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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오체투지(五體投地), 그 고행의 의미 - 윤승용

윤승용(본보 객원논설위원·前 청와대 대변인)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는 황금빛 벼이삭이 출렁이는 황산벌. 성추(盛秋)의 양광(陽光)이 현란하게 내려 쪼이는 익산-논산간 23번 국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느릿느릿 이동한다.

 

문규현 신부와 수경스님의 오체투지 고행현장이다. 이미 일부 보도와 이들의 인터넷카페(http://cafe.daum.net/dhcpxnwl)를 통해 어느 정도 그 고행의 의미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영 성이 차지 않아 한번 찾아봤다. 그런데 정작 가까이서 지켜보니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다. 말이 좋아 고행이지, 차라리 저 봉건시대 노예들의 사역도 이보다는 편하지 않았을까 싶다. 중노동 그 이상이다.

 

이미 환갑을 넘긴 두 분은 세 걸음을 걷고 이마, 양 팔꿈치, 양 무릎 등 신체의 5부분(五體)을 땅(地)에 던지는(投)는 오체투지를 수행자처럼 오늘로 50일째 이어오고 있다. 특히 5년전 새만금갯벌살리기 3보일배에 나섰다가 무릎을 다쳐 두 번이나 수술을 한 수경스님의 한 걸음 한걸음은 안타까워 차마 곁에서 제대로 쳐다보기에도 면구스럽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보를 '하심(下心)'이라고 정리한 후 이동중에는 줄곧 묵언중이다. 잠시의 휴식시간에 문규현 신부는 "모든 사람이 잘못한 업보, 즉 공업(共業)죄를 쓰고 십자가의 길을 다시 걷는다"고 말한다. 그래도 무슨 말인가 잘 이해가 안간다. 다행히 지난달 4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하며 이들이 설파한 출정사를 찬찬히 살펴보니 느낌이 온다.

 

수경스님은 그날'순례의 길을 떠나며'란 글에서 "나라의 사정이 어지럽습니다. 살림살이가 어려우니 몸이 고달파지고 민주주의가 위협받으니 인간적 자존감이 상처를 받습니다. 현 정부의 권위주의적 국정 운영 방식이 민주주의와 생태, 인권의 위기는 물론 종교 간 대립까지 부추겨 국민 통합을 해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위기 국면입니다"라고 지적하고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온 숨을 땅에 바치고, 땅이 베풀어 주는 기운으로만 기어서 가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오체투지가 온전히 생명과 평화의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문규현신부도 "손에 가슴에 생활 속에 촛불을 피워 올린 청소년들과 수많은 국민들에게 드리는 사랑과 존경의 표현""이명박 대통령의 통치이념과 정치행태에 항의하고 저항"하기위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서로에게 빛이 되고 거친 바람 막는 병풍이 되어주기"위해 고행에 나섰다고 천명했다.

 

이들의 고행길 동행자는 많을 때는 하루 50여명까지도 늘어난다. 전국각지에서 달려온 주부, 학생, 회사원들이 노 수행자들의 고통에 비장한 표정으로 동참한다. 자녀를 데리고 온 가족단위도 제법 많다. 전주에서 온 한 주부는 "명박산성으로 상징되는 이 소통부재의 시대에 말보다 행동으로 국민적 소통과 화해를 외치는 두분의 성스러운 모습에 고개가 숙여진다"고 말했다.

 

지리산에서 출발해 계룡산에서 끝나는 이번 고행길은 묘하게도 대분분이 전북에 펼쳐져있었다. 그래서인지 그간 많은 전북사람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민주'와 '자유'라는 단어를 고어(古語)사전 속으로 되돌리려하는 이 배역의 시절에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위안을 받고 싶거든 이들의 고행에 한번 동참해보길 권한다. 올해의 행사는 이번 일요일 오후3시 계룡산 신원사에서 종료식과 함께 막을 내릴 예정이다.

 

/윤승용(본보 객원논설위원·前 청와대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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