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06 10:33 (Thu)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조상진 칼럼

김관영과 우범기의 반년

김관영 전북지사와 우범기 전주시장이 취임한지 7개월이 지났다. 임기 4년의 8분의 1 이상이 지난 셈이다. 짧게 보일지 몰라도 이 기간은 전북 도정과 전주 시정의 방향을 제시하고 기틀을 다지는 황금 같은 시기였다. 이들은 이 기간 동안 거침없이 질주했다. 선거공약을 새로 다듬고 첫 인사를 단행했다. 외부로부터 큰 충격이 없는 한 이들의 밑그림은 3년 반 동안 계속될 것이다. 이들은 두 가지 공통점을 지녔다. 하나는 관운이 좋다는 점이다. 김 지사나 우 시장 모두 자리를 줍다시피 했다. 김 지사는 송하진 전 지사, 우 시장은 임정엽 전 군수가 민주당 경선에서 컷오프 되는 등 행운이 따랐다. 짧은 기간에 어렵지 않게 오늘의 자리를 차지했다. 밑져야 본전이고 잘하면 돋보이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 또 하나는 두 사람 모두 경제와 성장을 중요시하는 개발론자라는 점이다. 전북은 계속된 인구 격감과 경제적 낙후로 상실감이 큰 지역이다. 따라서 변화에 대한 욕구가 분출하면서 큰 표 차로 승리했다. 이러한 시대정신과 변화의 열망을 담아 기대감 속에 출범했다. 우선 김 지사부터 보자. 53세의 젊은 나이와 82.11%라는 압도적 지지에 걸맞게 순항하고 있다. 김 지사는 ‘오직 경제, 오직 민생’을 앞세운다. 또 여야 협치를 통해 ‘전북특별자치도법’을 통과시켰다. 지금은 여기에 담을 규제 철폐와 특례 발굴 등에 힘을 쏟고 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재가동, 기업 유치와 정부 공모사업, 새만금 개발 등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제부터 김 지사는 그의 공약인 5대 대기업 계열사 유치와 탄소·수소 등 에너지산업, 농생명산업, 문화관광산업 등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 구호가 아닌 도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윤석열 정부 들어 도지사에게 지역대학의 학과조정 등 대학지원 권한까지 주고 있어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반면 김 지사는 인수위 시절부터 매끄럽지 못한 인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정무 및 홍보라인에서 잡음이 나왔다. 민주당 현역 국회의원들이 도의원들을 앞세워 견제하는 측면도 없지 않으나 아직 그의 입지가 탄탄하지 못함을 엿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는 ‘고시 3관왕’이라는 타이틀이다. 약(藥)보다는 독(毒)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대권 도전의 꿈은 스스로나 주변에서 거론하기 보다는 성공적인 지사로 우뚝 설 때 드러나는 게 자연스럽다. 대권에 가까이 가본 고시 3관왕이 있었던가를 반추해 보라. 다음으로 우 시장을 보자. 우 시장 역시 전주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강한 경제, 전라도의 수도로’를 내세우며 공격적인 투자 유치와 탄소·수소·드론 등 미래 먹거리,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 등에 앞장서고 있다.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던 대한방직 터와 종합경기장 개발에 첫걸음을 뗀 것은 그가 개발론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주역 명품환승센터 착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 시장은 설화(舌禍)가 잦은 편이다. 또한 그림을 너무 크게 그리는 경향이 있다. 취임 전부터 전주시의원에게 폭언을 하고 주사(酒邪)를 부려 구설수에 올랐다. 천안-전주간 KTX 직선노선, 1조원 규모의 ‘왕의 궁원 프로젝트’ 등은 시원한 사이다 정책 같으나 실행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어쨌든 두 사람의 행보는 전북의 미래를 위해 더 빨라져야 한다. 이들이 선두에 서서 성장을 멈춘 전주와 전북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면 좋겠다. 전북 성공시대의 쌍끌이선이기를 기대한다. /조상진 논설고문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3.01.31 15:09

안호영 의원은 ‘제2의 최규성’이 되지 말라

세밑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세밑에는 한 해의 묵은 숙제를 털어버리는 게 우리의 오랜 풍습이다. 전북의 묵은 숙제는 무엇일까. 새만금? 전북특별자치도? 종합경기장 및 대한방직터 개발?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완전(완주전주) 통합도 이들 못지않다. 지체된 전북발전의 기폭제이기 때문이다. 완전통합은 1997년부터 시작됐으니 벌서 25년째다. 3차례나 통합의 강을 건너지 못했다. 통합이 됐다면 전북의 발전상은 꽤 달라졌을 것이다. 통합의 당위성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청주(청주·청원)나 3여(여수시·여천시·여천군), 마창진(마산·창원·진해) 통합 사례도 이미 많이 거론되었다. 이제는 해법을 찾을 때다. 완전통합의 키는 완주군민이 쥐고 있다. 세 번 모두 완주군민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그동안 완주군민이 왜 반대했는지를 살펴보자. 여기에는 3가지 반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공식적인 반대 이유다. 가장 두드러진 게 3대 폭탄이다. 세금 증가, 혐오시설, 부채폭탄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가짜뉴스다. 오히려 완주군 쓰레기는 전주권광역처리시설을 통해 소각 및 매립 처리되고 있고 세금 또한 통합된다고 더 내지 않는다. 농촌지역에 대한 소외와 공무원이나 지방의원이 줄어든다는 것도 꼽는다. 통합시가 도시행정 위주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13년의 경우 1000억원의 농업발전기금을 조성키로 한 바 있다. 이번에는 더 많은 기금이 조성돼 완주군 농가에 지원될 것이다. 둘째는 비공식적으로 제기하는 우려다. 완주교육청이 없어지므로 완주교육의 질이 떨어진다, 통합이 되면 경로당 지원 등 복지혜택이 줄어든다, 통합으로 자치능력이 무너진다 등이 그렇다. 물론 통합되면 완주군은 사라지고 통합시가 된다. 그러나 교육의 질은 오히려 높아지고 복지혜택도 달라지지 않는다. 땅이나 아파트 값부터 오를 것이다. 셋째는 감추어진 반대 이유다.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2013년 통합 무산 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했다. 국회의원 지역구가 바뀐다거나 군수 입후보자의 정치적 기회 박탈, 의장단 또는 상임위원장을 기대하는 군의원들의 조직적 반대가 큰 역할을 했다. 사회단체 지도자들의 불안도 한몫 거들었다. 이중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당시 최규성 국회의원의 반대였다. 군수와 군의원 공천권을 무기로 군의원들이 반대에 앞장서도록 몰아세웠다. 막판에 그것이 판세를 바꿔놓았다. 해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안호영 의원(더불어민주당 완주·무주·진안·장수)의 역할이 중요하다. 안 의원은 지난 도지사 선거에서 통합 반대를 천명했다. 그러나 전북을 위해 좀더 큰 정치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제2의 최규성이 될 것인가를 결단해야 한다. 물론 자신이 갈고 닦은 지역구가 바뀌는 것을 달가워할 정치인은 없다. 그렇다고 최규성의 말로를 닮아갈 것인가? 해법의 실마리는 2023년 말께로 예정된 선거구획정에 있다.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 상하한선은 13만9000~27만8000명이었다. 인구하한선에 미달되는 전북지역 선거구는 10월말 현재 남원·임실·순창지역구 13만1370명, 김제·부안 13만1422명이다. 또 익산의 경우 27만4317명으로 2개 선거구를 유지하기 어렵다. 반면 전주와 완주를 통합하면 74만4406명으로 현 3개에서 4개 선거구가 가능하다. 전북의 선거구는 전국 253개 가운데 10개인데 자칫 8~9개로 줄어들 수 있다.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전북의 선거구도 줄지 않고 안호영 의원도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지혜를 모았으면 싶다. /조상진 논설고문

