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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보리밥

 

 

보리고개 밑에서 / 아이가 울고있다 / 아이가 흘리는 눈물 속에 / 할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 / 할아버지가 울고 있다 / 아버지의 눈물, 외할머니의 흐느낌 / 어머니가 울고 있다 / 소년은 죽은 동생의 마지막 눈물을 새각한다.

 

태산준령 보다 높아 허리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넘었다는 보리고개, 그 보리고개 중턱쯤에서 서럽게 눈을 감은 어린 아이를 추도하며 황금찬 시인이 쓴 '보리고개'라는 시다.

 

사실 요즘 같이 자기 게을러 못먹는 호시절에 배고픈 설움을 이야기 하면 고리타분한 늙은이 취급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반만년을 넘나들던 보리고개에 터널이 뚫린 것은 불과 30∼40년 밖에 되지 않았다. 1960년대 끝무렵 까지만 해도 농촌은 봄철만 되면 부농 몇집을 빼놓고는 마을 전체가 굶주렸다. 가을에 거둬들인 곡식도 한겨울 지내고 나면 음력 2월경부터 달랑달랑해진다.

 

기대할 것이라곤 보리걷이 밖에 없다. 이때부터가 보리고개의 시작이다. 한 동네가 모두 비슷한 처지라 양식을 꾸어올 데도 없고 꾸어줄 사람도 없다. 할 수 없이 아직 여물지 않은 보리이삭을 태워 가루로 만든 다음, 초근목피(草根木皮)를 넣어서 죽을 쑤어 먹는다. 며칠동안만 이렇게 먹으면 변(便)이 굳어져 배설할 때 항문이 찢어지는듯한 고통을 겪는다.

 

"×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은유적 표현은 이같이 비참하게 가난한 살림을 빗대 생겨난 말이다. 입속에 들어가면 푸석푸석하고 뱅글뱅글 돌면서 씹히지 않는 보리밥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반찬은 고추장이나 풋고추에 열무김치가 고작이고, 먹고난 후에도 뒷맛이 썩 좋은 음식은 아니다.

 

하지만 보리밥은 우리 민족이 가난했던 시절 생명의 끈을 이어준 주식이다. 게다가 보리는 겉보기와는 달리 영양의 보고(寶庫)이다. 식이섬유가 풍부해서 대장암과 당뇨병, 심장병 등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고,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는 효능도 있다. 또한 비타민 B군이 많아 피로회복과 기억력 유지 및 항산화작용에도 큰 도움을 준다.

 

이처럼 우리 민족과 애환을 함께 하면서 한민족의 건강을 지켜온 보리밥이 건군 55년만에 군 장병들의 식단에서 완전히 사라진다고 한다. 국방부가 신세대 장병들의 입맛을 맛추고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 보리쌀 공급을 전면 중단키로 했다는 것이다. 꼭 못난 누나 시집보내는 것 같은 서운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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