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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사람에게 엽서 한장]보릿잎도 주저앉았다 일어서고...

심옥남(시인·진성중 교사)

멀리 하늘빛은 엷어지고 있는데요. 창밖에 눈길이 머는 곳은 아직도 살얼음이 곳곳에 상처처럼 깔려있는 동강(冬江)입니다. 그 겨울 한가운데로 동백 잎이 멀겋게 얼었다 녹았다를 수삼번, 들판의 보릿잎도 주저앉았다 일어나기를 수십 번씩, 제각각 고통을 견디며 걸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인이 노래하셨지요.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온다. 그랬지요.

 

봄이 오는 그 길목이 너무 깊고 아득해서 헛발 디디는 것이 비단 동백과 보리뿐이었겠어요. 오래 전에 손 맞잡다 놓친 그와 나 사이의 시들해진 사랑도 춥고 외로운 시간을 건너오고 나면 도탑고 도타워지겠지요.

 

창밖의 춘백과 매화의 시린 눈매 어디쯤을 거두어야 봄보다 먼저 그 사랑이 아슴찮게 손을 내밀까요.

 

날마다 한 무릎씩 무너지면서도 기다림이 있어서 웃자란 내 사랑, 한 구절을 이렇게 전하며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바라볼 수 없어도 좋았던 내 가난함은 이제 조약돌처럼 키를 낮추려합니다. 그리고 봄인 듯 기다리겠습니다.

 

이 기다림만으로도 올 봄은 내내 행복할 것입니다.

 

/심옥남(시인·진성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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