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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총리 후보 지명의 정치적 의미

이완구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가 차기 총리 후보로 지명됐다. 모든 언론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이, 이번 후보 지명의 가장 큰 의미는 관료 혹은 교수 출신의 ‘관리형’이 아닌 정치인 출신의 ‘책임형’ 총리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치인 출신 총리 지명은 실로 오랜만이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계속해서 관리형 총리가 임명돼 왔기 때문이다.정치인 출신 책임형 총리 탄생할 듯정치인 출신 총리라고해서 뭐가 다르겠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과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대통령에게 복종할 가능성이 적다. 많은 사람들이 이완구 총리 후보가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고 그를 통해 현재의 소통 문제 해결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물론 정치인이라고 영향력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이완구 총리 후보는 3선 의원이며, 충남도지사를 역임하고 새누리당 원내대표 출신이기 때문에 기대가 남다르다. 일단 광역단체장의 경험을 통해 이 후보는 현재 우리나라의 시급한 문제 중의 하나인 지방분권화의 필요성을 몸소 체험했을 것이다. 따라서 세종시 완성 등 지방분권화를 위한 정책에 적극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이 후보가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더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그는 정당 내에서, 그리고 국회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한 정치력 영향력은 쉽게 생기는 것도 아니지만, 자리가 바뀐다고 해서 쉽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향후 행정부와 국회 관계, 혹은 당-청 관계가 지금보다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이러한 논리를 조금 더 발전시킨다면, 이완구 총리 후보는 소위 ‘분권형 대통령제’의 실험장이 될 수도 있다. 한국 대통령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그 핵심은 대통령과 의회(국회) 간 협력의 어려움에 있다. 대통령제는 행정부와 입법부간 권력의 분립과 공유를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결국 그 성패는 두 부처간 협력 여부에 달려있다. 일부에서 책임총리제 실시나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두 부처 간 연결 고리 및 협력 강화를 위해서이다. 물론 이 후보가 분권형 대통령제 하에서의 총리와 같은 영향력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그에 근접한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은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일방적인 대(對)국회 태도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일부에서는 이 총리 후보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것은 칼자루를 쥐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이 후보가 아무리 직언을 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도 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권력은 양도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결국 이 후보의 성패는 본인에게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임제 하에서 3년차로 접어드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점차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제왕적 대통령에게 직언 기대사실 박근혜 대통령의 이완구 총리 후보 지명은 이처럼 변화하고 있는 정치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관리형 총리가 더욱 편할 것이 분명하다. 최근 떨어지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변화하는 당-청 관계 등 정치적 환경 변화가 이러한 선택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완구 총리 후보는 총리가 되면 대통령에게 직언하겠다고 이미 밝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할 말은 하겠다는 공약을 통해 대표에 당선되었다. 모든 언론이 이 후보에게 직언을 요구하는 분위기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은 더 이상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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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30 23:02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민주공화국인 남쪽에서나 인민공화국인 북쪽에서나 다투어 공화국임을 내세우는 걸 보면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쁜 말은 아닌가본데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는 그 말이 비아냥처럼 쓰이고 있다. 겨울공화국을 비롯해서 부패공화국, 비리공화국, 막장공화국, 사고공화국, 불륜공화국 자살공화국 투기공화국 찌라시공화국 같은 말들이 주변에서 심심찮게 쓰이고 요즘에는 또 거짓말공화국까지 거기 보태어져 그야말로 공화국이라는 말의 체면이 말도 아닌 지경에 이른 것 같다. 국민건강 증진 위해 담뱃값 인상?그것들이 모두 우리에게 뭔가 찜찜하고 불쾌하고 심란한 뒷맛을 남기는 말들이지만 그 중 우리를 가장 심란하게 하는 건 아마도 거짓말공화국이지 싶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거짓말들이 하도 많아서 다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지만 필자로서는 감히 감당 못할 덩치 큰 거짓말들은 그만두고 이 글은 우선 가벼운(?) 거짓말 하나만 화제로 삼겠다. 길가에 줄 하나가 떨어져 있기에 주워들고 집에 갔더니 줄 끝에 웬 소 한 마리가 달려 있어서 감옥살이를 하게 됐다는 민담 속의 억울하다는 소도둑은 누가 들어도 속이 환히 보이는 거짓말을 한다. 그렇게 속이 보이는 거짓말을 듣는 이들은 입술에 침이나 바르라고 비아냥거리곤 하는데, 그때 입술에 바르라는 침은 최소한적 양심 표현의 또 다른 말일 것이다. 양심에 어긋나는 말을 할 때 보통사람 같으면 입술이 바짝 마를 테고 그래서 거짓말을 하면 입술에 침을 바르게 되는 상식을 바탕삼아 그런 비아냥이 생겼을 것이다. ‘정직’을 가훈으로 삼고 살았다는 전직 대통령에 관한 말을 들으며 오죽했으면 그런 걸 가훈으로까지 삼았겠는가 싶어 나랏일들이 아슬아슬하게 여겨지기도 했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사대강 수질오염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그 대통령은 TV를 통한 대국민 담화에서 느닷없는 로봇물고기 얘기를 꺼내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으시딱딱 장담을 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아니면 묵은 버릇인지 말끝마다 그는 입술에 재빠르게 침을 바르곤 했다. 지난 연말 무렵 보건복지부 장관은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해서 담뱃값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길가에 늘어진 줄 끝에 소가 매달려 있을 줄은 몰랐다는 민담 속의 소도둑이 문득 떠올랐다. 국민 건강증진은 길가에 늘어진 줄이고 줄 끝에 매달린 소는 막대한 세수증진이라는 걸 모를 이는 이 세상에 없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흡연자들은 건강이나 돈보다는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하는 꼴이 괘씸해서 이참에 아예 담배를 끊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결심이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보건복지부가 그 동안의 통계를 통해서 이미 환하게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보다 담뱃값이 비싸다는 나라들의 국민소득이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되게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의 담뱃값이 세계에서 제일 비싸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리고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들 금연을 하겠다는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얼마 안 되어 부글부글 속을 끓이며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될 것이고 담배보다도 그 부글거리는 스트레스 때문에 국민의 암 발병 확률은 아마도 훨씬 높아질 것이다. 정부 거짓말에 부글부글 속 끓어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곧 바로잡을 때라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이제라도, 나라 재정이 어렵지만 부자감세를 철회하면 그들이 무슨 오기를 부릴지 겁나서 그렇게는 못하겠고, 생각 끝에 만만한 담뱃값을 올렸노라고, 머지않아 물값도 술값도 교통비도 전기요금도 그렇게 올리게 될 거라고, 화가 나더라도 좀 참아달라고 구차하게나마 그렇게 좀 정직해진다면 그나마 국민건강에 다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정양 시인은 전북 김제 출신으로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8년 대한일보 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시집 〈까마귀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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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23 23:02

국민 대통합 위한 국토-환경계획 연동제

지난 해 12월 16일 2년여만의 오랜 논의 끝에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국토-환경계획 연동제’ 추진을 위한 정부 입법절차가 마무리 되었다. 물론 국회의 심의단계가 남아있지만,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부처 간 칸막이를 걷어내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친환경적 국토관리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였다는데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국책사업으로 사회적 갈등 없어야그동안 국가에서 추진했던 영월 동강댐, 새만금 간척, 시화호 담수화, 경부고속철도, 밀양 송전탑, 4대강 살리기 등과 같은 많은 국책사업들이 단순히 개발과 환경보전간의 갈등 문제에 그치지 않고, 지역·세대·계층 간의 갈등, 이념과 가치관의 갈등, 정치·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갈등과 대립으로 확대됐다. 비단 국책사업뿐만 아니라 지자체 차원에서도 지역사회의 폭넓은 의견수렴과 합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공약으로 내세운 개발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지역구성원간의 다양한 갈등과 막대한 예산 낭비를 발생시킨 사례를 적지 않게 접하고 있다. 따라서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국토-환경계획 연동제’는 중앙 및 지방정부의 각종 개발사업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국민대통합을 이룬다는 측면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 하겠다.국책사업이 더 이상 사회적 갈등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경쟁력 확보와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토계획과 환경계획의 연계를 단순히 법적인 근거에 의한 형식적인 절차로 인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즉 정부는 국책사업의 정책 및 계획 수립단계에서부터 국민들에게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와 정보를 제공·공유하고, 자유롭게 다양한 의견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여기서 국책사업에 관련된 정책과 계획을 수립하는 주체는 정부이며, 국민은 정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의사결정하여 추진하는데 협력자이자 조언자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전제조건이라 판단된다. 만약 일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잘못된 방향으로 사업을 변경하거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정책의 일관성과 방향성을 잃는다면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아울러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는 국책사업일수록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이해관계자들의 폭넓은 참여와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진행해야 한다. 특히 단기간에 공약사업을 달성하고 성과를 내겠다는 인식을 가지고 무리하게 추진하던 국책사업이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엄청난 행정적, 경제적 손실을 야기했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한편 국토계획과 환경계획의 연계를 강화하는데 있어서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우선과제가 있다. 현재 국토기본법에 근거한 국토계획은 그 결과물이 공간화, 즉 지도로 나타나지만 아직까지 환경정책기본법에 근거한 환경계획의 공간화는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다시 말하면, 국토계획의 주요 근간이 되는 토지이용계획을 수립할 때 환경·생태적으로 보전가치가 높은 지역을 공간적으로 고려하는데 많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군·구 단위에서 토지의 환경·생태적 가치를 평가하는데 활용 가능한 환경지도를 의무적으로 제작·보급하여 국토계획과 환경계획의 연계를 강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개발·보전 균형있는 추진 필요사회적 갈등이 발생했을 때 객관적이고 공정한 절차로 합의형성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중재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전문기구를 중앙정부 및 지자체에서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국토-환경계획의 연계를 위한 개발과 환경보전에 대한 균형있는 융합적 사고와 지식, 소양 등을 갖춘 전문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의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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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16 23:02

