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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3월 20일, 덴마크에서 뜻밖의 소식이 날아왔다. 배드민턴 남자복식의 이은구 박주봉 조가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덴마크오픈에서 정상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구기 종목 역사상 남자선수가 세계대회에서 거둔 첫 번째 우승이었다. ‘배드민턴을 통해 세계 속에 한국의 이름을 떨치게 한 이은구 선수는 전주농림 출신으로서 모교의 후배인 박주봉 선수와 콤비를 이루어 치열한 접전 끝에 인도네시아를 2-1로 누르고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이·박 조는 이번 대회에서 시드 배정도 받지 않은 불리한 상황에서 싸워 3500여 현지 관중들이 어리둥절할 정도의 문자 그대로 기적과 같은 승리를 쟁취했다니 실로 감격스럽고도 대견하며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중략) 또한 전주농림에 재학 중인 박주봉 선수는 국가대표 중 최연소 선수로서 힘만 기른다면 단식에서도 세계를 제패할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어 더욱 힘찬 박수와 기대를 보내게 된다.’ 당시 소식을 전한 <전북일보> 사설 중 일부다. 전주농림고 3학년생 까까머리 소년 박주봉은 그 ‘사건’ 뒤부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전 세계 배드민턴인들로부터 ‘남자복식의 교과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는 찬사를 받았다. 급기야는 우리나라 역대 스포츠 선수 중 유일하게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최근에 전남 화순의 ‘이용대 체육관’에서 배드민턴 전국종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올림픽 제패’를 기념한다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그런데 정작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세계대회를 ‘겁도 안 나게’ 제패해서 그 기록이 기네스북에까지 오른 박주봉의 이름을 내건 체육관 하나조차 우리 전주에는 없다. 덕진체련공원 ‘전주실내배드민턴장’ 입구에는 ‘사람의 도시, 품격의 전주’라고 적혀 있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나라 배드민턴 역사상 최연소로 국가대표에 발탁되었다. 1982년 덴마크오픈에서 역대 최연소 국제대회 우승 기록을 세웠다. 전 세계 각종 투어 대회 72회 우승으로 1991년에는 기네스북에 이름이 올랐다. 그중에는 올림픽 1회, 세계선수권대회 5회, 아시안게임 3회, 전영오픈 9회 우승이 포함되어 있다. 또 국내 무대 단식 경기에서는 106연승의 신화를 쓰기도 했다. 배드민턴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허버트 스칠상을 1996년에 수상했다. (1934년 국제배드민턴연맹 창설 이후 현재까지 단 11명만 이 상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렸다. 박주봉은 8번째 수상자이다.) 2001년에는 한국 선수 최초로 세계배드민턴연맹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본디 ‘제국의 군주’를 가리켜 부르는 말이 ‘황제’다.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거나 그에 걸맞은 실력을 세계적으로 공인받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도 ‘황제’를 쓴다. 세계 스포츠 역사에도 ‘황제’가 몇 있다. 축구 황제 펠레,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가 그들이다. 역사상 유럽 제국과 이웃 대륙의 황제는 여럿이었다. 하지만 유독 스포츠의 황제는 분야별로 단 한 명뿐이다. 세계인들은 그 한 사람 말고는 누구에게도 권좌를 허락하지 않는다. 메시나 호날두가 아무리 뛰어나도 황제는 펠레 하나다. 잭 니클라우스나 아널드 파머는 레전드일지언정 황제의 자리는 영원히 타이거 우즈의 것이다. 그런데 혹시 아는가, 우리에게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황제’가 한 사람 있다는 사실을, 그가 바로 배드민턴 황제 박주봉이라는 사실을, ‘황제’를 낳고 길러낸 땅이 바로 전주시라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가 그들 적잖이 ‘푸대접’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대학국어’라는 교양과목을 오랫동안 강의한 적 있다. 그 이름의 뜻풀이로 매 학기를 시작했다. ‘대학’과 ‘국어’를 우선 떼어낸다. 각각의 말에 몇 마디 덧댄다. 그러면 ‘대학생다운’과 ‘국어생활’이 된다. 국어생활은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대학생답게 말하고, 듣고, 읽고, 쓸 수 있을까, 그게 바로 이 과목의 핵심 내용이고 주제라는 겁니다, 하면서 ‘뻥’을 치는 것이다. 이쑤시개를 물고 ‘대통령해장국’을 바라보며 뜻풀이를 해보았다. 대통령이 끓인 해장국? 에이, 적어도 그건 아니었다. 대통령 부인이 끓였다면 몰라도. 하긴 누구의 부인 말고, ‘준비된 여성 대통령’ 그분이 해장국을 끓이는 자세로 일했더라면 자신과 나라 꼴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으리. 그렇다면 대통령께서 즐겨 드시는 해장국? ‘땡전 뉴스’ 그 사람 말고는 역대 대통령 누구도 술꾼이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 없으니 그 또한 단숨에 통과다. 