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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혁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 (29)조지겸(趙之謙)의 북위서법 연구

안저위면(顔底魏面)의 개성적인 필치 선봬

趙之謙 行書 (1870년) (desk@jjan.kr)

 

조지겸(1829~1884)의 자는 익보(益甫)였으나 후에 휘숙으로 고쳤으며, 호는 냉군(冷君), 철삼(鐵三), 매암(梅庵), 무민(無悶) 등이 있다. 본래 소흥(紹興) 회계사람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점차 가세가 기울었고, 30세를 전후하여 장발적의 대란이 미치자 고향을 떠나 온주(溫州)와 서안(瑞安), 복주(福州) 등을 전전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부인을 잃었는데 그때부터 자신을 비암 또는 사비옹(思悲翁)이라 호하였다. 난이 평정된 후에는 북경으로 올라가 세 차례나 회시를 치렀으나 낙방, 동치 11년(1871) 강서성에 초빙되어 강서통지(江西通志) 편집에 종사하면서부터 이곳에서 생활하였고, 남성현(南城縣) 지현(知縣)으로 재직하다 병사하였다.

 

글씨는 처음에 안진경을 배웠으나 후에 북비를 공부하였고 예서는 등석여를 사사하였다고 한다. 그 역시 비학파의 영향으로 북비를 탐구하고 은주시대 금문을 연구하여 「육조별자기(六朝別字記)」를 저술하고 「환우방비록」을 보충하는 등 금석학적 업적을 남겼다. 그림은 진도부와 이선을 사숙하였는데 화훼에서 발군하여 양주팔괴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조지겸의 서품을 보면 한눈에 북비의 영향을 강하게 느끼면서도 고법을 답습하지 않고 독특한 개성으로 새로운 서예세계를 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널리 알려진 장맹룡비(張猛龍碑), 가사백비(賈思伯碑), 정문공비(鄭文公碑), 용문조상기(龍門造像記) 등의 북비에서 필력을 얻어 여러 서체에 적용하였다. 특히 정도소의 글씨를 매우 숭상하여 "北碑書無過熒鄭僖伯"이라 하였다.

 

비학적 입장에서 살펴보면, 북비를 탐구하여 서법에 적용한 이로 앞서 소개한 등석여와 금농(金農), 서삼경(徐三庚)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북비에서 득력하였지만 그 표현양상은 제각기 다르다. 등석여는 전서와 예서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금농은 양주팔괴의 한 사람으로 예서를 평필처럼 써서 칠서(漆書)라는 호칭이 있을 정도로 개성적인 필치를 선보였다. 조지겸은 등석여의 서를 배웠으나 북비를 탐구하면서 그만의 독특한 필법을 표출하였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전서와 예서에서 역필을 강조하지 않고 순필로 들어가 필획의 절주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그로 인하여 북비에서 엿보이는 팔분의 특징이 해서에서도 적용되어 나타나며 독특한 풍격을 이룬다. 전서에서도 횡획을 순필로 시작하여 율동의 미를 강조하는 한편, 수획에서는 교봉(絞鋒)에 의한 탄력 있는 필획을 구사하며 강하고 예리하게 수필(收筆)함으로써 우아함을 드러내 보였다. 이를 대비시켜 본다면, 역필을 강조한 등석여의 투박함과 자태의 운치를 추구한 서삼경의 섬세함을 다 아우른 감이 있다. 이들은 모두 전각에도 일가를 이루고 있는데 전서의 개성적인 특징은 곧 전각에서 다시 재현된다.

 

진진렴(陳振濂)은 하소기의 해서와 행초서가 위삼안칠(魏三顔七)이라면 조지겸은 위칠안삼(魏七顔三)이라고 평하였는데 흥미롭다. 이로서 조지겸의 해서와 행초서를 일언이폐지하여 안저위면(顔底魏面)이라 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만청의 개성적인 서화가들을 비교하여 등석여의 혼후(渾厚), 이병수(伊秉綬)의 웅장(雄壯), 하소기의 고졸(古拙)이라고 일컫기도 하는데, 조지겸은 이들과 다른 또 하나의 파를 만들어 자성일가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서학계에 휘몰아쳤던 비학의 영향권에서 뚜렷하게 독자적 행보를 보인 여러 서가들의 특징을 잡아내는 것도 좋은 공부라 생각한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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