기쁘고 좋은 일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면 새로운 다짐도 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덕담도 나눈다. 올해는 좀 더 살기 편안해지기를…. 가족들 건강하고 경제사정이 보다 좋아지기를…. 가만히 헤아려보면 우리의 소망은 현실적이다. 일상의 평안이면 족하다. 실상이 그렇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전세난에 시달리고 비정규직의 설움을 감내하며 경제적 불평등과 위화감 속에서 매일 매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간다. 정부는 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데 삶의 구체적 현실은 팍팍하기만 하다. 진학걱정, 취업걱정, 결혼걱정, 양육걱정, 연금걱정…, 우리는 어느새 걱정을 더 많이 하고 사는 사회의 일원이 되어간다.함께 사랑 나누는 마음가짐 필요기쁘고 좋은 일은 어디에 있는가. 누가 우리를 위로하는가. 현실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기대하기 어려울 경우 복고가 그 해답이 되기도 한다. 서럽고 가슴 아픈 과거라도 거기에는 최소한의 공감이 있다. 영화 〈국제시장〉 관객 수가 곧 1000만을 넘어설 듯하다. 흥남 출신의 꼬마소년이 부산 국제시장에 정착하여 평생을 살아온 이야기가 골간을 이루는 가운데 필름은 격동하는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을 듬성듬성 보여준다. 흥남철수, 파독광부, 월남전 참전, 이산가족 찾기 등 당대의 주요한 사건을 재현하는 데 주력한다. 따라서 영화는 주인공 윤덕수의 개인사나 가족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사를 동시에 보여준다.세대에 따라, 정치적 입장에 따라 반응 차이가 있지만 조국 근대화 세대의 노고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라는 점은 많은 관객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그것은 찬란한 과거의 영화(榮華)에 대한 향수라기보다는 기억과 역사의 켜 속에 잠들어 있던 서러운 슬픔에 대한 감정이입이다. 함께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면서 오늘 우리의 작은 즐거움과 기쁨이 이전 세대에게 빚지고 있다는 심리적 채무감을 확인시켜 준다. 영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금 삶이 그대를 힘들게 할지라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라. 이전에는 훨씬 어려웠다. 하지만 억척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조국 근대화에 몸 받쳐 살아왔던 이들에 대한 헌사로 읽힌다.삶에서 기쁨이나 즐거움을 찾는 일은 단순한 쾌락추구가 아니다. 또한 일상의 평안만이 우리가 추구하는 선(善)도 아니다. 우리가 일상의 질곡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기쁘고 즐거운 일은 허공의 구름처럼 덧없게 된다. 활기찬 건강과 아름다운 외모, 신분의 안정과 물질적 풍요가 기쁨과 즐거움의 원천인 듯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지구생명공동체 전체로 눈을 돌려 모두 함께 사랑을 나누려는 마음가짐과 실천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있다.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미당 서정주 시인은 「이 세상에서 제일로 좋은 것」(1993)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로 좋은 것은/낳아서 백일쯤 되는 어린 애기가/저의 할머니 보고 빙그레 웃다가/반가워라 옹알옹알/아직 말도 안 되는 소리로/뭐라고 열심히 옹알대고 있는 것.//그리고는/울타릿가 감나무에/산까치가 날아와서/뭐라고 거들어서/짹째거리고 있는 것.//그리고는/하늘의 바람이 오고 가시며/창가의 나뭇잎을 건드려/알은 체하게 하고 있는 것.”따뜻한 연대로 삶의 기쁨을시인은 생명체들이 따뜻하게 연대하는 모습에서 삶의 기쁨과 공동선을 발견한다. 이런 게 지혜가 아닐까? 새해 들어 새롭게 기쁘고 즐거우려면 우리도 주변에서 많이 발견하면 된다. 추운 겨울에도 햇빛은 나를 얼마나 따뜻하게 해주는가. 지금 내 입으로 들어가고 있는 밥은 우리 생태계의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나를 위해 베풀어주는 것이던가. 가슴을 활짝 펴고 심호흡을 한 다음 눈을 크게 떠서 더 멀리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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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09 23:02

사법민주주의에 대한 경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서 헌법재판소(헌재)의 역할이 눈에 띄게 중요해지고 있다. 권위주의 시절 행정부의 힘에 눌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헌재가 민주화 이후 특히 2000년대 들어 행정부와 입법부의 결정에 반하는 판결을 종종 내놓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의 민주정치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표적 예로는 2004년 5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기각 결정과 동년 10월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이 있다. 보다 최근으로는 2014년 10월 선거구 제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과 12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있었다.헌법재판소 권력 남용 가능성이러한 헌재의 영향력과 독립성 증대는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의 원칙 중 하나인 3권 분립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며, 나아가 입헌주의 원칙 아래에서 헌법의 절대성을 수호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재의 지나친 영향력과 그에 따른 소위 ‘사법민주주의’가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 또한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법이 먼저인가 정치가 먼저인가라는 오래된 논쟁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법을 대표하는 입헌주의와 정치를 대표하는 민주주의와의 잠재적 갈등은 분명히 존재한다. 헌재를 포함한 사법부 인사들은 정치적으로 선출되지 않고 정치적 책임도 직접 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에게 막강한 정치적 권한을 부여함은 민주주의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비롯해 미국, 독일 등 일부 현대 민주주의 국가가 사법부에게 행정부와 입법부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위헌심사권을 부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민주주의가 기반하고 있는 다수결 원칙의 불완전성 때문이다. 다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며, 다수결 원칙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자칫 소수에 대한 다수의 횡포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헌법에 명시돼 있는 소수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헌법을 다수결 원칙의 상위에 두는 것이다.그런데 모든 권력은 남용될 가능성이 있다. 헌재의 권력 또한 마찬가지이다. 특히 헌법은 추상적이라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사법부의 권력은 입법부나 행정부와 달리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남용의 정도와 부작용이 더욱 심할 수 있다. 위헌심사제도가 처음 시작된 미국의 경우에도 사법부가 지나치게 정치적 문제에 개입함으로써 행정부와 크게 충돌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뉴딜 입법이 계속 대법원의 위헌 판결을 받자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법원에 대한 정치적 압박을 통해 대법원의 정치 개입 자제를 이끌어 낸 것이다. 그 이후 미국 대법원은 소위 ‘자제주의’를 통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판결을 자제하고, 주로 소수자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사건에 전념하는 전통을 가지게 됐다.사법부가 정치 좌우하는 폐해 막아야물론 사법부가 정치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데에는 정치권의 잘못도 크다. 정치적으로 해결할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부에 떠넘기거나, 선거구 획정 불합치 사례와 같이 심각한 문제를 방치해 둠으로써 사법부의 개입을 초래해 왔기 때문이다. 만약 정치권이 앞으로도 계속 사법부에게 정치적 판단을 맡길 생각이라면, 독일의 경우처럼 헌재의 정치적 성격을 분명히 인정하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현행 대통령 중심의 판사 임명 방식을 바꾸어 입법부와 정당의 영향력을 강화함으로써, 정치적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법부의 지나친 정치 개입을 줄이거나, 아니면 정치적 책임성을 증가시키거나, 이 두 가지 방안 중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사법부가 정치를 좌우하는 사법민주주의의 폐해가 앞으로 심각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김욱 교수는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국지방정치학회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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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02 23:02

