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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뇌의 신비 벗기는 '블루 브레인' - 김승환

뇌 (brain)는 우리 몸을 지배하는 사령탑이자 마음의 집이다. 그러나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인 신비로운 뇌를 탐구하는 인류의 여정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뇌가 정보 처리를 수행하는 기본 단위는 뉴런이라고 불리는 머리카락 두께 정도의 세포들이다. 우리의 뇌 속에는 세계 인구의 수십 배에 이르는 1,000 억 개의 뉴런이 빽빽하게 들어있다. 독자들이 이 칼럼을 읽는 동안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영역의 수많은 뉴런들이 자극에 대해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활성화된다. 뉴런은 세포내 정교한 생화학적 과정을 통해 전기 신호를 만들고, 거미줄 같은 상호 연결망을 통해 빠른 속도로 정보를 교환한다. 뇌의 감각, 사고, 학습과 기억의 기저에는 복잡한 뉴런 네트워크 상에서의 변화무쌍한 신호의 생성과 전달 활동이 자리한다. 수학자 앨런 튜링의 뇌를 창조하려는 시도는 그 대신 인류 역사상 최대의 발명품중 하나인 컴퓨터를 낳았다. 현재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는 기가와 테라를 넘어 페타 (1억의 천만 배) 라는 놀라운 연산 속도를 자랑하고 있다. 10만년의 인류문명 역사에서 가장 빠른 성장률을 보인 컴퓨터의 도움으로 이제 뇌의 기본 단위인 뉴런, 뇌의 영역, 궁극적으로는 뇌 전체를 모방하는 도약이 가능해지고 있다.2005년 7월 1일 스위스 로잔공대의 뇌정신연구소와 세계 굴지의 컴퓨터 회사인 IBM은 블루브레인이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출범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지놈프로젝트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IBM이 개발한 블루진 슈퍼컴퓨터의 엄청난 계산 능력을 활용하여 포유류의 뇌를 생물학적으로 매우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하고, 궁극적으로 생물학적 지능의 발현에 연관된 과정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있다.IBM은 당대 최고의 체스 제왕이었던 개리 카스파로브와 경쟁하기 위하여 딥블루 라는 슈퍼컴퓨터를 처음 만들었다. 1997년 5월 딥블루는 세기의 체스 경기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하였고, 이 뜻밖의 결과는 전통적인 지능에 대한 사람들의 개념에 큰 도전을 안겨 주었다. 딥블루는 전통적인 컴퓨터 과학의 방법론을 조합하여 초당 2억 회라는 엄청난 속도로 모든 가능한 경우수를 단순한 논리로서 따져냈다. 일견 무식해 보이는 접근에도 불구하고, 딥블루는 체스와 같은 지능 게임에서 인간을 처음으로 이긴 컴퓨터로서 지능의 본질에 대한 수많은 논쟁을 낳았다.그러나 자연과 사회의 실세계의 문제는 더욱 복잡하여 딥블루와 같이 단순한 논리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선형적 지능으로는 접근하기 어렵다. 세상은 복잡하고 모호한 모습으로 다가오며,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학습하고 적응하여야 하며, 그리고 전혀 다른 방향에서 창의적 접근을 수행하여야 한다. 따라서 선형적 지능을 뛰어 넘어 뇌의 다양한 단계간의 상호작용에 기초하여 뇌와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는 지능의 도약이 필요하다.원자들의 모임인 분자는 그 구성 요소와는 전혀 다른 성질을 보인다. 뉴런들의 모임인 뇌의 경우에도 마치 전기적 분자와 같이 고급인지 및 사고에 있어 새로운 도약이 일어난다. 블루브레인은 질적 수준의 지능 도약을 이루기 위하여 뇌와 같은 방식으로 생물학적인 뇌의 시뮬레이션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 블루브레인은 세포 수준에서 정확한 뉴런을 10만 개 정도 모은 수준까지 이르렀다. 이는 이미 캘리포니아 바다민달팽이 보다 5 배나 많은 수이다. 앞으로 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100만 배 더 증가하게 되면 인간의 두뇌 전체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파워를 갖게 된다. 뇌는 21세기 인류의 최대의 화두이자 과학기술의 마지막 미개척지이다. 뇌 연구는 근본적으로 IT, BT, NT 등 신기술이 융합되는 다 학문간 분야로서 인류의 삶의 질 향상과 미래 산업 창출 등 경제ㆍ사회ㆍ문화적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연구기반이 취약하지만, 1998년 뇌연구촉진법을 제정한 이래 국가적 차원에서 꾸준한 투자와 함께 향후 10년간의 뇌연구촉진을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이 진행되고 있다.과연 블루브레인이 진화하여 언젠가 인간의 두뇌를 닮은 컴퓨터이 태어날 것인가? 가까운 시일에 인간 수준의 지능로봇이 출현하고 치매를 비롯한 뇌질환이 극복될 것인가? 작은 우주 뇌의 무한한 신비의 베일을 벗겨내는 긴 여정에서 우리가 함께 풀어내야할 숙제이다. /김승환(포항공대 물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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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2.23 23:02