  • 오피니언
  • 기고
  • 2022.12.13 14:15

후백제는 호남·영남·충청을 묶는 프로젝트다

지방선거 이후 전주에는 곳곳에 “전주 다시, 전라도의 수도로!”라는 슬로건이 눈에 띤다. 우범기 시장이 내세운 것이다. ‘전라도의 수도’라? 여기서 전라도의 수도는 전주에 전라감영이 있다는 의미일까. 아닐 것이다. 전남북과 제주를 관할하는 감영이 있다고 수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주가 한 나라의 수도였던 적이 있는가? 1100년 전 자랑스러운 나라 후백제가 바로 그거다. 전주를 천년고도(千年古都)라 하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익히 알려진 대로 후(後)백제는 견훤(진훤)왕이 서기 900~936년 전주에 세운 나라다. 당시 국호는 ‘백제’였다. 후백제는 역사가들이 전(前)백제와 구분하기 위해 편의상 붙인 것이다. 굳이 얘기하자면 완산백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주의 위상을 재평가하기 위한 토론회가 지난 28일 전주시의회에서 열렸다. 전주시의회 양영환·채영병 의원이 주최하고 전북역사문화교육원이 주관한 이날 토론회의 제목은 ‘전주의 꿈! 후백제 도읍을 찾아서’였다. 그렇다. 전주의 꿈인 후백제의 도읍을 찾아야 한다. 전주가 언제 한반도의 중심에 서서 전국을 호령한 적이 있었던가? 후백제가 유일했다. 전주를 조선왕조의 본향이라 하지만 조선왕조 600년의 중심은 한양(서울)이었다. 대부분의 유적도 서울에 있고 전주는 이 태조의 6대조가 살았던 곳일 뿐이다. 이제 후백제는 왕도복원 등 실천단계에 들어설 때가 되었다.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후백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 작업에 돌입해야 한다. 오늘날 후백제사가 왜곡·폄하된 것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 비롯되었다. 고대사에 대한 사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삼국사기를 바이블처럼 인용하지만 적어도 후백제에 관한한 편향된 시각을 보이고 있다. 단적인 증거가 견훤왕을 왕조사가 아닌 열전(列傳)에서 다루는데다 그것도 괴수, 원흉, 원수, 악독한 자라 표현한 것이다(송화섭 교수). 철저한 승자의 논리다. 이와 관련해 한국과 일본역사에 정통한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교수 캐머론 허스트3세의 논문은 이를 엄혹하게 비판한다. 삼국사기, 고려사 등은 고려왕조 창건과정에서 왕건을 선인(善人), 견훤을 악인(惡人), 궁예를 추인(醜人)으로 설정하는 등 고의적인 조작과 선택적 편집을 했다는 것이다(이도학 교수). 학계가 나서 바로 잡을 일이다. 둘째, 후백제 왕도복원 프로젝트는 호남과 영남 충청을 아우르는 최상의 대형 프로젝트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전주가 있다. 견훤왕은 경북 상주 문경출신으로 충남 논산에 묻혀있다. 그의 활동반경은 전북 전남 경기 충청 경북 경남에 걸쳐있다. 지금 상주와 문경에서는 해마다 견훤 관련 축제가 벌어지고 있고 논산에서는 왕릉제가 열린다. 그런데 정작 왕도였던 전주는 뭔가? 현재 전주 상주 논산 등 7개 시군이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호남 영남 충청이 화합하는 광역프로젝트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 이들과 함께 역사문화권정비법과 고도 보존 및 육성법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셋째, 후백제에 관한 유물유적을 발굴하고 보존·활용해야 한다. 지금까지 후백제의 유적은 어느 정도 밝혀졌다. 이제부터는 한 단계 더 나가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게 왕궁터 발굴이다. 전주시 인봉리 일대로 비정(곽장근 교수)되는데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반드시 적법절차에 맞는 지표 및 발굴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더불어 도성, 왕릉, 사찰도 발굴해야 한다. 또한 표준어진 제작, 기념관, 조례 제정 등 갈 길이 멀다. /조상진 논설고문

  • 오피니언
  • 기고
  • 2022.11.01 10:57

완전 통합 위한 7자 협의체를 구성하라

행정통합 또는 메가시티는 지역이 살기 위해 뭉치는 생존전략이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고 잘 나갈 때는 독립해서 각자 살아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어려울 때는 합쳐서 힘을 모아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전북처럼 규모도 작고 외톨이가 된 자치단체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행정통합은 전북의 경우 3개 트랙으로 진행되고 있다. 광역의 전북새만금특별자치도, 기초의 새만금 메가시티와 완전(완주·전주) 통합문제가 그것이다. 첫째, 전북새만금특별자치도 설치는 정부가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추진하는 5극 2특을 5극 3특 체제로 하는 내용이다.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세종·대전·충청, 광주·전남, 수도권 등 5개 메가시티와 제주특별자치도, 강원특별자치도에 이어 전북새만금특별자치도를 여기에 넣는 것이다. 김관영 지사의 첫 번째 선거공약이기도 하다. 5극은 지방선거 이후 좌초 위기에 있으나 전북새만금특별자치도는 강원도가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과정에서 성공한 만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속빈 강정이 되지 않기 위해 재정특례를 넣을 수 있느냐 여부가 중요하다. 둘째, 새만금 메가시티문제다. 새로 매립된 새만금지역과 군산·김제·부안을 합쳐 메가시티를 조성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전북지역 1호 공약이다. 최근 3개 시군이 특별지자체 설치 합동추진단을 구성했으나 2010년부터 관할권 다툼으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들락거리고 있어 쉽지 않다. 아직 매립이 50% 안팎에 그치고 있어 시간은 있다. 셋째, 완주·전주 통합문제다. 이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전북발전의 동력이다. 하지만 1997년과 2009년, 2013년 등 3차례 실패한 바 있다. 모두 완주군민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러는 사이, 통합이 성사된 다른 지역의 발전상은 눈부시다. 울산·울진이 통합해 울산광역시로 승격했고, 마산·창원·진해가 창원특례시의 지위를 획득했다. 청주·청원 역시 통합에 성공해 충청권의 중심도시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전북은 어떠한가. 반드시 통합 실패 탓은 아니지만 호남에서도 변방으로 밀려났고 충청권과 광주·전남권 사이의 미운 오리새끼 신세가 되었다. 실패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리더십의 왜곡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2013년의 경우 완주·김제를 지역구로 둔 최규성 국회의원과 그의 공천권 하에 있던 지역정치인들의 반대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일정을 역산해 보면 2026년 7월 1일 통합시를 출범시켜야 하고, 2024년 4월 총선과 함께 주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앞으로 1년 6개월이 골든타임이다. 통합방식은 상향식(Bottom-up)과 하향식(Top-down)을 병행하는 게 최선이다. 민간단체가 결성된 만큼 이제 정치인이 호응해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7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고자 한다. 통합 당사자인 유희태 완주군수·우범기 전주시장과 김관영 전북지사가 나서야 한다. 또 이곳이 지역구인 안호영, 김윤덕, 김성주 의원이 참여하고 현재 비어있는 전주 완산을 몫은 내년 4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을 참여시키면 된다. 우선 6명이 모여 머리를 맞대라는 얘기다. 이것은 그들을 뽑아준 도민에 대한 의무요 책임이다. 여기에서 완주군을 중심에 놓고 군민들이 원하는 것을 추출하고 해법을 찾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완주전주가 통합돼도 인구가 75만에 그치기 때문에 특례시로 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통합시 인구 100만이 빠져나갈 경우 80만 남짓한 전북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등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전북 해체의 시간이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2.09.27 14:16

교육감 서거석과 김승환

서거석 교육감과 김승환 전 교육감은 입지전적인 인물들이다. 서거석은 국립대 총장을 두 번 지낸데 이어 교육감에 당선되었고, 김승환은 교육감을 세 번 역임하는 영예를 안았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드문 일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연배가 비슷(1954년)하고 어렸을 때 무척 가난했다는 점이다. 또 열심히 학업에 매진해 법대 교수가 되었고, 선거에 뛰어들어 성공했다는 점이다. 다른 점은 서거석이 화합을 중시하고 친화력이 있는데 반해, 김승환은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점이다. 이들 사이는 퍽 불편한 관계지만, 오랫동안 전북 교육계를 이끌었거나 이끌고 있어 이들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한다. 우선 김승환 전 교육감부터 보자. 나는 30여년 전 김승환 당시 전북대 교수와 모임을 같이 한 적이 있다. 법조인으로 구성된 모임인데 김 교수는 처음부터 꽤 인상적이었다. 회칙을 만들 때 일이다. 한 회원이 만들어온 회칙을 10여 명의 회원들에게 돌리며 읽어보고 통과시키자고 하는데 김 교수가 제동을 걸었다. 한 조문씩 읽어가며 축조심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본인이 제1조부터 읽어나갔다. 그러자 다른 회원들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한 회원이 손을 들고 “무슨 헌법 만드는 것도 아니고 친목모임인데 한 번씩 읽어보고 이의 없으면 통과시키자”고 제의했다. 다른 회원들도 모두 이 말에 동의했다. 이때 김 교수가 ‘자의식이 강하고 꽤 깐깐하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 교수는 이후 인권운동 등을 하더니 2010년 교육감 선거에 뛰어 들었다. 범진보 단일화와 전교조의 지원, 그리고 보수진영의 분열로 신승했고 내리 3선에 성공했다. 당시 김 교육감은 부패한 전임 최규호 교육감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 반작용으로 김 교육감은 “껌 한통도 받아선 안된다”며 청렴을 내세웠고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러나 김 교육감은 독선과 불통의 아이콘이었다. 교육부와 도의회, 언론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걸핏하면 법을 내세워 소송으로 몰고 갔다. 교원평가제, 학교폭력 기재거부, 상산고 재지정 평가 등 사사건건 부딪쳤다. 자신의 뜻과 맞지 않으면 모두가 적이요, 공격 대상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물론 같은 진보진영의 문재인 정부와도 각을 세웠다. 그러면서도 인사개입과 학생감사자료 제출 거부지시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각각 1000만원과 700만원의 벌금선고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예산 배정 등에서 불이익을 받아야 했다. 심지어 도내 고교생을 부도덕한 삼성전자에 취업시키지 말라고 지시하고, 코로나에 마스크를 쓰지 말라는 말도 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학생들의 현저한 학력저하 현상이다. 이제 서거석 교육감이 그 바통을 이어 받았다. 지난 12년 동안 굳어진 김승환 체계에서 한동안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거석은 대교협 회장으로 교육부와 전국 대학총장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수완을 발휘한 바 있다. 전북대 총장 때는 교수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연구 성과에 채찍질을 가해 전북대를 국립대 중 상위권에 끌어올렸다. 다만 서 교육감은 유아교육과 초중등교육에 대한 경험이 없어 현장에 대한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다. 지금 전북은 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경제력 쇠퇴 등 퇴로 없는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각급학교는 물론 자치단체 등과 협치를 통해 인재를 키우는 일이 급하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의 운명은 청년의 교육에 달려 있다”고 했다. 전북의 활로 역시 교육에 달려있고, 서 교육감이 그 선봉에 서야 할 때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2.08.16 13:16