행복한 왕자가 불행하게 울고 있다

지난 주 종강을 했다. 여름방학과 달리 겨울 방학 캠퍼스는 눈 내린 산사(山寺)처럼 적요하다. 나는 이제 몇 달동안 내 나름의 동안거에 들어간다. 먼 훗날 서울거리 어디에서 문득 만나게 되겠지만 그래도 졸업을 앞둔 제자들과의 마지막 강의는 헤어짐으로 인해 묘한 느낌을 준다. 해마다 종강 날에는 나는 짧은 동화 ‘행복한 왕자’로 작별의 인사에 가름한다.● 우리 사회 사라져가는 이타주의어느 늦가을 저녁, 따뜻한 남쪽을 향하던 제비 한 마리가 행복한 왕자의 동상 발등에서 잠을 청한다. 순간, 행복한 왕자가 흘리는 눈물에 놀라게 된다. 살아생전 불행을 몰랐던 왕자는 죽어 동상이 되어 높은 곳에 자리잡게 되자 세상의 온갖 슬픈 일을 지켜보게 된다. 왕자는 제비에게 부탁해 자신의 몸을 치장한 수많은 보석을 떼 내어 그들에게 나눠주게 한다. 왕자를 장식한 모든 보석을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제비는 남쪽으로 가는 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남과 동시에 얼어 죽는다. 봄이 오자 마을 사람은 한때 마을의 자랑거리였던 멋진 동상이 보석이 사라진 흉측한 무쇠덩이로 변해 있자, 창피하다며 부숴버렸다. 이 모습을 지켜본 하느님이 천사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두 가지 즉, 제비와 왕자의 심장을 가져오게 해 하늘나라에서 다시 행복하게 살게 했다는 줄거리다.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가 쓴 동화다. 19세기 말 산업혁명과 함께 불어 닥친 당시 영국사회의 이기주의, 물질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타인에 대한 사랑의 존귀함을 호소하고 있다. 당대를 주름잡던 유미주의자이지만 당시 영국의 지배를 받던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던 와일드는 아일랜드 출신의 다른 저명 작가인 예이츠나 버나드 쇼 등과 마찬가지로 경계인의 삶을 살았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이래 빼어난 작품으로 일약 유럽의 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30대 중반 16세 연하의 옥스퍼드 대학생 알프레드 더글러스 경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요즈음 말로 성 소수자, 즉 동성애다. 당시 지배세력에 의해 외설로 단죄되어 2년 형에 처해지는 등 불행한 삶을 이어가다 1900년 파리의 한 호텔에서 사망한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속물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나머지 극도로 버림받은 삶이었다. 하지만 사후 100여 년 뒤인 1998년 영국 정부가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그의 동상을 건립함으로써 비로소 명성을 인정받았다.유치찬란하게도 나는 동화 ‘행복한 왕자’를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런던에 갈 때면 반드시 와일드 동상을 찾는다. 이 불행했던 천재의 행복론을 읽으며 나는 우리 사회의 사라져 가는 이타주의(Altruism)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 개념을 창안한 석학 자크 아탈리는 초연결망 사회에서는 이타주의가 미래의 세상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치 혼자만 전화기를 가지고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 곧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미래사회에서는 타인의 성공이 곧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타인의 불행이 나에게도 재앙이 되는 경우가 많게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타인 위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보길나는 ‘행복한 왕자’를 종강의 변으로 수강생들에게 들려줄 때마다 한 세기 전 와일드가 우리에게 던져 준 타인을 위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다. “가엾은 제비는 점점 추워졌지만, 왕자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빵집 문 앞에 떨어진 부스러기빵를 쪼아 먹고 양 날개를 파닥이며 몸을 녹이려고 했다. 하지만 제비는 자기가 곧 죽을 거라는 걸 알았다. 남은 힘을 다해 마지막으로 왕자의 어깨 위로 날아 올랐다. 제비의 몸은 차갑게 식어갔다.” 산타클로스를 철석같이 믿다가, 믿지 않다가, 스스로 산타클로스가 되는 것이 사람의 일생이다. 남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왕자와 제비가 몹시도 그리운 한해의 끝이다. 아듀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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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26 23:02

동네 주민들과 함께하는 환경교육

이번 학기 전공과목에서 ‘주민들이 생각하는 동네환경’이라는 팀 과제를 학생들에게 냈다. 학생들은 동네의 공기질과 하천수질, 소음, 쓰레기 처리 등 생활환경과 공원이나 하천, 호수, 야생동물 등 자연환경에 대한 만족도, 보행친화도, 주민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해 주민을 만나 인터뷰했다.과제 발표를 마친 후 학생들로부터 주민과 인터뷰하면서 느꼈던 점을 들었다. 학생들의 소감은 다양했지만 ‘몇 년 동안 살고 있는 동네인데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동네환경에 대해서 너무 모르거나 무관심하다’는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자신이 사는 마을 환경에 관심을이 같은 소감은 ‘내가 그동안 시민들을 대상으로 국가와 지구적 차원에서 발생되고 있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와 멸종위기종의 증가, 자연자원고갈과 에너지 문제를 주로 다루었던 강의가 과연 의미 있는 환경교육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게 했다.매일같이 가족, 친구, 이웃들과 함께 숨 쉬고 살아가고 있는 동네 환경부터 우선적으로 관심을 갖고 깨끗하게 가꾸어 가는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촉매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보다 가치 있는 환경교육이겠다는 결론을 내렸다.지난 2008년 9월 제정된 환경교육진흥법은 환경교육을 ‘국가와 지역사회의 지속가능발전을 목표로 국민이 환경을 보전하고 개선하는데 필요한 지식·기능·태도·가치관 등을 배양하고 이를 실천하도록 하는 교육’으로 정의하고 있다. 환경부는 이 법을 근거로 2010년 9월 ‘학습과 실천을 통한 지속가능한 녹색사회 구현’을 비전으로 하는 제1차 환경교육종합계획(2011~2015)을 수립·추진하고 있다. 또 지난 11월 1일 수원시는 2018년까지 45만 전 가구가 환경교육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하는 ‘환경교육 시범도시’를 선언하는 등 지자체 수준에서도 환경교육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국가와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다양한 환경교육 정책·계획, 프로그램에 지역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없다면, 이것은 단지 행정기관과 교육을 담당하는 다양한 주체들만의 잔치에 그칠 수밖에 있다. 실제 지자체나 민간단체, 학교 등에서 추진되고 있는 환경교육 사업들이 지나치게 형식적이거나 눈에 보이는 수치적인 실적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진단할 필요가 있다.지금까지 환경교육의 주된 주체가 되었던 환경관련 민간단체(NPO 또는 NGO)는 무분별한 개발행위로 인해 야기되는 각종 환경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고, 국민들의 환경의식을 높이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고, 현재도 그 역할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젠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지방의제21(Local Agenda21)의 목적과 부합되게 환경교육의 공간적 범위와 대상을 좀 더 좁혀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동네(또는 마을) 단위로 가야할 것이다.풀뿌리 단체 적극 양성, 지원해야따라서 지역사회의 관심과 실천의식을 제고할 수 있도록 동네와 같은 작은 단위의 환경교육 전문기관 또는 단체, 동네에서 오랜 시간 함께 활동해온 풀뿌리 단체를 적극적으로 양성·지원해야 할 것이다.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동네 환경을 조사·평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지자체를 비롯하여 전문 연구·교육기관 등이 행정·재정 및 전문지식·기술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아울러 지자체 등의 행정기관은 주기적으로 주민들의 생활과 밀착된 동네환경 이슈를 찾아내고, 이를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환경교육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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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19 23:02

