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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아이를 유학 보내는 심정으로

올 봄 막내 딸아이가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입학식 당일에만 보호자가 동행하고, 그 후에는 자녀 혼자서 등교하게 하는 학교 방침"에 학부모님의 협조를 부탁드린다는 안내문을 받았다. 그 후 며칠 동안은 아내가 등교 하교하는 딸을 "멀리서 지켜보며" 따라 다니다가, 이제는 같은 아파트의 친구들과 같이 등교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 마음속에 다소의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처음으로 혼자서 학교에 다녀온 아이를 보고, 미래의 가능성을 보는 것 같아 크게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한다. 훗날, 딸아이가 진학하기 위해 서울이나 혹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면, 처음 떠나보내는 날, 부모된 우리의 심정은 어떠할까? 그리고 반년 또는 일년이 지나서 장학생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지난 100년 동안 우리 사회가 겪어온 급격한 역사적 변화의 와중에서, 새로운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아쉬움의 흔적들을 느낀다. "군신, 반상"으로 대표되는 경직된 신분 체계의 이조 왕정 말기에서, 우리나라의 일차산업 자원을 효율적으로 수탈하기 위해 재편된 일제 강점기의 사회 구조로 넘어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놀람과 절망"이 있었을까? 1960년대 이후 2차 산업의 발전과정에서, 농사를 짓는 것보다 농기계를 생산하거나 비료를 생산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것 같은 풍조가 만연하였을 때, 대대로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분들의 느낌은 어떠하였을까? 새로운 산업의 도래는 이 시대에도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자동차나 컴퓨터 등의 공산품을 외국에 대량 수출하여 무역수지를 개선하는 것이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는 길이라고 알아 왔던 우리에게, 영화 한편으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연간 총 이익을 상회하는 이익을 창출하였다거나, 야구 선수의 연봉이 수억을 넘는다든지, 혹은 미국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사업을 시작한 어떤 분이 다수 기업체의 총수가 되었다는 등의 소식은 3차 산업의 엄청난 잠재력으로 다가온다. 이와 같은 3차 산업의 잠재력에 놀란 우리를 더 몰아 세우는 일이 생기고 있다. 우리는 기존의 산업 분류체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산업시대에 이미 진입하였다. 즉 1차, 2차, 3차 산업이 주종을 이루던 체제에서 전혀 새로운 차원의 산업이 파생되어, 미래 국부의 규모와 국가의 경제적 위상을 좌우할 듯이 다가오고 있다. 일본 정보산업계의 "손정의"씨가 국제적 거부들의 서열에 들었다하고, 최근까지도 자주 들어 본적이 없는 어떤 벤처기업은 현대건설의 규모에 상응하는 "자금"을 보유한 기업으로 급성장하였다 한다. 많은 이들이 공무원들 모두가 컴퓨터를 통한 정보의 활용 및 응용에 능해야 한다고 하고, 주부들의 컴맹 탈출은 필수라고 아우성이다. 그야말로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래서야 제조업을 할 기분이 나겠느냐"는 목소리도 있고, 어떤 이들은 "위험을 안고 있는 거품 산업이 아니냐" 또는 "정보가 산더미처럼 많다고 한들 거기서 무슨 물자가 생기겠느냐"는 걱정도 하고 있어 새로운 시대에 대한 많은 이들의 당혹감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 흐름은 "다수가 놀라거나 화를 낸다고 하여" 역류하게 될 리 만무하다. 오히려 이러한 흐름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기대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지난 역사에서 2차 산업은 1차 산업의 효율을 높여, 최근에는 1960 년대에 비해 극히 적은 수의 농민들이 "미곡생산" 기록을 갱신해 가고 있고, 3차 산업은 1차 및 2차 산업을 도와 필요한 종사인원 수를 격감시킴으로, 새로운 차원의 산업에 종사할 인력의 여유를 지속적으로 창출해 온 것이 아닌가.이제는 "머뭇거릴 시간의 여유가 더 이상 없는 급박한 시대의 흐름"에 처해 있다. 고차산업으로 진입한 이번의 변화는 우리의 국운 상승을 위한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매우 적극적이고 낙관적으로 시대의 세계적 흐름의 한 복판에 서야 한다. 막내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심정으로, 또는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까지 돌보는 심정으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정성껏 살다 보면 이는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그러나 우리의 기상이 "그 아이를 유학 보낼 때"의 신뢰와 기대의 경지에 이른다면 이는 쉬운 일이리라./이원호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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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3.24 23:02

