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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석 건축담론] 숭례문의 소실

원형복원만이 능사인가

"건축가는 건축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시대가 바뀌어도 꼭 필요한 존재다. 세상의 주류 가치관인 자본이나 효율성 등과는 상반되는 지적인 사고체계로 바라 볼 수 있는 유일한 계층이다.”

 

현상설계 제출을 이틀 앞두고 사무실에서 철야작업을 하면서 우연하게 TV에서 숭례문의 화재 자막부터 숭례문이 불에 타는 전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문화적인 손실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진화 과정속의 졸속처리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한 단면처럼 생각이 되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숭례문의 사후처리에 대한 각각의 태도들 중에서 문화재청의 복원계획에 대해 건축가로서 하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모든 사람들이 각각의 시각에서 같은 문제를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또한 저마다 다른 안을 낼 것이고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먼저 질문들을 해 본다. 국보1호인 숭례문은 우리들의 생각과 관심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생활 속에 있다 없어진 무수히 많은 유형·무형의 문화유산들이 있다. 사람들의 필요에서 멀어지며, 또는 자본의 속성에 따라 무용하게 되어 우리의 곁에 있다가 사라지는 문화 유산 중에서 숭례문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 없었을까? 숭례문의 소실은 인재이지만 그렇게 사라지는 문화재중 하나일 거라고 판단하면 안 되는가? 잘 보전하여 후대에 물려주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겠지만, 국상을 만난 것처럼 해야 하는가? 우리는 현재 디지털시대, 이미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원본의 가치보다는 이미지가 가치를 갖는 시대이다. 숭례문을 복원하여 다시 똑같이 만들어 놓았다고 원형으로 복원되고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면 복원에 필요한 지름 1미터가 되는 금강소나무를 구하지 못해서 고심하는 문화재청의 생각도 부질없는 것이 아닌가.

 

그 시대에는 그 시대에 가능한 건축이 있다. 건축은 동시대의 문화를 말하는 결과물이다. 숭례문의 복원도 그런 차원에서 생각해 보아야하며, 꼭 원형을 복원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판단이 든다. 숭례문의 소실을 통하여, 다음에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을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문화재가 훼손된다고 소방설비를 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조금은 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국가와 민족의 자존심과 상징에 대한 손실을 거론하며 정치적인 이익으로 국민들을 선동하고, 나아가서 사회 불만자, 정신질환자, 노숙자들을 사회적으로 감시, 통제해야 한다는 식의 전근대적인 사고를 유발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 판단된다.

 

/건축사사무소예림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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