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클레오파트라' 시저 역
"10명 중 9명만 하지 말라고 해도 다시 생각해봤을 텐데 1명도 빠짐없이 모두 말리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처음 그가 뮤지컬 '클레오파트라'에서 시저 역을 맡는다고 하자 다들 고개를 저었다. 첫 뮤지컬 무대에서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정반대의 시저 역으로 변신하는 것은 지나친 모험이라는 진심 어린 걱정에서였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오히려 고민하던 공형진의 마음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뮤지컬 '클레오파트라'가 공연 중인 국립중앙박물관 내 극장 용에서 만난 그는 "변신에 대한 강박은 없지만 다른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며 "모두 안된다고 했을 때 해내면 반전의 효과가 더 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가 뮤지컬 무대에 서기로 한 것은 뮤지컬 '드림걸즈'에 출연 중인 절친한 동료 배우 김승우의 영향도 컸다. 1990년대 극단 유에서 활동하며 연극무대에 섰던 공형진이 무대의 매력을 모를 리 없었다.
"대학 시절(중앙대 연극영화과)에는 매년 뮤지컬을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졸업 후에는 영화에 주력하면서 뮤지컬은 안 했어요. 힘들다는 선입견도 있었지만 게으름 때문이었죠. 그런데 김승우 씨가 무대에 선 것을 보고 '나는 왜 못하고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때마침 시저 역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그러나 공형진과 시저는 쉽게 연결되는 조합은 아니었다. 코믹한 이미지가 깊게 각인돼 있었기에 주변에서조차 "잘 어울리지 않는다"며 반대했다.
"주위에서 전부 하지 말라는 거에요. 잘할 수 있는 역할도 많은데 왜 하필 시저냐고요. 여기에 오기가 생겨서 '오케이 알았어, 내가 보여줄게'라며 출연을 결심했죠."
그리고 그는 곧바로 연습실로 향했다. 풍부한 연기 경험으로 다져진 그였지만 뮤지컬 무대는 또 달랐다. 연습 기간은 20년 연기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내 안의 또 다른 면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하지는 않았어요. 물론 동전의 앞뒤처럼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을 수도 있지만 확신이 있어 앞면만 보고 간 거죠."
그는 이번 공연에서 시저 역을 번갈아 연기하는 배우 정찬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전체 연습이 끝나고 나서도 따로 연습을 청하며 배우들을 괴롭혔다.
"티는 안 냈지만 속으로는 미치겠더라고요. 두세 달 연습한다고 뮤지컬 배우처럼 잘하진 못하겠지만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막내의 마음으로 덤볐죠. 다행히 정찬우 씨가 손을 잡아줬어요. 처음에는 걱정이 컸는데 점점 슬쩍 자신감이 생기면서 빨리 보여주고 싶더라고요."
첫 공연, 시저 역을 말리던 그의 동료들이 공연장을 찾아 박수를 보내줬다.
공형진은 "첫 공연 도중 눈이 마주쳤을 때 장동건이 조용히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인 순간 정말 기뻤다"며 "이 작품을 통해 내가 배우로 임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것 같아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시저 역 한번 했다고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을 통해 시저로 살았던 것이 제게도 앞으로 큰 자산이 되리라 믿어요. 시저 역을 해냄으로써 충분히 또 다른 모습에 도전할 수 있는 무기가 된 소중한 경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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