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년 15대 대통령선거 전에 당시 김대중(金大中)국민회의 총재의 비서출신 의원 7명이 '집권후 자리를 갖지 않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한 일이 있었다. 이들의 백의종군 결의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가신 출신인 홍인길(洪仁吉)의원과 YS의 아들 김현철(金賢哲)씨의 구속사건이 계기가 됐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YS정권의 이런 비리가 DJ가 집권할 경우에도 되풀이 되지 않겠느냐는 국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였다. 이른바 '대의(大義)를 위한 자팽론(自烹論)'으로 평가받은 이 결단은 그러나 그후 5년간의 정부 행적으로 퇴색되고 말았다.
요즘 '강을 건넜으면 뗏목은 버려야 한다'는 말이 노무현(盧武鉉)대통령 당선자 주변에서 회자(膾炙)되는 모양이다. DJ 비서진 '자팽론'이 자율적 결단이었다면 노당선자가 주변의 '뗏목론'은 일종의 타율적 경구라고 할만하다.
노당선자에게 이런 냉정한 주문을 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가신(家臣)이니 실세니 하는 과거 정권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충고로 이런 비유법을 쓴다는 것이다. '인사청탁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노당선자의 발언이나 주변에서 '안면몰수'를 해야한다는 권고가 모두 여기에 바탕을 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뗏목론'이 꼭 인사에만 적용되는것은 아니다. 선거기간동안 내걸었던 각종 공약(公約)도 이에 해당된다. 정부의 한 관료가 '대선공약 이행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된다'면서 이 뗏목론을 인용했다 해서 화제다.
그는 인수위가 여러가지 정책을 검토하는것은 좋지만 맨 마지막 단계에서 예산집행의 우선순위는 반드시 매겨야 한다고 건의했다 한다.
역대 대통령들이 내걸었던 그 많은 공약들이 결국 공약(空約)으로 그친 일이 적지 않았던 점을 상기하면 일은 타당한 논리로 들린다. 하기야 미국의 조지 부시 전대통령에게 새뮤앨슨 같은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권고한것도 '선거공약을 무시하라'는 것이었다니 이해할만도 하다.
그래서일까? 노무현당선자는 전국을 순회하며 가진 국정토론회에서 공약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는것 같다. 아니 지나치게 세세한 공약을 남발한바도 없으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다. 어제 전주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기조였다.
새만금사업에 대한 지속추진 의지표명이 그나마 소득이라면 소득이라고나 할 수 있을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잊어야 할 것과 꼭 챙겨야 할 공약은 구분돼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뗏목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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