김관영의 길, 송하진의 길

8년 전인 2014년 6월 30일, 나는 「송하진 지사가 새겨야 할 3가지」라는 칼럼을 본란에 쓴 바 있다. 당시 나는 첫째 측근을 조심하라, 둘째 사표를 품고 다녀라, 셋째 전국적인 경쟁력을 가져라는 3가지를 주문했다. 그 칼럼이 나간 날 아침에 송 지사가 전화를 걸어와 “내가 잘 할테니 지켜봐 달라”고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송 전 지사는 행운아였다. 행정 관료로 출발해 전주시장 8년과 전북지사 8년을 했으니 꿈을 이룬 셈이다. 그는 전주시장 재직시 한옥마을을 본궤도에 올려놓았고 지사 때는 탄소산업과 수소산업, 그리고 새만금SOC에 힘을 쏟았다. 또 역사문화에 대한 조예가 깊어 전라감영 복원과 가야·후백제 역사 복원에도 성과를 거두었다. 재임 중 돈이나 여자문제 등 비리가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가 장고 끝에 내린 3선 출마는 과욕이었다. 도민들은 관료 출신 김완주 지사의 8년에 이어 송 지사가 8년을 더하면서 피로감이 꽤 높았다. 그동안 “해 놓은 게 뭐냐”, “너무 나이 들었고 이제 그만해먹어야 한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를 간파하고 과감하게 직을 내려놓았어야 했다. 송 지사는 퇴임 후 전주시내에 거처를 마련하고 도민들과 더불어 살겠다고 하니 퍽 다행이다. 그의 경륜이 전북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송 전 지사의 뒤를 이어 7월 1일 취임한 김관영 지사 역시 관운이 무척 좋은 사람이다. 생각지도 않게 송 전 지사가 민주당 경선에서 컷오프(경선 배제) 되는 바람에 지사자리를 줍다시피 했다. 출마 선언한지 불과 34일 만에 본선이나 다름없는 경선에서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하지만 ‘유능한 경제도지사’를 표방한 김 지사의 앞길은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의 침체를 벗고 성장과 발전에 목말라있는 도민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야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쪼그라드는 전북을 일으켜 세울 무거운 짐이 그에게 주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 지사에게 몇 가지를 주문하고자 한다. 첫째, 유능함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김 지사는 52세의 젊음과 고시 3관왕, 여야를 넘나든 정치력 등이 큰 자산이다. 이를 활용해 우선 당장 전북의 현안인 전북·새만금특별자치도 설치와 제3금융 중심지 지정, 대기업 계열사 5개 유치 등에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 또 새만금에 디즈니랜드와 복합리조트를 유치하고 전주시와 협조를 통해 골머리를 앓던 전주종합경기장과 대한방직 개발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해야 한다. 둘째, 협치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김 지사가 속한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중앙권력을 국민의 힘에 뺏겼다.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이 엇박자다. 그런 상황에서 전북은 국가사업이나 재원조달이 힘들 수밖에 없다. 이를 협치의 정치력을 발휘해 돌파해야 한다. 셋째, 널리 인재를 구해야 한다. 김 지사는 재선의 국회 경험뿐 행정경험이 없다. 인사관리가 낯설 수 있다. 자칫 캠프출신 등 측근에 매몰될 소지도 없지 않다. 김 지사는 인수위원회와 혁신단 구성 등의 과정에서 흠결 많은 인물들과 군산출신 등 인사 편향으로 입질에 올랐다. 그만큼 인재풀이 좁고 관리가 허술하다는 방증이다. 넷째, 전국적인 경쟁력을 통해 차기 대선주자에 올랐으면 한다.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으나 멀리 보고 통 큰 정치를 했으면 한다. 중도 이미지가 강한 김 지사는 전국적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전제 조건이 있다. 전북에서 큰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도민들은 김 지사가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길을 개척할지 기대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2.07.05 14:37

장수에 보물이 있다

전북에서 가장 작은 자치단체인 장수군. 이곳은 흔히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으로 불리는 두메산골(奧地) 중 하나다. 4월말 기준 인구 2만1624명으로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경북 울릉군과 영양군에 이어 전국에서 3번째로 작은 곳이다. 당연히 인구소멸 위험지역에 속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이곳에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 1500년 동안 숨겨져 있던 보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해 12월초부터 세 차례에 걸쳐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장인 곽장근 교수의 안내로 이곳 일대를 방문했다. 올해 4월에는 중앙대 송화섭·박경하 교수, 건국대 김기덕 교수 등이 동행했다. 이들과 함께 장수 천천면 삼고리 고분군에서 시작해 장수읍 동촌리 고분군(국가사적 552호), 장계면 난평마을 마을숲과 알봉이라 불리는 고분, 계남면 침령산성(전북도 기념물 141호), 장계면 삼봉리 고분군(전북도 기념물 128호), 반파국 왕궁터로 비정되는 탑동마을 등을 둘러봤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이들 지역과 더불어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국가사적 542호)도 가봤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 역사에 500여 년간 존재했던 가야국 중 일부로, 편의상 전북가야(장수가야와 운봉가야)로 불리는 곳이다. 영역은 금산과 완주, 무진장, 남원, 임실 등 300여리에 걸쳐 있다. 종전까지 가야는 영남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곽 교수의 땀 흘린 노고 덕분에 백두대간 서쪽인 전북동부에 존재했던 독자세력이 밝혀진 것이다. 논란이 없지 않으나 반파국(장수)과 기문국(남원)이 그것이다. 2010년대 이후 발굴된 유물과 유적, 문헌 등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 중 반파국은 장수지역을 중심으로 서기 300년대 후반에서 500년대 초반까지 150년 동안 존속했던 가야 소국이다. 반파국은 당시 반도체라 할 수 있는 철을 바탕으로 운봉가야를 흡수하고 섬진강 하구 다사진(하동)까지 진출했다. 한때 백제와 왜(倭)의 군대를 격파하고 신라의 촌락을 습격해 초토화시키기도 했다(이도학 교수). 그러다 521년 백제에 복속되면서 사라졌다. 또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은 영남지역 고분과 함께 다음 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장수가야의 의미는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거대한 고분군과 제철유적, 봉화망 등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유산을 남겼다는 점이다. 특히 제철유적과 봉화는 독보적이다. 둘째, 백제와 가야, 신라의 물고 물리는 각축장이었다는 점이다. 침령산성과 합미산성에 그 자취가 남아 있고 후백제가 리모델링해 활용했다. 셋째, 우리나라 고대의 철(iron road)과 도자기(china road) 전파의 루트를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제철기술과 도자기술을 가진 일단의 주민들이 새만금을 거쳐 전북혁신도시에 정착한 후 철광석 등이 있는 장수와 남원으로 이주해 꽃을 피운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동고산성을 발굴했던 전영래 교수는 일찍이 이러한 반파국을 수수께끼의 나라라고 했다. 어쨌든 장수가야는 보물단지인 셈이다. 이 같은 가야유적이 발굴되면서 장수는 크게 변화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사과, 한우와 함께 가야유적이 새로운 역사관광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 지방선가가 코앞이다. 도지사 후보 등은 대기업 유치를 외치고 있다. 물론 기업 유치도 중요하지만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찾아보면 도내 곳곳에는 보물이 산재해 있다. 이를 찾아내 어떻게 꿰는가가 관건이다. 눈 밝은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을 뽑아야 하는 이유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2.05.10 14:13

