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을 때면 눈가 주름이 가득하고,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많은 나이가 됐다. 학교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하지만 마음 뿐이란 걸 두 친구도 잘 알고 있다.
한 명은 미국 뉴욕에서 다른 한명은 완주 소양에 터를 두고 살아왔는데도, 부부처럼 닮았다. 47년 돼지띠. 한봉림 교수(57·원광대 도예과)와 홍익대 동기 최대식 회장(57·한미현대예술협회)이 봄볕이 따뜻하게 쏟아지는 자연 속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연다. 16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오스갤러리에서 열리는 '최대식·한봉림 초대전'.
자신의 영역에서 탄탄하게 뿌리내린 두 친구의 재회는 금속과 흙의 만남이다.
"전공은 달랐지만 그 땐 홍익대가 미술대학 밖에 없던 시절이라 한 가족처럼 지냈어요. 술 먹고 언제 한번 같이 하자 했었는데, 오히려 늦은 거죠.”
30년 세월이 지났다. 새삼스레 옛 기억을 들춰보니 함께 비워버린 소주병이며 실패한 작품을 두고 고민했던 밤들이 지난 세월만큼 많았다. 작년 7월 두 작가는 또 소주잔을 가운데 두고 이번 전시를 기약했다.
"이 친구가 아주 열심히 하는 작가에요. 힘든 미국 생활 중에 전문 샵도 운영하면서 한국 작가들을 위해 좋은 일도 많이 해요. 작업은 언제 하나 모르겠어요.”
최회장은 한미현대예술협회를 설립하고 뉴욕을 비롯한 동부지역에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소개하고 있다. 한인 청소년 작품발표 기회와 숨은 인재 발굴을 위한 한미미술청소년미술대전·국제사진공모전도 열며 한국 미술인들의 외로운 길을 돕고있다.
시간을 이어가며 작업을 쉬지않는 친구의 모습이 자랑스러웠다는 한교수는 "혼자 하기 뭐하면 내가 옆에서 들러리 서주마”라는 말로 전시를 제안했다. 오랜 친구의 한마디에 전주에 아무 연고도 없는 최회장도 흔쾌히 응했다. 한교수 역시 전주 전시는 처음이다.
'열심히 하기 때문에 당연히 작업이 변할 수 밖에 없다'는 말로 서로를 평가한다. 한교수는 대형에서 소품 위주로, 최회장은 생활 속의 미술을 발견하는 것으로 작업이 변화했다.
"우리 술 취하면 이래요.”최회장이 얼큰하게 취한 두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브로치 몇 개를 내놓았다. 친구를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브로치다. "자기 것을 잃어버리고 외국 것만을 쫓다보면 성장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원두막도 백두대간의 한줄기도 모두 작품 속에 넣었다. 차가운 금속성에서 자연스러움을 찾아내는 그의 작업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원천이 됐다. '자연의 소리'를 주제로 캔버스나 합판 위에 화선지를 찢어 붙이고, 판금과 주물로 만든 사람·집·나무 등을 조형적 형태로 부착시켰다. 이번 전시에는 회화·조각·공예 등 모든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오브제 평면작업과 쥬얼리를 소개한다.
"흙 자체가 깨끗하고 기하학적이지 않다”는 한교수의 작품도 투박하고 자연스럽다. '뿔'과 '깨진 알'로 그의 작품을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뿔은 '생명의 싹'이고 알은 깨진 것이 아닌, 안으로 들어가는 형태다. 난생설화를 바탕으로 생명이 잉태되는 신비성과 함께 태초의 모습, 어머니의 품, 고향으로 찾아가는 '귀향성'을 수렴하는 알의 형태로 표현했다.
한교수는 이번 달 말까지 열리는 뉴욕전부터 역상감기법을 시도했다. 문양을 파서 다른 색을 집어넣는 상감기법이 아닌, 자유로운 회화적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석고틀에 흙을 넣어 찍어냈다.
최회장은 '내츄럴 사운드'라는 이름으로, 한교수는 문자는 문명이라는 생각으로 자신만의 조형적 언어를 가지고 있다. '자연스러운 감정'을 주목하고 있는 두 친구는 문득 발견한 공통점에 기뻐한다.
"원천적인 것을 잃어버리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혼자 작업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 손끝에서 나와야 한다는 장인정신은 두 작가가 지닌 또하나의 공통점이다.
"뉴욕에 갔는데 이 친구가 대학교 때부터 했던 작업을 보여주는 거예요. 얼마나 옛 생각이 나던지…참 좋더군요.”
언제 또 같이 할 날이 있겠냐며 다음 전시 기약을 미루지만, 같은 길에 선 두 친구는 막연한 약속보다 마음과 눈빛으로 통한다.
우정이 시작된 스무살의 그날처럼 두 중년작가의 작업은 언제나 초록빛 싱그러운 젊음이다. 063) 244-7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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