[전북칼럼] 새학기, 우리 다솔이의 까만 눈동자

아침에 출근을 해서 창우, 창희, 다솔이와 뒷산 솔숲에 간다. 아이들은 하낫!, 둘!, 구호를 외치며 양다리, 양팔을 힘차게 내두르며 숲 속으로 난 작은 길을 간다. 창우는 1학년때 나랑 같이 이 숲을 자주 왔기 때문에 앞서 가며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아는 척을 한다. 작년 봄, 잎들이 막 피어날 때 창우는 이 솔 숲의 그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솔잎들을 보며 참, 아름답다.는 말을 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었다. 다솔이는 서울에서 금방 전학을 왔기 때문에 이 솔숲에 대해 전혀 모른다. 다솔이는 커다란 소나무들을 올려다보며 이 나무들이 다 무슨 나무냐고 한다. 내가 다 솔이다. 그러니까 다솔이는 내 말뜻을 몰라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며 예? 뭐요?.한다. 커다란 소나무 숲을 올려다보는 다솔이의 온 몸은 나무처럼 신비함으로 가득차 보인다. 이 큰 나무들이 다 소나무라고 하니, 그럼 소나무가 뭐예요?.한다. 그리고 땅에 떨어져 있는 솔방울을 줍기 시작한다. 창희도 예쁜 솔방울을 한아름 줍는다. 다솔이더러 뭐하게 솔방울을 그렇게 많이 줍냐고 하니, 언니 가져다 준단다. 창희, 올 학년초에 우리 학교 1학년은 창희 한명이었다. 1학년이 한명이어서, 창희는 학교에 오면 너무 심심해했다. 혼자 놀기도 그렇고, 늘 교실에서 내 곁에 붙어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안타까웠다. 다행히도 며칠만에 서울에서 다솔이가 왔다. 아, 창희는 신이 났다. 다솔이를 만나자마자 다솔이와 창희는 세상에 둘도 없는 하나뿐인 단짝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솔이가 우리 반에 들어올 때, 그 때 창희의 기대감에 찬 얼굴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나 천만 다행인 아름다운 다행을 나는 보지 못했다. 다솔이와 창희 둘을 내 앞에 앉혀 놓고 바라보면 나는 세상이 아름답다. 이들 둘이 호기심 가득찬 그 까만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나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든다. 이 아이들에게 내가 누구기에, 이 아이들이 나를 찾아와 이렇게 호기심 가득찬 새까만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가. 그런 다솔이와 창희의 두눈을 바라보며 나는 미소 짓고, 즐겁고, 신나고, 나는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랬구나. 가슴 서늘한 이 아름다운 사람의 눈동자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 세상을 아름답다고 노래하며 살아 왔구나.봄 햇살이 운동장에 가득하다. 아이들의 운동장 구석에 모여 놀고 있다. 며칠 전부터 아이들은 운동장 구석에 땅을 파 굽이굽이 작은 강모양의 도랑을 만든다. 처음에는 우리 반 2학년 창우와 다희가 장난 삼아 그 일을 하더니, 아이들이 하나 둘 달려들어, 지금은 전교생 18명이 모두 그 일에 달려들어 물을 긷고, 실같은 도랑을 만들어 물을 붓어 옥정호 모양을 만든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이들의 흙장난 모습은 마치 개미들이 부산하게 일을 하는 것처럼 활달해 보인다. 이따금 내가 가서 이게 뭐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입을 모아 이거, 섬진강이요.한다. 넓은 호수, 좁은 계곡, 구불구불 재미있는 물굽이를 만드느라 흙에 서투른 다솔이는 옷이 척척하게 다 젖고 흙범벅되고, 얼굴에는 흙이 튀어 붙어 뽀얀 얼굴이 말이 아니다. 손톱 속에는 흙이 들어가 금방 새까매졌다. 그래도 아이들은 자기 세상을 만들며 즐겁고 재미가 있다.아이들이 모두 돌아갔다. 아이들이 놀다 돌아 간 곳에 다 찌그러진 양동이, 자리 부러진 괭이, 물길어 나르던 빈 음료수 깡통, 호스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운동장에 며칠 째 어찌나 많이 물을 가져다 부었던지 그 근방 흙은 촉촉하게 젖어 있다. 온갖 모습으로 움직이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아이들 중 서울에서 온 다솔이의 서툰 모습이 생각나서 나는 자꾸 웃음이 나온다. 다솔이는 궁금한 것도 참 많다. 뭐든지 나에게 와서 까만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끝없이 캄캄한 다솔이에게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할까. 나는 공동체를 잃어버린 이기주의가 판을치는 우리 사회의 무서운 현실과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고 아이들에게 경쟁력만을 부추기고 독려하는 교육 현실을 돌아다보며 진짜 겁나고,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아 깜깜하게 몸서리를 친다./시인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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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3.17 23:02

[전북칼럼] 인간게놈

최근 보도자료에 의하면 2000년 중반에 「인간게놈」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리라 한다. 「게놈」이란 '생물 한 종(種)이 가지고 있는 염색체의 기본 수(數)'로 독일의 "빙클러"라는 과학자에 의해 정의되었다. 학문적으로 「게놈의 도표화」란, 「게놈」의 개념을 이용하여 유전의 모든 현상을 분석(1930년대 일본의 기하라 히토시 박사에 의해서 학설이 확립됨)하는 것을 의미하며 2025년을 전후하여 유전자에 대한 신비가 벗겨질 전망이다.물론 "인간게놈"에 대한 완전한 해석은 첫째, 인간을 유전자적 질환으로부터 해방시켜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켜 줄 수 있으며, 둘째, 인류가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우생학을 실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 신체의 DNA에 미묘한 변화로 우리 생명을 한 뼘 정도 연장시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된다. 설사 아담과 이브가 인간세계에 죽음을 몰고 왔으며 이로 인하여 기독교 신화가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또한 정신이상자, 간질환자, 신체장애자 및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피임을 지지하기보다는 유전자 개량으로 이들에게 치료가 가능하고 인간다운 삶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만 할 것이다.그러나 「인간게놈」에 대한 완전한 해석과 현실적 응용이 실현가능해 질 때 과연 이러한 좋은 점만 우리에게 주는 것인가? 「게놈」의 조작은 인간구성 및 행태를 변하게 할 수 있고 그 변화에 대한 어떠한 조치를 취하려고 할 때 는 이미 늦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즉 「게놈」의 조작은 ①환경파괴 ②민주주의의 파괴 ③지식의 한계성을 노출하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 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환경 파괴로 인류의 종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점이다.게놈의 조작은 환경파괴로 인하여 지구와 함께 사는 이웃으로서 인간이 아니라 750억 톤이나 되는 지구생물자원의 잔인한 파괴자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있다. UN의 식량농업기구 자료에 의하면 50억 인간의 총 무게는 2.5억 톤으로 지구생물자원의 0.33%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총 무게의 4배가 넘는 물고기갑각류의 10%를 매년 인간이 포획하고 있으며 이는 인간자신과 인간이 사육하고 있는 동물의 먹이로 이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지배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이 약 100년 후에는 현재 인구의 2배가 넘는 100억이 될 것이라 한다(게놈의 조작에 의해 가능성은 높아짐). 비율로 보면 0.33%에서 0.66%로 미미한 증가이고, 몸집이 큰 야생동물은 큰 폭으로 감소하고, 나무식물해초류에서는 적은 감소가 예상된다. 그리고 유전자 변이로 가슴살이 2배 이상 증가한 닭, 젖이 너무 커서 누워지내야 하는 젖소, 그물에 걸리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진 물고기 등의 출현으로 식량문제는 해결될 것이다.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방법을 몰랐던 1790년부터 현재까지 지구상 인구는 800%나 증가해 왔지만 인간은 지구공동체에서 좋은 이웃이었다. 그러나 인류는 경솔한 장님처럼 화석연료, 다이너마이트와 불도저, 화학비료와 농약,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등으로 1년에 2만 여종의 동식물을 지구상에서 멸종시키고 있다. 인간이 총 생물자원의 0.33% 밖에 이르지 않다 하더라도 지구상 모든 오염의 99%는 인간이 저지르고 있다. 「인간게놈의 도표화」완성과 더불어 이러한 수치에 대해서 아주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지구환경은 균형인 상태에서 존재해 왔으며 이러한 현상은 지속되어야 한다. 과학적으로 대기권의 다양한 가스비율과 바다 속에 녹아있는 염분과 같은 화학물질이 수 백 만년 동안 유지되어 왔다는 "가이야(Gaia)가설"과 같은 균형개념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욕망과 절제간의 정신적 균형 또한 인간의 수명연장에 절대적인 요소라는 점이다. 풍부한 에너지와 소비재로 호화스러운 선진국가의 삶을 보아왔던 수 십억의 빈곤계층 인류가 그러한 풍요로움에 대한 욕구를 쉽게 포기하리라고 생각할 수 없다. 과거에 굶주려 왔던 수 십억의 인류와 풍요로움에 가득 찬 인류사이에 새로운 정신적 균형이 탄생되어야 한다.인간이 지구생물체와 함께 사는 이웃, 물질적 소비욕망에 대한 계층간 균형이 유지될 때 50억 인간을 위한 자리는 있고, 「인간게놈」에 대한 완전한 이용으로 100억이 되더라도 그 이상의 여지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우리 인간은 대단한 실수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게놈의 도표화」로 인한 유전자변이는 생산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성재환(원광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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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3.10 23:02