송하진 지사의 3선에 대해

20대 대선이 끝난 지 10여일이 지났다.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격차는 0.73%, 24만7077표 차에 불과했다.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최소 득표 차이다. 전북의 경우는 이재명 후보에게 82.98%(윤석열 14.42%)를 몰아줬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64.84%를 밀어준 것보다 더한 몰표였다. 그래서인지 도민들 상당수는 이번 대선 결과에 허탈해 한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TV가 보기 싫다”며 멘붕 상태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앞으로 5년간 내 마음 속 대통령은 이재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내가 찍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특히 대통령이 누구냐 보다는 대통령직에 대해 존중하는 게 국민의 도리가 아닐까 한다. 국민 다수가 뽑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당분간 전북의 입장은 험난할 게 뻔하다. 이를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가 앞으로 5년간 전북출신 정치인들의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국회의원들은 그들대로 대응해야겠지만 가장 선두에 설 사람은 도지사다. 도지사는 전북의 소통령으로서, 모든 네트워크와 지혜를 동원해 국가사업을 유치하고 돈을 끌어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두달 남짓 남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중요하다. 뛰어난 정치력으로 낙후 전북을 강한 전북으로 올려놓아야 한다. 그러면 지금 물망에 오른 인물들을 살펴보자. 도지사 선거는 4가지 흐름이 읽힌다. 첫째는 송하진 지사의 3선 도전이다. 송 지사는 그동안 펼쳐온 전북 도정의 원만한 마무리를 내세워 장고 끝에 3선 출마를 결심했다. 다른 약체후보들에게 전북을 맡길 수 없다는 고민도 작용한듯하다. 송 지사는 현직 프리미엄에다 탄탄한 조직력이 강점이다. 나아가 개인적으로 비리가 없다는 점도 장점이다. 반면 전주시장 8년에 도지사 8년 등 16년 동안 쌓아온 경륜이 오히려 피로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해 놓은 게 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물론 3선을 한 광역단체장은 많다. 박원순 서울시장, 최문순 강원지사, 이시종 충북지사, 김관용 경북지사, 박준영 전남지사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들은 기초단체장을 하지 않아 피로감이 덜했다. 둘째는 일찌감치 도지사 출마의 뜻을 밝힌 재선의 김윤덕(전주 갑)·안호영(완주 무진장)의원이다. 이들은 젊고 의욕이 넘치는 반면 중앙과 지방에서 존재감이 약하다. 차기를 노리는 포석이 아닌가 싶다. 셋째는 이번 대선과정에서 민주당에 복당한 김관영(군산)·유성엽(정읍) 전 의원이다. 이들은 중앙무대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차세대 전북의 인물이다. 김관영 전 의원은 50대 초반이다. 하지만 이들은 2016년 총선에서 안철수의 국민의당으로 당선된 바 있어, 이번 민주당 경선의 강을 건널 수 있을지 의문이다. 넷째는 정세균, 정동영 대표의 소환이다. 이들은 전북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아직도 중앙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거물들이다. 전북의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이들을 모셔 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은 편이다. 전북은 ‘민주당 공천= 당선’인 탓에 국민의힘에서 당선권에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 쌍발통 정치를 외치며 부지런히 중앙과 호남의 가교 역할을 해온 정운천 의원이 있으나 이번 선거에서 모험할 것 같지는 않다. 정세균·정동영의 경륜에 김관영의 미래가치가 결합한다면 이상적이다. 또 누가 당선되든 앞으로 4년은 윤석열 정부와 함께 해야 한다. 파격적인 발상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답답하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2.03.22 14:29

후백제와 전북가야를 팔자

▲ 객원논설위원 지난해는 전북지역 고대사에 눈을 뜬 한 해였다. 전주를 왕도로 한 후백제사와 1500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전북가야사에 대한 재발견은 나를 자못 흥분케 했다. 정년퇴직 후 노인문제에만 몰두해 있던 차에 오래 전 인연을 맺었던 중앙대 송화섭 교수를 만난 게 계기였다. 더구나 송 교수의 이웃에 사는 군산대 곽장근 교수를 만난 건 큰 행운이었다. 이분들은 1년 동안 전북 고대사에 대한 나의 무지를 깨우쳐 준 도반(道伴)이요 스승이었다. 몇 차례 만남을 통해 후백제포럼(시민연대)을 결성하고 5차례의 답사와 학술대회에 동참하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이제는 스케일도 제법 커졌고 일부 성과도 거뒀다. 후백제 왕도 복원 프로젝트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캠프의 대선공약에 이름을 올렸다. 또 18일에는 국회의원회관에서 김성주김종민안호영임이자 의원과 후백제학회가 주최하는 역사문화권 지정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가졌다. 전북지역 고대사는 어느 지역 못지않게 다채롭고 역동적이다. 이 지역 고대사의 기반인 14세기 마한을 비롯해 57세기 중반의 백제, 최근에야 모습을 드러낸 가야, 풍운아 견훤(진훤)이 또다시 삼한 통일의 대업을 이루려 했던 후백제 등 다이나믹하다. 특히 1500년 동안 잊혀져있다 뒤늦게 발굴돼 고고학계를 놀라게 한 전북 동부지역의 가야 유적과 지난해 지방정부협의회가 구성된 후백제사의 재조명 작업은 전북만의 차별성을 지닌 매머드급 프로젝트라 할만하다. 나는 지난달 초 장수와 남원일대 가야유적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거대한 가야 고총군락지를 보고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방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장계분지와 장수분지, 아영분지와 운봉분지의 산 정상부 능선을 따라 고분군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때마침 서산으로 지는 해를 등지고 펼쳐진 고분군은 나를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놀랍고 황홀함이란! 천지개벽이나 경천동지가 이럴 때 쓰는 말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예전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위해 찾았던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신라고분을 보고 느꼈던 감흥이 되살아났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이곳 420여 기의 가야고총과 110여 개소의 봉화, 250여 개소의 제철유적 등은 오랫동안 소중히 묻어둔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더구나 남원의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은 올해 6월, 유네스코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의 최종 등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고총왕국, 봉화왕국, 제철왕국 등을 잘만 활용하면 장수와 남원은 물론 전북이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릴 것 같은 예감에 흐뭇했다. 전북은 지금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경상권, 충청권, 전남권이 수도권에 맞서 행정통합형 메가시티 등을 추진하는데 전북은 광역통합은커녕 기초통합인 전주완주 통합도 못해 왕따 신세다. 이러한 때 전북 고대사의 재발견은 위축된 전북도민의 정신적 풍요와 자긍심을 높이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전북 동부지역의 고분봉화제철산성 등 가야의 탁월한 유적과 유물, 후백제의 궁성 찾기와 동고산성남고산성의 사적 지정 등 역사문화자원의 활용은 앞으로 지역경제와 관광의 활로를 찾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상상해 보라! 장계분지를 둘러싼 산맥 정상들에 태양광을 이용한 레이저 점등 행사를. 올림픽대회에서 성화 점화하듯 이 산 저 산에서 봉화불이 밤하늘을 향해 축포처럼 터지는 장면을 가히 세계적 명소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후백제와 전북가야의 유적발굴은 걸음마 단계다. 도민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성원이 절실하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2.01.18 19:08

7명의 대통령, 새만금 30년 동안 무엇을 남겼나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새만금사업이 첫 삽을 뜬지 30년이 지났다. 그동안 7명의 대통령이 집권했고 그 중 4명이 운명을 달리했다. 이제 석 달 후면 8명 째 대통령이 선출될 예정이다. 그들은 선거 때면 찾아와 전북 = 새만금 개발이라는 달콤한 말로 약속을 했는데 무엇을 남겼나. 군산과 부안일대는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부족한 농지확보를 위한 간척사업 사전조사가 진행 중이었다. 그러던 중 민정당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1987년 대선 때 절대 열세지역인 전북의 득표를 위해 부랴부랴 새만금사업을 대선공약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공약만 했을 뿐 이 사업을 캐비닛에 넣어두었다. 그러다 1988년 8월 당시 평민당 김대중 총재와 여야 영수회담을 가졌다. 여기에서 김 총재는 대선공약인 중간평가를 유보하는 대신 지방자치제 실시를 요구했고, 또 하나 새만금사업의 추진을 약속받았다. 김 총재는 계속된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를 보내준 전북도민들에게 빚지고 있어 이를 챙긴 것이다. 그 덕분에 새만금사업은 살아나 국회에서 200억원의 추경예산이 편성되고 1991년 기공식을 갖게 되었다. 이어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후보시절 새만금사업의 적극 추진을 약속했으나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했다. 호남인들의 숙원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새만금사업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때마침 시화호 수질오염사건이 터지고 우리나라 환경운동이 횃불을 치켜들면서 이 사업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유종근 전북지사가 민관합동조사단 구성을 제의하면서 2년간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다. 이때 김대중 대통령은 새만금만 생각하면 답답하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다. 뒤를 이어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시절 역시 시민환경단체들의 반발로 기나긴 소송에 휘말려야 했다. 2001년부터 5년간의 각종 소송은 2006년 대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확정판결로 매듭지어졌다. 다음해인 2007년, 다행히 새만금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새만금이 본궤도에 오르게 된 것은 건설업으로 잔뼈가 굵은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였다. 가장 부패한 대통령이 새만금의 공로자인 셈이다. 이 대통령은 후보시절 새만금을 세 번 방문했으며 그때마다 새만금이 나를 필요로 한다 새만금을 한국의 두바이로 만들겠다 사람과 돈과 물류가 모이는 동북아의 성장기지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취임 초반 청와대 홈페이지 배너에는 대운하와 새만금,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등 3대 국책사업을 띄워 놓을 정도였다. 이 시기에 종전 72%이던 농업용지를 30%로 줄이고 70%를 산업 관광용지 등으로 내부 토지이용 구상을 조정했다. 또 새만금위원회 구성, 방조제 준공식, 새만금개발청 설립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어 들어선 박근혜 정부는 대선공약으로 새만금의 지속적안정적 추진을 내세웠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새만금에 필요한 것은 추진력과 예산이라며 대통령이 직접 챙기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약속대로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켰으며 공공부문의 선도적 매립과 새만금개발공사 설립, SOC 조기구축 등에 힘을 쏟았다. 예산도 1조원대로 대폭 늘렸으며 2018년 10월에는 새만금을 세계 최고의 재생에너지 클러스터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제 다음 대통령으로 유력한 이재명, 윤석열 후보는 새만금에 어떠한 희망을 불어넣을 것인가. 유세를 위해 전국을 투어하면서도 아직 발걸음조차 비치지 않고 있어 내심 걱정이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1.11.30 17:08

