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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경성 번화가 지도로 복원

1930년대 '모던 경성'의 최고 번화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가 나왔다.

 

여환진(연세대 건축공학과 석사과정)씨는 한동수ㆍ도미이 마사우라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와 함께 일본인 상권인 혼마치(本町.지금의 충무로)와 조선인 상권인 종로 거리를 표시한 길이 40m, 폭 2m 크기의 지도를 최근 완성했다고 28일 말했다.

 

혼마치는 신세계백화점 본점(옛 미쓰코시백화점)부터 그랜드앰배서더호텔까지 2km 구간이며, 종로는 세종로 일민미술관(옛 동아일보)부터 동대문까지 2.9km 구간이다.

 

여씨는 "도시의 특정 시기를 복원하는 작업이 이제까지 없었는데 우리가 어느 시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고서점에서 당시 서울 전화번호부를 구해 상점 주소를 확인했고, '경성상공명록' 등 70여 권의 책과 일본인이 남긴 지도를 참조했다.

 

또 당시 신문을 일일이 뒤져 광고에 나오는 상점을 확인했다. 신문 화재 기사에 나오는 주소까지 꼼꼼하게 챙기기도 했다. 1년이 넘게 작업하면서 3천 개 넘는 상점을 찾아냈다.

 

이름 있는 상점만 수록한 것이 아니라 이발소부터 작은 담뱃가게까지 거의 모든 상점을 지도에 실었다. 또 한 자리에서 상호가 바뀐 과정을 모두 기록해 30년대의 변화상을 쉽게 볼 수 있게 했다.

 

여씨는 "종로는 아직 자본주의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1년에 2~3번씩 바뀌는 곳도 있었지만, 혼마치는 장사가 잘돼서인지 상점이 잘 변하지 않았다"면서 "혼마치는 상호가 있지만 종로는 간판도 없이 장사하는 경우가 많아 조사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최고 번화가였던 혼마치에는 중국인을 비롯해 러시아인, 터키인, 이탈리아인, 영국인 등이 차린 상점도 있었다. 여씨는 "당시 경성은 생각보다 국제적 모습을 갖췄다. 심지어 카페 여급 중에 영국인이나 독일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종로는 혼마치에 비해 쇠락했지만 1930년대 들어 콘크리트로 된 건물이 많이 지어져 외형적으로는 만만치 않았다"면서 "다만, 전 세계의 물건을 팔던 혼마치에 비해 내용 면에서는 밀렸다"고 설명했다.

 

여씨는 완성한 지도를 내년에 일본과 한국에서 전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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