[금요칼럼] 고요하고 순한 말씨를 - 이해인

1.나는 경부선 열차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평일 보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많아 복잡한데다가 너도 나도 끊임없이 주고 받는 말소리,휴대전화 소리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할 때 까지 매우 힘들고 괴로울 때가 많다. 예전에는 그래도 눈을 감고 조용히 명상하거나 창 밖으로 보이는 산과 들을 즐기며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하는 일들이 가능하였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이야기 할 땐 옆사람에게 방해 되지 않게 조용히 하고,떠드는 어린이에겐 주의를 주고,휴대전화는 진동으로 해 놓으며,통화가 필요하면 객실에 나가서 하라는 안내방송을 되풀이하지만 아무도 그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우리의 무감각하고 무관심한 현실이 안타깝고 슬프다. 아무리 눈여겨봐도 일부러 객실로 나가 전화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여러명이 앉아 하도 시끄럽게 이야기 해 큰 방해가 될 적엔 승무원을 시켜 전달한 일도 몇 번 있지만 이 또한 번거로운 일이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닌데 그렇게 쉴새 없이 휴대전화를 해야만할까, 내용을 들어보니 그리 긴급한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잠시만 참았다가 목적지에 내려서 하면 안 되는 것일까. 휴대전화가 없을 때는 어떻게 살았을까, 때로는 전화의 존재 자체를 원망하는 마음이 들다가 '어떤 위기상황에서는 휴대전화 덕분에 생명을 구하는 일도 생기니 좋은 마음으로 이해를 해야지'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고 만다. 꼭 기차 안이 아니라도 공공장소에서는 습관적으로 목소리를 낮출 줄 아는 고요한 우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혼자서는 커도/여럿이 모이면 낮게 낮게/ 깊이 있는 말일수록/ 눈으로 하기/화가 났을 때는 아껴서 쓰기/보이지 않으면서/꽃향기로 남고/ 만져지지 않으면서도/화살되어 가슴에 꽂히네 --이용순의 동시 <말>2. 한번은 내가 어느 성직자에게 그만하면 착하십니다라고 표현한 일이 있다. 그는 매우 서운해 하며 앞의 그만하면이란 말은 왜 들어가야 하느냐고 따져서 내 나름대로 변명을 하느라고 혼이 났었다. 또 한 번은 내게 두 권씩 오는 책을 하나씩 받아가는 동료에게 공짜로 책을 얻어 참 좋겠다고 하니 공짜라는 단어가 자존심 상한다고 하여 그럼 더음으로 가져간다고 할까요?라고 대답한 일이 있다. 이렇듯 우리가 악의 없이 내뱉는 보통 말도 때로는 상대방의 비위를 거슬리게 한다면 아무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마구 내뱉는 극단적 부정적인 말들은 인간관계를 결정적으로 그르치는 계기가 된다.무슨 말을 하기 전에 잠시 침묵의 샘에 들어가 맑고 밝고 고운 말을 찾아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어느 지인은 음식점에서 밑반찬을 추가로 청할 적에도 '이것 갖다 주세요' 라고 명령조로 말하지 않고 이것 좀 더 갖다 주실 수 있나요? 하는게 인상적이었다. 그는 나이가 한참 아래인 사람들에게도 결코 무례하게 굴거나 반말을 하는 일이 없다. 매사에 딱 부러지는 단어,되바라진 표현,단정적인 말투를 쓰지 않고 늘 순하고 부드러운 표현을 찾아 쓰는 그의 모습에서 인품의 향기가 절로 느껴졌다. 매일 말을 하고 살아야하는 일상의 길 위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언어를 순하고 고요하고 부드럽게 갈고 닦는 노력을 해보자. 혼자 보다는 여럿이 함께 하면 더 힘이 있고 영향력 있을 것이다. 특별히 올 한해는 각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남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가만 가만 이야기 하는 연습, 누군가와 주고 받는 대화에서는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하고 순한 단어를 더 많이 찾아서 연습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누가 고운말 하면 귀담아 듣고 수첩에 적어두기, 안 좋은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바꾸어 말 할 수 있을까 숙고해 보기, 국어사전을 자주 들추어 보며 우리말 공부하기, 책에서 발견한 덕담이나 좋은구절이 있으면 외워두었다가 나도 한 번 인용해 보기. 이런 노력은 우리가 언어학교의 좋은 실습생이 되도록 실제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역겨운 냄새가 아닌/향기로운 말로/향기로운 여운을 남기게 하소서우리의 모든 말들이/이웃의 가슴에 꽂히는/기쁨의 꽃이 되고/평화의 노래가 되어세상이 조금씩 더 밝아지게 하소서/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리 없는 험담과 헛된 소문을/실어나르지 않는 깨끗한 마음으로/깨끗한 말을 하게 하소서늘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사랑의 마음으로/사랑의 말을 하게 하시고남의 나쁜 점 보다는/좋은 점을 먼저 보는/긍정적인 마음으로/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소서--자작시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이해인(수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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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2.16 23:02

