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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경기전·사고는 전주대표 문화유산 - 진원종

진원종(수필가)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내장산의 오색 단풍이 파란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요즈음, 나는 조선왕조실록과 전주사고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왕조실록은 태조로부터 25대 철종까지 무려 472년간의 긴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1,893권의 방대한 분량이다. 실록은 왕이 죽으면 후대 왕이 실록청을 개설하여 문신들로 하여금 편찬토록 했다. 실록은 사관史官들이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것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나라 전반에 관한 역사서 이다. 왕이라도 이 기록은 볼 수 없었으며, 이런 제도는 왕권에 대한 하나의 견제 장치였다. 실록은 네 부를 만들어 춘추관과 충주, 성주, 그리고 전주 사고史庫에 보관토록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전주 사고본을 제외한 세군데 실록은 모두 소실되어버렸다.

 

태조실록부터 명종실록까지 보관 중이던 전주 사고본과 태조 어진御眞은 전라감사 이광李洸의 지시로 경기전慶基殿 참봉 오희길吳希吉과, 태인의 선비 손홍록孫弘祿과 안의安義에 의해서 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겨진다. 다시 은적암을 거쳐 비래암으로 피신을 시키지만 전세(戰勢)가 불리해지자 강화도 마니산으로 이동하게 된다. 임란 후 선조는 실록을 다시 5부씩 출판하여 춘추관과 강화도, 묘향산, 태백산, 오대산 등 험준한 산속에 보관하게 한다. 그러나 묘향산 사고본은 또 무주 적상산으로 옮겼고, 마니산에 있던 전주 사고본은 정족산 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후 조선 왕조 마지막까지 정족산과,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의 네 사고에 보관을 한다. 그러다가 적상산본은 6,25 사변 때 북한으로 넘어가 지금은 김일성대학에 보관되어 있고, 전주 사고의 정족산본은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중이다. 실로 엄청난 수난의 노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조선 27명의 왕 중에서 영조(英祖)에 대해 잠시 알아본다. 21대 왕인 영조(1694~1776)는 재위기간이 역대 왕들 중 가장 긴 52년이었고 83세까지 사신 분이다. 노론, 소론, 남인, 북인 등의 당쟁을 없애려고 탕평책을 썼고, 균역법을 제정하여 세금을 경감시켰으며, 실학의 진작, 등 많은 치적을 남겼다. 그러나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죽이는 씻지 못할 오점을 남긴다. 궁중문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이 여기에서 탄생하게 된다. 또한 영조는 정비(正妃) 정성왕후 서씨가 죽자 66세에 정순왕후 김씨를 계비로 맞이했는데, 이때 왕비의 나이는 겨우 15세였다. 세자비 혜경궁 홍씨가 당시 25세였으니, 며느리가 시어머니 보다 열 살이나 더 많은 셈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왕비는 통상적으로 십 오륙 세의 처녀 중에서 간택했다. 영조의 손자 정조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독일의 문호 괴테도 칠십 사세에 십구 세의 처녀 레베초 에게 구혼을 했다 하니 그분도 만만찮은 능력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은 ‘97년에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되어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경기전에 있던 태조 어진이 관리부실로 훼손되어 서울의 고궁박물관으로 이전되었으나 언제 돌아올지 불투명하다. 진전眞殿 동편에 있는 전주 사고는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적상산 사고를 본떠 ‘91년도에 복원한 것이지만, 경기전과 전주 사고야말로 가장 전주를 상징하는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전주 사고본이 없었다면 조선 전기의 역사는 영원히 묻혀버리고 말았을 테니까.

 

조선의 역사가 당쟁만 일삼은 것은 아니었다. 사관들은 목숨을 걸고 사실史實을 기록 했고, 또 그것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 했다. 그 선조들이 자랑스럽다. 그분들의 발자국과 땀방울이 배어있을 경기전 넓은 뜨락의 낙엽을 밟으며, 나의 소소한 일상이라도 꼼꼼하게 기록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실록각 앞에 서있는 노란 은행나무 잎새가 오늘따라 꽃보다 더 아름답게 보인다.

 

/진원종(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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