[전북칼럼] IMF경제위기는 더 활용되어야 한다

내가 어릴 때 아버님 친구 분들이 집에 놀러 오셔서 아버님의 오래 된 구두를 볼 때마다 '그 신발 더 아껴 신어서 나중에 성열이 한테 물려 줘야지!' 하고 놀리시던 기억이 난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도 신발 한 켤레를 10년은 넘게 신으셔서 어머님이 아버님 구두 한번 바꿔 드리려면 며느리들을 두어 번은 동원해서 설득하셔야 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마산 본가에는 625전에 제작된 제네랄 일렉트릭의 시커먼 선풍기가 여름철이면 아직도 위세 좋게 잘 돌아가고 있다. 구두쇠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이를 드시면서 물자를 절약하시는 강도가 점점 더 심해지시는 연유에 모두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나는 자식들에게 근검절약정신을 심어주시려는 나름대로의 노인의 고집이라고 이해를 하고 있다.IMF사태가 벌어져 온 나라가 그야말로 한탄과 절망감에 젖어 있을 때, '지금이야말로 하늘이 대한민국을 버리지 않고 기회를 주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고 뜻 있는 일부 식자들이 주장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기업 손익구조에 대한 분석도 없이 그저 외형만 키워서 '재벌 순위 몇 대 기업'하는 허영만 채울 수 있다면 독약인지도 모르고 돈을 끌어쓰는 사업 관행도 바꾸고, 노조운동은 그저 세게만 하는 게 선(善)이 아니며 사과가 익기도 전에 따먹기보다는 노사협력하에 농사를 잘 지어서 나중에 과실을 나누는 게 근로자에게 훨씬 이득이라는 사실도 배우고, 국민소득 만 불의 허상에 가슴이 부풀어 많은 국민들이 7080년대의 서울 강남의 부동산 졸부들처럼 세계전역의 관광지역 쇼핑센터의 호구노릇 한 것이 바로 연간 수십억 불에 달하던 무역외수지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도 배우고, 자라나는 2세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여 세계화시대에 경쟁력을 배양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그저 아끼고 절약하며 좋은 물건 만들어 열심히 외국에 내다 파는 것이 유일한 IMF탈출방안이란 사실을 국민 모두가 뼈저리게 느꼈으면 하는 등등의 바램은 나 혼자만의 염원은 아닐 것으로 믿었다.경제위기 첫 해인 98년에는 그래도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보인 한 해였다. 금반지도 모으고, 해외여행도 자제하였으며, 사치성 소비도 급감하였다. 그런데 벌써 그렇지 않은 징조들이 보이고 있는 모양이다. 며칠 전 한은 통계에 따르면, 외산 담배의 수입액은 1억47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50.7% 늘었고, 외제 승용차의 경우 98년 한해 동안 1260만 달러에 불과했던 수입액이 지난해에는 5890만 달러로 늘어나 증가율이 무려 378.9%를 기록했다. 그 외에도 음향기기 111.4%, 고급TV 81.3% 등 사치성 고급소비재들의 수입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해외여행수지도 벌써 적자로 돌아섰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이래서는 안 된다. IMF위기를 통하여 우리 정부와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와 일반상인 그리고 학생들까지 모든 국민들이 뼈저리게 느껴서 교훈이 몸에 베이지 않는 한 우리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역설적인지는 모르지만 IMF 탈출이 조금은 서서히 이루어 저서,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살이에서부터 기업이나 가계의 살림살이까지 아끼고 절약하는 풍조가 정착되지 않는 한 언제 또 제2제3의 IMF사태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만석꾼 살림 3대가 못 간다' 는 격언이 있다. 아들 대에는 아버지 고생한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래도 재산보전이 되지만, 재산 때문에 나태하고 사치스럽게 자란 손자 대에 와서는 대개 많던 재산이 없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아이들 앞에서 가끔 엄지에 구멍난 양말을 바늘로 깁곤 한다. 나중에 아버지가 남기는 작은 교훈이라도 될까? 하는 기대 하나로/이성열(도 행정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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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3.03 23:02

