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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칼럼] 코앞에 다가온 대선 - 공요셉

공요셉(신부·전주카톨릭신학원 교수)

이스라엘에 왕정이 들어서기 전엔 열두 개로 이루어진 부족국가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라전체의 위기상황이나 주요한 일들은 부족들의 힘을 모아 해결했는데, 이때 부족들 전체를 이끄는 사람을 ‘판관’이라 불렀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성경의 내용인 ‘판관기’ 안에 전해오는 우화가 하나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유명한 판관이었던 기드온은 일흔 명이 넘는 아들들을 두었는데, 그가 죽자 그와 여종 사이에 태어난 아들인 아비멜렉이 자기 외가의 힘을 빌려 다른 형제 일흔 명을 죽이고 왕이 됩니다. 그때에 살아남은 기드온의 막내아들 요탐은 아래와 같은 우화를 통해 잔인한 왕을 뽑아 세운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경고합니다.

 

하루는 나무들이 모여 와서 자기들을 다스릴 왕을 세우기로 하고 올리브나무에게 청을 드려 보았소. “우리 왕이 되어 주게나!” 그러나 올리브나무는 사양을 했소. “내 기름은 모든 신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것, 그런데 나 어찌 기름을 내지 않고 자리를 떠나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으스대겠는가?” 그래서 나무들은 무화과나무에게 청을 드려 보았소. “자네가 와서 우리 왕이 되어 주게나.” 그러나 무화과나무도 사양을 했소. "나 어찌 이 훌륭한 과일을 내지 않고, 나 어찌 이 달콤한 맛을 내지 않고 자리를 떠나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으스대겠는가?”

 

그래서 나무들은 포도나무에게 청을 드려 보았소. “자네가 와서 우리 왕이 되어 주게나.” 그러나 포도나무도 사양을 했소. “내 술은 모든 신과 사람을 흥겹게 해 주는 것, 그런데 나 어찌 이 술을 내지 않고 자리를 떠나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으스대겠는가?” 그래서 모든 나무는 가시나무에게 청을 드려 보았소. “자네가 와서 우리 왕이 되어 주게나.” 그러자 가시나무는 그 나무들에게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소! “너희가 정말로 나를 왕으로 모시려는가? 정녕 그렇거든 와서 내 그늘 아래 숨어라. 그러지 않았다가는 이 가시덤불이 불을 뿜어 레바논의 송백까지 삼켜 버릴 것이다.” ? 「공동번역 성서」판관 9,8-15. 3년이 지난 후 아비멜렉은 자신을 도와 왕으로 세워준 이들과 사이가 나빠져 서로 싸우다가 죽게 되고, 그를 왕으로 선택한 이들도 모두 죽게 됩니다. 바로 요탐의 우화가 실현된 것이지요.

 

「이솝우화」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말없는 통나무 임금을 버리고, 늠름하고 우아하며, 힘 센 황새를 왕으로 맞아들인 개구리들이 결국 모두 잡아먹혔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짧지 않은 5년 동안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해야하는 제 17대 대통령선가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 견주는 말이 있듯이 며칠 남지 않은 선거준비 기간에 어떤 변수와 어떤 돌발 상황이 선거판을 몰고 갈 것인지는 짐작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참으로 희한한 것은 그 어떤 상황이 닥치고 후보의 신변에 어떤 변화가 오더라고 처음 뽑으리라 선택한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겠다는 그릇된 소신입니다.

 

아무리 먹고 사는 일이 급급해도 사람이 먹고만 살 수는 없지 않을까요? 정치가 하나의 생물이라 하듯이, 선거유세를 하는 각 후보들의 모습 속에 마치 생존을 위해 자기 몸을 부풀리거나 깃털을 세우고, 색을 변화시키거나 냄새와 독을 풍기는 생물의 모습이 감추어져 있진 않은지, 그 분들의 다양한 면모와 공약들을 선택의 순간까지 지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지켜보아야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은 대통령 한분이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요탐의 우화에서 왕이 되기를 거절한 여러 나무들처럼, 저마다 삶의 자리에서 혼신을 다해 살아가는 온 국민의 나라이며, 그분들의 힘으로 끌어가는 나라입니다. 오는 19일은 바로 그분들의 현명한 선택이 이루어지는 날이 되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공요셉(신부·전주카톨릭신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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