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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치명자산 구름다리

천주교에서는 전주를 일컬어 ‘한국의 예루살렘’이라 부른다. 그것은 조선 후기 천주교가 들어와 크게 발전하였고, 더불어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받아 순교하였기 때문이다. 그 순교의 핏자국은 지금도 초남리(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와 남문 밖(지금의 전동성당 자리), 전주옥(全州獄·전북대 평생교육원 자리), 숲정이, 치명자산 등에 남아 있어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당시 순교의 중심에는 유항검(1756-1801)이 자리한다. 전주부 초남리 태생인 그는 덕망이 높은 대부호였다. 1784년 이승훈으로 부터 세례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 호남지방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는 중국에서 주문모 신부를 모셔올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자신의 가족과 친척, 마름과 노비 등은 물론 고산 무장 영광 등지까지 선교영역을 넓혀갔다.

 

하지만 이종4촌이었던 윤지충이 1791년 어머니 상을 당하면서 박해의 칼날 위에 서게 된다. 윤지충은 신주를 불태우고 장례를 치르는데 이것이 조정에 알려져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된다. 다행히 유항검은 풀려났으나 1801년 신유박해는 피하지 못한다. 당시 전주일대에서 200여명의 천주교인이 체포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가 주도한 대박청원사건이 드러나, 남문 밖에서 능지처참된다. 그의 머리는 남문 누각에 효시된다. 또한 유항검의 아내 신희, 아들 중철과 문석, 며느리 이순이, 동생 관검의 아내 이육희, 조카 종성은 귀양길에 전주로 압송돼 전주옥과 숲정이에서 처형된다. 이들 중 유중철(요한)과 이순이(루갈다)는 세계 교회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동정(童貞)부부로서 ‘한국 순교사에 가장 빛나는 진주’로 칭송되고 있다.

 

이들이 처형되자 노복과 친지들이 거두어, 초남리와 가까운 김제군 용지면 바우배기에 임시로 묻는다. 그 후 1914년 전동성당 보두네 신부와 신자들이 이들 7명을 치명자산에 합장묘로 모시게 된다. 이 묘지에는 1949년 대형십자가가 세워지고 1984년 지방기념물 68호로 지정된다. 1994년에는 묘지앞에 제대가 세워지고 그 아래에 성당이 건립되었다.

 

이러한 역사가 깃든 치명자산과 오목대를 250m의 구름다리로 연결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전주시 도시환경분과협의회에서 나온 것으로 생태관광 코스로 개발하자는 취지인데 기발하긴 하나 여러모로 따져봐야 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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