급기야는 작업복 차림으로 어느 시장 뒷골목 허름한 식당에서 순대국밥을 맛나게 퍼먹던 쥐를 닮은 그분의 선거 캠페인 영상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뼛속까지 서민’이라면서 국민 성공시대를 열겠다고 열변을 토했던 그는 지금 머물고 있는 ‘방’에서도 가끔 해장국을 드실까. ‘대통령이 드시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맛과 영양이 풍부한 해장국’으로 다시 풀어 보았다. 비로소 식당 주인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모셔다 해장국을 대접하고 싶은 대통령 두 분의 모습이 떠오르다 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것도 잠시, 소낙비 갠 날 들판처럼 눈앞이 다 환해졌다. 그런 해장국을 함께하고 싶은 대통령 ‘보유국’의 국민 중 하나여서라고는 굳이 덧붙일 필요 없겠다, 곧 죽어도 이번에는 술 얘기를 하지 않았다는 말과 더불어….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풍을 손꼽아 기다려보지 않고 학창시절을 보낸 이가 있을까. 날짜가 다가올수록 설레는 마음은 점점 커져갔다. 기대와 설렘은 떠나기 전날 밤에 정점을 찍어서 때로는 밤새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막상 떠난 소풍은 피곤하기만 했다. 기대했던 것만큼 즐거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 싶다. 하루가 행복해지고 싶으면 목욕을 하고, 일주일 동안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한 달을 행복하게 살려면 약혼을 하고, 일 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은 당신은 ○○을 하라고 말한 이가 바로 소크라테스였다고 하니 앞서 말한 ‘○○’이 무엇일지는 대충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더 큰 아파트에 입주할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은 고달파도 행복하다. 계약한 신차를 기다리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또한 소풍과 다를 바 없다. 드디어 입주한 아파트가 당장은 운동장처럼 넓어 보여도 그런 즐거움은 오래 가지 않는다. 새로 출고된 자동차의 ‘신차 냄새’ 또한 자주 맡다 보면 금세 무감각해진다. ‘자동화’되는 것이다. 미래 어느 날 몹시 사랑하는 그와 함께할 달콤한 시간을 떠올리는 오늘은 얼마나 행복하랴. 그래서 가장 완벽한 사랑은 짝사랑일지도 모른다고 하는 거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라는 구절은 <어린 왕자>에서 읽었다. 그걸 다시 보며 빙긋 웃다가 김용택 시인의 <매화>를 문득 떠올린다. ‘매화꽃이 피면 / 그대 오신다고 하기에 / 매화더러 피지 말라고 했어요 / 그냥, 지금처럼 / 피우려고만 하라구요’ 시인들은 참 행복하겠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달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여러 날 묵었으니 이제 좀 가주었으면 했다. 마침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집주인이 지나가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자, 이제 그만 가라고 가랑비가 때맞춰 오시는가?” 그 소리를 듣고 손님이 슬그머니 맞장구를 쳤다. “아, 더 있으라고 오늘은 이슬비가 내리는구나.” 몰라서 그렇지 가랑비와 이슬비는 다르다. 가랑비는 이슬비보다 물 알갱이가 굵다. 빗방울이 가장 가는 게 ‘안개비’다. 그보다는 굵고 이슬비보다 가는 비를 ‘는개’라고 부른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채찍처럼 굵게 쏟아지는 ‘채찍비’, 더 거세게 내리는 건 ‘작달비’다. 물을 퍼붓는 듯한 ‘억수비’는 ‘장대비’와 거의 같다. 내리는 조건이나 모양에 따른 이름도 있다. 소낙비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 ‘여우비’는 햇볕 밝은 한낮에 잠깐 뿌리는 비를 일컫는다. 호랑이 장가간다고 하는 바로 그 비다. 겨울철, 거센 바람에 흩날리는 눈을 눈보라라고 부르듯, ‘비보라’라는 것도 있다. 빗방울 대신 봄날 벚꽃처럼 바람에 꽃잎이 날리는 건 당연히 ‘꽃보라’다. 꽃잎이 비처럼 떨어지는 건 ‘꽃비’이고, 비가 오기 시작하는 걸 알리느라 미리 떨어지는 빗방울을 가리키는 말은 ‘비꽃’이다. 무더운 여름 한나절만이라도 고단한 농사일에서 잠시 놓여나 낮잠이나 푹 자두라고 내리는 비는 말 그대로 ‘잠비’다. 가뭄에 ‘단비’의 뜻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사시사철 비만 내렸다 하면 마음이 설레는 사람들이 있다. 술꾼들이다. 그들 대부분의 가슴에 그득한 슬픔을 어루만져 주는 ‘술비’는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가랑비든 장대비든 잠비든 꽃비든 모두 단비 같은 술비인 것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하지만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라도 늘 푸른 청춘이네….’ 미국 시인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이 쓴 <청춘(Youth)>의 끝부분이다. 이게 78세에 쓴 시라고 하니 ‘늘 푸른 청춘’을 노래하는 시인의 모습이 정겹다. 영원한 청춘이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사무엘 울만이 읊조렸듯 세상에는 스무 살 노인도 있고, 여든 살 푸른 청춘도 있다. 