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31 00:49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오목대] 馬耳山



 

진안군의 진안읍과 마령면의 경계에는 두 개의 큰 산봉우리가 위치하고 있다. 우리가 부르는 마이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이 산은 봉우리 두 개가 높이 솟아있기 때문에 용출봉(湧出峰)이라 하였으며, 동쪽을 아버지 서쪽을 어머니라 하였다.

 

신라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이라고 불렀으나 조선시대 태종이 남행(南幸)하여 산의 모양이 말의 귀와 흡사하다고 하여 마이산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속칭 동쪽을 수마이산, 서쪽을 암마이산으로 부르고 있다.

 

마이산은 그 특이한 형상 때문에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 특히 이갑용 처사가 25세에 마이산에 입산하여 솔잎을 먹으며 수도하던 중에 신의 계시를 받아 쌓았다는 만불탑(萬佛塔)과 80여기의 마이산탑사는 신비로울 정도이다.

 

또한 산의 남쪽에는 은행나무에 조각된 목불좌상과 14위의 관음보살상이 소장되어 있다. 신라시대의 고찰 금당사가 있으며, 태조 이성계가 등극전 임실의 성수산에서 백일 기도후에 내려와 마이산에 말을 매어 놓았던 자리인 이산묘(이山廟)가 있다.

 

뿐만 아니라 단군 성조와 태조, 세종, 고종의 위패를 회덕전과 조선시대 명신 그리고 거유를 모신 영모사와 함께 구한말의 지사와 의병장 33인을 모신 영광사를 품고 있는 명산이다.

 

그런데 최근 이 지역에서 구전되는 전설과 설화에 비추어 볼 때 암마이산과 수마이산의 이름이 바뀌었다는 설이 대두되어 설왕설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 있고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역사적 문헌과 관련 사료 등을 통하여 철저하고 명명백백한 고증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전설 따라 삼천리와 같은 이야기로 자칫 정체불명의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desk@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