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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不孝의 책임

 

 

 

부모에 대한 효(孝)는 우리 민족에게는 변함없는 도덕과 윤리규범의 으뜸이다. 우리 조상들은 ‘효는 하늘의 불변하는 기준이요 땅의 떳떳함’(天之經 地之義)이라 하여 인륜을 넘어 천륜이라고까지 단언해 왔다.

 

공양미 3백석에 몸을 팔아 심봉사의 눈을 뜨게한 효녀 심청의 얘기나 부모간병을 위해 대변을 맛 보기도 했다는 효자의 얘기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라는 효행이 과연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시사해 주고 있다.

 

그러나 효행록(孝行錄)에 전해 내려오는 이런 수많은 사례들이 오늘의 가치기준으로 볼때 얼마나 실천적 규범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부모가 주신 머리털 하나도 소중하게 여길줄 아는 전통적 효도관을 지금의 고도 산업사회에 대입(對入)시켜 평가하는 것 자체가 낡은 사고(思考)일지도 모른다.

 

갈수록 더 해가는 핵가족화 영향으로 부모간이나 가족간 유대가 붕괴되어 가는 마당에 삼강(三綱)이 어떻고 오륜(五倫)이 어떻고 해봤자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 오는 세태가 아닌가.

 

물론 우리사회 윤리의 근간을 이루는 효를 몸으로 실천하는 효자·효녀들의 얘기는 아직도 주변에 많다. 신부전증을 앓는 어머니에게 신장을 떼어준 딸, 간암으로 시한부 생명을 사는 아버지에게 간 이식수술을 해준 아들의 효행이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하지만 ‘장병(長病)에 효자없다’는 말처럼 치매를 앓는 노부모때문에 온갖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불효자라고 손가락질 받는 억울한 자식들도 많은게 우리사회다. ‘진자리 마른 자리갈아 뉘시던’하늘같던 부모의 은혜가 고부간이나 부자간 갈등으로 송사(訟事)의 대상으로 지탄받는 경우 또한 없지 않다.

 

엊그제 경기도 의정부지원에서 내려진 ‘굶어죽은 노모’에 대한 판결은 새삼 효란 무엇인가를 되돌아 보게 한다. 치매를 앓는 노모를 돌보지 않아 굶어 죽게한 며느리 대신 그런 정황을 알면서도 못본채 방치한 아들에게 법은 더욱 무거운 형벌을 내렸다.

 

그러나 ‘자식으로서의 최소한 도리’와 결과적으로 ‘가족간 불화의 씨앗’을 제공한 치매성 노인의 의식 상충은 과연 어떤 윤리적 잣대로 재단할수 있을까. 재판부도 도덕과 인륜, 효를 법으로 강제할수 밖에 없는 현시를 고민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이런 경우가 어디 그 쪽 뿐일것인가에 생각이 이르면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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