몸이 늙어가는 거야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을까. 영혼이 늙는 게 진짜 늙는 거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칠순을 훌쩍 넘기신 어느 시인께, 이발을 그렇게 하시니까 훨씬 젊어 보이신다고 덕담을 드렸더니 빙긋 웃으면서 그러셨다. “그런 소릴랑은 허덜 말어. 나는, 이발 안 해도 항상 젊거든?”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늙는 데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적어도 피부나 기력은 그렇다. 늙어가는 게 서럽기로 말하면 나보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더하지 않겠는가. 얼굴에 검버섯 피었다고 한탄할 시간 있으면 풀잎에 맺힌 이슬의 영롱한 빛깔을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라. 가끔은 세상을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설레는 가슴으로 매일 새벽빛을 맞으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쉰 살에 이 시를 썼던 천상병 시인은 15년쯤 지난 예순셋 이른 나이에 하늘로 돌아갔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팥 넣고 푹 끓인다 설탕은 은근한 불 서서히 졸인다 빙수용 위생 얼음 냉동실 안에 꽁꽁 단단히 얼린다 프루츠 칵테일의 국물은 따라내고 과일만 건진다 체리는 꼭지 깨끗이 씻는다 팥빙수 난 좋아 열라 좋아 팥빙수 여름엔 왔다야 빙수기 얼음 넣고 밑에는 예쁜 그릇 얼음이 갈린다 얼음에 팥 얹히고 후르츠 칵테일에 체리로 장식해~” 가수 윤종신이 부른 <팥빙수>라는 노래의 일부다. 한자말을 직역하면 ‘얼음물’인 ‘빙수’는 ‘얼음을 잘게 부수어 연유와 설탕, 과일, 향미료 따위를 섞어 만든 먹을거리’다. 놀랍게도 빙수는 기원전 3000년부터 중국 사람들이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얼음을 부수는 방식이나 주로 들어가는 식자재에 따라 이름과 종류도 가지가지지만 윤종신의 노래처럼 그 대표 격은 모르긴 해도 팥빙수일 것이다. 오래된 문헌을 뒤적이다가 ‘빙수’라는 제목을 단 글을 우연히 발견했다. 읽는 재미가 하도 쏠쏠해서 그중 일부를 옮긴다. ‘빙수에는 빠나나 물이나 오렌지 물을 처먹는 이가 잇지만은 어름맛을 정말 고맙게 해주는 것은 샛빨간 딸기 물이다. 사랑하는 이의 보드러운 혀끗 맛가튼 맛을 어름에 채운 맛! 올타 그맛이다. 그냥 전신이 녹아 아스러지는 것가티 상긋-하고도 보드럽고도 달큼한 맛이니 어리광부리는 아기처럼 딸기 탄 어름 물에 혀끗을 가만히 담그고 두 눈을 스르르 감는 사람 그가 참말 빙수 맛을 향락할 줄 아는 사람이다.’ ‘역사적’인 ‘세기의’ 북미 정상회담이 오늘 시작된다. 팥도 후르츠 칵테일도 체리도 샛빨간 딸기 물도 필요치 않겠다. 그저 ‘사랑하는 이의 보드러운 혀끗 맛가튼’ 회담 결과만 날아온다면 그걸 곱게 부순 얼음에 한껏 비벼 먹고 싶은 하루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낮잠, 낮달, 낮술, 낮거리…. 모두 ‘낮’으로 시작되는 말이다. 저녁이나 밤과 차별화시키려고 덧댄 말이다. 숫처녀, 숫총각처럼…. 낮잠, 낮달, 낮술 모두 어렵지 않다. 그럼 ‘낮거리’는? 이 말의 뜻이 궁금하면 짬이 생기는 대로 각자 알아서 스마트폰을 노크해 볼 일이다. 그중 하나, 누가 뭐래도 술은 ‘낮술’이라는 술꾼이 적지 않다. 그건 아마 새참과 함께 내온 농주(農酒)에서 비롯되었지 싶다. 꼭두새벽부터 들일을 하느라 고단해진 몸을 시원한 막걸리 한두 사발로 풀어냈던 게 일부 술꾼들이 찬양해 마지않는 ‘낮술’의 시초였으리라. 낮술은 해가 떨어지기 전에 끝내는 것이 원칙이라고 주장하는 술꾼이 의외로 많다. 초저녁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굳게 믿는 이들도 있다. 낮에 마시는 술이라고 모두 낮술일까. ‘술시’의 술과 달리 낮술은 낯가림이 좀 심하다. 때와 장소와 주종을 퍽도 가린다. 하늘이 천장 높이로 낮게 내려앉아야 한다. 천둥·번개가 야단법석을 떨면서 굵은 빗줄기를 퍼부어대는 날은 낮술에 오히려 적합하지 않다. 아침부터, 혹은 점심 무렵부터 가랑비든 이슬비든 보슬비가 거리를 초작초작 적시는 날이어야 낮술로 제격이다. 그런 날 열일 작파하고 시장골목으로 은근슬쩍 발걸음이 가는 데서 낮술은 시작된다. 재래식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후덕해 보이는 주인아주머니가 즉석에서 부쳐내는 해물파전에 막걸리를 들이켠 다음 손등으로 입가를 닦을 줄 알아야 한다.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 따위는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왁자하게 떠들지도 말 일이다. 정겨운 이와 마주 앉아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나눠 밟으며 조용히 술잔을 비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다 얼굴이 불콰해질 무렵까지도 빗줄기가 허공을 긋고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리하여 창유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시련의 아픔을 달래는 여인의 눈물처럼 애잔해 보여야 낮술은 비로소 온몸에 젖어 드는 법이다. ‘낮술 환영’이라고 적어 붙인 ‘쥔장’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정겹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망스럽다’라는 말이 있다. ‘아주 짓궂은 점이 있다’는 뜻이다. ‘짓궂은’의 ‘짓궂다’는 ‘남을 일부러 괴롭히고 귀찮게 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 ‘일부러’라는 말 속에는 또 ‘악의가 아닌 선의의’,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생각이나 의도가 없는’의 뜻이 들어 있다. ‘시망스럽다’는 사라져가는 순우리말 중 하나다. 