[금요칼럼] UCC문화와 대선 - 임동욱

컴퓨터 자판기 왼쪽 상단에 배열되어 있는 글자들인 QWERTY에서 유래한 쿼티(QWERTY) 경제학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람들의 의사결정이나 행동이 과거의 진행방향에 의존하게 된다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을 핵심으로 하는 이론이다. 1868년 크리스토퍼 숄스가 창안한 배열방식인 QWERTY 배열이 영문타자기 자판의 표준이 된 것은 단지 그것이 처음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타이프 바가 원형으로 배열되어 있어 자주 엉켰기 때문에 사람들이 타이핑을 빠르게 하지 못하도록 이처럼 불편하면서도 특이한 자판배열을 개발해낸 것이다. 컴퓨터 시대에 들어와서 인지공학자들이 사용성 편이를 위해 드보락(DVORAK) 자판기 등을 개발했으나, 아무리 좋은 대안이 나와도 이미 너무나 익숙해진 QWERTY 자판기 배열은 바뀌지 않고 있다. 영국의 기차바퀴 간격이 탄광의 수레바퀴 간격과 같다든가, 영연방 국가들의 차량 좌측통행 관습 등도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오늘을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쿼티 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들이다. 개인이나 사회의 오늘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은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설파한 E. H. Carr의 명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과거의 잣대나 관성 등 쿼티 경제학이 강조하는 사실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것들을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과학기술사에서도 몇 차례의 혁명이 있었다. 제임스 와트로 대표되는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센 존재가 되었다. 밤을 낮으로 바꾼 전기의 발명으로 인간은 하루 24시간 내내 활동할 수 있게 되었고, 화학의 발달은 물질적 풍요를 가능케 함으로써 절대 빈곤을 없애는 데 기여하였다. 과학기술 혁명사에서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혁명은 IT를 토대로 한 C&C(computer and communication)의 혁명으로 인터넷은 이의 상징이다.인터넷의 발달에 따라 사람들의 의사소통은 자연스럽게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얼굴과 얼굴이 만나고 서신에 의존하는 오프 라인상의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대신에 전화라는 음성과 음성 및 D와 ID를 통한 온라인상의 의사소통이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에 따라 재래식 편지 한 통을 쓰기는 쉽지 않지만 몇 시간씩 채팅을 하고 인터넷을 헤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특징으로는 우선 기술진보 진보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10년 전만 해도 E-Mail로 파일을 첨부해서 보내고 채팅만 해도 최신이더니 메신저를 통해 얼굴을 보면서 전화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홈페이지만 구축해도 정보화의 기수라며 뽐낼 수 있던 것이 엊그제인데 블로그를 지나 최근에는 사용자 제작 콘텐츠인 UCC가 각광을 받고 있다. 아울러 본능적, 즉시적, 참여적, 충동적인 행위유발환경을 지니고 있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실명세계와 가상세계가 공존하고 일인다역의 다중 인간형의 출현이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전통적 커뮤니케이션의 준거로는 이해하기 힘든 세상이 열리고 있으며,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과거의 전통적 커뮤니케이션 방식과는 차별화되고 단절된 속성을 시간이 흐를수록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속성들이 일반인들에게 친숙해지면서 블로그와 UCC의 영향력 역시 강해지고 있으며 금년 말 대통령 선거를 좌우할 변수로 UCC와 포털 사이트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가까이는 금년 초 어느 국회의원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세배부터 지난 2006년 월드컵 때의 오심논란, 일본과의 독도문제 등 중요 국가 사회적 관심사에 대해 관련 홈페이지를 무차별로 공격하여 서버를 다운시킨 우리 네티즌의 가공할 파괴력을 생각할 때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삶을 편리하고 재미있게 해주는 블로그나 UCC 등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대하면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나 정신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살인, 강도, 도둑 등 오프라인의 중요 범죄는 온라인에서도 중대 범죄이고 자유, 평등, 민주, 사랑 등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온라인에서도 여전히 귀중한 가치들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단절이 시대가 요구하는 준거가 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전부터 2000년 사이에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기본적으로 제시되었다. 흔히 말하는 인류의 4대 성인을 통해서 그 해답이 제시되었고 칼 야스퍼스는 이를 인류정신의 중심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내용이나 활동 역시 인류정신의 중심축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지난 1일 선관위가 포털 사이트에 대선후보의 UCC 삭제요청을 한 것이 바른 것인가 역시 여기서부터 판단해야 한다./임동욱(충주대 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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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2.09 23:02