저무는 한 해를 바라보며

디지털종족과 아날로그종족어느덧 12월이다. 한 해가 또 이렇게 저문다. 거리에 구세군 종소리 들리고 성탄트리도 반짝인다. 예전에 그 많던 크리스마스카드와 캐럴송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구두닦이 소년과 엿장수 아저씨와 연하장 그려 팔던 예쁜 소녀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가수 이선희가 부른 <아, 옛날이여>마저 노래방 기기나 스마트폰으로 만나는 시대. 디지털 기기 속으로 들어간 게 어디 한 둘이랴. 세상 참 빠르게 변한다. 손 안의 스마트폰 속으로 세상은 몸을 꾸기며 들어간다. 잠깐 사이다. 그 잠깐 사이에 세상은 천지개벽하고 우리는 어리둥절해진다. 변화의 속도가 가속되기 때문이다. 인류의 지식 총량은 73일마다 두 배씩 늘어난다는 보고도 있다. 너무 빠르다. 디지털종족들은 생존가능성이 높지만 아날로그종족들은 생존경쟁에서 뒤처지게 마련이란다. 승자와 패자, 강자와 약자의 논리가 디지털 진화론을 만든다.그래도 오늘은 잠시 아날로그 식 삶이 그립기도 하다. 회룡고조(回龍顧祖). 먼 길 달려온 산줄기가 제 온 곳 돌아보듯 잠시 지나온 시간 생각해본다. 조금 있으면 언론들은 올해의 10대뉴스를 경쟁하듯 발표할 것이다. 그러면 시민들은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생각하며 자신들이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시간 열차 속에 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지나간 사건의 풍경들은 이제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내게서 떠나 허공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럴수록 ‘오직 지금’만이 존재의 빛나는 전제임이 절실해진다. 연말이라는 추상적 ‘끝’이 안개 진군하듯 다가오는 시간에.배회족과 질주족가만히 내게 물어보니 내 삶의 진짜 주인은 속도로구나. 무리지어 달리는 말들처럼 나 역시 그 대열에 끼어 질주해왔지. 시간의 바람은 무서운 속도로 휙휙 지나가고 붙잡아달라는 손들 이루 다 잡을 수 없었네. 그렇게 됐어. 갑오년 올 한해, 바쁘다는 말 입에 달고 살아온 건 분명하다.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니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이 땅의 허망한 죽음들이며 숨 가쁜 삶들은 망각의 저녁 강 속으로 점점 가라앉아 가는구나. 세월호의 꽃다운 생명들, 분신한 아파트 경비원, 고독사한 옆집 할아버지, 직장 구하지 못한 늙은 청년들, 거리에 어슬렁거리는 부익부 빈익빈의 유령들.그래도 좋아, 나도 좀 바빠 봤으면…. 노동열차를 놓친 ‘배회족’들은 오늘 저녁노을이 더욱 검붉고 처량하다. 그들 식탁엔 매번 불안과 초조가 올라오지. 질주해도 좋아. 난 지속적인 속도가 필요해…. 그들은 의자에 앉아서 가상의 속도를 꿈꾸며 2000 원이나 오른 담뱃값 걱정을 잠시 잊는다.탑승에 성공한 ‘질주족’도 행복하지 않다고 투덜대기는 마찬가지다. 나 역시 비슷하지 않은가. 목표와 성과의 기관차에 올라타 전력질주만 했을 뿐 잠든 아내 흰 머릿결 이제야 세어본다. 오늘도 늦네요, 카톡 문자만 그 몇 번이던가. ‘해마다 해마다 꽃은 피어 그 모습 비슷도 하건만, 해마다 해마다 사람의 모습은 같지가 않구나(年年世世花相似 世世年年人不同).’ 세월의 무상함과 나이 드는 서글픔 노래하는 당시(唐詩)의 빛나는 명구 비로소 실감하니, 내 근본의 팔할이 시간이란 걸 불현듯 알겠구나. 해서, 저무는 해 우두커니 바라보며 나는 시간을 스케치 해보는 것이다.오직 지금뿐 시간은 정직하다. 배회족이건 질주족이건 그들 몫만큼의 시간은 정해져 있다. 남은 목숨시간 이제부터 줄어든다. 지금 이 순간이 내 남은 인생에서 제일 젊다. 앞으로는 젊음의 그림자가 점점 짧아진다. 그러니 소중한 것은 오직 지금뿐. 그림자가 몽당연필처럼 짧아져 스러져 가는데 지나온 기차역에서 만나지 못한 그녀를 애달파한들 무엇하리. 여기 3차원 우주에서 과거는 바꿀 수 없는 것. 오직 지금만이 존재의 전부. 지나온 지금은 과거이고 다가올 지금은 미래인 것이다. 배회족도 질주족도 속도와 싸우는 게 아니라 오직 지금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좋은 사람들과 저녁을 함께 먹는 것이 행복’이라는 아주 매력적이고 실제적인 행복의 정의이자 실현이다. 한 해가 저문다. 행복해지고 싶으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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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12 23:02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어느 해 가을 잣나무 숲을 지나간 적이 있다. 청설모 한 마리가 잣나무 우듬지를 바삐 오가며 잣송이를 따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보통의 경우 청설모는 잣 한 송이를 따면 입에 물고 나무를 내려와 안전한 곳에 보관하는 행동을 반복하는데 이 녀석은 다른 방법으로 잣을 따고 있었다. 잣을 따서 나무 아래로 떨어뜨린 뒤 어느 정도 양이 쌓이면 내려와 옮기는 방식이었다. 괜찮은 방법이긴 한데 다른 누군가에게 도둑맞을 위험이 다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술안주로 잣을 좋아하는 나는 가방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녀석이 딴 잣을 담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무 위의 청설모가 반응을 했지만 청설모의 말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나 다름없었기에 개의치 않고 비닐봉지를 채워나갔다. 녀석은 뭐라고 한참을 씩씩거리다 다른 나무로 옮겨갔다.숲 길서 주워 담은 잣송이또 어느 해 가을에는 고향 친구들과 산행을 떠난 적이 있다. 그때 누군가 어느 수컷다람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다람쥐는 바람기가 많은 다람쥐였는데, 먹을 것이 풍부한 계절에는 아름다운 첩을 서넛이나 두고 산다는 것이다. 당연 먹을 게 많으니까 첩이 많아도 먹여 살리기가 쉽다. 그런데 이 녀석,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 닥쳐오면 모두 정리하고 딱 한 명만 남겨둔다고 한다. 그것도 애꾸눈인 다람쥐를. 당연히 왜냐고 물었고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눈이 애꾸면 한겨울의 굴속에서 잣이나 도토리를 반밖에 먹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란다. 음…….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이다. 올해 역시 많은 일들이 가깝고 먼 곳에서 벌어졌다. 누가 올 한 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라면 나는 이렇게 쓸 것 같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이었다고. 이것은 이란의 바흐만 고바디 감독이 2000년에 만든 영화의 제목이다. 이라크와 이란의 박해를 받으며 양국의 국경에 사는 평범한 쿠르드인들에 관한 슬픈 이야기다. 소년 가장이 된 주인공이 하는 일은 유일한 생존수단인, 국경을 몰래 오가며 밀수를 하는 것이다.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워낙 추운 지역이라 눈으로 덮인 국경을 넘으려면 말(馬)에게 독한 술을 먹여야만 되어서 붙여진 제목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이 내게는 말(言)로 여겨지는 건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올 한 해 이 땅에서 벌어진 많은 일들과 거기에 뒤따라오는 무수한 말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마치 취한 말들이 비틀거리고, 달려가고, 몰려오고, 쓰러지는 세상에서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더 나아가 취한 배에, 취한 기차에, 취한 그 무엇에 실려 눈보라 일렁이는 세상을 건너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영화 속 일찍 가장이 된 어린 주인공도 눈보라 속으로 사라져 돌아오지 않은 채 영화는 끝이 났다. 정녕 그래야만 되는가…….그런데……지금껏 나는 취한 말들의 공격만 받으며 살았던 걸까. 나 역시 나보다 약해보이는 누군가에게 취한 말들을 던져온 것은 아닐까. 그 말에 누군가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아파했던 것은 아닌가. 다른 이들이 던진 취한 말에는 온갖 괴로운 표정과 신음을 토해놓곤 내가 던진 취한 말엔 모르는 척, 기억나지 않는 척, 대수롭지 않은 척 등을 돌려버렸던 건 아닐까. 내가 던진 말은 절대 취한 말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말이었다고 고집하며 서둘러 그 자리를 도망쳤다는 죄책감이 점점 자리를 넓혀가고 있으니. 취한 말뿐만이 아니라 취한 행동까지 저질러놓곤 억지로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청설모 먹이였음을 뒤늦게 깨달아그해 가을 나는 잣나무 우듬지의 청설모를 계속 따라갔다. 녀석이 떨어뜨리는 잣송이를 빠짐없이 비닐봉지에 담으며. 나무 위에서 방방 뛰며 고함을 치는 청설모에 대해 재밌어하며. 녀석이 견뎌야할 길고 깊은 겨울은 눈곱만치도 생각하지 않은 채 그렇게 낄낄거리다가 제법 묵직해진 봉지를 든 채 잣나무 숲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술자리가 벌어질 때마다 사람들에게 그 청설모 얘기를 들려주며 재밌지 않느냐고 낄낄거렸다. 그들은 슬픈 눈으로 저 위의 다람쥐를 보듯 취한 나를 오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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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05 23:02

영화 '별에서 온 상속자들'

‘별에서 온 상속자들’이란 영화를 보셨는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상속자들’의 인기에 편승해 중국이 최근 공개한 영화다. 제목이 시사하듯 성공한 두 편의 한국 드라마를 적당히 섞었다. 아예 ‘중국 최초의 합체 드라마’라는 설명까지 덧붙여 인기 한국 드라마를 짜깁기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알리고 있다. 더구나 중국은 이 영화를 한국에 역수출하겠다고 밝혔다. 상상을 초월하는 행태다. 예능 표절은 더 심각하다. 2010년엔 ‘청춘불패’를 따라한 ‘우상의 탄생’을 보자. 제목만 다를 뿐 기획부터 시각효과, 배경음악은 물론, 출연자가 입은 옷까지 똑같았다. ‘모방이 아니라 복사’다. 개그 프로그램 역시 판박이 수준이다. 최근 중국 장쑤위성 TV는 ‘개그 콘서트’의 핵심코너를 그대로 베껴 KBS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중국, 한국 드라마 2편 섞어 만들어문제는 이같은 저작권을 침해한 베끼기에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표절에 아예 눈감고 있다. 결국 중국 법원에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지만 실질적인 승소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실상 해결책은 없다. 2006년 이래 한국저작권위원회가 북경에 사무소를 열고 보호활동을 하고 있지만 안하무인격인 중국의 태도에 존재감조차 찾기 어렵다.나는 오늘날 미국으로 상징되는 서양의 가치 못지 않게, 중국으로 대변되는 동양의 가치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 관점에서 서양도 매력적이지만 아무래도 한국인이다 보니 동양의 무위자연적인 면이 가슴에 와 닿는다. 월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The Sound of Fury)의 난해함 보다는, 양귀비를 잃은 당 현종이 베갯잇을 적시며 연리지정(連理枝情)을 노래한 백낙천의 장한가(長恨歌) 한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솔직히 햄버거보다 중국집 짜장면에 훨씬 더 정이 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근래 행태를 보면 문득문득 나의 이같은 호의가 빛바래져 감을 느낀다. 중국이 어떤 나라인가. 중국인은 예로부터 자신들만이 세상의 중심이자 유일한 문명국가로, 자신들의 황제가 온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어왔다. 2000년전 통일 진나라 이래 중국은 다른 나라들과 선린 관계를 유지해 온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자발적인 복속과 굴종이 아니면 창칼을 앞세운 무력 정복을 통해 자신들의 발밑에 꿇게 해 왔다. 이것이 중화주의의 요체다. 그런 중국이 긴 침체기를 끝내고 두려울 만큼 굴기하고 있다. 중국 스스로도 이제 세계 최강국이라는 자부심이 곳곳에 넘쳐 보인다. 명동거리를 찾는 중국 관광객의 어깨에도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식당이나 백화점에서 큰소리도 떠들며 두툼한 지갑을 여는 그들의 표정에는 이미 한국을 깔보는 표정이 역력하다. 기성세대가 중국인들에게 발마사지를 받아 보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짝퉁 콘텐츠, 저작권위원회도 무책이제 온갖 짝퉁 콘텐츠나 불량식품을 쏟아내더라도 문제 삼기가 어렵다. 연전에 북경의 자금성내 스타벅스 매점이 고궁의 존엄을 훼손하고 있다는 글이 블로그에 등장한지 몇 달 만에 쫓겨났다. 합법적인 계약서는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고궁점 폐점에 대해 중국인들은 ‘스타벅스 구축(驅逐·쫓아냄)’이라는 황당한 표현을 사용하며 승리감을 만끽했다. 나이키, 구글 등등 초대형 기업들도 힘세진 중국 앞에 양들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나는 중국이 강대국으로 굴기하는 것을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을 믿고 세상에 군림하려는, 콤플렉스에 가득찬, 이 무례한 대국이 마뜩찮은 것이다. 오랫동안 동쪽 오랑캐(東夷) 취급받으며 온갖 시달림 속에 가까스로 여기까지 온 한반도 작은 나라에 사는 나는 거만한 이웃의 등장에 적잖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알아야 한다. 많은 세계인들이 중국을 겁내고 있기 하지만 존경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냉엄한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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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28 23:02

