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형(CBS 방송본부장)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출세작 <위대한 게츠비> 만한 후속작품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살았다. 요즘의 연예인 못지않게 인기가 많았던 그는 평생 동안 160여 편의 단편을 썼는데, 그 작품들은 대부분 문학잡지가 아닌 대중잡지에 발표했다. 그쪽이 훨씬 고료가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원고료는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위대한>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는 그렇게 발표된 작품 중 하나이다. 발표 당시에도 이 작품은 문학적으로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한 독자의 편지, "내 평생 허풍치고 뻥치는 소리를 꾀나 많이 들어왔는데, 이제까지 본 뻥쟁이 중에서 선생님이 최곱니다."라는 것은 그의 작품이 얼마나 흡인력이 강했는지 알 수 있다. 벤자민>
수십 년이 지나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1860년 어느 여름날 미국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아이 벤자민. 아버지에 의해 양로원 앞에 버려지는 대신, 원작에서 벤자민은 아버지 집으로 가서 자라고,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더욱 크게 키워 아들에게 물려준다. 사랑했던 아내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남편을 못 견뎌 떠나고, 아들은 어느 날 말한다. "남의 눈도 있으니 이젠 날 삼촌이라고 부르세요." 영화에서처럼 "넌 다만 다를 뿐이야."라며 버려진 벤자민을 키우는 따뜻한 퀴니도, 평생 동안 사랑하는 데이시도 없다. 벤자민>
아들이 아들을 낳았을 때 10살 소년의 모습을 한 벤자민은 손자와 놀이터에서 놀았고, 손자가 학교에 들어갈 때 유치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요람에 누워 방금 먹었던 우유가 따뜻했던 것인지 어떤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세상이 깜깜해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경험한다.
'혹시 거꾸로 가는 것이 가능한 건 아닐까?'하는 상상에 빠져들게 하는 F. 피츠제럴드의 능청에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누구도 한번쯤 거꾸로 가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노인의 몸으로 태어나 아이가 되든, 정상적으로 태어나 늙든 결국은 죽는다. 벤자민의 인생도 거꾸로 가지만 계속 가고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가든 앞으로 가든 계속되는 인생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그가 이 작품을 쓴 것은 1921년, 그에겐 최고의 전성기였다. 그가 이 작품을 쓰게 된 것은 마크 트웨인이 한 말,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은 시작과 함께 오고 최악의 순간이 마지막에 온다는 것은 유감스럽다."는 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재즈시대의 화려함과 대공황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F. 피츠제럴드. 미국 문단의 총아로 화려하게 떠올라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지만, 부인은 신경쇠약으로 병원을 들락거렸고, 자신은 알코올 중독이 되고 말았다. 젊은 시절의 화려한 영광을 끝내 되돌리지 못한 채 그는 죽고 말았지만, 그의 출세작 <위대한 게츠비> 는 그에겐 낯선 땅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스테디셀러이고, 원작 <벤자민 버튼의 흥미로운 사건> 은 80년이 지난 지금 영화로 만들어져 책까지 덩달아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피츠제럴드의 시계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가고 있는 것이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여전히 끊임없이 읽히고 있다. 벤자민> 위대한>
지나간 역사와 삶을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흔적과 자취는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의 삶은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시계는 거꾸로 가지 못하지만, 시간에는 역사가 남기 때문이다.
/이길형(CBS 방송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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