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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殺生簿

 

 

 

딱히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나 역사적 변혁기에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숙청 작업이 어김없이 뒤따른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을 잡은 정치집단은 어떤 형태로든 낡은 제도와 관행을 일소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는데, 가장 먼저 손을 대는 것이 인적청산이다.

 

권력의 속성이 그렇거니와, 과거 대립적 관계에 있던 껄끄러운 인물들과 한 배를 타는 것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주도권을 잡은 쪽에서는 어떻게든 반대 편을 털고 가려고 궁리를 한다. 반드시 ‘구(舊)시대 인물’이라는 죄목과 ‘새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구실을 붙여….

 

대통령이 바뀌지만 정권을 재창출한 소수 정권이라서 모두 함께 가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백과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단어인 ‘살생부(殺生簿)’라는 것이 나돌아 민주당 내부 분위기가 살벌한 모양이다.

 

민주당 의원 94명을 특1등공신부터 역적중의 역적에 판단 유보 및 기타까지 7등급으로 나눈 이 살생부를 보면, ‘우리가 아직도 조선시대를 살고 있나’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물론 살생부와 공신전 명단은 노무현(盧武鉉) 당선자에 대한 충성도(?)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번 대통령선거를 지켜본 국민들은 대체적으로 노당선자의 승리를 기적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선거기간 내내 살얼음판을 걸었고 떨어지기도 했으니 그 긴장감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선거에 비협조적이었던 의원이나 후단협(候單協)을 만들어 노당선자를 흔들어 댔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에 대해 섭섭한 감정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한나라당 의원이 아닌 이상 어찌 노당선자가 패배하기를 바랐겠는가. 굳이 나누자면 공신에 등급을 매겨야지 ‘역적중의 역적’이라는 표현은 다분히 권력투쟁의 냄새가 짙게 풍기고, 섬뜩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단순히 노당선자에 대한 공헌도에 따라 정치생명이 엇갈려서는 안된다. 정치판에서 퇴출시켜야 할 정치인이 있다면 과거 그의 행적으로 평가해야지, 줄서기에 다름아닌 선거기여도로 따질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적어도 정치적 명분을 고려한다면 노당선자에게 부담만 안겨주는 살생부 논쟁 따위는 여기서 중단해야 한다. 진정한 정치 개혁은 공(功) 싸움을 해서 절대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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