고령화 시대와 청소년 친화적 도시

최근 통계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기본법에 의한 9~24세 청소년 인구비율이 1978년 36.9%에서 2014년 19.5%으로 감소했고, 2060년에는 10명 중 1명인 11.4% 수준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65세 이상의 고령인구는 2014년 기준 총인구의 12.7%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고, 2026년에는 그 비율이 20%를 초과하는 초고령화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쾌적하고 안전한 사회 조성해야이처럼 초고령화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지만, 그 시대를 이끌고 살아가야 할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다른 계층과 분야에 비해 매우 부족하다. 특히 수도권과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령인구 비율이 높은 지방의 농어촌 지역과 중소도시일수록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공간과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힘든 게 지금의 현실이 아닐까 생각된다.불과 10년 정도 뒤에 펼쳐지게 될 초고령화 시대에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게 될 청소년들이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가지고, 자신들의 역량을 마음껏 개발하고 잠재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환경, 즉 청소년 친화적 도시를 만들어 가는데 국가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유니세프(UNICEF)는 2000년부터 18세 미만의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살기 좋은 ‘Child Friendly Cities’ 구축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1300여개 이상의 도시가 어린이와 청소년 친화적 도시로 인증을 받았고, 우리나라는 서울시 성북구가 2013년 11월 20일 최초로 인증을 받았다. 물론 인증을 받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 가겠다는 정책적 판단과 관련 사업의 추진은 많은 도시들이 본받아야할 모범사례라 하겠다. 유니세프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지역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다양한 활동 장소와 기회를 제공하고, 쾌적한 환경과 안전한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등의 노력을 어린이와 청소년 친화적 도시의 중요한 원칙임을 강조하고 있다.이처럼 유니세프에서 강조하는 있는 청소년 친화적 도시의 모습에 비추어 볼 때, 농어촌지역과 지방의 중소도시에 대한 국가 및 지방정부 차원의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비해 문화예술 교육환경은 그 격차가 크고 매우 열악하다. 지방의 농어촌과 중소도시 살고 있는 청소년들도 차를 타고 멀리 가지 않고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하여 창의성과 감수성 등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다음으로 청소년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가정, 학교, 지역사회 등에 산재해 있는 각종 위험요소를 제거하여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의 통학로를 보다 안전하게 조성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활동공간을 학교 및 집 주변에 많이 조성하는 것 등이 그 예가 되겠다. 올바른 가치관·인성 갖추는데 도움또한 지역의 공공재라 할 수 있는 자연자원을 잘 보전·관리하고, 오염된 환경을 정화하는 등의 활동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것도 청소년들의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을 갖추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대학 입시 위주의 경쟁적 교육환경, 스마트폰과 인터넷 보급 확대로 너무나도 쉽게 접하고 있는 유해한 매체물, 각종 범죄와 사고 등으로부터 위협받고 힘들어 하는 청소년들은 초고령화 시대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우리들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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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21 23:02

초등학교 1학년 할머니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봉암초등학교라는 곳이 있다. 전교생 4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다. 이 학교 학생 중 70대 할머니가 두 분 있는데 올해 1학년 신입생이다. 할머니들은 왜 칠순을 넘겨 초등학교 에 입학했을까. 못다 배운 한글이라도 익혀 까막눈이라도 면해 보고 싶었던 걸까. 최석진 교장 선생님은 좀 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소수자와 취약계층을 위한 교육평등과 교육정의, 세대 갈등과 문화 격차 해소를 위한 학교를 과감하게 디자인하는 중이다. 온 가족이 함께 다니는 학교. 3세대가 같이 다니며 문화를 공유하는 학교. 가방은 큰아들이 사주고 조카며느리는 크레파스 사주는 행복한 공동체 마을. 다문화가정 이주 여성도 그 자녀와 함께 다니게 되는 미래교육의 희망 제작소…. 한국사회의 새로운 교육실험이 시골 작은 마을에서 시도되고 있다.고창 봉암초 새로운 교육실험이들 할머니들은 아침 등교 후 정규 교육과정을 다 익히고 손자 같은 동료 학생들과 점심도 하면서 4시 40분까지 학교에 꼬박 남아 학습한다. 학교 전체가 할머니들을 돌보고 마을 주민 모두가 학교에 관심과 사랑을 보낸다. 칠순 할머니가 담임선생님께 얼마나 공손하게 인사하는지 동료학생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그 법도를 따른다. 김치 담는 방법이라든지 지혜로운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인성교육도 저절로 된다. 장점은 이뿐 아니다. 할머니들이 학업진도에 다소 어려움을 겪으면 코흘리개 꼬맹이 학생들이 ‘할머니 제가 읽어 드릴 게요’, ‘할머니, 제가 써드릴 게요’라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선생님 개입 없이 학습자들 사이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동료애다. 왕따며 일진은 꿈도 못 꾼다.보다 극적인 장면도 있다. 전주에 있는 1학년 손자가 보내온 편지를 읽는 할머니가 그렇다. 도시의 손자는 시골의 문맹 할머니가 이제는 글을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좋은 책 많이 읽으셔야 해요’라며 제법 어른스럽게 권유한다. 편지 읽는 할머니 입에서 동급생 손자 목소리가 살아나온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이보다 따뜻한 가족애가 있을 수 없다. 배려와 사랑과 존경의 선의(善意)가 시골 초등학교 1학년 교실 안에 잔잔히 울린다.봉암초등학교 사례는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한 단면이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노년인구. 줄어드는 학령아동들. 평생학습 시대의 도래. 문맹 해소의 현실적 대안. 학교와 지역사회의 상생협력 방안…. 전국 어디에서나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슬기롭게 대응하는 이 사례는 단순한 흥미 차원을 넘어 보다 진지하게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무상급식이나 무상보육과 같은 표심유혹 정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삶의 질 개선이다. 그 개선 내용 속에는 교육과 문화에 대한 욕구도 들어 있다. 평생학습과 교육격차 해소 방안이 계속적으로 투자우선순위에서 밀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삶의 질 개선이 예산 배분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좋은 뜻’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실천 역시 중요하다.학교-지역사회 상생방안 찾아미국의 산간벽지에 명문대 졸업생들이 교사로 참여해 2년간 봉사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름하여 ‘티치 포 아메리카(Teach For America. TFA)’다. 1990년 프린스턴대학교 졸업 예정자인 22살 여대생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이 사업은 지난 25년 동안 약 4만 명의 봉사자들을 훈련시켰고 한 해 1만 명 이상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교육 여건이 부족한 곳에 교사를 파견하자는 대담한 아이디어가 그 모태가 되었다. 물론 이 프로그램 운영의 예산은 ‘엔젤 펀드’였다. 좋은 뜻에 후원하는 기부문화가 있기에 가능했다.봉암초등학교를 어떻게 하면 명실상부한 미래 희망학교로 만들 수 있을까. 전국의 수많은 사례들을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까. 정치인이나 관료에게 기대하느니 ‘선의’를 사랑하고 실천하는 젊은이들의 기개를 기대하는 게 빠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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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14 23:02

진부역

평창 동계올림픽은 2018년에 열린다. 올림픽 유치에 두 번 고배를 마실 때부터 시작해서 어렵게 유치한 뒤까지 평창은 여러 방면에서 요동쳤다. 어떤 유명한 연예인은 올림픽 경기장 가까운 곳에 땅을 샀다가 언론의 뭇매를 맞고 한동안 활동을 접기도 했다. 땅 투기 비슷하게 땅을 구입한 이가 어디 그 사람뿐이겠는가. 경기장 근처 알짜배기 땅은 이미 외지인들의 소유가 된 지 오래되었다. 비싼 가격으로 땅을 판 사람들이야 행복하겠지만 거기에서 제외된 대다수의 지역민들까지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덩달아 치솟은 땅값 때문에 새 농지를 구입하거나 이사 갈 집터를 장만하는 것도 쉽지 않게 돼버렸다. 이래저래 들려오는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은 까닭은 대관령이 바로 나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고향 풍경과 고향 사람들이 올림픽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따스했던 정을 잃고 몸과 마음을 다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위해 생기는 철길동계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평창은 지금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게 길이다. 어린 시절 마을에는 일제 때 개통한 신작로가 유일하게 큰 길이었다. 차가 지나가면 흙먼지 날리고 자갈이 튀던 그 길옆에 피어나던 코스모스의 벌을 잡으며 우리는 학교를 다녔다. 눈이 1미터씩 내리던 겨울이면 인근 스키장에서 나온 스노우카가 눈길을 쌩쌩 달렸다. 자동차 꽁무니에 연결한 밧줄을 잡은 스키어들이 대관령에서 줄줄이 내려왔다. 스키어들을 흉내 내다 지치면 우리들은 나무스키를 타고 눈 덮인 비탈 밭으로 올라가 내리달리다가 밭둑에서 멋지게 점프를 했다. 신작로는 70년대에 포장되고 뒤이어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고속도로는 마치 높은 성벽처럼 보여 산골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우리들은 올라가지 말라는 고속도로로 올라가 지나가는 차들을 구경하고 잠시 멈춘 관광버스에서 내린 도회지 사람들을 신기한 듯 훔쳐보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소고기조림을 주며 너희들을 감자와 강냉이밖에 못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시작된 고속도로는 점점 넓어지고 높아지더니 결국 마을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그 땅에 살던 사람들 또한 살 곳을 찾아 뿔뿔이 이사를 가야만 했다.국도와 고속도로에 이어 지금 평창엔 또 하나의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철길이다. 동계올림픽의 가공할 위력이다. 지금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마을의 풍경이 또다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진부역(珍富驛)에서부터는 험준한 대관령을 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터널이 뚫리고 있는 중이다. 고향에서 잠을 자는 날이면 땅 밑 저 아래에서 암반을 발파하는 공사 때문에 한동안 지진이 난 것처럼 집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도 감수했다. 마을에 처음으로 기차가 들어온다는 설렘으로 불안을 잠재워야 했다.하지만……이제는 어린아이가 아닌 내가 올림픽을 둘러싼 이 모든 일들을 그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 올림픽의 이념은 무엇인가. 올림픽은 왜 이렇게 요구하는 게 많은가. 우리는 올림픽을 어떻게 보는가. 혹시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울타리 뒤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보다 빨리 서울에 가기 위해, 보다 빨리 서울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올림픽의 경기종목도 제대로 모르면서 올림픽 유치에 열광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 집 땅값도 어마어마하게 오를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깃발을 흔들었던 것은 아닐까. 이 거대한 모순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체념 아래 수백 년을 한 자리에서 살아온 나무들이 베어지는 것을 애써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름을 오대산역으로 정해졌으면진부역은 동계올림픽 주경기장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역이다. 역의 이름을 놓고 말들이 많다. 눈의 고장 평창은 동계올림픽을 인간이 아닌 천혜의 자연조건으로부터 얻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그 자연을 파괴한 뒤 올림픽을 개최해야 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동계올림픽으로 가는 마지막 역 이름을 오대산역으로 정했으면 좋겠다. 그게 여태껏 우리가 파괴한 자연에 대한 아주 작은 위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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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07 23:02