[전북칼럼] 발상의 대전환을 위하여

새 천년이 시작되었다고 많은 말을 하고 듣고 한지가 벌써 두 달이 되었다. 새로운 착상, 신개념, 신세계 질서, 사이버 천년, Y2K 문화 등에 대한 말과 글의 홍수 속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지난 세기를 돌이켜 보면, 백여 년 전에는 외세의 간섭으로 인해 국가의 실질적인 주권이 유명무실해 졌고, 오십여 년 전에는 주변국의 상황변화로 회복받은 주권을 행사한 지 오년 만에 또다시 내전에 휩싸였다. 이 때문에 이차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일본보다 10여 년 늦게 국가의 운영을 재개한 셈이며, 그때의 일본은 이미 한국전쟁의 국제경제적 특수를 누린 핵심 국가의 하나였다. 양분된 한반도의 절반을 추슬러 노력한지, 오십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새 밀레니엄이라 한다.창의성이 자본과 인력 그리고 하드웨어를 지배하는 새시대가 도래하여, 우리 민족의 장점을 맘껏 발휘해 볼 수 있는 희망의 세기라고들 한다. 실제로 최근에는 고졸 학력의 "컴퓨터 게임광"이었던 분이 어느 벤처기업의 사장으로 성장하고, 젊은 나이에 많은 부를 축적했다는 사례가 보도되기도 했다. 과거에도 이러한 우수성에 대해 간간이 들어왔다. 테이프 없는 녹음기, 성냥 없이 불붙이는 담배, 니코틴 흡착층을 삽입한 담배 휠터, 자전식 방향전환 자동차 등의 발명 안들이 외국기업에 판매되어 국제적 특허상품으로 개발된다는 등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 이전에는 우리 속에서 김치와 한글과 한복과 같은 세계적인 문화가 우러나왔다.이제 우리는 발상의 대전환이 너무도 절실한 역사의 문턱에 도달하였다.바다와 대륙에 관한 과학적 발상의 전환의 한 예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한다.지구의 탄생 이후 대륙과 해양의 생성에 대한 오늘날의 정설은 언뜻 듣기에는 대단한 것 같으나, 실은 작은 발상의 전환에서 연유한 것이었다. 처음 불덩이였던 지구가 식어가면서 껍질부터 고화되어 지각으로 변해 가는데, 속에 있는 뜨거운 것들이 계속 유동하면서 가벼운 성분은 밖으로 밀려나 바다 물과 대륙의 기원이 되고, 무거운 성분은 점점 더 지구 내부로 모인다는 것이다. 45억 년 간 뿜어낸 수증기가 모여 바다가 되었으며, 분출된 용암덩이가 쌓여 오늘날의 대륙이 되었고, 가끔씩 지구 내부의 뜨겁고 무거운 덩이가 꿈틀거리면 지구 껍질이 깨어지고 틈이 생겨, 거기서 새로운 대양의 바닥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대륙도 이리저리 움직인다는 것이고, 아프리카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은 한때 한 덩이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학계에 최초로 발표한 독일인인 알프레드 뵈게너는 1915년에 최초로 책을 내고, 기존 개념에 집착하던 당시의 학자들에게서 혹평을 받다가, 사후 20년 만인 1950대에 그의 발상이 재조명을 받게 되어, 오늘날은 그의 발상이 오히려 정설의 자리에 우뚝 서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한 일본인 과학자가 유명한 과학잡지인 "네이쳐"에 대륙의 기원에 관한 전혀 다른 생각을 발표하였는데, 과학적인 자료보다도 그 발상이 특이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는 오늘날의 대륙은 외계에서 날아든 천체의 파편이 지구표면과 충돌하여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면서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 생각은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으나 실제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그러나 위대한 발상의 대전환은 평소 몇 가지의 평범하고 상식적인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첫째로,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변함없이 성실하게 매일을 지낸 사람들 중에서 그런 발상이 나온다. 어디 뿌리지도 않은 것을 거두는 그런 일이 있으랴!둘째로, 이미 알려진 것은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자신감이 새로운 발상을 낳는다. 수년 전 마이애미대학교 해양학부에 방문연구 기간 중 함께 지내던 노 교수 한 분의 말씀을 잊을 수 없다. 우리가 배워서 알고 있는 생물의 종류가 존재하는 종류 전체의 극히 일부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10여 년간 카리브해 연안을 찾아다닌 끝에 "수소기체"를 발생시키는 미생물인 해양남세균을 찾아내었다.셋째로, 현재의 내 위치에 만족하지 않더라도, 충실하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마음의 평정과 여유가 새로운 생각을 낳게 된다. 비록 내일 지위가 달라진다 해도, 오늘 해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프로 정신이라 할까. 아! 나는 이러한 가능성을 가진 계층이 오늘 우리와 함께 살고 있음을 보고 즐거워한다.소위 신세대들, 우리의 청소년들 가운데서 그 서광을 본다. 그들의 비범한 철학과 행동을 위험하다고 걱정하기보다는 새 시대를 앞질러 가는 위대함으로 읽고 싶다./이원호 (군산대학교 해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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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2.25 23:02

[전북칼럼] 선거, 그리고 아름다운 그 길

그 길은 아름다운 길이다. 강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작은 논을 지나 산아래 밭가로 그 길은 나 있다. 조금 더 가다보면 작은 마을이 나오고, 그 길은 마을 앞을 지나 들 가운데로 나간다. 그리고 세상의 어디로든 나갈 수 있는 도로가 나온다. 버스가 다니는 길에서 동네까지 걸어 30분쯤 걸리는 이 길을 나는 50여년쯤 걸어다녔다. 나는 그길을 내길로 알고 살았다.그 길에 봄이 오면 길가에 서리를 하얗게 둘러 쓴 쑥들이 돋아나고, 작은 나물 꽃들이 피어난다. 논과 밭에서는 보리들이 파란색을 찾아가고 사람들이 논밭으로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면 길가에 있는 느티나무에 잎이 피어나고, 소쩍새가 찾아와 울고,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나면 사람들은 모내기를 했다. 모내기 철 학교에서 집에 가다보면 어디서든 하얀 쌀로 지은 못밥을 배가 터지게 먹고 갈 수 있었던 그 길, 여름밤이면 밤물을 대느라고 빤닥이는 담뱃불이 반딧불이와 함께 그 길을 아름답게 했다. 비가 오면 산에서 흘러내리는 생수가 길 가득 넘치고 우리들은 그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며 학교에 가고 집에 왔다. 가을이 되면 누렇게 익은 벼들을 척척 베어 넘기는 기운찬 농부들의 몸놀림들은 내게 지금도 삶의 경이이다. 길가에 빨갛게 익어 가는 늙은 감나무의 감이며, 길 가 밭에 고구마들은 우리들의 헛천난 배를 채워 주는 간식거리였다. 벼들이 다 떠나버린 늦가을 산밭에 파랗게 자라는 무도 늘 우리들의 표적이었다. 무를 뽑아 밭두렁 풀에 쓱쓱 문질러 이빨로 껍질을 대충 벗겨 한입 베어 물면 흰 무에 빨갛게 묻어나던 잇몸의 피.아, 그런 일들로 우리들은 동네 사람들과 선생님들에게 그 얼마나 많은 잔소리를 들어야 했던가. 지금도 그 길에 들어서면 나는 그 때의 그 수많은 일들이 하나하나 꼬물꼬물 살아나곤 한다.내가 어른이 되면서 나는 그 길에서 외로움을 배웠다. 어디 갔다 밤늦게 막차에서 내리면 막막해지던 작은 들판의 어둠과 검은 산자락 아래 반짝이는 불빛들, 그리고 달이라도 떠 있는 겨울밤이면 길에 패여 있는 작은 웅덩이 얼음을 파싹파싹 깨뜨리며 걷던 그 적막함, 그리고 나는 그 길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시를 쓰고 세상을 사랑하는 이치를 하나하나 터득해 갔다.그 길이 새마을 사업으로 이리저리 변해갔다. 길은 넓혀지고 길가에 있던 우물은 사라지고, 오랜 세월 우리들의 간식을 제공해주었던 다정한 감나무는 베어지고, 좁은 논들이 길로 변했다. 그리고 차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길은 선거 공약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선거 때만 되면 입후보자들이나 선거 운동원들은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우리 후보가, 내가,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이 되면 이 길을 말끔하게 포장하겠노라고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그들을 늘 대통령으로, 국회의원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당선과 함께 그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리고 선거 철이 되면 그들은 또 나타났다. 면장을 대동하고, 군수를 대동하고, 그리고 또 똑같은 소리들을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해댔다. 드디어 지방자치시대가 시작되었다. 이제 선거가 더욱 많아졌으므로 그 길을 포장하겠다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만 갔다. 그러고도 끄떡 없던 그 길이 장장 30여년만인 1999년 세기말 무렵에야 역사적인 시멘트 포장을 하게 되었다. 실로 엄청난 일이요 필설로 다 하지 못하는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 선거가 또 있어야 함으로 그 길은 아직 몇백 미터 비포장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 그 길을 다니던 우리 동네 사람들은 몇 명 남지 않았다. 그 길이 포장되는 꼴을 보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뜬것이다. 길은 포장이 되었으되 그길을 다니는 사람들은 우리 동네 사람들보다 차 타고 다니는 외지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동네에 인물이 없어서 그 길포장이 되지 않는다며 순박한 동네 어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그 길, 이제 또 몇 명이 나타나서, 내가 국회의원이 되면 남은 저 길을 포장하겠다며 착하고 선한 농부들의 표를 사정사정 달라고 할 것인가./시인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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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2.18 23:02