흔히들 ‘짓궂다’라는 말로 대신한다. 그런데 이 둘은 뜻이 좀 다르다. 남들이 말리는 일만 골라서 저지르는 사람을 가리켜 시망스럽다고 한다. 그쪽은 등산로가 없어서 위험하니 절대로 가지 말라는 표지판까지 세워 놓았는데도 기어이 들어갔다가 구조헬기까지 출동시키면서 야단법석을 떨게 만드는 이들이 딱 그런 예다. ‘추락할 위험이 있사오니 난간을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는 어느 바닷가에서 발견한 표지판의 문구다. 그곳을 찾은 불특정 다수의 관광객 중에서도 특히 남다르게 ‘시망스러운’ 이들한테 읽으라고 그렇게 적었으리라. 이 문장에 쓰인 어구 중 세 가지가 눈에 띈다. ‘추락할 위험’과 ‘있사오니’와 ‘바랍니다’가 그것이다. ‘추락’은 당연히 ‘위험’한 일이다. 하나만 써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이 무슨 왕조시대인가. 요즘에는 제아무리 높은 사람한테도 ‘있사오니’나 ‘하옵니다’ 따위의 극존칭은 쓰지 않는다. ‘바랍니다’는 뭐가 잘못일까. 흔히들 쓰는 말이긴 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건 I hope 어쩌고저쩌고하는 영어 문장을 번역한 모양새다. ‘추락할 수도 있으니 난간을 넘어가지 마십시오’라고 쓰면 훨씬 간결하지 않을까. 혹시 알고 있는가. 인근 자체단체장이나 시설물 안전관리 책임자의 직책을 적어서 만든 이런 경고 표지판을 굳이 세우는 까닭을…. 시망스러운 이들일수록 시망스러운 짓을 벌였다가 막상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물어 소송 따위를 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일에 대비해서 ‘보험’에 가입해 두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이다. 물론 아니면 말고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아로마(aroma)’는 본디 ‘사람’에게 이로운 식물의 향기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후각과 촉각을 이용해서 몸에 좋은 천연향을 체내에 흡수시킨다는 것이다. 인체의 신경조직과 호르몬에 영향을 주어서 기와 혈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준단다. 체내의 독성 물질을 제거해주기 때문에 이걸 마시면 몸이 가벼워진단다. 건강해진단다. 예뻐지기까지 한단다. 식욕을 억제하는 기능도 있는 게 아로마 향기란다. 다이어트에도 효과 만점일 것임은 불문가지다. 피부에 발라서 마사지하면 지방 연소 효과도 볼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겠다. 그러니 사춘기 소녀들처럼 피부를 매끄럽고 윤기나게 가꾸는 데도 도움이 될 수밖에…. 그런데 이거, 한두 번 사용해서는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한다. 부위별로 꾸준히 마사지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용도 만만치 않으리라. 고급의 경우는 웬만한 서민들 한 달 생활비를 훨씬 웃돌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명색이 사람이라고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겠다. 하긴 웬만한 서민들은 아로마가 어떤 강아지 이름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무자식이 상팔자고, 개 팔자가 상팔자라 했던가. 집집마다 사정이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아예 자식을 두지 않는 것이 상급에 속하는 팔자를 누릴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인 것 같다. 그렇다면 개 팔자는? 오죽했으면 웬만한 사람들보다 차라리 개의 팔자가 낫다고 했을까만, 적어도 그림에 적힌 대로만 보면, 정기적으로 아로마 목욕을 받는 개의 팔자만큼은 세상에 둘도 없는 상팔자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세계 애견 콘서트에서 1등을 차지한 개 한 마리 가격이 수억 원을 호가한다는 말을 듣고 자지러지게 놀란 사오정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아니 무슨 놈의 개가,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그렇게 비싼 거야?” ‘반려견’을 가족처럼 끔찍하게 여기는 이들한테는 기겁할 소리겠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술값이 싸다는 것이야말로 가맥의 가장 큰 장점이다. 유럽 사람들은 작은 병맥주 하나씩만 손에 쥐어도 한두 시간 대화를 나누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곁에 둔 박스에 빈 병을 가득 채워야 직성이 풀린다는 술꾼도 부지기수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대학생들이나 서민들에게 가맥은 그런 ‘직성’에 딱 어울리는 맥줏집이었던 것이다. 전주 가맥에 가면 독특한 안주 맛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게 북어와 갑오징어와 계란말이다. 북어는 버터나 치즈를 발라서 고소하고 바삭하게 구워 내놓는다. 한때는 가맥마다 갑오징어를 두드리는 바깥주인의 쇠망치 소리가 골목길을 텅텅 울리곤 했다. 당근, 양파 같은 채소를 다져 넣어서 부쳐낸 계란말이를 먹어보면 안주인의 손맛도 가늠할 수 있다. 