[금요칼럼] '지금 것'이 소중하다 - 고원정

정치적인 오해가 없길 바라지만 나는 '복원'된 청계천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수도권 신도시에 살며 서울을 무시로 들락거리면서도 말이다.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접하게 되는 청계천의 새로운 풍경이 내게는 먼 이국처럼 낯설기만 하다. 미관상 좋아진 것은 틀림없겠으나 어쩐지 정이 가지 않는다. 잘 알고 지내던 여자가 어느날 갑자기 성형 미인이 되어 나타났을 때의 기분이 이럴까. 달라진 청계천을 찾아가 걷노라면 70년대의 그 복잡하고 지저분하던 옛 청계천이 그리워질 것만 같다. 수구레 노점상이며 박보장기 야바위꾼들이며 포르노물 입간판들까지도 보고 싶어 콧날이 시큰해질 것만 같다. 값싸고 퇴행적인 정서라고 비웃는다 해도 어쩔 수가 없다. 내 청춘의 기억들은 그런 풍경들 속에 녹아 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청계천 '복원'이란 표현은 맞지 않는다. 청계천은 지금의 모습과 같았던 적이 결코 없으니까 '정비'나 '정화'라고 해야지 '복원'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한사코 '복원'했노라고 우기는 그 청계천은 더이상 서민들의 삶의 무대가 아니다. 거대한 조형물이요 일종의 테마파크일 뿐이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도 요즘 '공사중'이다. 원래의 위치로 옮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차제에 현판도 바꿔야 한다며 논란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버스로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또 혼자 고개를 갸웃하곤 한다. 거창하게 제까지 올리면서 내세운 명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과연 막대한 예산을 써가면서 강행해야만 하는 일일까. 경복궁 창건 당시 문이 있던 자리에 표석이라도 하나 세워 후세인들이 바로 알도록 하면 되는 일이 아닐까. 문 하나를 옮겨짓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뿐 아니라, 그로 인해 도로의 흐름이 달라지고 주변의 도시계획도 바뀔 수밖에 없다. 옛것을 되찾자는 마음을 누가 모르랴. 하지만 그 '옛것'들이 '지금 여기'의 삶을 끊임없이 간섭하는 현상도 바람직하지는 않다.모든 것을 원래의 자리에 원래의 모습대로 돌려놓자고 들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가능한 일도 아니려니와 꼭 옳은 일도 아니다. 지난주에는 남쪽으로 여행을 떠난 김에 호남지방의 유명한 한 사찰에 들러보았다. 매표소를 지나 10분 남짓 걸어가는 진입로 오른족을 펜스로 가려놓고 공사가 한창이었다. 자랑스럽게 써놓은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생태숲 조성공사'였다. '생태숲'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사전적으로 '생태'란 '생물이 살아가는 모양'이며 '생태계'란 '생물과 그 생물을 둘러싼 환경'을 말한다. 우리는 그 '생태'와 '생태계'마저도 공사로 '조성'해버린다. 공사부지가 되어버린 그 자리에는 조촐한 과수원도 있고 실개천도 있어서 찾을 때마다 한갓진 오솔길의 정취를 느끼곤 했었다. 그것은 그것대로 하나의 '생태계'다. 그 '생태계'를 깔아뭉개고 새로운 '생태계'를 크고 모양 좋게, 심하게 말하자면 돈이 될 수 있게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멀리 갈 것도 없다. 내가 사는 신도시에는 해발 200m쯤 되는 작은 산이 하나 있어서 가끔 산책을 나가곤 하는데 요즘 그 산을 둘러싸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만들고 있다. 산책로의 출발점으로 삼던 야산자락이 뭉텅뭉텅 잘려나가는 모양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애써 이해를 하려고 했다. 어쩌겠는가. 서민들이 들어가 살 싼 집을 많이 짓겠다는 데야. 그런데 야산을 깎아낸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아파트가 아니라 단지에 딸린 공원이었다. 잔디를 깔고 나무와 바위를 가져다놓고 정자를 올려서 어디서나 흔히 보는 녹지공간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나는 알지 못한다. 자연 그대로인 야산보다 돈을 들인 인공녹지가 왜, 얼마나 좋은지. 세월이 흐른 뒤 또 누군가는 옛 야산을 복원해야 한다고 나설 지도 모른다.한편에서는 '옛것'을 되찾아야 한다며 때려부수고 다른 한편에서는 '새것'을 만들어야 한다며 뭉개버리고. 우리의 '지금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심하게는 부당하기까지 하다는 말인가. 어쩌면 우리는 지금 범국민적으로 또다른 '새마을운동'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지 말라. '지금 것'들도 예전에는 '새것'이었으며 언젠가는 '옛것'이 된다.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우리에게는 '지금 것'이 가장 소중하다. '지금'이 우리의 시대고 우리의 '생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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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2.02 23:02

