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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미 대통령선거 오보의 교훈

 

 

 

 

"인간이 아니라 신과 법에 따르겠다".

 

 

고어의 이 말 한마디로 무려 36일간 혼미를 거듭했던 미국 43대 대통령 선거전이 실질적으로 끝이 났다. 최고로 발달된 민주주의 제도를 자랑하던 미국이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어 세계 최강국의 체면이 크게 손상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지난 12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수개표 결정을 파기하고 환송하라는 판결 한마디에 분쟁이 일시에 가라앉고 바로 이어서 고어가 패배 인정 선언을 하는 걸 보고서 지난 30여일 동안의 조롱과 비웃음이 하루아침에 미국이란 나라의 저력과 성숙함에 대한 경외감으로 바뀌고 말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만약에 이런 일이 우리 나라에서 일어났다고 가정을 해보자. 아마도 십중팔구 커다란 소요와 함께 경우에 따라 폭동까지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투표에서 승리하고 법에서 패배한" 후보의 지지자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또한 억울하게 패한 후보가 당선자의 승리를 인정하겠는가?

 

 

지난 36일간 대 혼란의 주된 원인은 미국 선거제도의 불완전성에 있음에 틀림없지만, 언론 또한 이번 혼란을 부채질했다는 비난을 면키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선거가 끝난 직후 언론이 빚어낸 연속적인 오보는 후보들과 국민들을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고어 후보는 언론의 예상보도만을 믿고서 부시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패배를 인정했다가 다시 수 시간 후에 패배 인정을 취소했고, 결국 30여일 후에 또 다시 패배를 인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한마디로 이번 사태의 발단과 원인은 선거여론조사, 그 것도 그 정확도가 거의 100%라고 할 수 있는 출구조사(Exit Poll)가 단초가 되었다. 언론의 첫 번째 실수는 개표 초반인 11월 7일 저녁 7시(이하 현지 시간)에 일어났다. CNN 등 주요 텔레비전 방송들은 출구조사를 토대로 플로리다에서 고어가 부시를 꺾고 이겼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다 두세 시간 후인 밤 10시 경 방송사들은 이를 취소하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고쳐 발표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8일 새벽 2시 15분께 CNN이 부시가 승리했다고 보도하였고, 서로 눈치만 보던 다른 언론사들도 뒤질세라 일제히 부시의 승리를 보도하였다. 그러나 채 1시간도 못가서 언론은 부시의 승리를 유보하고 "재검표"로 제목을 바꿔 달고 말았다.

 

 

지난 4월 13일 제 1당조차 맞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전체 227개 선거구 중 20여 곳에서 당락이 뒤바뀌고 만 우리 나라의 16대 총선 출구조사나 이번 미국의 대선 출구조사가 빚어낸 오보의 공통 원인은 역시 언론의 성급성에 있다고 하겠다. 16대 총선에서 나타난 불과 3표, 11표 등의 표 차이나 미국 플로리다주의 1,784표(1차 개표) 차이의 이른바 초경합지는 표본조사를 통해 선거결과를 예측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경우에는 '판단불능'으로 처리하고 판단을 보류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우리 나라 방송사들이 특종과 속보 경쟁 때문에 성급하게 굳이 당락을 예측한 것이 잘못이다.

 

 

우리 언론은 이번 미국 대선의 오보 파동을 통해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첫째는 선거에서 속보 경쟁이 결과적으로 국가에 엄청난 혼란과 재앙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우리 나라에서도 선거여론조사가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결국 공정하고 신뢰할만한 여론조사만이 국민들의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도와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국의 훌륭한 교훈도, 그리고 자신의 참담한 실패 경험도 막상 선거 때만 되면 특종과 속보에 눈이 멀어 맥없는 공염불이 되고 만다. 우리 언론은 이러한 풍토를 바꾸지 않는 한 제 2, 제 3의 또 다른 오보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권 혁 남(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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