물엿과 각종 한약재로 달인 간장에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넣고 그 위에 마요네즈를 듬뿍 얹어 내놓는 장맛 또한 전주 가맥의 독특한 자랑거리다. 어느 집은 그 덕택에 성업을 이룬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 가맥에서는 그 옛날 골목길 슈퍼 특유의 정감을 찾기가 어렵다. 규모가 커지다 보니 소음이 심해서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이도 적지 않다. 맥주값이 웬만한 호프집 수준인 곳도 적지 않다. 진열대에서 무시로 집어다가 봉지를 북북 뜯어서 술안주로 먹던 새우깡이나 맛동산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스프를 섞은 생라면을 곁들이고 싶으면 근처 편의점에 가서 직접 사와야 한다. 그걸 곱지 않게 바라보는 주인도 더러 있으므로 그럴 때는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가맥, 그 이름이 ‘과메기’처럼 들리는 이들이라면 전주 가맥에 들러서 얼음맥주를 마셔볼 일이다. 대신 한 가지는 알아두는 것이 좋다. ‘무슨 무슨 가맥’이라는 상호가 걸린 집은 대부분 ‘짝퉁’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가맥은 ‘가맥’이라는 말조차 들먹이지 않는다. 그림처럼 ‘슈퍼’ 상호에, 그 옛날 골목길 구멍가게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야 진짜 가맥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대낮부터 술에 촉촉이 젖은 두 사내가 골목길을 걷는다. 그중 하나가 담배를 사려고 근처 구멍가게로 들어간다. 주인아주머니가 담배를 꺼내오는 사이 그는 음료수 냉장고에 가지런히 진열된 맥주병을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마침 가게 한쪽을 보니 낡은 테이블 하나와 등받이 없는 의자 서너 개가 놓여 있는 게 아닌가. 그는 담뱃값을 치른 다음 냉장고를 가리키며 주인아주머니에게 저기 있는 맥주를 몇 병 꺼내다가 여기서 마셔도 괜찮겠는지 좀 겸연쩍게 묻는다. 수더분하게 생긴 그 아주머니, 얼마든지 그러시라고 대답한다. 그는 밖에 서 있는 친구를 구멍가게 안으로 불러들인다. 주인아주머니가 맥주잔을 씻어다가 탁자에 내놓는다. 한 친구는 냉장고에서 맥주 두 병을 직접 꺼내오고, 다른 친구는 새우깡 한 봉지를 갖다 놓는다. 즉석에서 술상이 차려진다. 한두 잔 마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 테이블 한쪽에는 어느새 빈 맥주병이 이열 횡대로 열두 병이나 서 있다. 새우깡 안주가 다 떨어지고 보니 이번에는 진열대 한쪽에 놓인 북어가 눈에 띈다. 입맛이 저절로 동한다. 맥주 안주로는 그만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아주머니에게 부탁하자 연탄불에 노릇노릇 구워서 가늘게 찢은 북어가 고추장과 함께 테이블 위에 놓인다. ‘가게 맥주’를 줄여 부르는 전주의 ‘가맥’은 대략 그런 식으로 시작되지 않았을까. 다음날 혹은 그 며칠 뒤, 구멍가게에서 오붓하게 마셨던 맥주 맛을 잊지 못한 아까의 두 친구가 다른 친구 두어 명을 더 데리고 그 집을 또 찾는다. 그게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동네 구멍가게마다 맥주 테이블을 하나씩 더 들여놓는다. 그 집 안주인이 솜씨를 발휘한 별도의 안주까지 손님들의 입맛을 돋운다. 그렇게 해서 가맥은 ‘음식문화 창의도시’인 전라북도 전주시를 대표하는, 비빔밥보다 더 ‘전주적’인 술집으로 자리를 잡아갔던 것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꾀까다롭다’라는 말이 있다. ‘까다롭다’보다 정도가 조금 더 심한 경우에 주로 쓴다. 우리말의 숫자와 단위를 나타내는 단어들도 정확하게 가려내기가 꾀까다롭다. ‘예닐곱’과 ‘대여섯’과 ‘여남은’에서 가장 큰 숫자는? 어느 예능 프로에 나왔던 문제 중 하나다. 정답은 열 하고도 조금 남는 수, ‘여남은’이다. <도전 골든벨>에서는 혹시 이런 걸 묻지 않을까. 다음에서 말하는 숫자의 합은 얼마일까요? 고등어 두 손과 오징어 한 축…. 정답은 ‘24’다. ‘고등어 한 손’은 두 마리고, ‘오징어 한 축’은 스무 마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말 겨루기> 수준으로 난이도를 높여보자. 북어 두 쾌와 달걀 다섯 꾸러미와 청어 네 두름과 장작 한 강다리와 바늘 세 쌈 중에서 가장 큰 숫자는? ‘장작 한 강다리’다. ‘쾌’는 숫자로 20, ‘꾸러미’는 10, ‘두름’은 20, ‘강다리’는 100, ‘쌈’은 24여서 그렇다. 시골 식당에 걸린 ‘5섯명’이 정감 있으면서도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말에는 ‘강다리’나 ‘꾸러미’처럼 숫자 ‘5’를 묶음 단위로 쓰는 게 없을까. 있다. ‘도적’이다. 그러고 보니 도적을 묶어 말할 때는 ‘5섯’이 제격이겠다. 근거가 있다. 바로 ‘을사오적(乙巳五賊)’이다. 도적을 세는 단위로 숫자 ‘5’를 계승한 이가 김지하 시인이다. 1970년 5월, <사상계>에 발표한 담시(譚詩) <오적(五賊)>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시인은 당시 지도층의 부패상을 ‘을사오적’에 풍자적으로 빗대어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 일로 시인과 출판사 관계자들은 반공법 위반에 반국가단체 찬양고무동조죄로 엮여 감옥으로 끌려갔다. 이른바 ‘사상계 필화사건’이다. 시인이 말했던 다섯 도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도 달라진 게 별로 없어 보인다. 이런 건 어떨까. 해마다 우리 사회의 ‘오적’ 아니 ‘5섯’을 강다리나 꾸러미로 묶어서 발표하는 것이다. 그 또한 적잖이 꾀까다로운 일일까.