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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게릴라



 

BC 166년∼BC 165년에 유대는 당시의 강적 그리스군과 시리아군의 침략을 받았으나 각지에서 주민이 종교적· 사회적으로 단결하고 봉기하였다. 장비와 훈련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하여 익숙한 지형을 이용하고, 분산·기동·야습, 주민의 협력 등으로 예루살렘을 끝까지 지켰다. 그 전술은 오늘날의 게릴라 전술과  흡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스페인어로 소규모 전투를 뜻하는 게릴라(guerrilla)는 당원, 동지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파르티(parti)에서 비롯된 빨치산(partizan)과 거의 같은 단어로 사용된다.


 

비정규 전투행동 자체를 게릴라전이라고도 하며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원정했을때 스페인 사람들의 무장 저항을 게릴라라고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게릴라는 보통 조직적인 지휘·통신·보급·위생 등이 없고, 단독 또는 소부대의 행동에 의해 적을 기습하여 전과를 거두고, 신속하게 빠져나와 일반 민중속에 숨어서 반격을 피한다. 일반인과 뒤섞어지는 특성 때문에 일반인이 큰 피해를 입기도 한다. 또한 게릴라는 지역 주민들의 지원을 받는 일이 활동의 전제가 되며 주민들의 지원 없이는 효과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가 없다.


 

게릴라는 정규군이 없는 부족이나 민족 또는 나라가 외적의 침략에 대하여 지리적·사회적 또는 종교적·정신적 연대감과 교묘한 전술로 대항한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게릴라전에 종사하는 전투원들은 어느정도 조직적인 체계를 갖춘 의용대나 민병대원과 달리 포로로서의 대우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게릴라가 군사적으로 유효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한, 비록 게릴라가 포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처형된다해도 앞으로 게릴라는 계속 나타날 것 같다.


 

이러한 게릴라의 속성을 인용하여 연전에 게릴라성 폭우라는 말이 등장하였고 며칠전에 모방송국에서 진행하는 게릴라성 콘서트가 전주에서 있었다.


 

전주시 인구 61만명이라고 소개하면서 역대 개최장소중 가장 작은 도시라 성공여부가 걱정된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하지만 전쟁이건 폭우건 콘서트건 아직도 게릴라는 위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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