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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冬至

 



오누이들의 정다운 이야기에/어느 집 질화로에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콩기름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파묻은 불씨 헤치며 잎담배 피우시며/‘고놈 두눈동자 초롱같애’하며/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바깥은 연신 눈이 내리고/오늘밤처럼 눈이 내리고…(중략)

 

우리 민족이 농사를 천직으로 앍로 살아가던 50∼60년대 겨울밤을 배경으로 해선 쓴 김용호씨인의 ‘눈오는 밤에’첫 대목이다.

 

속된 말로 ×구명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이라 겨울나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그때는 가족끼리, 이웃과 함께 오순도순 엄동설한을 잘도 이겨냈다.

 

구멍난 양말 기워 겹겹이 끼워 신고 찢어진 문풍지사이로 들어오는 황소바람 헌 옷가지로 틀어막으며 살았으나 그래도 그당시 겨울은 느긋한 삶의 여유가 있었다.

 

유난히도 과부가 많았던 시절이었지만 춘향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조웅전이 있어 용케도 동지(冬至)섣달 기나긴 밤 지새울수 있었다.

 

또 그때는 난방시설이라야 아궁이에 불지피는 것이 고작이고 이부자리야 검정물 들인 무명이불이 전부였지만 간밤에 까마귀 얼어죽었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사람 얼어죽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집안에 있으나 문밖을 나서나 겨울추위 무서운줄 모르고 먹을것이 지천으로 널려 배고픈줄 모르는데 왜 이리 세상살이가 각박하고 어려운지 모르겠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으로 백수들은 늘어만 가고 백수들 일부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길거리를 떠돌고 있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11월 현재 전국의 노숙자수는 4천8백46명으로 3년째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 서울시에서만도 올들어 14명의 노숙자가 목숨을 잃었고 이가운데 10명은 외로움고 추위를 이기지 못해 술로 생활하다 간질환으로, 나머지는 정신질환이나 폐렴, 결핵, 뇌출혈로 숨졌다고 한다.

 

오늘이 대설(大雪)과 소한(小寒) 사이에 끼어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된다는 동지다. 일년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기도 하다. 혹한이 오거나 폭설이 내리는 날에는 동네사람들이 혼자 사는 노인네 집을 둘러보던 그시절이 그립다고 한다면 지나친 낭만주의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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