완주 · 전주 통합이 전북발전의 첫걸음이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참으로 답답하다. 요즘 전북의 돌아가는 꼴을 보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수도권을 비롯해 다른 자치단체들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우리만 뒷걸음이다. 요즘 막바지로 치닫는 여야의 대선 경선 만해도 그렇다. 대선 후보들은 전북 보기를 처삼촌 묘에 벌초하듯 건성 건성 지나친다. 또 내년 6월 지방선거에 거론되는 도지사 후보의 면면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중앙에선 존재감도 없는, 갓 재선된 우물 안 개구리들이 전북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나댄다. 심히 걱정이다. 전북은 그동안 축소지향의 길을 걸어왔다. 내부 여건과 외부 여건을 보자. 우선 내부부터 들여다보겠다. 전라북도라는 행정구역 명칭이 탄생한 것은 조선시대 말 고종 때인 1896년이다. 갑오개혁을 추진하던 김홍집 내각이 조선 8도(道)를 13도로 개편하면서 전라도가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로 분리되었다. 이후 전북은 1906년 구례군을 전남에 떼어주고 전남 영광군에 속했던 무장면과 흥덕면을 고창군에 편입시켰다. 또 516 군사 쿠데타 후인 1963년에는 인삼으로 유명한 금산군과 익산군 황하면이 충남으로 옮겨갔고 대신 전남 영광군 위도면이 부안군으로 편입되었다. 결국 전북은 2개 군이 떨어져 나가 도세(道勢)가 크게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다. 인구 역시 대폭 줄었다. 1966년 252만 명을 정점으로 현재 180만명 아래로 내려앉았다. 다음으로 외부여건을 보자. 전국은 지금 너도나도 몸집 불리기가 한창이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이 800만명 규모의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에 발동을 걸자 대구경북이 500만, 광주전남이 350만명의 행정통합형 메가시티 추진에 나섰다. 충남충북세종도 550만명 충청권 메가시티에 힘을 모으고 있다. 여기서 빠진 전북은 강소권 메가시티를 추진한다고 하지만 왕따 신세다. 메가시티는커녕 미니시티도 유지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대로 가다간 전북은 해체와 소멸의 길을 걸을게 뻔하다. 이미 순창고창은 광주권에, 무주진안장수와 완주군 일부는 대전권에 빨려 들어가 있다. 이를 어떻게 타개할까? 전주권 광역화와 새만금+군산김제부안의 통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광역이 없는 전북으로서는 생활권과 여건이 비슷한 이들을 통합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이 중 전주권 광역화는 전북 전체의 구심력 회복과 성장을 위해 절박하다. 전주권인 완주와 전주는 원래 한 몸이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5년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하면서 분리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미 3차례 통합의 기회가 있었다. 특히 2013년 3차 통합시도는 당시 완주김제지역 국회의원이던 최규성 같은 대역죄인의 농간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통합에 성공한 청주시청원군의 눈부신 발전은 반면교사다. 그렇다면 완전(완주+전주)한 통합방안은? 위로부터(Top-down) 방식과 아래로부터(Bottom-up) 방식이 있다. 지금까지 3차례는 전주시장과 완주군수, 그리고 도지사와 지역 국회의원이 주축이 된 위로부터의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간단한 반면 주민들의 복리보다는 정치권 몇몇의 이해관계에 좌우된다. 이제 정치권에 맡길 때는 지났다. 주민 스스로 결사체를 만들어 추진하는 아래로 부터의 방식이 필요하다. 그동안 자신의 영달만을 꾀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무수히 보아왔지 않던가. 수단은 농촌에서도 보편화된 유튜브 활용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전주의 통 큰 양보로 완주군민에게 이득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완주전주 통합은 전북 발전을 위한 첫걸음이자 생존조건이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1.10.12 16:46

기본소득과 일자리보장제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안심소득, 공정소득, 참여소득, 일자리보장제, 전국민 고용보험. 대선을 6개월가량 앞두고 정치권과 학계, 시민단체 등에서 제기되고 있는 담론들이다. 이들 담론의 공통점은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이 격화되면서 대안적 성격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기본소득이 불러온 나비효과인 셈이다. 기본소득은 알다시피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개별적으로,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지급되는 소득이다(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 이 5가지 요소에 충분성을 더하기도 한다. 기본소득의 기원은 500년 전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서구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들어 학술적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 담론은 40년 가까이 세상을 지배해온 신자유주의 복지국가가 제 기능을 못한데서 비롯되었다. 복지국가의 모순으로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되자 그 해법 중 하나로 제시된 것이다. 더욱이 지난해 코로나19의 창궐로 긴급재난지원금이 전 국민에게 지원되면서 기본소득이 우리 국민의 삶 속에 들어왔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매력적인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경제학과 사회복지학 등의 주류학계에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공격한다. 하나는 기본소득이 기존의 사회복지체계를 뒤엎을 정도로 효율적이냐 하는 점이요, 또 하나는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하는 점이다. 이외에도 모두에게 고루 나눠 주기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게 낫다거나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왜 돈을 줘야하는지 등 논쟁거리가 쏟아진다. 이를 보완하거나 대체하기 위한 논의가 앞서 언급한 담론들이다. 기본소득은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2017년 대선 이래 줄곧 주장해오고 있다.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등 실험을 거쳐 기본주택, 기본대출 등 나름의 논리를 갖춰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 지사를 제외한 이낙연, 정세균, 윤석열,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등 여야 후보들은 그에게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는 양상이다. 그렇지만 기본소득은 지난해 6월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배고픈 사람이 빵을 먹을 수 있는 실질적 자유의 구현과 물질적 자유의 극대화를 위해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라고 공론화하면서 다시 주목받은 바 있다. 이어 국민의힘은 기본소득을 정강정책 첫 조항에 명시했다. 또 기본소득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안심소득과 공정소득은 신자유주의 대부인 미국의 밀턴 프리드만의 부(負)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기초로 한다. 어쨌든 기본소득과 관련 담론에 대한 논의는 빡셀수록 좋지 않을까 싶다. 이번 기회에 누더기 세법과 같이 땜질식으로 메꿔오던 우리의 시회복지시스템을 점검하고 만성적인 실업과 4차 산업혁명, 플랫폼 노동자의 급증 등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특히 이 중 일자리 보장제(고용보장제 또는 기본일자리)는 코로나19 이후 대량실업과 탄소중립 등 세계사적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깊이 있게 검토되었으면 한다. 이 제도는 일하기를 원하지만 민간 고용시장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모든 사람을 국가가 고용하는 것이다. 이 또한 퍼주기 논란 등 문제가 없지 않다. 하지만 30%가 넘는 청년 체감실업률이나 1000만 명이 넘는 근로희망 고령층 등 절박한 우리의 현실을 고려할 때 가장 시급한 현안이다. 일자리는 최고의 복지요 경제정책이 아닌가. 이번 대선이 일자리보장제 등 국민에게 절실한 담론을 새로운 시각에서 논의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1.08.24 16:42