[전북칼럼] 전북의 미래산업 지도

정부는 최근 지식기반 경제발전 방안에 대한 기본방향을 ①국민정보 생활화 ②과학기술 혁신능력강화 ③정보문화관광 등 지식산업발전 ④인적자원의 개발 ⑤취업 및 소득능력의 제고 등 5개 추진과제로 삼고, 발전시킨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지역의 산업정책 역시 국가의 정책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전북지역도 신중하게 미래산업지도를 그려볼 필요가 있다. 먼저 경제의 공급구조(산업구조)변화 및 수요(소비구조)변화에 대해 세계적 추세를 간략히 고찰해보기로 하자.수요의 변화는 크게 나누어 성시화(省時化),자연화(自然化) 및 개성화(個性化)라는 3가지 키워드로 조여진다. 성시화는 시간의 절약이 아니라 보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의 창출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성시화는 소비자의 높은 가치를 요구하게 되고, 그것은 문화, 교양, 오락, 스포츠 등 문화산업에 새로운 욕구창출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개성화는 상품소비에 있어서 옵션선택의 확대를 의미하게 되며, 자연화는 자연과의 조화와 인간과의 자연인터페이스를 중시한 소비가 나타난다는 말이다.공급구조의 변화도 서포트(support)형 산업에서 인테그레이션(integration)형 산업그리고 소시오(socio)형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포트형 산업은 반도체, 정밀부품 등 최종재의 부품을 공급하는 산업이다. 지금까지 일본산업발전의 원동력이 된 분야로 아직도 일본수출의 7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인테그레이션형 산업은 정보시스템, 통신네트워크, 컴퓨터 소프트분야 등 각각의 제품을 짜 맞추어 시스템화되면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는 산업이다. 이 분야에는 미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소시오형 산업은 교육, 의료, 교통, 복지 등 손에 잡히는 상품보다는 느끼는 상품을 생산하는 신 지식산업으로, 유럽국가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아직은 모든 국가가 새로이 시작하는 분야이다.그렇다면 우리 전북경제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는가? 결론적으로 분야별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건설업 및 전기가스수도업과 같은 사회간접자본분야에서는 상대적인 우위를 보인 반면, 1차 산업 비중이 높은 전북경제구조하에서 농임어업분야의 성장률둔화는 전북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또한 제조업내에서도 부가가치가 낮은 소비재산업 비중이 높고, 부가가치가 높은 사무기기영상음향관련산업이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서비스업의 경우도 부가가치가 낮은 도소매 및 음숙박업의 비중이 높고, 타 산업 지원서비스산업이며 부가가치가 높은산업인 운수창고통신 및 사업서비스업분야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그렇다면 전라북도의 미래산업지도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져야 할 것인가? 공급측면에서 소시오(socio)형 산업과 수요측면에서성시화가 복합된 문화산업을 지식산업발전의 축으로 삼아 서비스업을 고도화시키고, 제조업의 구조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특성화 산업정책이 최우선으로 그려져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산업정책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정책을 건의하고자 한다.첫째, 문화산업발전에 역점을 두어 정책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물질에서 시작해서 문화로 종결지어질 수 있다. 매슬로우(Maslow)라는 심리학자는 자아실현 5단계에서 최상의 욕구는 문화에 대한 욕망이며, 여기에서 말하는 문화는 일부계층에 국한된 예술이 아니라 오락의 요소(e-요소)가 가미된 대중문화산업 임을 강조하고있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몰 오브 아메리카(Mall of America)의 방문객수는 월트디즈니디즈니랜드그랜드캐년의 방문객수 보다 많은 4천만명에 이르고 있으며, 시애틀의 메가플렉스, 일본의 조이폴리스, 영국의 세필드문화산업단지 및 호주의 크라운리조트등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특수한 기술이 필요한 지원정보(예를들면 영상S/W)도 필요하지만, 모든 소비활동에 e-요소가 가미된 대단위 문화산업단지(가칭 기가플렉스)조성이 시급하다.둘째, 제조업의 질적 고도화를 도모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한정된 지자체 재원으로 서포트형 산업을 희생하면서 미국식 인테그레이션형 산업에 집중투자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21C 제조업은 나노(Nano)세계의 가능성도전, 생명현상탐구, 전자의 벽을 뛰어넘는 광(光)세계, 인간두뇌 및 전뇌(電腦)와의 조합, 환경상품 및 차세대 네트워크 개발 등 6개 분야의 기술에서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전북의 경우 상대적 우위를 지니고 있는 자동차산업 및 기계부품산업의 고도화 및 환경상품개발지원에 투자를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마지막으로 벤처기업에 대한 환상은 버려야 한다. 미국내에서도 벤처기업의 대두는 결국 일시적인 붐으로 끝이 났고, 오히려 전체 벤처기업의 60%이상이 저임금 직종의 창출이라는 결과를 낳았을 뿐 아니라 3%의 생존율이라는 자원낭비를 야기시켰다. 특히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생존율이 1%미만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성제환(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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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2.11 23:02

