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대(국립창극단 예술감독·고려대 교수)
올해로 창극의 역사는 100년이 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창극은 수성반주 형태로 공연되었다. 수성반주란 창자의 소리를 악기가 따라서 연주해 주는 형태를 말한다. 큰 공연에 관현악단이 배치되어 지휘자가 지휘를 하지만 그가 맡은 역할은 대개 짤막한 서곡이나, 무용 반주음악, 그리고 피날레 장면의 합창에서 이용되었다. 소리가 나오는 부분은 모두 수성반주가 맡아서 하였다. 그런데 큰 극장에서의 수성반주는 한계가 있다. 마이크를 써서 확성을 한다고 해도 대극장의 공간을 음악으로 풍성하게 채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성반주는 창극 반주에 있어서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 창극을 수성반주로 할 경우 대개 악기의 청을 5관반 정도에 고정시킨다. 남자에게는 높아서 힘들고 되며, 여자에게는 낮아서 부대끼는 데도 하나의 음역을 고집하면서 수성반주를 해왔다. 수성으로 반주하는 연주자들은 청(key)을 고정시켜야만 되었다. 다른 창자의 음역에 맞게 조율할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남녀창이 교차되는 부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창극무대에서 수성반주는 예외 없이 남녀 배우들 사이에 부담과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창극 <청> 은 기존의 창극 반주 형태를 완전히 바꾸었다. 작품 전체를 편곡하거나 새롭게 작곡하여 40인조 관현악단이 창극의 모든 장면을 반주한 것이다. 창극이 오페라나 뮤지컬처럼 지휘자가 이끌어가는 공연물로 변화된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창극배우들과 엄청난 갈등이 있었다. 수성반주에 익숙한 창극배우들은 지휘자를 보면서 노래부르는 일에 아주 거북해했다. "우리가 북소리 듣고 소리했지, 언제 지휘자보고 소리했간디?" 이런 반응이 일반적이었다. 청>
<청> 공연에서는 창자가 가장 걱정하는 청(key)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였다. 편곡자인 이용탁 음악감독은 한 공연에서 창자에게 적절한 청을 내주기 위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조를 바꿔가면서 편곡하였다. 창자들은 창극을 하면서 "왜 이리 편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창극에서 가장 심각하게 문제되었던 청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창극 <청> 의 큰 미덕이라 할 수 있다. 청> 청>
관현악단의 악기 편성에서 콘트라베이스와 첼로, 팀파니, 그리고 신디사이저를 함께 사용하였다. 처음에 서양악기를 쓰는 것에 대해서 창극단 내에서 아주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두 대의 콘트라베이스는 8대의 대아쟁 효과를 가져와서 배면에 깔리는 저음을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오케스트라는 다양한 화성을 뿜어내어 판소리 선율을 고급스럽게 포장해 내면서, 그 풍성한 음악은 관객에게 먼저 감동으로 다가왔다. 관현악 반주에 불만을 가졌던 배우들도, 친지들이 공연을 구경한 다음 "진짜로 감동적이"라고 칭송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관현악 반주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북반주 하나만으로도 판소리는 극음악으로 훌륭하지만, 창극이 보편적 특징을 가진 음악극으로 변화하려면 소리의 앞뒤를 충분히 음악으로 채워줘야 한다. 판소리가 철저하게 편곡되어야 하고, 어떤 곡들은 작곡되어야 하며, 빈공간은 BG음악이 충분히 채워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왕의 수성반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은 공간감을 형성한다. 공연이 거듭되면서 배우들이 지휘자를 보는데도 익숙하게 되었다. 이것이 창극 <청> 이 갖고 있는 음악적 변화이면서 새로운 양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다. 청>
/유영대(국립창극단 예술감독·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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