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남자가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앞에 두고도 결코 자신이 그것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카지마 아츠시(中島敦)는 「역사 속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에서 이릉(李陵)의 삶을 이렇게 요약했다. 이릉은 중국 한(漢)나라 무제 때 흉노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죽지 못하고 포로가 된 비운의 장수이다. 한 무제는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한 일로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 바로 그 사람이다.
천한(天漢·BC 99년) 2년 9월, 기도위(騎都尉) 이릉은 보병 5000을 이끌고 알타이 산맥 동남쪽 끝이 고비 사막에 닿은 자갈 많고 거친 구릉 지대를 뚫고 한 달이 걸려 막북(漠北) 준계산(浚稽山) 기슭에 진을 쳤다. 변방에서도 1500리가 떨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3만 아니 8만 흉노의 군대와 벌인 기나긴 전투…. 얼마 남지 않은 군사들과 뒤엉켜 싸우던 중 그의 말은 화살을 맞아 고꾸라지고 그는 뭔가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쓰러졌다. 장군을 잃은 패잔병 400명은 그해 11월에 변방에 도착했고, 패보도 곧 장안에 전해졌다.
무제는 처음에 화를 내지 않았다. 충분히 납득할 만한 패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릉이 죽지 않고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에 무제는 격노했다. 조정은 이릉의 매국적 행태를 비난했다. 세상인심이 그러하듯, 이제 평소 이릉의 행동 하나하나가 의심스러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명장 이광(李廣)의 손자라며 고군분투하는 이릉을 칭송했던 이들도 그들이었다. 이때 한 하위직 대부(大夫)도 이릉의 처리에 대한 황제의 질문을 받았다. 그는 말했다.
"평소에 이릉을 보니, 부모께 효도하고, 벗과는 신의가 있었으며,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자진해서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오직 자신과 처자식만 생각하는 폐하의 측근들이 이릉의 실수 하나를 들어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하여 폐하의 총기를 가리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무제는 관자놀이에 경련을 일으키며 듣고 있었다. 무모한 그 남자, 사마천(司馬遷)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오직 자신과 처자식만 생각하는 신하(全軀保妻子臣)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기보다 사마천의 말을 자신들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고, 그 공격에 대해 앙갚음하기 위해서 사마천을 그래서 이릉의 가족들보다 사마천이 먼저 벌을 받게 되었다. 형벌은, 부형(腐刑)이라고도 불리는 궁형(宮刑)이었다. 이 와중에서 그는 「사기(史記)」를 남겼다.
▲ 다시 걸어 나온 사람의 말을 듣다
이렇게 세상에 맞부딪혔던 사람들, 이들을 역사는 종종 다시 불러낸다. 그래서 그들은 지나간 역사 속에서 성큼 걸어 나온다. 그러나 여기에는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불안한 상황이 있다. 역사의 인물로 남는다는 것, 그것도 세상과 한 판 벌인 경우는 대부분 뭔가의 힘겨운 상황이 벌어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심 가능하면 자꾸 역사 속에서 걸어나오는 인물들이 없었으면 하고, 이 소심한 역사학자는 바라기도 한다. 물론 여기서 '힘겹다'고 표현하는 것은 나 같은 범인의 눈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의 인격과는 상관없이 현실은 결단을 요구할 만큼 벅찬 것이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지금도 그런가 보다. 아니, 그렇다. 어떤 학생이 말했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를 거부한다고."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그는 학교를 '그만 두지 않았다'. 그는 학교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다. 국가는 의무교육의 이름으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고,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에 '인간제품'을 조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하청업체가 되었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가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는 또 대학원에, 유학에 돌입한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말처럼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게 한다.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 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 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한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동시에 이 체제를 떠받쳐온 내 작은 탓을 묻는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떡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됐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대학생(大學生)'의 첫발을 내디딘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김예슬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 이제 공은 넘어 왔다
내 강의를 듣는 정성윤씨(고려대 재학)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누군가 대자보를 붙였고, 굉장히 많은 이들이 그 대자보를 주목했다. 안타깝기도 했고, '이제야 한 사람 나왔구나' 싶기도 했고, 쉽게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기에 멀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일단, 나는 대자보 글을 '정치적으로 50%쯤' 지지한다. 손 놓고 구경하겠다는 '심정적 지지'가 아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별다른 의미나 희망을 찾지 않고 있는 나로서는 그녀의 대갈일성에 담긴 메시지에 전적으로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그는 블로그에, 누군가의 손에 의해 훼손되고('테러 당한') 떨어져나간 김예슬의 대자보를 사진으로 찍어 고발했다.
김예슬씨의 대자보를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느낀 수많은 상처 입은 영혼들이 있었나 보다. 그보다 미안해하고 답답해하는 더 많은 영혼들이 있었다. 그들은 학교에 남아 있는 자신들을 미안해했다. 이 황당한 상황! 학생이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을 미안해해야 하다니! 그래서 나는 그들을 위로해야 했다. "학교에 남아 있든, 거부하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남든 거부하든 풀어야할 문제, 살아야할 현실은 그대로 남는다. 미안한 마음 대신 우리가 같이 마주하고 있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머리를 맞대자"라고 '선생 같은' 소리를 했다.
김예슬씨의 대자보가 붙은 얼마 뒤 서울대에 대자보를 붙인 채상원씨(서울대 재학)는, "오늘,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아니, 싸움을 시작한다"고 뜻을 같이 한 뒤, 이렇게 말했다. "이 물음에 답해야 하는 사람, 대안을 만들 수 있고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은 대학 교수님도, 정치인도 아니다. 바로 우리 대학생들이다. 우리의 삶을 그들에게 내맡길 수는 없다. 이에 나는 오늘 조용히 다짐을 해보려 한다. 자발적 퇴교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그러면서도 지금의 대학을 거부하기로. 대학의 주인이 되어 대학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기로" 했다고. 믿음직하다. 그런데 나는 "대안을 만들 수 있고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은 대학 교수님도, 정치인도 아니다. 바로 우리 대학생들이다"라는 말에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점잖게, '대학 교수님'은 아니란다. 나는 찍혔다.
/오항녕(문화전문객원기자·한국고전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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