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배부르고 등 따순 게 으뜸이라고 했다. ‘밥심으로 산다’라는 말도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다들 허기만 면해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 얘기다. 바로 엊그제 일 같다. 물론 요즘에도 우리 사회 도처에는 그 옛날처럼 춥고 배고픈 이들이 적지 않다. 그 시절, 이 땅의 어머니들이 고된 일상 속에서도 끝끝내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게 하나 있다. 지아비와 자식들에게 당신 손으로 밥을 지어 상을 차려내는 일이었다. 무쇠솥에 쌀을 씻어 안치고 장작불을 때는 고된 과정을 거쳐야 했으면서도 밥 짓는 일을 번거롭게 여긴 어머니는 없었다. 어린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걸 보고 있으면 속까지 다 흐뭇해지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릴 때마다 어머니들은 걸레질을 멈추고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야가 밥은 제때 챙겨 묵고 댕기는지….” 어쩌다 전화 연락이라도 닿으면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지?”라는 말부터 꺼내곤 했다. 전화세 많이 나온다면서 통화를 서둘러 끝내다가도 이렇게 당부하는 것 또한 빠트리는 법이 없었다. “끼니 거르지 말고, 밥은 꼭 챙겨 묵거라. 알겄지?” 밥은 어머니의 정성이었다. 자식에게는 또 그게 보약이었다. 비타민이 따로 없었다. 돌이켜보면 아련한 그리움 자체이기도 했다. 어느 집이든 귀하고 풍족한 삶을 바라며 눈앞에 그렸던 것도 ‘이밥에 고깃국’ 아니었던가. 요즘에는 어디를 가든 밥을 쉽게 사 먹을 수 있다. 그래도 어머니가 손수 지어주셨던 ‘집밥’에 비할까. 어느 작은 카페 벽에 붙어 있는 ‘밥은 묵고 댕기나’에 눈길을 물끄러미 가져가다 보면 누군들 그 옛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으랴. 찬바람 몰아치던 어느 날 저녁, 끼니때를 한참 지나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집에 돌아오면 무쇠솥에 지은 밥을 그릇에 따로 담아서 아랫목 이불 속 깊이 묻어두었다가 상에 올려주시던 어머니의 그 따뜻한 손길이 그립지 않으랴.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얼이 깃든 굴’, ‘얼굴’이다. ‘얼굴’의 다른 말로 가장 흔한 게 ‘낯’이다.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신관, 광대, 용안, 낯짝, 쪽, 세숫대야 등이다. 이 말들은 품격이 조금씩 다르다. ‘신관’이나 ‘낯’은 비교적 점잖은 축에 속한다. ‘용안(龍顔)’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광대’와 ‘낯짝’은 급이 조금 낮다. ‘쪽’이나 ‘세숫대야’는 더 아래다. ‘쪽 팔린다’의 ‘쪽’도 거기에 해당된다. ‘세숫대야’를 즐겨 쓰는 이들은 ‘면상’도 입에 더불어 담는다. 상대의 얼굴을 점잖게 낮춰 부르는 말이 바로 ‘광대’다. ‘광대뼈’도 ‘광대’에서 나왔으니 ‘광대뼈’는 ‘얼굴뼈’다. ‘광대’는 얼굴 말고도 다양한 뜻을 가졌다. 남사당패에서 연극이나 줄타기, 판소리를 하던 사람을 ‘광대’라고 했다. 그들이 무대에 오를 때 쓰는 탈이나 몸에 걸치는 옷도 ‘광대’다. 얼굴에 물감을 칠하는 일도 ‘광대’다. 배우들이 분장하는 걸 옛날에는 ‘광대 그린다’라고 했다. 메이크업 안 한 얼굴이 ‘맨얼굴’이다. 요즘에는 그걸 줄여서 ‘민낯’ 혹은 ‘쌩얼’이라고 부른다. 거리에서 그런 얼굴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다시 보자 조명발, 속지 말자 화장발’이라고 하지 않던가. ‘20대는 화장, 30대는 분장, 40대는 변장’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들어봤다. 가수 남진은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한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여자가 정말 여자지’라고 노래했다. 요즘 여성들에게 그런 노랫말이 귀에 들리기는 할까. ‘작은 얼굴! 윤곽 또렷! 스포트라이트 받는 페이스’, 어느 화장품 전문매장에서 보았다. 과연 얼굴이 주먹만 해야 미인인가. 윤곽까지 또렷하면 그걸 어디 우리 얼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스포트라이트 받는 페이스’, 요즘 참 가지가지다. 그중 압권은 ‘쥐’를 닮은 ‘페이스’ 아닐까. 마흔이 넘었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했다는 링컨도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을 지냈다고 다 같은 건 아닌가 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아, 오래간만에 같이 누워보는군.” “아, 행복해요. 더 꼭 껴안아주세요.” 1974년에 개봉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별들의 고향>에서 남녀 주인공 문오와 경아가 나눈 대화 한 토막이다. 그 장면이야 뭐 안 봐도 뻔하지 않을까. 지금 50대 중반 이상인 사람들 대부분은 이 영화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 물론 그 원작은 1972년부터 1973년까지 모 일간신문에 연재된 최인호의 동명 소설이다. 서로 안아주고 안기는 행위에는 ‘위로’ 혹은 ‘위안’의 뜻이 들어 있다. 2017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추도사를 읽은 뒤 퇴장하던 김소형 씨와 그녀의 발걸음을 돌려세운 문재인 대통령이 나눈 포옹이 그걸 잘 말해준다. 그 모습을 통해 5·18 희생자 유가족들은 위로를 적잖이 받았다는 후문이다. 