[전북칼럼] 캐나다·교차로·화장실 그리고 새 全北人

1960년 대 이후 우리 나라의 역대 정권에서 변하지 않는 국정 목표가 하나 있다면 바로 선진 조국의 창조일 것이다. 그런데 경제 발전만 이룩하여 국민소득만 만 불, 이만 불로 올라간다고 해서 과연 선진국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일인당 국민소득이 이미 수만 불에 달한 사우디나 쿠웨이트 같은 나라들은 벌써 선진국으로 분류되어야 마땅하지만 불행히도 이들 나라를 미국이나 스위스 등과 동열에 놓는 전문가는 없다.1982년 미국 미시간대학 유학시절의 여름으로 기억된다. 가족과 함께 캐나다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고 미시간으로 돌아오던 귀로에 캐나다에서 제일 큰 도시인 토론토에 들린 적이 있다. 우연히 큰 저택들로 둘러싸인 주택가에 들어갔다가 고속도로 진입로를 못 찾아 헤매었다. 마침 한집에서 잔디 깍는 주인아저씨를 발견하고 서투른 영어로 고속도로 타는 길을 물었더니, 그 분은 손짓까지 섞어가며 열심히 길을 설명해 주다가 물끄러미 내 표정을 살피더니 못 알아듣는 걸 눈치채셨는지 조금 기다리란다. 그리고는 닫혀 있던 차고를 열고 차를 몰고 나오더니 나를 고속도로 입구까지 안내하고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이 아닌가? 이후로 캐나다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나에게는 좋은 나라이고, 캐나다 사람이라면 모두 나에게는 좋은 사람이다. 친절퇴근 시간 때쯤 거리가 혼잡할 때 서울 거리에서 흔히 이런 모습을 보게 된다. 진행 차선에 차들이 많아 신호가 바뀌기 전에 교차로를 건널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큰 버스들이 가끔 앞 차 꼬리에 차를 갖다 댄다. 결과는 반대차선의 차들이 파란 불인데도 불구하고 진행을 못하게 되고 몇 분만 지나면 그 교차로는 아수라장이 된다. 그 운전기사는 분명히 일 이분 그 교차로를 빨리 건네게 되겠지만 자신과 같은 운전 버릇을 가진 다른 운전사들이 종점까지 지나갈 동안의 수많은 교차로를 미리 이런 식으로 막아 놓은 덕분에 결과적으로 얼마나 늦어지는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이런 경우 벌금이 가장 무겁다) 질서결혼하고 얼마 있지 않아 고향의 부모님께서 20년이 넘게 손을 대지 않던 집을 수리하신 적이 있다. 무슨 큰 수리인가 궁금하게 생각했더니 대문 입구에 새로이 수세식 화장실을 신축하신 공사였다. 아마도 며느리나 앞으로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 집을 찾았을 때 가장 큰 불편이 화장실일 것으로 짐작하신 끝의 배려가 아닌가 싶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도 낯선 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갈라치면 항상 화장실 걱정을 하게 된다. 장담하건 데 앞으로 천혜의 관광자원을 가진 중국의 최대 관광 장애물은 대륙에 산재하고 있는 불결한 화장실이 될 것이다. 청결세계로 뻗어 가는 전북을 캐치 프레이저로 걸고, 국내는 물론 해외자본가들에게까지 우리 고장에 많이 투자해 주십시오 산 좋고 물 좋은 우리 고장에 많이 놀러 와 주십시오 하는 부탁을 하기 이전에 이런 손쉬운 친절의식,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지킬 수 있는 질서개념, 그리고 주위를 항상 깨끗이 하는 청결정신은 우리 전북인들이 먼저 준비해 두어야 할 덕목들이지 않을까? 여기에다 남을 항상 먼저 배려하는, 주위 사람을 따뜻하게 돌볼 수 있는 선행까지 곁들일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새 천년 21세기를 맞아 도정(道政)의 중심을 새 천년 새 전북인운동에 두는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도로산업입지항만 등과 같은 하드웨어 기반도 국내외 투자유치에 물론 중요하겠지만, 제도나 관습 또는 전북도민의 행태등과 같은 소프트웨어 기반이 해외 투자가들에게는 훨씬 중요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이성열(전북도 행정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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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2.04 23:02

[전북칼럼] 용담에서 고군산까지

강, 산, 호수와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삶터 전라북도!용담에서 고군산에 이르는 물줄기를 축으로 지난 세기말에 시작된 국가적 대규모 개발사업들이 현재 추진 중이며, 금세기 초반에는 그 주요 골격이 완성되리라 예측되는 시점에 우리가 살고 있다.이러한 사업의 역사적 전례는 김제 벽골제나 일제 강점기의 농지확보를 위한 간척사업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가경제를 최우선으로 알던 1960년대의 "조국 근대화 과정"에서, 유사한 사업들이 다른 지역에서 먼저 시작되어 최근의 시화호에 이르는 과정을 지나며, 우리 국민전체가 이제는 물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그 결과로, 이러한 거대 사업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 견해를 자주 대하게 된다. 개발에 따른 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경제적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견해와 환경에 대한 피해가 전무하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개발사업에 착수할 수 없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우리의 삶터 곳곳에서 현재 추진 중인 이러한 사업들에 대한 우리의 심중을 가다듬어 보자.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터전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자세가 이곳에서 살아갈 후손대대의 장래를 빚어낼 것이라는 확실한 주인정신이라 생각된다. 이 주인정신은 서로 다른 견해의 차이를 합리적으로 좁혀 나가고, 구체적인 사업이 진행되는 현장에서 각자가 혼신의 노력을 다하게 해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 여겨진다. 둘째로, 물환경의 소중함을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리라. 바다의 물은 물론이고 담수환경에 대하여도 우리가 알아야 할게 적지 않다. 한 예로, 21세기는 깨끗한 물 자원이 극히 중요한 시대가 되리라 한다. 도내 여러 곳의 호수에 담겨 있는 청정수는 머지않아 식수로서의 가치를 크게 넘어서서, 고 부가가치 특수 소재산업에서 요구되는 청정도를 충족시킬만한 소중한 물 자원으로 부상할 것이다. 깨끗하고 건강한 바다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종류의 생물에 대하여 우리는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하나의 신종 해양미생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유용화학물질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최근에는 바다 미생물을 응용하여 같은 바다생물인 적조생물과 같은 유해 생물체를 제어하기 위한 연구도 시작되었다. 바다의 물환경은 이제 막 그 깊은 비밀을 인류에게 보여 주려 준비하고 있다고나 할까. 셋째로, 문명-환경-자연의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지혜와 노력을 경주하여,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이 시대를 살아, "머뭇거리다 만 조상"으로 현재의 우리들이 기억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더 나아가, 용담에서 고군산에 이르는 물줄기와 어우러져 빚어낸 "지혜로운 물줄기 문화"의 새 시대를 열어갔던 자랑스런 선조들로 남아야 하지 않을까?넷째로. 이러한 길을 걷기 위해서는 단기적 이해관계의 초월이 요구되며, 그리고 반복되는 "두 마음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할 것이다. 쉽지 않아도 선택할 것인가?땅덩이가 큰 나라들이 부럽기도 하다. 호주나 뉴질랜드와 같은 나라에서는 청정한 자연환경을 내세운 국가의 상징적 이미지 제고, 그에 따른 자연환경 관광산업 진흥 등을 국가의 전략으로 삼고, 자연과의 조화를 최우선에 둔다 한다. 오염이나 공해를 크게 유발할 만한 산업은, 그 산품을 수입해서 충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국의 영토 안에 들여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50년 뒤를 생각해 보자면서...... /이원호 (군산대학교 해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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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1.28 23:02

