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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화의 발견] ④서예가 이용

글씨 쓰기는 매일 먹는 밥과 같다

가지런히 놓인 서실의 도구들. (desk@jjan.kr)

처서를 며칠 앞두고 늦더위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날 찾아간 곳은 묵향이 그윽하게 배어있는 서예연구실이다. 밖에서 마주한 서예가 이용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며 들어선 방에는 역시 그의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과 같이 정갈했고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는 지필묵연(紙筆墨硯)이 빈틈없이 놓여있었다. 꽤 넓은 연구실 한편에는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책들이 빼곡히 놓여있어 평소 그의 생활을 짐작하게 하고 있었다.

 

 

그동안 세계서예비엔날레의 총감독이라는 직함으로 인해 호탕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본연의 모습 속에서는 의연한 풍모와 곧은 기개(氣槪)가 풍기는 마치 선비를 연상케 했다. 그의 이러한 기질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리라. 한약방을 하신 아버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친숙해진 붓과 먹을 가까이 하게 되어 초등학교 이전부터 붓을 잡고 생활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글씨와의 인연은 지금까지 생활이 되었고, 매일 밥을 먹고 옷을 입는 일상과 같은 삶의 전부가 되어 있었다.

 

1981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2회를 치르는 동안 부지런히 글씨를 쓰고 7권의 저서를 발간하면서 시기적으로 세 번의 큰 변화과정을 겪게 된다. 젊은 시절 마냥 글씨가 좋아서 쓰기 시작했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커지면서 1974년 강암(剛菴) 송성용 선생 문하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이 시기가 글씨에 눈을 뜨기 시작한 때라고 했다. 당시 강암 선생의 제자가 되기 위해 그동안 썼던 글씨를 모두 모아 앞에 펼쳐 놓고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강암 선생의 "글씨 쓰것네"라는 한마디 말에 큰 힘을 얻어 글씨에 더욱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글씨에 매진하면서 고전을 보고 다양한 서체를 공부하게 된다. 고전 공부에 남달리 애착을 갖게 된 그는 책을 구하기 어려워 느끼게 되는 책에 대한 심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남들보다 먼저 책을 구입해서 많이, 빨리 보는 것에 주력하게 되었다.

 

고전을 공부하는 동안 금문(金文)에 관심을 갖게 되고 연구하면서 두 번째 변화과정을 갖게 된다. 금문에서 볼 수 있는 상형성과 조형성은 1980년대 후반 '현대서예'라는 새로운 변화를 불러오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동안 서예가 전통적인 방식의 서체를 중심으로 써왔지만 문자의 상형성을 변화시켜 회화적으로 표현한 것은 큰 실험적이고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이 시기에 썼던 글씨들을 보면 그림과도 같은 글씨와 약간의 색을 사용하여 고전의 구절을 형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몇 년 동안 뜻이 맞는 몇몇 서예가들과 작품을 발표하며 전환된 시기를 맞이하지만 무분별하게 서예를 변형시키며 의미 없이 눈속임하는 작품들이 난무하면서 현대서예라고 하는 것에 회의적이 된다.

 

1990년대 초반 다시 전통에 눈을 돌리며 '전통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자'라는 의지로 결국 고전에서 현대의 조형성을 만들어가는 세 번째 변화를 가진다. 그림과 글자는 한 뿌리에서 나온다는 서화동원(書畵同源)을 통해 글자가 가지는 조형성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어 현재에도 글자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전통성을 가진 글자에 회화성을 가미한 현대적인 서예를 보여주고 있다.

 

서예가 생활이고 삶의 전부인 산민 이용은 작품을 대하는 자세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에 간직하며 살아오고 있다고 했다. "평생 글씨는 쓰되, 글씨로 밥을 먹고살지 마라". 즉, 서예의 본질을 알고 선비정신으로 글씨를 대하되 생활을 위해 글씨를 쓰다보면 소소한 것에 연연하면서 글씨 본연의 것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를 어렸을 때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진정한 서예인의 자세를 꼬집는 것이어서 자신의 마음가짐을 잡아주는 교훈으로 삼고 있다.

 

올해에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1월에 있을 개인전 준비에 분주히 움직이면서 여덟 번째 저서인 「금문시탐」의 세 번째 책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서예는 내 인생이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평생을 해야 하는 것이기에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즐기면서 글을 쓰고 있다는 서예가의 진지한 삶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구혜경(독립기획자·문화전문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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