평양문루에 활을 걸고…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나의 기약하는 바는 활을 평양문루(平壤門樓)에 걸고 (나의) 말에게 패강(浿江 대동강)의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이오. 이는 927년 12월, 후백제 견훤왕이 신라의 수도 경주를 친 직후에 고려 왕건에게 보낸 서신에 나오는 글귀다. 이 얼마나 심장을 뛰게 하는 말인가. 고구려 멸망으로 만주 일대를 잃은 이후, 가장 호쾌한 영웅의 포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남북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통일의 의지를 묵직하게 묻는 것처럼 들린다. 그렇다. 1100년 전 후백제를 건국하며 전주를 왕도로 삼은 견훤왕은 시시한 사내가 아니었다. 비록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 자서(自書)에서 천하의 원흉이라고 악평하고 있으나 그는 후삼국을 통일해 잃어버린 고구려까지 찾고자 했던 호걸이었다. 그러나 후백제는 짧은 존속기간과 패망한 왕조였기에 쉽게 잊혀졌다. 이 지역 전북사람들조차 기억하기 싫어했다. 견훤왕이 말년에 아들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되었다는 사실 하나에 초점이 맞춰졌고, 이러한 승자의 역사해석이 머리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원통한 것은 당시 삼국의 모든 서적이 총집결된 전주서고가 불타버렸다는 점이다. 견훤왕은 경주를 침공한 후 그곳에 있던 서적을 모두 전주로 싣고 왔다. 그런데 고려는 전주성을 불바다로 만들고 전주서고에 불을 질러 역사를 단절시켰다. 실학자 이덕무는 이를 3000년 이래 두 번째 큰 재앙(厄)이라 애석해했다. 그리고 혹자는 후백제의 짧은 역사를 탓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 후백제의 출발 시점은 흔히 무진주(광주)에 입성하여 도읍한 892년부터 936년까지 45년간으로 잡는다. 이 기간은 중국 수나라(581-619년)의 38년에 비해 결코 짧지 않다. 수나라는 혼란한 중국을 통일하고 과거제도, 대운하 건설, 만리장성 재수축 등을 통해 이후 당나라 300년의 초석을 닦았다. 어쨌든 전주가 역사의 중심에 등장한 것은 후백제부터다. 견훤왕이 후백제의 깃발을 전주에 꽂은 덕분에 천년고도(千年古都)가 된 것이다. 이후 450년이 지나 조선 왕조의 발상지가 되었다. 왕대밭에서 왕대 난다는 말이 있듯 후백제가 뿌린 씨앗이 조선왕조로 열매 맺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역사에서 한 도시가 왕도였고, 왕조의 본향인 곳은 전주가 유일하다. 이제 1100년 동안 묻혀 잠자던 후백제를 깨울 때가 되었다. 때맞춰 1980년대 이래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던 동고산성 남고산성, 봉림사지 등 곳곳에서 유물유적이 발굴되고 있다. 도성 및 왕궁터도 윤곽이 드러나고 후백제의 손길이 미쳤던 전북 동부의 가야문화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제 대대적인 조사와 발굴을 통해 전북과 전주의 정체성을 찾을 시기가 도래했다. 그동안 학자들만의 전유물이었던 후백제 역사에 시민들도 참여해 전주 바로알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 일환으로 지난 6월 11일에는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학술세미나 및 시민토론회가 열렸다. 결과는 5가지로 요약돼 전주시에 전달되었다. 건의사항은 △견훤로에 후백제 랜드마크 조성 △인봉리 주택개발 대안 제시 △후백제 문화관광해설사 교육 및 배치 △후백제 시민강좌 개최 △후백제 역사관(자료관) 건립 등이다. 지금 전국의 자치단체들은 몸집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다. 부울경 메가시티, 대구경북, 광주전남 등의 행정통합이 그것이다. 전북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파트너도 마땅치 않다. 이러한 때 견훤왕의 후백제 국가운영 철학과 역사의식을 전북정신의 탯줄로 삼고 남북통일의 비전으로 발전시키면 어떨까.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1.07.13 16:36

황혼길, 버리고 떠나기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열흘 넘게 유품정리에 매달렸다. 2년 전 작고하신 장모님 댁이 팔리면서 집을 비워줘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다. 40년 넘게 산 단독주택인데다 대부분 오래된 물건인지라 모두 버리면 되겠지 싶었다. 그래서 잠깐 들려 필요한 것만 챙기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신경써야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오래된 가구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 중 20여 년 전에 구입한 자개농이 가장 문제였다. 전주 등 전북지역에는 자개농을 취급하는 곳이 아예 없어 고민이 되었다. 평소 아끼셨고 비교적 고가여서 보관할 곳을 물색했다. 내심 나중에 전원주택이라도 살게 되면 필요할 것도 같았다. 지인들에게 연락해보고 이삿짐센터에도 문의했다. 지인들은 하나같이 처분할 것을 권했다. 이삿짐센터는 5톤 컨테이너박스에 1년 맡는데 200만원을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천만원, 이천만원짜리 자개농도 1년 후면, 열이면 열 모두 버린다는 것이었다. 결국 어찌어찌해 서각공방을 운영하는 분이 실어갔다. 그밖에 침대, 냉장고, 책장, 식탁, 상, 어항 등은 밖에 내놓았더니 동네 분들이 들고 갔다. 나머지 것들만 주민센터에 들려 대형폐기물 딱지를 붙여 놓았다. 다음은 책이었다. 1년 반전 이사하면서 새로운 아파트가 좁아 장모님댁 작은 방에 갖다 놓았던 걸 다시 옮겨야 했다. 3000권이 넘는 책 중 잡지나 오래된 연구서, 문고본, 사전류 등은 이미 없애 절반으로 줄인 상태였다. 이중 일부는 지인에게 나눠주고 또 일부는 폐기하고 나머지는 시골 선산의 컨테이너박스로 옮겼다. 시군지, 미술전집, 서화집이나 문화재도록 등 무거운 게 많아 꽤 힘들었다. 가장 큰 난제는 옥상 장독에 있는 된장, 간장, 고추장, 매실엑기스, 소금 등이었다. 여기에 젓갈까지 있었다. 장모님이 힘들여 직접 담근 것인데다 대부분이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어서 수고스러워도 옮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특히 화단 모퉁이에 묻어 둔 장독 2개에는 가자미 젓갈이 가득 차 있었다. 몇 년 전 가자미를 사다가 일일이 손질한 후 소금과 함께 담은 것이다. 아내와 함께 퍼내어 거르는데 곰삭은 비린내가 진동했다. 오랜 숙성과정을 거쳐서인지 냄새와 달리 맛은 좋았다. 페트병에 담아 이웃집과 친지들에게 나눠주니 좋아했다. 그러나 짐을 정리하고 옮기는 과정에서 무리했는지 끝날 무렵, 허리가 끊어지게 아팠다. 화장실에도 기어 갈 정도였다. 다행히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오가며 집중치료를 받은 덕에 오래지않아 회복되었다. 이번 유품정리를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쓰던 물품들은 어떻게 되지? 옷이며 책이며 침대며 은행통장이며 블로그들은? 고스란히 아내와 아이들에게 부담으로 남을 게 아닌가. 흔히 나이 들수록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젊어서는 지식도, 물품도 축적해야 하지만 노년에는 그것을 하나씩 덜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이번에 절감했다. 일본에서는 몇 년 전부터 짓카 가타즈케(實家片付け)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살아 생전 생가(生家)의 불필요한 것을 모두 정리하는 것이다. 노년 준비의 전략 중 하나로 꼽힌다. 집안을 정리하지 못한 채 늙어서 간병을 받거나 요양병원 신세를 질 경우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아마도 성업 중인 유품처리업체가 들어와 모두 쓰레기로 가져갈 것이다. 무소유는 실천하지 못해도 황혼 길이 너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1.06.01 18:15

기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미국 시인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의 무엇이 성공인가?(What is Success?)라는 시의 일부다. 이 시는 국내 최대 모바일 플랫폼 카카오톡을 만든 김범수(55)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애송하는 시라고 한다. 김 의장은 지난 2월 기부의 선구자 빌 게이츠 부부와 워런 버핏이 2010년 만든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한국인 최초로 가입하면서 재산의 절반인 5조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더기빙플레지는 자산 10억 달러(1조1000억 원)가 넘어야 가입할 수 있고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해야 하는 억만장자들의 자선클럽이다. 지금까지 세계 24개국에서 모두 218명이 가입했다. 김 의장은 이 시를 자주 인용하며 카카오톡 상태메시지로 활용할 만큼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김 의장 말고도 한국인으로 배달의 민족 창업자 김봉진 우아한 형제들 의장(45) 부부가 재산의 절반인 5000억 원을 내기로 하고 이 자선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경북 구미의 3세 여아 사망사건, 서울 노원구 세모녀 살인사건이나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궐선거를 둘러싼 여야의 날선 공방 속에서도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흐뭇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내 몫 챙기기에 혈안이 된 살벌한 분위기속에 요즘 화사하게 피어난 봄꽃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들 젊은 IT 창업기업가 말고도 어르신들의 기부도 이어졌다. 지난 3월 장성환 삼성브러쉬 회장(92)부부가 카이스트(KAIST)에 200억원 상당의 강남 부동산을 내놓았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84)이 부동산 등 766억원을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키워달라며 기부했다. 현금이나 부동산 말고도 손창근 옹(92)은 지난해 12월 국보 180호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등 평생 수집한 미술품 305점을 정부에 조건 없이 기증했다. 전북에서도 기부의 손길은 끊이지 않았다. 임실 출신 정문술 미래산업 회장(83)은 이미 2001년과 2014년 전 재산인 515억원을 카이스트에 쾌척해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을 세우도록 했다. 이곳에서는 바이오와 뇌과학, 인공지능 등의 인재를 키우고 있다. 김제출신 박승 전 한은총재(85)도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고, 전주시 중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는 21년째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기부문화가 활성화된 듯해도 실제 우리의 기부는 오히려 감소 추세다.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 우리의 기부 경험은 2011년 36.4%에서 해마다 떨어져 2019년 25.6%로 낮아졌다. 또 향후 기부 의향도 같은 기간 45.8%에서 39.9%로 떨어졌다. 사회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면서 팍팍한 삶과 함께 사회 불신이 깊어진 것이다. 더욱이 우리 사회는 지난해 코로나19의 습격으로 양극화와 불평등의 골이 깊어졌다. 어려운 사람이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매달 일정액을 자선단체에 자동이체 하는 등 나눔을 실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기부는 부의 불평등을 바로잡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자양분이다. 전염성도 강해 선순환 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기부자에게 존경을 표한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1.04.06 18:28