[금요칼럼] 과학 수학교육 강화해야 - 김승환

최근 대한민국을 세계 10위권의 경제국가로 끌어 올린 성장엔진이 꺼지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기업투자나 수출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꿈나무들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이다.새해 벽두에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 과학기술계의 6개 단체가 이례적으로 함께 모여 과학교육의 위기를 한 목소리로 외치고 나섰다. 교육인적자원부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의뢰해 추진 중인 초중등학교의 교육과정 개편작업이 오늘 2월 최종적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 8차 교육과정의 개편 방향이 현재 위기에 봉착한 과학교육의 기반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005년부터 시행한 7차 교육과정에서도 학생들의 자율과 선택권을 강조하다 보니 과학교육이 크게 부실해졌다. 지금부터 20년 전 고등학교의 이수 과학교과는 이과생이 32단위, 문과생은 16단위였으나 지금은 각각 6단위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그 교육내용도 대폭 축소되었다. 고 1의 경우 진정한 통합과학의 목표 달성을 위한 충분한 시수가 확보되지 못했으며, 다양한 과목을 가르칠 전문성을 갖춘 교사 양성에도 실패했다. 그 결과 이공계 진학생의 경우에도 과학의 핵심인 물리화학의 심화과정을 선택한 학생이 각각 7퍼센트와 13퍼센트에 불과해서 대학에서의 정상적인 전공교육이 불가능해졌다. 피?수학과목의 분리와 선택화로 학생들의 수학실력이 크게 떨어져 서울의 일류 공과대학 진학생이 적분기호를 처음 보았다는 경우도 생겨났다. 대학이 이공계 진학생에게 고교 수준의 수학과 과학을 다시 가르치고 있어 대학교육의 효율성 감소와 함께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현실은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미래 과학자의 양성은 고사하고 일반 시민도 최소한의 '과학적 소양'으로 무장시키지 못하고 있다. '과학이란 새로운 생각을 시험하는 과정'으로 어린이들에게 과학교육은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 함양의 산실이다. 그러나 이런 아이들이 현재 잘못된 과학교육 시스템의 틀에 갇혀 그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교육인적자원부가 제시하는 개편안은 오로지 학생의 선택에만 의존함으로써 공교육의 목표가 실종되고 불필요한 과목간 경쟁만 부추기고 있다. 피?'수학''과학''기술가정'을 함께 묶은 불합리한 '과목군' 설정으로 교육과정의 극심한 왜곡이 우려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학과 과학의 핵심과목을 '필수선택영역'으로 설정하여 합리적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자본과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성공한 것은 우수한 노동력과 높은 기술력 때문이었다.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을 필요로 하는 21세기 고도의 지식기반 사회에서 우리나라가 국민총생산 3만불의 벽을 넘어 4만불에 이르는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과감한 승부수를 과학교육에 던져야 한다. 과학교육은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의 핵심 과제이다. 현대 과학은 단지 과학기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든 민주 시민이 '과학적 소양'으로 가져야 하는 '모두를 위한 과학'이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세계 과학기술의 판도는 기존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 중심에서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권으로 이동하며 치열한 글로벌 경쟁의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국가적 관점에서 과학교육의 중장기적 방향을 그려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미국의 경우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부시 대통령의 지시로 매년 1만 명의 수학과학 교사를 양성하고 미국과학재단 예산의 10%를 과학교육에 투자하는 등 수학과학교육의 강화를 포함한 국가적 과제를 미국과학원에서 제시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21세기 들어 '과학교육흥국'을 전략방침으로 두고 과학교육에 엄청난 자원을 투자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70년대부터 학생들의 선택권을 강조한 '유토리' 교육의 결과 드러난 학력저하를 절감하고, 국어 수학과학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마련하려는 '교육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대선의 해이다. 그럴수록 뉴스의 이면에서 미래의 과학교육 강화를 위해 외롭게 투쟁하고 있는 과학자와 과학기술단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우수한 인적자원의 육성을 통해 20년 후 미래 성장동력의 신형 엔진을 새로 장착하기 위해서 반드시 아시아와 세계를 선도하는 최고 수준의 과학교육을 위한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어 내어야 한다. 이것이 향후 세계와의 무한 경쟁을 치러나갈 우리의 차세대 과학기술자와 미래 과학기술중심사회의 민주시민들을 위한 최소한의 선물이다./김승환(포스텍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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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1.26 23:02