영화 속 경아가 문오에게 ‘더 꼭 껴안아’ 달라고 말했던 것 또한 자신의 고단한 삶을 위로 받고 싶어서였으리라. 가슴을 맞대고 서로를 껴안는 건 사랑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다. 반가움의 표현이다. 진한 석별의 정을 나눌 때도 서로를 껴안고,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우리 또 만나자는 등의 말을 건넨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소형 씨에게 아버지 무덤에 함께 가자고 약속하고 그걸 실천했다고 한다. 그건 또 심리적 일체감의 상징이기도 하다. 운동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선수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환호하며 감격의 눈물을 쏟는다. 거리에 놓인 큼지막한 돌덩이 화분 가장자리에 적힌 ‘안지 마세요’를 바라보는 심정이 좀 복잡했다. ‘앉지 마세요’라고 쓰지 않아서가 아니다. 당신에게 위안 받고 싶지 않으니까,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생각은 요만큼도 없으니까, 은근슬쩍 다가와서 그 더러운 몸뚱어리를 들이대지 말라고, 말을 듣지 않으면 엄청 불쾌해져서 나도 어떻게 행동하게 될지 모른다고, 그러니까 나를 ‘안지 마라고!’ 같아서였던 것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해안 길을 따라 변산반도 채석강 쪽으로 가다 보면 아름다운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간이 전망대가 있다. 차를 잠시 세워두고 그 위에 올라 안내판에 적힌 ‘하섬의 전설’을 읽었다. ‘옛날 옛적에 육지에서 노부모와 아들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태풍으로 부모님이 탄 고깃배가 하섬까지 떠내려가서 돌아오지 못하자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용왕님께 빌고 빌어 효성이 가상해 용왕님이 바닷길을 열어주었다고 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 전설은 누가 정리했을까. 이 안내판 제작을 맡았던 그분은 또 이야기를 다듬는 데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겠는가. 그런데 문장을 짤막하게 썰어서 정리했더라면 더 좋았겠다. ‘전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잠깐 했으니,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법인가 보다. ‘옛날 옛적에 노부모와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태풍으로 부모님이 탄 고깃배가 하섬까지 떠내려가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효성이 지극한 아들은 부모님이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의 효성에 감복한 용왕님이 바닷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긴 문장을 잘라서 머릿속으로 대충 정리해 보았다. 관광객들에게 전설을 빠르게 전달하는 데는 이렇게 쓰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의문 하나가 꼬리를 물었다. ‘하섬의 전설’처럼 많은 이들이 문장을 길게 늘여 쓰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모양이나 뜻이 같은 말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생각이나 사실을 떠오르는 대로 늘어놓는 태도도 한 몫 한다. 장황하게 쓸수록 문장의 품격이 오를 거라는 그릇된 인식도 문제다. 문장이 길어지면 생각이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다. 주어와 서술어가 어긋나는 비문을 쓸 가능성도 높다. 하나의 문장으로는 가급적 한 가지 생각이나 사실만 전달하는 것이 좋다. 좋은 글을 쓰려면 문장을 짧게 다듬어 쓰는 연습부터 반복해야 하는 까닭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아들만 귀하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딸자식은 이름조차 대충 지었다. ‘김끝순’ 같은 이름도 옛날에는 흔했다. ‘박딸고만’도 들은 적 있다. 딸로는 너로 마지막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기생들 이름에는 ‘월(月)’을 주로 썼다. ‘산월’이니 ‘유월’이니 ‘명월’이니 하는 게 그런 예다. ‘향(香)’도 마찬가지였다. ‘춘향’이가 대표적이다. ‘자’, ‘숙’, ‘순’, ‘희’…. 무엇일까. 과거에 대단히 즐겨 썼던 여자들 이름 끝 글자다. 1973년 2월에 어느 시골 초등학교를 졸업한 여학생들 135명의 이름을 살펴보았다. 이름 끝 글자로 ‘자(子)’를 쓴 이들이 무려 21명이었다. 135명 중 16%에 이른다. ‘순(順)’은 17명으로 13%였다. 가운데 글자로 ‘순’을 쓴 이름도 13명이나 된다. 둘을 합치면 ‘자’와 쌍벽을 이룬다. ‘숙(淑)’은 모두 14명이고, ‘희(姬 )’를 쓴 이름은 10명이다. ‘자(子)’, ‘순(順)’, ‘숙(淑)’, ‘희(姬)’ 모두 한자까지 똑같다. 이 넷을 이름의 끝 글자로 쓴 여학생이 모두 62명이다. 전체의 46%에 이른다. 가운데에 쓴 것까지 더하면 그보다 훨씬 높다. 여자들 이름 가운데나 끝에 ‘미’를 쓰기 시작한 건 꽤 오래 전 일이다. 그 대세는 ‘김미자’, ‘박미순’ 등이다. 그 ‘미’를 조금 진화시킨 1980년대적 이름으로는 ‘미영’이나 ‘영미’가 있다. 물론 요즘 여자아이들한테 이런 이름을 지어주는 부모는 드물다. 이틀 전에 폐막한 평창 동계올림픽의 최고 히트 상품으로 떠오른 이들이 있다. 