기본소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뜨겁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정치권에서 더욱 그러하다. 기본소득 논의를 주도하는 정치인은 경기도 이재명 지사다. 이 지사는 2016년 성남시장 당시 청년에게 분기별 25만원씩 지급하는 청년배당을 실시했다. 이어 2017년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와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했다. 당시만 해도 이러한 주장은 허경영식 공약 정도로 치부됐다. 그러다 지난해 코로나19의 습격으로 전 세계가 팬데믹에 빠지면서 그의 주장은 날개를 달았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에서 한발 더 나가 기본주택, 기본대출 등 기본소득 시리즈를 내놓았다. 이 같은 행보에 발맞춰 그의 지지가 급등세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기본소득은 시기상조라며 신복지체제를 들고 나왔다. 소득, 주거, 고용, 교육, 의료 등 8개 항목마다 국민생활 최저기준을 설정해 국가가 의무적으로 보장하자는 내용이다. 또 대권 도전에 기지개를 켜는 정세균 총리도 쓸데없는 전력 낭비라며 가세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경수 경남지사도 한 다리씩 걸치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익히 알다시피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자산조사나 노동조건 없이 무조건적으로,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현금(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BIEN)이다. 쉽게 말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든 개인에게 매달 일정금액의 현금을 주는 제도다. 어찌 보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발상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홍준표유승민 의원은 기본소득을 사회주의 배급제라며 못마땅해 한다. 기본소득은 좌우파 할 것 없이 다양한 논리로 주장을 펴고 있으나 결국 막대한 재원마련에서 길이 막힌다. 한국의 경우 전 국민에게 한 달 50만원씩만 지급해도 올해 국가예산 558조원의 절반 이상인 300조 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지금 당장 완전기본소득 실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 알래스카 주가 실시하고 있고 스위스와 핀란드가 실험을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이 학계와 정치권에서 계속 화두가 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신자유주의 복지국가 이후 빈부격차 등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복지제도는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반증이다. 불평등의 심화는 전 세계적 현상이고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는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비교적 선방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통계청의 지난해 4분기 가계동향조사만 봐도 확연하다. 하위 20%(1분위) 가구의 근로소득(59만6000원)이 13.2% 급감한 반면 상위 20%(5분위)가구의 근로소득(721만4000원)은 오히려 1.8%가 늘었다. 코로나19로 상위계층은 좋은 일자리를 지킨데 비해 임시직일용직 비중이 높은 하위계층의 소득은 크게 감소한 것이다. 더욱이 부동산 광풍으로 이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기본소득이 이러한 불평등 완화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퍼주기 포퓰리즘 등 부정적 견해가 우세한데도 기본소득이 불러일으킨 나비효과는 크다. 제1야당인 국민의 힘이 기본소득을 정강정책 1호로 채택했고 여야가 앞 다퉈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기존 복지제도를 강화한 신복지체제가 나왔고 데이터인공지능로봇과 플랫폼 등에 연계된 사회연대세 논의도 활발하다. 이제 기본소득은 대선 국면에서 가장 뜨거운 정책의제 중 하나가 되었다. 불씨만한 논의가 횃불이 되어 신자유주의 복지체계 패러다임을 뿌리까지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기본소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1.02.23 17:33

[조상진의 열린 생각] 세 번째 정년퇴직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지난 연말 정년퇴직을 했다. 세 번째다. 나는 운이 꽤 좋은 편이다. 한 번도 하지 못한 사람도 많은데 세 번이나 했으니 감사한 일이다. 첫 번째는 8년 전, 언론사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다 퇴직했다. 당시 정년은 56세였다. 회사의 배려로 1년 남짓 일을 더했다. 그때 언론사의 정년은 전국적으로 5458세였다. 그러나 정년까지 채우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두 번째는 대학 전임입학사정관으로 3년 정도 일하다 60세 정년을 맞았다. 그리고 이번에 5년 동안 일한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를 정년퇴직했다. 돌이켜 보면 힘든 순간도 없지 않았으나 보람 있는 기간이었다. 세계적으로 정년제도는 1889년 프러시아(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공적 노령연금을 도입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중반 독일은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이 심했고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군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국가적 현안이었다. 결국 노인들을 노동시장에서 퇴출시키고, 그 대신 연금을 주기로 했다. 당시 연금수급연령은 70세였고 1916년에 수급연령을 65세로 낮췄다. 이때부터 노인의 나이 기준이 65세가 됐고 유엔도 1950년 고령지표를 내면서 노인기준을 65세로 잡았다. 우리나라에 정년제가 도입된 것은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되면서 부터다. 민간기업은 회사의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명시토록 했는데 신고사항이었다. 공무원의 경우는 1963년 국가공무원법에서 정년제를 도입해 5급 이상 61세, 6급 이하 55세, 기능직 4061세로 규정했다. 그러다 국가공무원은 2008년, 지방공무원은 2013년부터 정년을 60세로 단일화했다. 2016년(300인 이하는 2017년)에 모든 근로자의 정년을 60세로 했으나 통계청에 따르면 실제 퇴직연령은 49.3세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년은 전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에 따라 점차 늘리거나 폐지하는 게 대세다. 미국은 1986년 정년제를 연령차별이라는 이유로 폐지했다. 영국도 65세이던 정년을 2011년 폐지했다. 이들 나라는 정년 폐지 이후 고용률이 증가하고 실업률이 감소했다. 일본은 2013년 60세이던 정년을 65세로 늘렸고 올해 4월부터 70세로 늘린다. 정년 연장이 청년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주장도 있으나 궁극적으로 경제활동인구를 늘리고 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역할을 한다는 게 다수 의견이다. 대신 능력급제나 기업연금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아직 코로나19로 신경 쓸 겨를이 없지만 어느 정도 수습되면 이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다시 정년퇴직 얘기로 돌아가서, 지난 5년은 복 짓는 기간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뜻있는 일을 펼칠 수 있었다. 아파트경비원청소원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는 등 해마다 노인일자리 심포지엄을 가졌고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2억9208만원을 지원받아 무료로 160여명의 실버 바리스타를 양성했다. 소박하지만 노인영화제를 열었고 타블로이드판 신문을 제작했다. 보건복지부의 시니어인턴십사업, 고용노동부의 사회공헌활동사업 등도 유치했다. 고령취업자들과 광양제철, 청남대, 새만금 등도 다녀왔다. 순수 민간취업도 300명대에서 500명대로 늘렸다. 아쉬운 게 있다면 경찰청에서 5년마다 지정하는 민간경비원교육기관 신청을 하지 못한 점이다. 시설규격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4년 후인 2025년이면 65세 노인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청년이나 중장년도 마찬가지겠으나 일자리는 노인들에게 최고의 복지다. 세 번째 정년을 맞으며 일자리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1.01.12 16:32

[조상진의 열린 생각] 전북의 지도자들이여, 머리를 맞대라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최근 들어 전국의 자치단체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코로나19가 한창인데도, 지방끼리 뭉쳐야 산다며 행정통합에 박차를 가하는가 하면 수도권인 경기도는 분도(分道)를 서두르고 있다. 지방은 지금 아사(餓死) 상태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이 인재와 돈과 정보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바람에 빈껍데기만 남았다. 소멸 위기에 처한 시군이 절반이 넘으면서 스스로 행정통합에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이 일찌감치 인구 800만 명 연합형태의 동남권 메가시티를 선언했고, 대구 경북이 주민투표를 거쳐 2022년 7월까지 인구 510만 명의 대구경북 특별자치도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이어 광주와 전남이 11월2일 행정통합에 합의했다. 대전시와 세종시를 포함한 충청권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서울공화국 일극체제에 맞서 지방을 한데 묶어 대항하는 남부연방을 꾸리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반면 인구 1324만 명의 경기도는 분도 움직임이 힘을 얻고 있다. 지역간 불균형이 심해 한강을 기준으로 남도와 북도로 나누자는 것이다. 이처럼 자치단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당장 실현되지는 않겠지만 이합집산이 한창이다. 그렇다면 전북은? 전북은 이런 엄청난 소용돌이가 몰아치는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이러한 때 전북일보가 창간 70주년 기념으로 전북발전을 위한 도민 대토론회를 가졌다. 11월 11일 열린 이 자리에서는 침체된 전북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는 못했으나 벌거벗은 현주소가 드러났다. 그중 몇 가지만 보면 제1세션에서 전북은 패배주의 팽배, 한국판 뉴딜예산의 0.5% 배정, 지방대학의 인프라 열악, 지지부진한 전주완주 통합, 경쟁이 사라진 일당 독점정치체제, 전북도지사와 전주시장의 고질적인 불화, Top 100 건설업체의 부재 등이 제기되었다. 제2세션 새만금의 미래와 전북에서는 부분 해수유통 방안, 재생에너지 메카 지향, 신항만의 확장과 물동량 문제, 새로 수립되는 MP에 수소, RE100, 신산업 등을 담는 문제 등이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또 그동안 대(對) 중국 전진기지로서 중요성이 강조되었으나 짝사랑만 한 것이 아닌지와 새만금 행정구역을 둘러싸고 자치단체가 벌이고 있는 땅따먹기 소송전도 언급되었다. 더불어 눈여겨 볼 대목은 1억2000만평의 새만금지역을 단일한 특별행정구역으로 할지, 군산 김제 부안과 묶어 전북도 관할로 할지 등도 거론되었다. 특별행정구역으로 할 경우 전북과의 관계 설정도 중요한 화두였다. 새만금에 기업이 들어오고 정주여건이 갖춰지면 세종시 처럼 주변지역 인구가 빨려 들어가 전북이 오히려 공동화되는 현상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 이외에도 제3금융중심지 지정, 공공의대 등 전북의 현안은 쌓여 있다. 생활권이 같은 다른 자치단체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미래 발전을 설계하는데 전북은 자칫 외로운 섬으로 남게 될 처지다. 토론회에 패널로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이제라고 전북의 리더들이 머리를 맞댔으면 하는 생각이다. 가난한 집안에 분란이 잦다고 전북은 지금 국회의원들이 역대 가장 약체인데다 자치단체장들도 찢어져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도지사를 비롯해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대학총장, 상공회의소 회장 등 지역을 이끄는 사람들이 분기별로 모여 전북의 현안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그래야 자강(自彊)이든, 통합이든 대안 모색을 통해 출구가 보일 것 아닌가. /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0.12.01 18:14

