수 있다.경제에 대한 경제연구소들의 진단은 국내경기가 경기 주기상 호황의 정점을 막 지났거나 곧 지날 것이라는 내용으로 정리될 수가 있겠다. 그러므로 현재로서는 국내 경제의 펀드멘털이 아직은 양호하기 때문에 악화된 경제상황으로 인하여 경제와 금융부문에 위기가 도래할 때는 아니다. 그렇다면 근래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금융위기설과 이로 인한 경제파탄 가능성의 근거는 무엇일까?과거 개발독재시대와는 달리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의 규모가 커진 지금은 금융위기에 따른 자금흐름이 경제부문을 강타할 수 있는 위력을 갖게 되었다. 만약 미국경제가 고유가 지속 등으로 연착륙에 실패하여 갑자기 침체에 빠지게 되거나, 혹은 해외 투자자들의 눈에 국내 구조조정의 진행이 부진할 것으로 확신될 경우,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한 외국인투자자의 자금은 IMF협약체결 전의 상황같이 급속히 빠져나갈 것이다.최근의 금융위기설은 미국의 주가수익률 하락에 따른 국내 투자비중 축소나 국내의 불확실한 구조조정 전망 등 국내외 금융부문에서 발생하는 요인들에 기초를 두었으며 현실화될 수 있는 주장들이다.금융위기의 여러 요인 중에서 우리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정책변수는 구조조정이다. 국민들이 고통의 대명사와 같이 여기는 구조조정을 외국인투자자들이 중요한 투자 잣대로 삼는 이유는 이들이 긴 세월 동안 유럽과 미국, 그리고 남미에 투자하면서 이들 정부와 기업이 금융위기와 경쟁력 상실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실시한 구조조정의 실태와 그 결과들을 보아 왔고, 이로부터 구조조정의 중요성을 경험했기 때문이다.지금 해외투자자들에게 비쳐진 국내 구조조정의 모습은 확실한 긍정도 부정도 아닌 '더 지켜 봐야한다'는 입장에 가깝다. 구조조정 반대세력의 저항과 차기 선거를 앞둔 정치논리에 의해 구조조정이 형식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들은 국내 여러 집단들의 동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태이다. 특히 이들은 최근의 고유가, 중동사태 등 국제경제적 악재들이 발생한 후에 이것이 아시아국가들, 특히 한국과 대만의 미약한 금융부문에 미칠 악영향에 더욱 유의하고 있다.외국인투자자들의 이러한 상황과 향후 하락이 예상되는 경기추세를 고려할 때 구조조정에 따르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적당히 시간을 끄는 전략은 경기 주기상 늦었고 외국인투자자들의 신뢰도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적 위험이 크다. 금융위기가 도래하면 여당의 정권재창출에 큰 문제가 생긴다.이와 반대로 정부가 해외의 기대수준에 부합하는 구조조정을 실시할 경우에는 인기하락에 따른 선거패배 가능성 때문에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따르게 된다. 더 나아가서 인기하락으로 선거에서 지면 구조조정의 의지가 미약한 정권이 들어서게 되어 이로 인한 금융불안이 재개되어 선거 이후의 경제적 위험이 존재한다.결론적으로 정부는 구조조정이라는 사안을 놓고 국가가 부담하는 경제적 리스크와 정권이 부담하는 정치적 리스크를 어떻게 구성하는냐의 문제에 당면해 있다고 보여진다. 구조조정 여하에 따라 두 가지 리스크의 구성비와 총량이 달라진다.정부가 대승적 차원에서 적극적 구조조정을 선택한다면 여당에게는 정권을 잃는 정치적 리스크가 커 보이나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적 리스크를 많이 줄이게 됨으로써 두 가지 리스크의 총량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반대로 구조조정을 형식적으로 실시할 경우에는 금융위기에 따른 경제적 리스크가 매우 커지고 이로 인하여 정치적 리스크 또한 커져서 리스크 총량이 늘어날 것이다.해외 사례를 보면, 구조조정을 적극적으로 실시한 미국의 레이건 정부와 영국의 대처 내각이 구조조정에 성공하여 국가경쟁력을 되찾았고 정권유지에도 성공한 반면, 선거패배를 두려워하여 경기가 회복되기만을 기다리며 10년을 허비한 80년대 남미의 정권들은 지키려던 정권도 잃었고 경제도 망쳤다.'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 오늘날 정부가 중요정책을 선택할 때에도 유효한 것은 아닐는지?/김동식 (전북은행 리스크관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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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10.2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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