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선(전주 효문초등학교 교장)
시골 대종가의 장손녀로 태어나 조부모와 고모 삼촌이 한데 어울려 살고 제사 때마다 차부에 나가서 친척들 기다리는 분위기 속에서 어렸을 때부터 사람이 모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결혼할 때도 남편이 7남매 장남으로 시부모님 모시고 살 수 있어서 좋았지요. 아들 셋에 조카들까지 12명까지 같이 살았는데 아들들이 어울려서 사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둘째가 뇌성마비 장애인데다 시부모의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던 지난 5∼6년은 좀 버겁긴 했지만요.
아버지(서양화가 하정 김용봉)와 어머니에게서 "부지런하라"라든지 말로 '이렇게 해라' 하는 말을 앉아서 들어본 적이 없어도 부모님이 새벽부터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서 근면 성실함을 배운 것 같습니다. 말씀 없으신 아버지께서 진안 안천중에서 전여고에 진학했을 때 편지를 보내왔는데, '너를 믿는다'는 그 말 한마디를 이제까지 마음에 새기며 헤찰 한번 해본적 없이 살아왔습니다. 부모님처럼 저도 자녀들한테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고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예의 바르고 자립심이 강한 아이들'이 제가 원하는 자녀상입니다. 아들들이 대학교 들어가면 잡비를 안줬지요. 다른 아르바이트도 하지만 반드시 여름방학 때 한달간 아파트 공사현장 등 현장에서 노동일을 하도록 했습니다. 일기 쓰기, 결근하지 않기, 버스 타고 가기, 이 세가지를 원칙으로 내세웠습니다. 건축관련 일을 하셨던 아버지에게 무척 고마워하더군요. 초등학생 과외 세달간 시켜서 엄마가 하는 일,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하는 것도 제 몫이었습니다.
두 아들이 군에 갈 때도 면회 한번 간 적 없습니다. 부모가 옆에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고, 행복을 느낀다고 말하더군요. 대신 둘째애에게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주되, 강요나 지시, 강제는 하지 않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겠다고 하는 것도 말리지 않았지요. 사고 후 스스로 깨닫더군요.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 남은 게 있다면 소외된 계층이나 장애인에게 준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자립심을 가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둘째도 장가 가서 잘 살지만 아들들의 여자친구들도 장애인단체 등에 자원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요새 부모의 과보호가 문제에요. 학교 교실 앞까지 자가용으로 등교시키는 것은 아이들 팔다리 묶어놓는 것에 다름 아니죠.
'많은 사람을 아는 것이 자산'이라고 유언처럼 얘기합니다. "친구를 많이 사귀어라." 또다른 저의 강조대목입니다.
한영선 교장은 47년생으로 전주교대를 졸업했으며 우석대 교육대학원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했다. 특수학교 교사 정신지체자격증·지체부자유자격증을 취득했고 심리상담사, 발맛사지 자격증도 갖췄다.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부모회전북지회를 창립하고 90년부터 98년까지 회장을 맡았다. 68년 교단에 선 이후 완주 남관초등 교감, 진안 장승초등 교장, 진안 중앙초등 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전주 효문초등 교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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