[금요칼럼] 이웃에게 길이 된다는 것 - 이해인

며칠 전 나는 우리 수녀원에 손님으로 오신 어느 신부님과 함께 광안리 바닷가에 나갔다. 마침 썰물 때라 더욱 넓어진 모래사장에 사람들이 저마다 새해의 복을 비는 글들을 적어 놓은게 눈에 띠었다. 누가 시작을 했는지 모르지만 모래 위의 낙서는 아주 길게 이어져 우리를 미소짓게 했다. 하트 모양의 그림을 그려놓고 사랑해,영원히! 행복하자. 우리!하는 연인들의 표현도 아름답고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어놓은 인사말도 새삼 정겹게 여겨졌다. 아이들과 함께 산책 나온 부부, 솜사탕을 사 먹으며 담소하는 젊은이들,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까지 다들 평화로워 보였다. 낯선 사람들끼리도 자연스럽게 복을 빌어주며 덕담을 나누는 또 한 번의 새해, 우리 모두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해서 행복한 사랑의 길이 되면 좋겠다. 새롭게 주어지는 하루라는 길 위에서 무관심을 관심으로 바꾸어가며 조금씩 사랑을 넓혀가는 길이 되면 좋겠다. 이렇게 살려면 매 순간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 아니면 언제?하는 마음으로 깨어 사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내가 잘 아는 혁이란 청년이 이웃에게 실천한 애덕의 배려가 따뜻한 감동을 준다. 며칠 전 그가 동대구에서 부산으로 오는 오후 3시30분 무궁화호 열차를 탔는데 바로 옆자리에 어린 두 딸과 동행하는 일본인 남자가 자꾸만 무어라고 하는데, 청년은 일본어를 모르고 영어로도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하던 터에 그는 일어를 전공한 친구에게 일부러 이동전화를 걸어 대화를 하게 했단다. 그랬더니 그 일본인은 5시30분에 국제여객터미날에서 시모노세끼로 가는 배를 타야하는데 열차가 연착을 하는 바람에 배를 놓칠까봐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역에 내려 택시를 타도 늦을 것만 같아 청년은 부산 지리를 잘 아는 지인에게 긴급문자를 보내 마중을 나오게 했고, 일본인 일행을 5시10분까지 터미널에 데려다 주어 무사히 일본으로 배를 탈 수 있었다 한다. 혹시라도 나쁜 사람으로 오인받을까 싶어 학생증까지 보여 안심을 시키면서 목적지까지 가니 그 일본인은 미안한지 자꾸만 돈을 주려고 하기에 괜찮다고 했고 두 딸과 함께 배에 오르며 머리를 조아려 고맙다는 인사를 반복 하더라고 했다. 내가 고맙다고,잘했다고 이메일을 보냈더니 그 청년은 이렇게 답을 해왔다. "조금 부끄럽기도 하구 그래도 수녀님께 칭찬을 들으니 기분은 좋네요. 사실 별거 아니긴 한데. 부산역에 기꺼이 마중 나와 주고, 통역을 도와 준 친구 덕분에 좋은 일 하고 일본분도 한국에 대해 마지막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가셨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더라구요."단지 옆자리에 앉았다는 인연으로 끝까지 자기 일처럼 적극적인 도움을 준 한 한국인 청년의 행동이 그 일본인은 얼마나 진심으로 고마웠을까. 진정한 의미에서의 외교를 했다는 생각도 들고 그 장면 장면을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우리가 이웃에게 길이 된다는 것, 복을 짓는 일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 할 때 귀찮아하며 피하거나 모르는 척하지 않는 관심, 겉도는 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정성, 선한 일을 하고도 보답을 바라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뿐이라고 생각하는 겸손이야말로 우리가 이웃에게 무상으로 빛을 주는 축복이 되고 사랑의 길이 되는 행동일 것이다. 욕심과 이기심을 아주 조금만 줄여가도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평범한 일들과 시간 속에 숨어있는 행복을 잘 꺼내고 펼쳐서 길이 되게 하자. 이 길로 자주 이웃을 초대하자. 지금껏 그랬듯이 앞으로 마주치게 될 크고 작은 일들이 잘만 이용하면 모두 다 나에게 필요한 길이 될 것임을 믿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복을 가져오는 사랑의 작은 길 이 되리라 다짐하면서 시 한 편 읊어 본다! . 오늘 하루/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없어서는 아니 될/하나의 길이 된다 내게 잠시/ 환한 불 밝혀주는/사랑의 말들도/다른 이를 통해/내 안에 들어 와 고드름으로 얼어붙는 슬픔도/일을 하다 겪게 되는 사소한 갈등과 고민/설명할 수 없는 오해도살아갈수록/ 뭉게 뭉게 피어오르는 나 자신에 대한 무력함도/ 내가 되기 위해꼭 필요한 것이라고/오늘도 몇 번이고/고개 끄덕이면서/빛을 그리워하는 나어두울수록 눈물 날수록/나는 더 걸음을 빨리 한다 - 이해인의 시 길 위에서이해인 수녀 인물정보 더보기출생 : 1945년 6월 7일 (강원도 양구) 소속 : 성베네딕도수녀원 문서선교실 수녀 학력 : 서강대학교대학원 종교학 석사 수상 : 1998년 부산여성문학상 경력 : 2000년 3월 부산가톨릭대 지산교정 인성교양부 겸임교수1992년 1월 부산성베네딕도수녀회 수녀원 문서선교실 수녀 /이해인(수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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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1.19 23:02