[전북칼럼] 시인과 정치

나는 텔레비전 프로 중에서 뉴스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집에 있으면 나는 그 어떤 프로보다도 뉴스 시간을 기다린다. 5시 뉴스시간이면 KBS 5시 뉴스를 보고 MBC 6시30분 뉴스를 보고, KBS 7시 뉴스를 본다. 그리고 8시 SBS 뉴스를 보고, 9시 뉴스를 본다. 그러다 보면 5시부터 9시까지 쭉 뉴스만 보게되는 셈이다. 아이들이 집에 있으면, 이 뉴스를 찾아보는 나와 아이들과의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어쩔 때는 집 식구들과 나와 3대 1의 격렬한 다툼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뉴스를 보아도 나는 정치적인 뉴스만 보면 끝이다. 특별한 새소식이 없는 한 나는 정치적인 뉴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뉴스에 나는 관심이 없다. 신문을 보아도 나는 정치면을 맨 처음 꼼꼼하게 보고, 그 다음 사회면을 대충대충 보고, 그 다음 문화면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경제면을 본다.문학과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과 만나 놀다보면 흔히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어, 시인이 정치 이야길 하네?어, 시인이 별 것에 관심을 다 가지고 있네?시인이 그런 것도 알아? 그러면서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나는 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쩌고 저쩌고 운운시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런 모욕적(?)인 말들이 어떻게 해서 이 사회의 시와 시인에 대한 통념처럼 되어버렸는가는 여기서 누누이 이야기하진 않겠다. 시와 시인에 대한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이 누추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해봤자 시만 초라하게 되니까.시와 시인이 정치와 사회로부터 아니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홀로 존재 할 수 있다는, 정치사회와 역사로부터의 문학의 분리 작업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지금도 그 음모가 끊이지 않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치권력과 긴장을 잃어버린 시가 과연 시로써 그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다시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 시인은 누구인가.시인은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이 인류가 걸어온 과거와 현실과 미래에 대해 모든 관심을 갖는 사람이 시인이다. 정치는 물론이고, 모든 종교, 교육, 철학, 역사, 경제, 문화사, 미술사 하였튼 모든 우리 인류의 문화유산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가 어느날 그림을 그리는 친구에게 전시에 대해 알리지 않았음을 서운해 했더니, 시인이 뭘 그림까지 알려고 합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었다. 시인이 미술을 모르고 어떻게 시를 쓴다는 말인가. 화가가 어떻게 시를 보지 않고도 그림을 그린다는 말인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시인은 세상에 대한 모든 관심을 갖는 것이다. 시인은 죽어 가는 세상을 살리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들, 하찮은 것들, 길가에 피어 있는 풀꽃 한 송이로 세상을 읽어내는 사람이다. 시인은 그래서 세상을 종합하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가 살아왔던 세상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이 어떻게 인간을 지켜내는 시를 쓸 수 있다는 말인가. 시는 이 세상의 일이 아니란 말인가. 시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시인들을 우리 사는 세상 사람이 아닌 별난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든 장본인들은 바로 시인들이다. 시인과 시가 세상과 거리를 두라는 말은 시와 정치권력과의 추잡한 유착을 말리는 말이지, 시와 정치를 분리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시를 쓰는 사람과 시와 멀리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른 이야기가 더 보충이 되어야 하겠지만, 시인이 정치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독야청청 하는 것이나, 나는 시를 잘 모른다는 사람들의 말이 아주 부끄럽고 창피한 말이지 결코 자랑스러운 말이 아니다. 시와 정치는 당대 사회현실의 가장 민감한 부분에 서로 긴장하고 맞선다. 왜냐하면 시는 죽어 가는 것들을 사랑하니까. 그리고 사랑은 부활이니까. 사랑은 세상의 가장 아픈 곳에서 빛나는 법이니까./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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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1.21 23:02