터미네이터의 눈물이 나는 두렵다

‘스페이스 오딧세이’란 전설적인 SF 영화가 있다.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이다. 1968년, 영화 개봉 당시에는 인간이 아직 달에 가기 전이었다. 컴퓨터 그래픽도 없었다. 그러나 영화는 요즘 기준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는 사실적인 화면과 영상미를 보여주는 그야말로 걸작 영화다. 장황한 설명이나 대사가 거의 없다. 대사가 아니라 영상과 음향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첫 대사는 영화가 시작되고 25분이 지난 후에야 나오며, 후반 20분에도 대사가 아예 없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강렬한 사운드가 묵직한 느낌을 던져준다. 영화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단연 인공지능 로봇 ‘할(Hall)’이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기능을 정지시키려고 하자 이에 반항해 인간을 공격한다. 이처럼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가 인간의 적이 돼 버린 로봇을 다룬 이야기는 많다.다양한 감정 인지하는 로봇 등장최근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고 스스로 학습하는 로봇 ‘페퍼(Pepper)’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세계 최초로 사람의 감정을 읽는 로봇이 탄생했습니다.” “사장님, 너무 띄우지 마세요. 부담됩니다.” 회견장에서 손사장과 로봇 ‘페퍼’가 나눈 대화다. 페퍼는 손사장은 물론이고 들과도 얘기를 주고 받았다. 대화 상대의 말을 알아듣고 그에 맞는 대답을 내놨다. 적외선 센서 등을 활용해 사람의 감정까지 측정한다. 가령 눈은 그대로인데, 입만 웃는 모양을 하면 웃지 않는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물론 페퍼의 감정인식 능력은 아직은 기초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학습기능이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감정을 인지하게 된다고 한다. 미래에는 이처럼 인간의 희로애락을 이해하는 로봇이 등장할 것이다. 아득한 시절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이끌었던 ‘아톰’처럼 인간과 친구가 되는 로봇 말이다.지난 여름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벤츠 조립공장에서 본 로봇은 충격이었다. 인간 못지 않게 복잡한 일을 척척 해내고 있었다. 그래서 MIT의 브린욜프슨, 매카피 교수는 ‘제 2의 기계시대(The Second Machine Age)’라는 책에서 지능형 소프트웨어의 등장으로 구글 무인차, IBM 왓슨 등과 같은 인공지능 기술은 인간과 기계간의 관계를 재설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이같은 일은 상당한 미래에나 가능하겠다. 하지만 나는 로봇을 향한 인간의 집념이 가져다 올 미래에 걱정이 앞선다. 업계는 저마다 로봇의 뛰어난 기능과 상품성에 주목하지만 로봇이 인간처럼 눈물 흘리는 그 날이 왠지 두려운 것이다.영화 ‘터미네이터’를 보자. 미래의 인류를 구원할 지도자를 위해 스카이 넷과 싸우던 인간 못지 않은 로봇이다. 임무를 완수한 그는 펄펄 끓는 용광로에 스스로 몸을 던져 사라지려 한다. 그 순간 주인공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터미네이터가 묻는다. 도대체 그 액체가 무엇이냐고. 로봇에는 없는 액체에 대해 소년 존 코너가 답한다. 인간은 슬픔을 느끼면 눈에서 뜨거운 액체가 나온다고. 존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터미네이터는 묘한 느낌 속에 용광로에 몸을 던진다. 터미네이터가 정작 감동받은 것은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에서 터져 나오는 이상한 액체, 즉 인간의 눈물이었다.각박한 세상, 인간의 눈물은 메말라눈물은 말없는 언어다. 올해는 유난히 눈물 많은 한해였다. 세월호를 시작으로 사연 많고 곡절 많은 한국인의 눈물은 마를 새가 없었다. 또 한해가 저물어 간다. 삶이란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얼마 남지 않게 되면 점점 빨리 돌아가게 된다. 각박해져 가는 세상, 눈물도 점차 메말라 간다. 마음은 아직 ‘연분홍 치마가 휘날리는 봄날’에 서성거리고 있는데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문밖에는 벌써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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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31 23:02

걷기 좋은 도시, 살기 좋은 도시

출퇴근 시간이면 몰려드는 차량으로 심각한 교통체증이 일어나고, 어린이보호구역에서도 교통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고, 횡단보도와 보행자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가는 차량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모든 골목길은 주차된 차량으로 점령당하고, 자가용이 없으면 생활하기 불편한 도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통행수단인 보행이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도시, 과연 이런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일까?많이 걸을 때 건강한 삶 살 수 있어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 평가되고 있는 도시들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영국의 컨설팅 업체인 머서(Mercer)는 매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를 발표하고 있다. 2011년도에 이어 2013~2014년도 연속 1위로 차지한 호주 멜버른은 2030년까지 전체 이동수단의 30%를 보행자 통행이 되도록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그 외 살기 좋은 도시의 상위권을 차지한 캐나다 밴쿠버와 토론토, 그리고 오스트리아 빈 등 대부분의 도시들도 보행이나 자전거, 대중교통을 우선으로 하는 도시·교통계획을 펼치고 있다. 물론 보행환경을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를 평가해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될 것이다. 하지만 보행자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도시가 과연 살기 좋은 도시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현대문명의 획기적 산물인 자동차는 도시화와 산업화 시대에 안성맞춤인 빠른 이동수단이기에 선진산업국가들은 앞 다투어 보급해왔고, 도시의 모습과 사람들의 생활양식도 이에 맞추어 빠르게 변화되어왔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에 따른 난개발과 도시 내 도시 간 교통량 급증, 옛 시가지의 쇠퇴 그리고 신체활동 감소에 따른 비만인구의 증가 등 자동차 중심의 도시로 인해 발생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문제인식이 확산되면서 자동차중심의 도시에서 탈피하기 위한 새로운 흐름이 많은 도시에서 시작되고 있다.아직 성공이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지난해 서울시가 발표한 2020년 보행수단 분담률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보행친화도시 서울 비전’은 매우 중요한 시도라 생각된다. 특히 많은 도시에서 단순히 차량을 막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보행공간 조성에 치중했던 ‘보행전용거리’와는 달리 주변 상권과 보행자 이동패턴, 교통량 등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지구단위 종합적인 맞춤형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보행친화구역’ 조성사업에 많은 기대가 된다.이처럼 보행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보행로 중심의 물리적 환경개선사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토지이용, 교통, 건축, 보건, 공원녹지 등 모든 도시행정에서 보행환경과 보행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 정책도 보행보다 우선시 될 수 는 없다. 예를 들어, 자전거 통행자를 위해서 기존 보행로를 자전거 겸용구간으로 바꾸는 것보다는 차도를 줄여 자전거 도로를 확보하는 것이 보행을 우선시 하는 정책이 될 것이다.보행 중심 활동적 삶 가능한 환경을또한 사람들이 자가용을 버리고 많이 걸을 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켜나가고, 이를 위해서 보행중심의 활동적인 삶이 가능한 주거환경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특히 쇠퇴한 구도심권을 되살리기 위한 도시재생사업도 반드시 보행이 중심이 되면서 자전거나 대중교통이 서로 잘 연계될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느리고 불편하더라도 걷기 좋은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이자, 건강한 도시라는 지역구성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많은 불만의 목소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 가는 것이 미래 세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현 세대가 선택해야 할 바른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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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24 23:02