젊은 노(老)가수 나훈아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으나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1960년대는 봄가을로 소풍을 다녀왔다. 행선지는 가까운 명승고적이었다. 당시 놀 거리가 마땅치 않았던 시골에서 소풍날은 잔칫날이나 다름없었다. 모처럼 해방된 기분인데다 김밥이며 과자, 사이다 등을 실컷 먹을 수 있어서다. 당시 내가 다녔던 학교의 단골 행선지는 백양사였다. 소풍날 비포장도로를 걸을 양이면 다리도 아프고 희뿌연 먼지를 마셔야 했다. 그래도 소풍은 즐거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시간은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열린 학급별 장기자랑이었다. 4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장기자랑에 우리 반 대표로 반장이 나가서 빅히트를 쳤다. 나보다 두 살 위였던 그 친구는 유행가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반짝이는 별 빛 아래 소근 소근 소근 대는 그 날밤, 천년을 두고하는 노래가 끝나자 환호성과 함께 앵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그 친구는 다시 청춘은 꿈이요, 봄은 꿈 나라하는 노래를 신나게 불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친구가 부른 노래는 남인수의 무너진 사랑탑과 김용대의 청춘의 봄이었다. 당시 동요만 배우던 나는 깜짝 놀랐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보는 듯 했다. 그날 이후 그 친구는 나의 우상이 되었다. 트로트와의 만남은 그때 시작되었다. 사실 트로트는 우리의 아픈 역사 속에 서민들을 어루만지는 약손 같은 역할을 해왔다. 일부에선 촌스런 뽕짝이라고 폄하하지만 대중의 애환을 그만큼 직설적으로 대변한 음악도 없다. 오랜 멸시와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트로트는 최근 방송가를 장악했다. TV를 틀면 먹방이더니 이제는 트로트 세상이다. 이러한 트로트 열풍에 화룡정점을 찍은 일대 사건이 지난 추석 KBS2 TV가 기획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가 아니었나 싶다. 2시간 동안 숨 돌릴 틈 없이 몰아친 이 공연은 전국 시청률 29.0%라는 드문 기록 뿐 아니라 트로트를 서정시와 철학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 중 내가 눈여겨 본 것은 젊은 노인가수 나훈아의 활력 넘치는 모습이었다. 73세(1947년생)의 나이에도 다이나믹한 무대로 코로나에 지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압도적인 무대스케일에다 한복과 찢어진 청바지까지 다양한 의상을 선보이며 29곡을 열창했다. 전형적인 욜드(Young Old 젊은 노인)요, 액티브 시니어였다. 욜드는 노인 대국인 일본에서 만든 말로 1946-1964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를 일컫는다. 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더 건강하고, 돈도 있고, 고학력이다. 또 스마트 폰이나 인터넷에도 익숙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다. 한국에는 2020년 600만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아무나 나훈아 같은 젊은 노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요소가 있다. 먼저 나이와 함께 실력을 갖춰야 한다. 트로트 가수를 예로 들어보자. 요즘 뜨고 있는 젊은 가수들은 기교는 뛰어날지 몰라도 덜 숙성된 느낌이다. 나훈아의 공연은 산전수전 다 겪은 관록이 묻어나 이것이 가수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나이 들어서도 탄탄한 내공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사회 공헌적 활동이다. 아마 이번 무대가 비싼 입장료를 받는 공연이었다면 큰 공감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더하여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테스형이나 이날 부르지는 않았으나 광주 518을 소재로 만든 엄니 같은 노래는 사회의 아픔을 껴안고 있다. 단순한 예인이 아닌 연륜 쌓인 시대의 어른으로서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나훈아의 공연은 급증하는 젊은 노인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준 것 같아 흐뭇했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0.10.20 16:02

검사·목사·의사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최근 우리 사회에서 주목을 끄는 몇 개의 전문 직업군이 있다. 검사와 목사, 의사가 그들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추요, 선망 받는 직업 중 하나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 목사는 영혼의 구원자, 의사는 생명의 치유자로 불린다. 이들이 제 소명을 다하면 우리 사회는 건강하게 발전한다. 반면 이들이 부패하거나 과도하게 욕심을 내면 우리 사회는 삐걱 거린다. 불행히도 우리는 후자의 사례를 잇달아 목격했다. 우선 검사부터 보자. 문재인 정부 들어 검사들은 적폐청산에 앞장섰지만 자신들의 개혁에는 저항으로 맞섰다. 정의의 사도처럼 비춰졌던 검사들의 대표 윤석렬 검찰총장은 그런 점에서 실망을 줬다. 살아있는 권력인 청와대를 겨눈 칼은 예리한 것 같았으나 핀트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조국 민정수석에게 겨눈 칼은 우리나라 상층부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뿐 빗나갔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검언유착이 불거졌다. 채널A 이동재 기자와 윤 총장의 최측근 한동훈 검사장과의 관계는 정치검사와 기레기(쓰레기 기자)간의 유착의 고리가 얼마나 끈끈한가를 보여줬다. 나아가 자신의 장모와 부인 사건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다. 이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립 등으로 왕년의 잘 나가던 시절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될 처지다. 다음은 목사. 그동안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개신교의 확산과 목사의 위상은 코로나 19 시기를 거치며 실체가 드러났다. 존경 받는 직업이 아닌 공공의 적이 된 것이다. 심지어 기독교는 개독교, 목사는 먹사로 불리고 있다. 코로나 확진환자의 30% 이상이 기독교로 인해 감염됐는데도 대통령과 만난 대표 목사는 교회를 일반 영업장처럼 다루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더 가관인 것은 괴물 목사 전광훈의 행태다. 하나님, 까불지 마 하더니 바이러스 테러로 사기극을 펼친다며 광화문에서 외장을 쳤다. 그 틈에 바이러스는 더 퍼져 나갔다. 초기 코로나 확산의 진원지였던 신천지는 온순한 양인 편이다. 뿐만 아니라 대형교회 목사들의 세습과 횡령, 성범죄는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교회가 죄송합니다며 묵은 땅을 갈아엎자는 목사 분들이 있어 그나마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다. 끝으로 의사. 이들은 이번 의료파업을 통해 의사집단의 위력이 얼마나 막강한가를 보여줬다. 2000년 의약(醫藥)분업부터 수차례 되풀이된 파업에서 연속 승리를 쟁취했다. 영리하게도 정부가 대항할 수단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했다. 그러나 의대학생- 전공의전임의- 의대교수로 이어진 카르텔 파업은 밥그릇 지키기에 성공했을지 몰라도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잃었다. 물론 사전에 의사단체와 조율 없이 졸속으로 밀어붙인 정부여당의 조급증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176석의 힘을 너무 과신하다 큰 코 다친 것이다. 문제는 의대 증원과 공공성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OECD 회원국보다 의사수가 현저히 적은데다 세계 최고의 고령화 속도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이번 의료파업은 역설적으로 의대증원이 반드시 필요하고, 의사들이 특권층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증명해줬다. 그들은 1등만 살아남는 더러운 세상을 원했다. 의대와 비견되는 로스쿨을 보라. 2009년 로스쿨이 생기면서 개업변호사가 8900명에서 2020년 2만3000명으로 2.6배 늘었다. 무변촌이 상당부분 사라지고 직역도 넓어졌다. 마찬가지로 의사수도 대폭 늘리고 의사직역도 넓혀야 한다. 이들 사태는 잘 나가는 전문직들의 사회적 공감능력이 얼마나 떨어지는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0.09.15 16:41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