[전북칼럼] 지식의 거품과 생산적 복지

작년 8.15 경축사에 즈음하여 생산적 복지에 대한 기본구상이 발표되었고, 김 대통령의 신년사에서도 소득불평등 해소문제가 주요정책과제로 언급되었다. 이렇게 생산적 복지문제가 중요한 사회경제문제로 부상되는 이면에는 소득 불평등의 심화빈곤계층의 확대라는 사회적 문제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구해온 신 자유주의 경제정책간의 갈등심화가 저변에 깔려있다. 이 시점에서 생산적 복지 그 자체를 비난하기보다는 소득불평등 심화빈곤계층의 확대의 근본원인을 직시하고, 정책초기부터 올바른 방향으로 후속정책이 실현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빈부격차 심화의 근본원인은 지식격차(Knowlege-Gap)의 확대이고,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생산적 복지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시행되는 초석이 될 것이다. 즉 정보화네트워크화 되어가고 있는 경제구조하에서는 지식의 거품이 필연적으로 야기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땅투기, 아파트 투기, 자본투기 등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겪어왔지만, 향후에는 지식수준 격차에 의한 소득 격차는 점점 확대될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그렇다면 생산적 복지 기본방향은 자명하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생산적 복지의 내용을 보면 겉치레에 현혹되기 쉬운, 즉 속빈 강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많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싶다.첫째, 기초적 복지가 미비한 상황하에서 생산성을 강조하는 생산적 복지에 얼마나 투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의 복지수준은 OECD국가에서 최하위이고, 올해 10월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복지가 시행된다고 해도 아직은 복지혜택을 못받는 계층이 많다. 즉 한정된 재원으로 생산성과 복지의 양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기형아를 출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둘째, 생산적 복지는 이상적이긴 하지만 실천력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없다는 점이다. 생산적 복지는 앤서니 기든스가 제3의 길에서 주장하고 있는 적극적 복지와 유사하다. 제 3의 길은 사회복지국가모형(제1의길)과 신 자유주의국가모형(제2의길)의 장점만을 취하여 선택한 모형이며, 이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권의 기본정책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영국에서 성공했다는 소식은 못 들어봤고, 역사적으로 세계 어느 국가도 성공했다는 기록은 없다.셋째, 재원확보 대책이 무엇인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생산적 복지를 위한 예산만도 올해에 10조 내외가 필요하다. 또한 소득분배개선을 위해 근로소득세 경감, 금융소득 종합과세(2001년 시행), 상속증여세 강화 등으로 재원을 조달할 계획이라며 중산층근로자 부담이 증가되리라는 점은 자명할 것이다. 대안으로 한계에 도달한 재정적자를 또다시 확대시킨다면 우리경제는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넷째, 모든 근로능력이 있는 계층에게 직업교육 확대를 통해 고용가능성을 증대시키는데 현행 직업교육시스템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현재 직업교육 대상자들과 교과과정들이 학습능력이 있는 학력수준저년령 계층에 집중되어 있음을 감안할 때, 40대 후반 및 저학력이 대부분인 장기 실업자저소득계층에게는 한계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결론적으로국민생활기초보장, 노동고용정책분야, 환경정책분야 및 복지재정조세정의 분야로 구분되는 생산적 복지는 그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국민적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정책의 우선 순위는 무엇보다도 복지정책의 근본에 충실해야 하고 다음으로 생산성을 고려해야 한다. 저소득층, 노인계층, 장애인, 아동보육모부에 대해서 내실 있는 지원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으로 근로능력이 있는 실직자 전체로 교육기회를 확산시키기보다는 저소득층중에서 학습능력이 있는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지원을 통해 교육기회의 균등을 도모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저소득층자녀에 대한 고용할당제를 실시하여, 빈곤에서 탈피하는 유일한 수단인 고용을 보장해줘야 한다. 왜냐하면 저소득층에게 자녀의 성공은 그들에게 실현 가능한 꿈이고 빈곤이 대물림 되지 않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책시행의 전달체계가 투명해야되며, 실업정책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도록 지자체 하부 단계별 구조도 통일된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구축되어야 한다./성제환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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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1.14 23:02

[전북칼럼] 한민족이여! 21세기에는

지금으로부터 꼭 1백년전인 1900년의 한반도를 생각해 보자. 영미 등 서구제국, 부동항(不凍港)을 찾아 남하하던 러시아, 일찍이 산업혁명을 받아 들여 선진화의 물꼬를 튼 일본, 그리고 오랜 동맹관계를 바탕으로 한반도에 영향력을 유지코자 노심초사하던 청나라 등, 뭇 열강들이 한반도를 집어삼키고자 눈을 번득이던 시절, 조선의 정객(政客)들은 자고 나면 정쟁만 벌일 뿐 세계 환경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 있을까? 36년간의 일제하의 긴 질곡 그리고 815해방과 625동족상잔의비극, 419와 516의 격동을 거쳐 비록 2년간의 IMF 위기는 있었지만 다행히 이만큼의 발전과 희망을 갖게 되는 21세기를 우리는 맞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주변은 새로운 세기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오늘을 사는 정치인들은 1백년 전 정객들과 달리 당리당략보다는 민족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을 하는가? 우리 국민 한 분 한 분은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의 병폐를 버리고 주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자라나는 우리의 2세들은 일본과 중국과 유럽의 젊은이들과 충분히 겨룰 수 있는 실력을 열심히 연마하고 있는가?21세기는 지금까지는 지구가 경험하지 못했던 경제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급격히 겪게 될 것이다. 이미 우리 앞에 성큼 다가 온 정보화의 물결속에 인터넷을 통한 정보와 자원의 이동이 대세가 되고, 세계 경제의 중심축은 중국과 일본과 한국이 위치하고 있는 극동으로 조만간 옮겨지며, 한반도에도 머잖아 우리가 그토록 기원하던 남북통일의 기운이 싹트게 되는 등,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러한 변화가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세계는 이미 뛰고 있다. 일본이 미야자와 구상등을 통해 구미(歐美)추월의 의지를 보이고 있고, 중국은 20세기의 팍스아메리카나에 대응하는 팍스시니카(Pax Cinica)의 도래를 내다보며 정치지도자들이 선두에 서서 열심히 뛰고 있다. 심지어 똑같이 외환위기를 겪었으면서도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는, 우리가 청문회에서 과거의 잘잘못에 구애받고 있을 때 이미 Vision 2020구상을 발표하여 국민들에게 20년 뒤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한민족만이 뒤 처지면 안된다. 이미 1백년 전에 우리의 선조들이 범했던 잘못을 또 저질러 우리의 후손들에게 고통을 물려줘서는 안된다. 이제는 지역주의, 집단주의, 정파주의 따위는 버려야 한다. 소(小)를 버리고 대(大)를 취하며, 집단이기주의에 따른 갈등은 과감히 던져 버리자.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천한 상업주의도, 남이야 어떻든 나만 좋으면 된다는 염치없는 이기주의도 20세기에 다 버리고 가자. 그래서 21세기에는 항상 나보다 남을 배려하는 사회, 물질문명보다는 정신문명의 가치를 더 존중하는 사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잘 어울려서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행복하고 자랑스럽게 생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민족의 웅비가 활짝 나래를 펼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우리 모두 만들어 나가자. 저 먼 중앙아시아의 한민족에서부터 만주의 1백만 조선족, 한반도의 7천만과 일본열도의 60만, 그리고 태평앙 건너 아메리카대륙에 굳건히 터전을 마련한 1백40만동포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지구화 시대 21세기에는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국가로 우뚝 솟아나기를 기원해 본다. 한민족이여! 21세기에는/이성열(전북도 행정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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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1.0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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