[금요칼럼] 개헌논의 관계없이 대통령 잘 뽑아야 - 임동욱

2007년 1월 9일 오전 11시 30분 우리는 대통령발 초대형 정치뉴스를 들어야 했다. 대통령 임기를 4년 연임으로 개헌하자는 대통령의 대국민 특별담화 때문에 나라는 개헌을 둘러싸고 무수한 논의가 오고가는 정치의 계절을 맞이할 것이고 그간의 정치적 쟁점들은 단번에 수면 아래로 잠들지도 모르겠다. 헌정사에 유례가 없는 탄핵을 비롯해서 정치에 관한 한 지금의 대통령은 메가톤급 뉴스제조원이다. 한 해를 시작하는 달에 대통령발 초대형정치 뉴스를 접하고 나니 금년 말 우리는 다시 새 대통령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중요하게만 느껴진다. 앞으로 개헌논의가 어떻게 진전되든 새 대통령을 금년 말에 잘 선택하고 싶은 이유는 오늘 나라가 처한 현실이 우리가 소망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러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것은 대통령 임기의 단임 혹은 연임 문제를 떠나서 금년 대선이 지니는 몇 가지 본질적 의미 때문이다. 우선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난 2002년에 우리는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일들을 경험했다. 그전까지는 월드컵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했던 나라가 느닷없이 세계 4강에 들었고 일부 체제 저항세력의 전유물이었던 반미구호가 촛불집회를 통해 커다란 대중잔치가 되더니,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다.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할 것이나 이는 시대가 요구하고 국민이 선택한 것이다.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987년 민주화 이후 축적되었던 국민의 에너지가 열린 광장으로 발산되어 시대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개발연대 동안 내내 침잠해오며 안에서만 꿈틀대던 우리만의 고유한 역동의 정서가 2002년에 국민 전체 차원으로 폭발한 것이 현 정부를 탄생시킨 힘이었다. 어느 외국인 음악가가 우리의 음악을 동면하는 곰의 조용함과 성난 호랑이의 사나움을 함께 지니고 있다고 평했던 것처럼(이어령, 디지로그 선언), 우리에겐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정서만이 아니라 붉은 악마로 대표되듯이 신명이 나면 하나로 뭉치고 몸을 던지는 역동의 정서도 있다. 금년 말 대통령 선거는 2002년과 같은 감성이 지배하는 선택을 넘어서 동면하는 곰의 조용함과 성난 호랑이의 사나움이 절묘하게 어울려진 아름다운 선택이 될 것을 신년에 조용히 소망해본다. 다음으로 공자의 주유천하 13년을 동참하지 못한 것을 죄스러워해 공자가 죽은 후 6년 동안 수묘하고 사재를 털어 공자교단을 발전시킨 제자가 자공이다.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는 이런 자공에게 공자는 足食足兵民信이 정치의 요체라고 말한다. 이미 2500년 전에 경제와 군사, 그리고 국민의 신뢰가 정치의 전부라고 표현한 이 말은 지금도 지당하기만 하다. 단적인 예로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핵, 교육, 고용, 주거, 노후라는 5대 불안 역시 이 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자는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버리라면 가장 먼저 군사를 버려야 하며(去兵), 두 번째로 경제를 버려야(去食) 한다고 했다(신영복, 강의). 국민의 믿음을 얻지 못하면 나라가 제대로 서지 못한다는 공자의 말을 통해 세 가지 정치의 요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의 신뢰(民信)이고, 둘째가 경제(足食)이며 그 다음이 국방(足兵)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5년마다 되풀이 되는 대통령 선거결과는 바로 경제와 안보 등 산적한 국가 의제를 새 대통령은 제대로 풀어낼 것이라는 국민의 믿음을 구체적으로 발현한 것이고, 대통령 임기 중 수시로 파악하는 대통령 지지도는 이러한 우리의 믿음을 그때그때 과학적으로 계량화시켜 객관화한 것이다. 국민의 믿음을 기초로 나라 역량을 결집시켜 속된 말로 등 따습고 배부르며 밤에 편안하게 잠잘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대통령을 선택하리라는 소망을 신년에 해본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현재 전 세계에는 세계지도정보(237개국), 세계은행 통계(229개국), 한국의 통계청 통계(224개국), 국정원 자료(231개국) 등 조사기관에 따라 그 숫자는 다르지만 정말 많은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국가를 이해하고 정의하는 범주에 따라 구체적인 숫자는 상이하나 현재 220개가 넘는 국가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 많은 나라 중 대한민국은 국가 건설 후 아주 빠른 기간 내에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와 정보화까지 성공한 세계사에 드문 나라이다. 내년은 이러한 대한민국이 건국 60년을 맞는 해이니 금년에는 이를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건국 60년을 준비하는 해에 신생 독립국으로 세계 최빈국의 하나에서 출발하여 빛나는 성공을 거두며 발전한 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은 제3의 도약을 창출하려면 무엇보다 지도자를 잘 선택해야 한다. 금년 말 대통령 선거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하는 희망의 선택이 될 것을 신년에 간절히 소망해본다./임동욱(충주대 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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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1.12 23:02

