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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주 기자의 전주천 수달 만나기

한벽루 밑에서 남몰래 사랑한 한쌍의 수달 세가족 되어 수면위로 얼굴 내미네

'먹이사냥에 성공한 수달의 재롱' 수달이 제일 좋아하는 먹이는 비닐이 없는 물고기 이다. 미꾸리 한마리를 물고 물위로 올라왔다. 먹이를 잡아 얼음위로 올라온 수달이 '깔깔 거리며' 재롱을 피고 있다. (desk@jjan.kr)

"전주천에 수달이 돌아왔다." 전주시는 지난해 3월 21일 전주천에 수달이 산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시청 보도자료에 사진은 없었다.

 

#첫 상견례와 짝짓기 = 기자는 소식을 듣고 그날 오후 6시 600mm 망원렌즈와 야간촬영에 필요한 장비를 챙겨 '수달 찾기'에 나섰다. 이틀간에 걸친 잠복 끝에 한밤중 수달을 카메라에 담아 보도했지만(본보 3월 24일자) 사진 상태가 좋지 않아 아쉬움이 컸었다. 그런 뒤 기자는 10 여 차례의 취재 끝에 짝짓기 하는 한 쌍의 수달을 촬영해 그 해 4월 14일자 신문에 보도했다.

 

문제는 지금부터. 짝짓기를 끝낸 수달 2세들의 모습을 독자에게 알리는 일이 남았다. 하지만 수달 가족 나들이는 많은 시간과 인내를 요구했다. 수달의 특성상 두 달 반의 임신기간과 3개월이 넘는 육아 기간을 합하면 최소 6개월이 넘어야 이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몇 개월이 훌쩍 지났고 이래저래 바쁜 연말연시를 보냈다.

 

먹이사냥에 성공한 수달 모자가 물고기를 문채 유유히 헤엄을 치며 식사를 하고 있다. (desk@jjan.kr)

#반가운 제보 전화 = 하지만 새해가 밝아오면서 수달가족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주향교 근처에 살고 있는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산책 도중 한 번에 수달 세 마리를 보았다는 것. 반가움과 함께 취재 걱정이 동시에 밀려왔지만 기자는 1월 13일 첫 야간취재 장비를 챙겼다. 수달이 멀리서 나타날 것도 대비해 관계기관으로부터 조명 장비도 빌렸다.

 

촬영 첫날부터 기상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 눈이 오고 기온이 영하 10도로 뚝 떨어지면서 한벽루 부근의 전주천이 얼어붙었다.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수달의 낌새를 낚아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너무도 원시적이었다. 오로지 기자의 시각과 청각에 의존하는 수밖에. 이틀 동안 전주천 옆 강암서예관과 치명자산 구간을 수없이 왕복했다. 밤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혼자서. 그러나 수달의 기척은 없었다.

 

#혹한 속 실패의 연속 = 취재 사흘째인 15일 밤 11시경. 드디어 한벽루 밑에서 수달을 봤다. 두 마리가 먹이를 물고 작은 바위 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셔터 한번 누를 시간을 주지 않고 수달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촬영 실패다. 그 후 이틀간 수달을 못 만났다. 피곤과 함께 자책감이 밀려왔다. 수달을 보고서도 촬영하지 못한 스스로가 미웠다. 어렵게 만난 수달을 그렇게 속절없이 보내다니.

 

#로버트 카파의 말 = 이 때 머리를 스치는 한마디. "만약 당신의 사진이 충분하게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은 것이다." 전설적인 종군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의 말이다. 그 덕분이었을까. 촬영 8일째인 29일,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수면에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순간 얼지 않은 수면으로 수달이 목을 내밀었다.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어둠 속의 수달을 따라 카메라와 조명장비가 바삐 움직였다. 추워서 낀 장갑과 모자도 벗어 던졌다. 수달은 빠른 몸놀림으로 물속을 들락거렸다. 물고기를 사냥해 바위나 얼음 위에서 먹고 다시 들어가기도 했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좀 더 차분하게 촬영해야 한다고 되뇌면서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이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던 순간인가. 30일 새벽 3시 11분이었다.

 

#상상했던 모습으로 = 완성품을 빨리 보고 싶었다. 액정모니터를 여니 수달이 윙크한다. 고맙다, 수달들아. 이제 수달 촬영은 끝이다. 너희들도 건강하거라. 집으로 돌아와 토막잠을 잤다. 그날 아침 밤새 찍은 사진을 보면서 9일간의 피곤함을 잊고 행복감에 취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머릿속에 아쉬움이 맴돌기 시작했다. 분명히 수달가족이 있을 텐데 왜 한 번도 함께 있는 모습을 못 보았을까? 결국 기자는 달이 바뀐 1일 밤 다시 한번 짐을 꾸렸다. 이튼 날 새벽 3시 23분 수달가족 셋이서 바위에 올라앉은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기자가 상상하고 원했던 바로 그 모습으로. '충분히 가까이 가라'는 로버트 카파의 말은 영원한 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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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주 bjahn@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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