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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내몰리는 사회적 약자들] 왕궁면 한센인 마을 노인들

"차가운 시선에 냉가슴"…경로당 안마 의자라도 있었으면

한센인 강모씨가 힘든 몸을 이끌고 축사에서 돼지를 돌보고 있다. 이강민(lgm19740@jjan.kr)

한센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익산시 왕궁면은 한적한 여느 시골마을 모습 그대로다. 이 일대의 정착촌은 전국 최대이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로, 4개 농장에 1200여 명이 모여 살고 있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경로당에서 삼삼오오 장기를 두며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의 얼굴 어디에도 괴롭거나 아픈 표정은 없었다.

 

15살에 한센병 진단 확정을 받은 뒤 전남 고흥의 소록도로 넘어가 20년 동안 치료 받았다는 강모씨(80). 그는 익산으로 들어와 정착한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소록도를 나오기 위해 한센인들은 강씨와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소록도에서 7년 이상 음성 환자로 판정 받으면 이렇게 사회로 나와요. 여기서도 모여 살고 있을 뿐이지 밖으로는 잘 안 나가요. 남들이 보는 눈도 그렇고…. 그게 제일 괴로운거에요. 이젠 웬만큼 견디지만 주위의 냉대를 이겨내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한센인으로 살면 누구나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실제 죽기도 많이 죽었고요."

 

강씨의 짧은 변은 전국의 한센인 1만4700여 명이 그동안 걸어온 슬프고 지친 삶을 그대로 투영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한센병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마을 장터에 한번 나가는 것조차 여전히 그들에게는 두려움만 앞선다. 편견과 오해,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마주하느라 이젠 가슴 깊이 딱지가 앉아서일까? 참기 힘들었던 속이야기도 주저 않고 담담하게 풀어냈다.

 

"예전에는 한센병이 생기면 부모가 호적에서 빼버리기도 하고, 혼인 문제가 얽히면 사돈에 팔촌까지 결혼을 반대하고 나섰어요. 우리에게 힘든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식들 문제에요. 여기(왕궁)에 산다고 하면 애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데요. 그래서 애들 주소를 전주로 옮겨서 학교 보내고 그랬어요. 우리 얼굴이 알려지면서 자녀들이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다들 이렇게 언론 매체에 공개되는 것도 꺼리는 겁니다."

 

3종 전염병으로 분류돼 취업이 불가능한 이들은 기초생활수급비와 양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역시 답답하다는 그는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가라앉히고 말을 이었다.

 

"농림부장관이 바뀔 때마다 정책도 바뀌고 시설도 바꾸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수급자들이라 생계비 20만 원에서 많아야 30여만 원 정도 받는데, 돼지를 팔아야 먹고 살거든요. 융자 줄테니 시설 바꾸라고 하면 그게 고스란히 빚이 되잖아요. 어쩔 수 없이 50% 지원받고, 30% 융자, 20% 자부담내서 어렵사리 축사를 지어놓으면 돼지 값은 폭락하는데, 새 장관은 또 시설만 바꾸라고 하니 악순환입니다. 여기 지금 500여 가구 중에 빚 없는 집이 없으니 그져 막막할 뿐이죠."

 

노동량이 많은 돼지치기는 결국 병과 빚만 키웠고, 돼지 분뇨 냄새로 인한 끈질긴 민원으로 한바탕 홍역도 치러야 했다. 수십년 동안 돼지를 키우면서 몸이 망가져 이젠 병원가는 횟수도 더 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센인들의 입원이나 수술을 받아주는 병원이 거의 없다는 것이 큰 문제다. 여기에 검사 몇가지만 받을라면 진료비가 70만 원~100만 원 가까이 청구돼 병원 찾기가 겁난다고 했다.

 

"아무리 팍팍한 삶이지만 즐거운 생활을 좀 하고 싶어요. 바깥으로 나가기도 쉽지 않은데, 마땅히 운동하거나 놀 수 있는 시설조차 없어요. 전에 병원가니까 덜덜덜 하면서 안마해주는 의자 참 좋던데, 그거라도 몇 대 있으면 노인들 편하고 좋을 것 같더라고요."

 

경로당에 안마 의자 들여놓을 정도의 공간은 있다며 구석의 빈 방을 보여주다가 멋쩍게 웃는 강씨. 사회적 약자로 소외와 차별된 삶을 살아야 했던 희생에 대한 작은 보상이라는 안마 의자는 이 곳 한센인들에게는 꿈과 희망이었다.

 

전염성도 없고 완치도 가능하며 유전되지도 않는 한센병. 이제는 그 무지(無知)로 인한 오해와 편견을 씻어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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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리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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