그리운 독도 강치

지난 주말 독도 땅을 처음 밟아보는 행운을 누렸다. 동국대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가 참여하는 독도 연구팀의 학술답사 일정에 따라가게 된 것이다. 독도평화호를 타고 가는 동안 가슴은 내내 설레었다.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일본 수로부의 해도(〈조선동안〉, 1893)를 최근에 발굴한 교수와 그 연구팀을 실은 배는 울릉도에서 두 시간을 달려 독도에 도착했다. 마침내 내 발이 국토의 최동단에 닿았다. 가슴이 다시 설레었다. 이게 뭘까. 특별한 경험에 대한 희열감일까. 치열한 영토 갈등 현장에 대한 체험감일까. 아니면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한 뜨거운 애국심일까.한 세기 전 멸종된 생명체들우리는 섬의 해안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태풍 북상 조짐에 서둘러 배를 타야만 했다. 그 해안.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지표’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나는 내 설렘의 정체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운 강치. 그곳에서 수천 년을 행복하게 살아오다 한 세기 전 갑자기 멸종되어버린 생명체들. 나는 그들의 평화로운 서식지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학술회의는 치밀한 논증으로 무늬를 짜 나아가고 있었다. 동국대 한철호 교수의 발표문에 일본의 영토 침략 야욕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 눈에 확 다가왔다. “명치시대에 일본이 무주지 선점에 얼마나 전력하고 있는가는 1898년 미나미도리지마(南鳥島)를 일본령으로 편입한 뒤, 1902년 7월 이에 항의하는 로즈힐 원정대를 막기 위해 파견된 이시이 외무서기관의 〈남조도출장복명서〉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 그는 태평양의 수많은 섬들에 대한 열강의 점령 조치는 실력으로 제압해야 하며 모험적인 일본인들에게 선박과 장려금을 지급해서 섬들을 차지하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 같은 실력 행사론이 그대로 적용된 사례가 바로 우리 땅 독도다. 일본 상인 나카이 요자부로가 다케시마 어렵회사를 설립하고 독도의 강치를 마구잡이로 포획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치는 물개과에 속하는 해양 포유류로서 바위가 많고 먹이가 풍부한 독도가 주요 서식지였다. 독도박물관에 전시된 ‘지키지 못해 사라져버린 슬픈 강치 이야기’에 따르면 19세기만 해도 동해 연안에 5만여 개체가 서식했으나 이제는 멸종되었다고 한다. 한 해에 무려 3200 마리의 강치가 일본 어부들의 창칼과 몽둥이질에 죽어나갔다. 당시 수컷 강치 한 마리가 황소 값보다 10배 비쌌다고 하니 ‘모험적인 일본인’에겐 황금 노다지요 일본 정부에겐 자국 산업 보호의 빌미가 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제국주의 영토침략의 희생물이 된 독도 강치는 마침내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에 의해 멸종동물로 공식 선언되기에 이르렀다.수많은 강치떼들이 평화롭게 쉬고 있는 오늘의 독도 풍경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지금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인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일본 시네마현청 다케시마 자료실에는 강치 캐릭터가 전시되고 있다. 캐릭터를 활용해 독도가 자기네 영토임을 홍보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다. 멸종시킨 장본인들이 이제 다시 그 망령을 캐릭터화해서 국제 분쟁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평화와 문화를 앞세우는 일본식 스토리텔링의 정치적 이면이 씁쓸하다.생태계 보호 스토리텔링 필요독도를 해양생태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일은 우리의 새로운 스토리텔링이다. 해양수산부도 이 점의 중요성을 알고 독도 물개 복원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다행히 독도에 강치와 유사한 종들이 종종 출현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제대로 서식하기 위해서는 그 전단계로 독도 주변의 폐그물을 깨끗이 걷어내야 하고 선박들의 소음을 줄여야 하는 과제가 있다. 그것이 어려운 일일까? 독도를 실제로 점유하고 있고, 아름다운 생명체들이 서식하는 환경을 조성해 지구 생태계의 평화에 기여하는 나라. 미래 갈등에 대응하는 좋은 전략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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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17 23:02

학교는 어디에 있는가

시월로 접어들기 무섭게 올해도 어김없이 휴대폰 화면에 익숙한 문자가 떴다. OO초등학교 동문체육잔치를 선후배 동문님들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오랜 불경기와 침체된 사회분위기, 또 어떤 이유로 마음이 무거우시다면 오셔서 고향과 동문의 정을 함께 나누며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일을 하다가, 푸른 하늘을 쳐다보다가, 올해는 유난히 붉은 매일 저녁의 노을을 훔쳐보다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문자가 바로 초등학교 동문회에서 온 소식이다. 오래 전에 졸업한 학교로 놀러오라는 소식.초등 동문체육대회에 가면서학교는 왜 자꾸만 우리를 부르는 것일까. 학교는 대체 무엇일까. 떠나온 학교를 떠올리면 마음이 따스해지는가, 아련해지는가, 얼굴이 화끈거리는가. 당신은 어떤 경우인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가, 아니면 학교 따윈 두 번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가. 떠나온 학교를 생각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선생님인가, 친구인가, 좋아했지만 한 번도 좋아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던 그 누구인가. 학교는 왜 우리들 각자의 기억 속에 애증으로 자리 잡은 채 틈이 날 때마다 부르는 것일까. 마치 당시에 마무리하지 못한 오래된 숙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듯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이 네 개의 학교를 모두 지나오려면 자그마치 16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학교는 우리들의 또 다른 고향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그러하기에 지나온 학교들에서 부르면 그때마다 만감이 교차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철수는 왜 거의 매일 지각을 한 것일까. 그 선생님은 풍금도 칠 줄 모르면서 어떻게 매번 음악시간을 진행했을까. 만동이는 힘이 약한 친구를 괴롭히고 때리면서 기분이 좋았을까. 그 어여쁜 처녀선생님은 산골마을에 부임해와 살면서 동네의 시커먼 총각들이 득실거리는 밤이 두렵지 않았을까. 지린내가 진동하던 화장실은 왜 그리 무서웠을까. 학교는 어떤 이유로 대부분 공동묘지 자리에 지어서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을까.초등학교 시절은 그래도 아름다웠다. 중학생이 된 남학생들은 나이를 조금 먹었다고 점점 거칠어졌고 여학생들은 말이 없어졌다. 선생님들도 초등학교 때완 판이하게 달랐다. 여러 초등학교에서 모인 남학생들은 힘을 겨루려고 툭하면 싸웠다. 가출을 했다가 잡혀왔다. 선생님들의 몽둥이 굵기는 초등학교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저 이가 과연 선생인가 의심이 갈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때렸다. 그 와중에도 사춘기로 접어든 남학생들은 젊은 여선생의 치마와 가슴을 훔쳐보며 여드름을 키우고 짰다. 전날 술을 많이 마셨는지 자습을 시키는 선생이 허다했다. 물론 모든 선생님들이 그렇고 모든 학생들이 그랬었다는 얘기는 당연히 아니다. 학창시절의 기억이란 건 늘 어느 한쪽에 편중돼 있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중학교보다 초등학교의 기억이 그나마 아름다운 편에 속한다. 고등학교와 대학은 슬슬 세상의 전쟁터로 발을 들이미는 것일 테니 말할 나위도 없다.미안하다는 말을 준비하련다지금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어떤 학교일까. 어떤 철수, 만동이 들이 있고 어떤 선생님들이 교단을 지키고 있을까. 왕따니 자살이니 하는 말들은 어디서 흘러나오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어떤 당부의 말을 호주머니에 넣어주는 것일까. 선생님들은 어떤 마음을 보듬으며 학교로 가는 것일까. 지금의 학교는 어디에 있을까. 혹시 마음 아픈 한 아이를 교정의 울타리 밖에서 홀로 울게 하는 것은 아닐까.그 옛날의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도 모른다. 깊어가는 가을의 동문체육대회에 가면서 곰곰이 생각해봐야겠다. 미안하다는 말을 호주머니에 준비해야겠다. 그런데 정녕 학교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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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10 23:02

물레방아 도는데

내가 태어나서 처음 배운 유행가는 ‘물레방아 도는데’ 였다. 물론 유행가에 앞서 웬만한 동요는 취학 전에 이미 끝냈다. 그 때 배운 동요가 아직도 선명하다. 과꽃이 어떤 꽃인지도 모르면서 올해도 과꽃이 피었고 과꽃을 좋아한 누나는 꽃이 피면 아예 꽃밭에서 살았다며 목청껏 외쳤던 기억이 새록하다. 그뿐인가. 과꽃을 보면 누나 얼굴이 떠오르고 시집간 지 영영 소식이 없는 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난다는 구절에 어린 마음에도 숙연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동요는 딱 그 뿐이다. 초등 시절, 당시 폭풍같은 인기속에 등장한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가 곧 나의 애창곡이 된다. “돌담길 돌아가며 또 한번 보오오고”를 정말 열심히 따라 불렀다. 의미도 모르고 그냥 불렀다. 학교 오가는 길, 길 옆 전파사도 종일 이 노래를 틀었다. 그러나 이 노래가 그다지 행복한 노래가 아니란 걸 깨달은 건 대학에 들어서다.1970년 서울 구로공단의 힘겨운 삶나와 같은 386 세대들의 고민은 이 땅의 노동운동이었다. 민주화와 함께 어깨를 짓누르던 노동현장의 질곡속에 이 노래가 만만치 않음을 서서히 이해하게 된다. 1972년 발표된 노래는 창작자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농(離農)현상으로 도시로 몰려든 개발연대 한국인들의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비애를 형상화한 노래로 이해된다. 등 떠밀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물레방아 도는데’를 통해 두고 온 고향에 대한 사무침을 달랬다. ‘천리타향 멀리 가더니 가을 다 가도록 소식이 없는’ 떠난 이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은 지금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너무 가난해서 떠나왔지만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깊은 노스탤지어를 노래를 통해 달랬던 것이다. 꺾기로 불리는 창법도 창법이지만 노래는 넘 슬퍼 결국 가슴을 쓰라리게 한다. 그래서 가난했던 그 시절 한국인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된다. 두 손을 마주 잡고 아쉬워하며 골목길을 돌아 설 때 손을 흔들며 떠난 십대 소년소녀들은 ‘공순이’나 ‘식모’로, 또는 ‘공돌이’로 불렸고 그들이 둥지를 튼 곳은 구로공단이다. ‘공순이’는 특히 서러웠다. 가난해 못 배웠으니 당연히 무식했다. 특히 어린 소녀들은 대부분 남동생이나 오빠 학비를 벌기 위해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로 밀려 떠난다. 속옷에다 작은 돈주머니를 달아주던 어머니의 눈물을 뒤로 하고 서울로 온 그들이다. 그래서 1970년대의 여공들 중에는 한글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그 시절 구로공단 여공들은 국졸 혹은 국교 중퇴가 대부분. 영어로 된 라벨을 다는 것은 한글도 모르는 소녀들에게는 고역이었고 M과 W를 혼동해 작업반장에게 따귀를 맞는 일도 허다했다고 한다.그런 구로공단이 ‘최첨단 디지털단지’로 변했다. 봉제, 가발산업이 저문 빈자리엔 화려한 쇼핑몰이 들어섰다. 올해는 구로공단 조성 50년. 이를 기념한 ‘공단 노동자 체험관’이 문을 열었다. 체험관은 벌집으로 불리던 여공들의 주거공간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겨우 발을 뻗을 수 있는 작은 방, 수십명이 살지만 사춘기 소녀들이 아침마다 긴 줄을 서야 했던 딱 한 개뿐인 푸세식 화장실 모습에 가슴이 짠해 온다. 그래서 노래 ‘물레방아 도는데’는 지난 산업화 시대에는 국민가요처럼 불려졌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빛나는 성취가 민주화와 산업화일진대 산업화 측면에서 가장 도드라진 시대정신을 담은 노래이기 때문이다.산업화 진정한 주역은 노동자들사실 산업화의 진정한 주역은 그 시절의 공화국을 담당했던 정치인도, 경제정책 입안자도, 몇몇 이름난 민주화 운동가도 아니다. 인간에게 배고픔만큼 잊혀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한다. 지긋지긋한 배고픔과 대물림 가난이 싫어 정든 고향을 떠나 공순이, 공돌이란 이름 아래 꽃다운 젊음을 바친 이 땅의 노동자들이야말로 산업화의 빛나는 주인공이 아닐까. 왔다고 느낄 때쯤이면 저만치 떠나는 가을, 구로공단 50주년에 바치는 나의 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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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03 23:02