[금요칼럼] 신년사 아닌 송년사 써 보라 - 고원정

무엇이나 시작한다는 것은 아름답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새 달력, 새 다이어리, 새 스케줄표를 대하면 마음이 설레인다.새해의 계획을 짜는 일이 이제는 낯간지러울 나이도 되었건만 그래도 변함없이 푸른 펜을 들어 조목조목 정리해 놓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런 심사는 우리들 평범한 장삼이사들만의 것은 아니어서 행새깨나 한다는 이들의 신년사가 이맘때면 각종 언론 매체를 화려하게 장식하곤 한다. 그들의 얘기대로라면 우리는 올 한 해 단군 이래의 태평성세를 누리게 될 모양이다. 조금은 허황된 꿈이라 해도 우리는 그저 덕담이려니 하고 웃어넘기곤 한다. 어차피 100% 달성되는 계획이란 없는 법이다. 그저 70% 정도 해낼 수 있으면 이상적이지 않은가 생각해왔는데 최근 어느 사람의 글을 보니 30%만 되어도 만족스런 삶이란 구절이 있었다.계획과 실천,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란 이 정도로 멀고도 멀다. 적어놓고 나면 어색하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쓴웃음이 나는 이유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그러나 그렇게 웃어넘길 수 없는 사람들의 말이 있다. 이른바 공인들이다. 특히 정치인들이다. 그들의 계획을 우리는 꿈이나 희망사항이라 부르지 않고 '공약'이라 부른다. 국민 모두와의 약속인 이 공약에는 70%나 30%가 있을 수 없다. 무조건 100% 달성해야만 하는 계획이다. '아니면 말고'가 통용되지 않는다.부동산 거품을 빼겠다고 했으면 빼야 하고, 조령산맥을 뚫고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해서 대운하를 만들겠다고 했으면 뚫어야만 한다. 철도 페리를 운행하겠다고 했으면 그 첫 삽이라도 떠야만 한다.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들의 공약이 똑같지 않다는 데 있다. 누군가는 경쟁에서 탈락해야 하고 그의 약속은 없었던 일이 되고 만다. 대운하를 뚫자면 철도 페리의 공약은 허언이 되어버린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두 장본인이 모두 떨어지면 두 가지 공약 모두 탁상공론에 그치고 만다. 선택을 받고서도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 또한 비일비재하다. 국민과의 약속인 공약이 금주나 금연같은 개인의 희망사항만큼도 신뢰받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웃어넘길 수 없는 것이 그 공약의 불발이 두고두고 우리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의 학습 효과로 우리는 그런 공약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의 해인 올해 또한 수많은 장밋빛 약속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들에게 나는 제의하고 싶다. 신년사가 아닌 송년사를 써보라고. 경선이든 대선이든 당선 소감이 아닌 낙선 소감을 써보라고.어떤 경쟁이든 승자와 패자는 가려지게 마련이다. 특히 선거는 단 한 사람만이 선택받는 무자비한 게임이다. 반드시 승자가 되어 살아남겠다는 결의는 현명하지 못한 생각일 수도 있고 지나친 독선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패배와 실패를 가정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경선에서 이겨 대통령후보가 된다면 이러이러하게 대선에 임하겠다고만 말하지 말고, 졌을 경우에는 이러저러한 길을 가겠다고 밝히는 것이다. 대선에서 이겼을 경우 어떠한 정책을 실행하겠다고만 하지 말고, 낙선을 해도 국민을 위해 무슨 일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올 한 해가 다 가고 나면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있을까를 냉정하고 겸허하게 가정해서 그 소회를 정리해보는 것이다. 결코 패배주의의 나약한 정서가 아니다. 미리 자신의 유서를 적어보는 사람도 있다지 않는가? 진정한 강자만이 실패를 가정해볼 수 있는 법이다. 신년사가 아닌 송년사를 써보고, 당선 소감이 아닌 낙선 소감을 구상해보는 일은 결국 자신의 인생에 더는 물러날 수 없다는 마지노선을 치는 작업이다. 선거에서 떨어져도, 올 한 해의 야심찬 계획이 빗나가도 최소한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 어떤 악인이라도 죽음에 임박해서 하는 말은 진정성을 가진다고 했다. 패배와 실패는 작은 죽음인 셈이다. 그 패배와 실패를 미리 가정해본다면 거침없이 내뱉는 화려한 약속 하나하나가 얼마나 구체성을 갖고 있는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으리라. 신년사가 아닌 송년사를 써보라.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를 생각해보라. /고원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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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1.0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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