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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혁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 ⑧지영(智永)의 「진초천자문(眞草千字文)」

정밀함이 극에 달하여 마치 도연명의 시를 보는듯…기이함 없는 전형성 높이 평가

지영 「진초천자문」. (desk@jjan.kr)

중국 역사상 춘추 전국을 통일한 진(秦)과 남북조를 통일한 수(隋)는 서로 닮은 점이 있다. 7웅이 할거하던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는 오행상 불(火)을 종식하고 새로운 물(水)의 시대를 열었음을 만천하에 공표하고 육수법(六水法)에 의하여 제도를 개편하였다. 문화적 측면에서는 서동문(書同文)이라는 문자통일 정책을 추진하고, 춘추전국을 풍미한 제가들의 사상을 일시에 단절하는 분서갱유를 단행하였다. 관용과 포용보다는 새로운 질서에 따라야 한다는 중앙집권적 법치주의를 표방하였으나 시황제의 죽음 이후 동력을 상실한 진나라는 결국 15년 만에 한나라에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한나라는 400여 년 동안 정권을 유지하며 중국문화의 첫 번째 봉우리를 이루었다.

 

한 이후, 위진에서 남조와 북조로 이어지며 점차 분열되었는데 북조를 통일하고 세운 나라가 바로 수나라이다. 건국 후 검약을 솔선하고 사치를 금하며, 불교를 장려하고 형법의 율(律)과 관제의 령(令)을 명문화하여 율령국가로서의 체제를 확립하였다.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하는 시험제도는 '과거'의 효시가 되었으며, 중국의 5대 운하가 수대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수문제가 죽은 후 왕위계승 과정에서 패륜이 자행되는 등 정체성을 상실하고 결국 4제(帝) 37년의 왕조를 마감하였다. 이를 계승한 당(唐)은 수나라의 국가체제를 이어받아 300년의 명맥을 유지하며 중국문호의 두 번째 봉우리를 이루었다. 이러한 유사성으로 인하여 진한제국과 수당제국이라 부르게 되었다.

 

북조를 통일한 수나라는 불교를 표방하여 일부 사경이 남아있으나 서예자료는 지극히 미약한 편이다. 「수서(隋書)」 등의 정사에 서가로서 거론된 사람은 10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술서부(述書賦)」에 방언겸(房彦謙)과 노창형(盧昌衡)의 이름이 올라 있고, 당의 명서가 저수량의 스승으로 전해지는 사릉(史陵), 계법사비(啓法寺碑)를 쓴 정도호(丁道護, 생졸미상)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남조 진(陳)과 수대에 걸쳐 생존한 지영(智永, 생졸미상)은 왕희지의 7대손으로서 이름은 법극(法極)이며 회계 사람이다. 형(惠欣)과 함께 출가하여 오흥의 영흔사(永欣寺)에 거처하였는데 진초(眞草) 천자문 800본을 임서하여 강남의 여러 절에 한 본씩 나누어 준 일은 유명하다. 이 일로 서명이 알려지자 글씨를 구하려는 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심지어는 대문에 구멍을 뚫고 들어오기도 하였다. 그래서 부득이 철피(鐵皮)로 문을 싸서 막았는데 이로부터 철문한(鐵門限)이라는 말이 생겼다.

 

지영은 가법(왕희지)을 계승하기 위하여 루에 올라 공부하며 "書不成, 不下此樓" 즉 "글씨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루를 내려가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30년 동안 숙련하였다고 한다. 닳은 붓이 상자에 가득 차 더이상 둘 데가 없자 묻었는데 이를 퇴필총이라 한다. 역대 서론가들은 고습(苦習)하여 마침내 그의 진수를 얻은 지영의 서를 '정숙(精熟)'이라 귀결하며, 기이함이 없는 전형성을 높이 평가하였다. '정숙'은 법이 정밀하고 매우 숙련되었다는 말이다. 소동파도 "정밀함이 극에 달하여 도리어 소담(疏淡)하며, 마치 도연명이 시를 보는 듯하다."고 평하였다. 왕법을 계승하여 법조(法祖)가 된 지영의 「진초천자문」은 이후 손과정, 회소를 비롯하여 조맹부, 문징명 등의 천자문에 영향을 미쳤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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