젊은층 고도비만

비만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전 지구적 전염병’으로 선언할 정도로 개인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 회원국들은 비만이 국가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비만 치료와 예방에 힘쓰고 있다. 다행히 OECD 국민의료비 통계(OECD Health Data 2014)에 따르면 우리나라 과체중·비만 인구 비율은 31.8%로 이웃한 일본(23.7%)과 함께 최하위권에 속하고 있다.패스트푸드 소비·비활동적 습관 늘어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12년간(2002~2013)의 일반건강검진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1980년대 이후 출생한 20~30대 젊은 층의 고도 또는 초고도 비만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젊은 층의 고도비만 증가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수 있는데 관련 전문가들은 1980년대부터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한 패스트푸드의 소비 증가와 자동차 중심의 비활동적 생활습관에 따른 신체활동량 부족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현재 우리나라의 비만 문제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이나 남미 국가들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현 추세대로 20~30대 젊은 층의 비만율이 계속 증가한다면 머지않아 국가의 큰 사회적·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비만 문제를 먼저 경험하고 있는 국가들의 사례를 교훈삼아 사전예방적 차원에서 젊은 층의 주요 비만 원인이 되고 있는 패스트푸드 등에 의한 불균형적 영양섭취와 자동차 중심의 비활동적 생활습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적 요인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개선대책이 필요하다.특히 정부 차원에서는 모든 정책에서 건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이른바 ‘Health in All Policies(HiAP)’ 개념을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범정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공공정책은 비만과 같이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사전에 예방 또는 최소화하고, 건강증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을 해야 된다.비만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도 중요하다. 탄산음료를 만드는 세계 최대 음료업체는 활력 넘치는 건강한 삶, 교육, 물관리, 공동체 재활용 등 전 세계의 지속가능한 공동체 지원을 위해 많은 재원을 기부하고 있다. 미국의 한 건강의료품 업체는 로버트 우드 존슨 재단(Robert Wood Johnson Foundation)을 설립하여 미국인들의 비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Active Living Research 사업 등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이러한 외국 기업의 사례처럼, 국민들의 신체활동 감소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동차, 인터넷, 스마트폰 등과 관련된 국내 기업들도 보행, 자전거 타기 등과 같은 일상생활 중 신체활동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사업이나 환경조성사업 등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면 어떨까 한다.정부·기업·대학 나서 비만문제 해결을20대 젊은 세대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대학도 학생들의 비만과 건강 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캠퍼스 내 자동차 통행을 제한하거나, 보행전용구간을 확대하는 방안, 학생들이 캠퍼스에서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충분한 시설을 설치하고, 다양한 신체활동 증진 프로그램도 개발해 시행할 필요가 있다. 가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졸업기준에 일정 수준 이상의 운동 능력, 예를 들어 수영을 1km 이상 할 수 있는가를 포함한다면 어떨까? 농담 삼아 질문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20~30대 젊은 세대들의 비만율 증가는 단지 스쳐지나갈 문제가 아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병들어 가는 우리들의 미래 세대를 위해 보다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해결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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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26 23:02

공무원이 존경받는 나라

최부(崔溥·1454~1504)는 조선의 관리였다. 스물여덟에 과거에 급제하고 3년 뒤 성균관 정6품이 되어 서거정과 함께 민족의 역사서인 〈동국통감〉을 편찬하는 데 힘을 쏟는다. 그 뒤 새로운 직책을 명받아 1487년 9월 제주도로 떠난다. 추쇄경차관. 정확한 인구 조사가 임무다. 그러던 중 이듬해 정월 부친상을 당해 거친 바다에 배를 띄워 고향인 나주로 향한다. 일원 42명과 함께 배에 오른 이 항해는 애초에 무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배는 풍랑을 만나 정처 없이 표류한 끝에 남중국 태주부 임해현 우두산 아래 당도한다.최부 '표해록' 세계 3대 중국견문록거기서부터 최부 일행은 중국의 내륙 운하를 따라 베이징까지 이른 다음 압록강을 거쳐 조선으로 다시 돌아온다. 표류한 지 넉 달 보름만이다. 왕명을 받들어 그간의 일을 소상히 기록해 바쳤는데 이것이 바로 〈표해록〉이다. 이 책은 엔닌의 〈입당구법순례기〉(9세기),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13세기)과 함께 세계3대 중국견문록으로 손꼽힌다. 15세기 중국의 저간의 사정을 이토록 정밀하게 서술한 기록은 중국 내부에서도 찾기 어렵다. 그는 마르코폴로처럼 구술의 방식을 택해 중국에 대해 과장하지 않았으며 일본 승려 엔닌처럼 자신의 신분을 감추지도 않았다. 조선의 엘리트이자 역사학자이기도 했던 최부는 그 험한 여정 속에서도 ‘조선의 관리’로서 기품과 정직성을 잃지 않았다.〈표해록〉의 역사적 가치는 크다. 고난극복의 스토리텔링 구조에 공익의 리더십이 강해서 오늘의 답답한 현실에도 호소력이 강하다. 조선의 관리 최부는 어떠한 난관에 닥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빗물 받을 그릇조차 없어 오줌을 받아 식수로 마셔야 했고, 금은을 요구하는 해적이 어깨에 작두를 내리치며 겁박해도 “몸뚱이를 뭉개고 뼈를 부순다고 해서 금은을 얻을 수 있겠는가”며 물러서지 않았다. 해안에 표착해서는 왜구로 오인 받아 모진 고난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난파선 리더로서의 지혜와 기품을 잃지 않았다. 가장 귀감이 되는 것은 함께 타고 간 42명 전원과 동반 귀국했다는 점이다. 136일간 파란만장한 고난의 여정 동안 그는 어찌하여 단 한 사람도 잃지 않았던가.참된 지도자는 간난신고의 과정에서 탄생한다. 이순신이 그러했고 그보다 100년 전엔 최부가 바로 지도자의 전범이었다. 아쉽다. 위대한 기록의 나라 조선의 선조들은 그러했는데 오늘 이 땅엔 참된 지도자가 귀하다. 불신과 배타의 논리가 유령처럼 어슬렁거리고 아프고 심란한 국민 모두의 마음 함께 껴안으려 하지 않는다.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의 순간을 수도 없이 맞으면서 최부는 일행들에게 당부한다. “우리는 생사고락을 같이하여 골육지친과 다름없으니, 지금부터 서로 돕는다면 몸을 보전하여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려움을 당하면 같이 구하고, 한 그릇의 밥을 얻으면 같이 나누어 먹는다. 병이 생기면 같이 돌보아 한 사람이라도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할 것이다.”고난 극복한 참된 지도자 모습 담겨최부는 어떻게 모두를 살렸던가. 그는 매순간마다 문제해결을 주도했다. 공동체정신을 강조했고 비전과 희망을 보여주었다. 한 사람이라도 죽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당부는 왕명보다 지엄했다. 그리하여 그에겐 ‘존경’이라는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나는 그가 ‘존경’의 힘으로 42명 전원을 살렸다고 생각한다. ‘존경’ 앞에서는 낙심도 원망도 미움도 다 사라진다. 생명의 열망과 내일의 희망이 새로 생겨난다. 이런 존경의 힘이 우리사회에 필요하다. 조롱이 비판적 지성으로 위장되는 사회에 존경을 새롭게 초대해야 한다. 최부가 진정 나라의 공복(公僕) 아닌가. 좋은 나라 멀리에서 찾을 필요 없다. 공무원이 존경받는 나라가 좋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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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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