여자 컬링 ‘국가대표’다. 그들의 선전은 온 국민에게 진한 감동 스토리를 전해주었다. ‘갈릭 소녀’, ‘안경 선배’ 같은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그와 더불어 ‘국민 이름’으로 부상한 게 바로 ‘영미’다. 외국인들은 그게 무슨 컬링 용어인 줄 알았다고 하니 말 다했다. 정작 당사자인 김영미 선수는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그 이름이 하도 촌스러워서 개명까지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한다. 김영미 선수, 앞으로 개명하기는 다 글렀으니 이를 어쩌나….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남자와 여자로 성이 태생적으로 나누어져 있다 보니 세상에는 별의별 해괴한 일이 다 벌어진다. 수많은 희로애락의 대부분이 거기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요즘 TV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뉴스 중 하나를 바라보는 심정도 참 답답하다. 심지어는 국가간에 벌어지는 크고 작은 분쟁이나 전쟁의 직간접적 원인이 된 적도 있다고 하니 말 다했지 않은가.남자와 여자를 극명하게 차별하는 곳이 있다. 공공 사우나와 화장실이다. 제아무리 죽고 못 사는 남녀라도 그 앞에서는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일부 국가에는 남녀공용 대중목욕탕도 있는 모양인데, 가본 사람 얘기로는 분위기가 영 별로(?)라고 한다. 어떤 남자는 여장을 하고 여탕에 들어갔다가 적발되어 처벌을 받기도 한다.남녀 화장실을 별도로 마련해놓고 그걸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쓰거나 그려서 출입문에 붙이는 문자나 그림이 비주얼 시대의 흐름에 맞게 나날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에는 그걸 ‘남’과 ‘여’로 간명하게 적었다. 요즘에야 물론 ‘MAN’과 ‘WOMAN’이 대세다.색깔로 구분하는 곳도 있다. 그럴 때는 으레 남자는 파랑, 여자는 빨강 계열을 쓴다. 거기에 남녀의 이미지를 다양한 그림이나 선으로 형상화하기도 한다. 신랑과 각시의 모습을 예쁘게 그려 붙인 곳도 있다. 이 경우도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MAN’이나 ‘WOMAN’은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어떤 남자 화장실은 선 채로 오줌발 힘차게 날리는 모습을 이미지화해서 구분하기도 한다.그런 것들에 적잖이 식상해져서일까. 아예 ‘남자’라고 우직하게 써 붙인 화장실 표지판이 오히려 신선하게 와 닿는다. 로마자에 온갖 그림이나 세련된 이미지로 장식된 것들만 봐 와서 그럴 것이다. 아니, 본질적으로는 그게 아닐 것이다. 겉만 화려하게 포장해서 눈속임을 일삼는 사람들이 득세하고 있는 세상 탓일지도 모르겠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형제끼리 사소한 일로 토닥거릴 때마다 어른들이 가끔 들려준 말이 있다. 지는 게 이기는 거란다. 특히 형이나 언니를 따로 불러 앉혀 놓고 타이르곤 했다. 네가 너그럽게 양보하라고, 지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졌는데 어떻게 이겼다는 거지? 그게 사실은 ‘져주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걸 머리가 좀 굵어진 다음에 깨달았다.누군가가 부럽다는 건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일 것이다. 명문대학에 합격한 친구, 대기업에 취직한 아들을 둔 이웃, 자신의 집보다 서너 배 넓은 아파트의 주인, 수십억 원짜리 연봉 계약을 체결한 프로야구 선수, 철철이 먼 나라로 떠나는 여행가, 젊은 나이에 고속으로 승진해서 기사 딸린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대기업 임원이 누군들 부럽지 않을까.지위가 높거나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이들만이 아니다. 가수 뺨치게 노래를 잘 부르는 후배, 나이보다 10년 이상 젊어 보이는 투명하고 매끄러운 피부, 이날 이때까지 치과는 근처에도 가본 적 없다고 말하는 노인, 몸에 밴 포용적 리더십으로 부하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운 상사, 야참까지 그렇게 먹어대는 데도 전지현처럼 날씬하게 유지되는 몸매 등이 그런 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고 적힌 낙서를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해묵은 옛말 하나를 떠올린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도 말라 했던가. 죽었다 깨나도 너는 그런 연봉 못 받는다, 타고난 음치는 또 어쩔 것이며, 제아무리 다이어트해도 그 키에 전지현 몸매라니 가당키나 한 일이냐. 거기에 되묻는다.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면 평생 못 오르는 거 아닐까.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사촌이 논을 샀으면 직접 가서 봐야지요, 그렇다. 맞다. 가서 보는 거다. 부러워서 배 아플 시간과 열정이 있으면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돈을 어떻게 벌어서 얼마에 샀는지 알아야 자신도 논이든 빌딩이든 살 수 있을 거 아닌가. 부러워만 하면 진다. 부러워할 줄도 모르면 평생 지고 살 수밖에 없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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