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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전주국제영화제] 김용택 본보 편집위원, 영화배우 박해일 만나다

박: 전주, 부산과 달리 영화 골라보는 재미있어…김: 영화속 시적 아름다움 이해할 줄 아는 배우

김용택 시인과 배우 박해일씨의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다. 지난달 27일 이창독 감독의 영화 <시> 시사회 현장. 시인과 배우는 술자리에서 마주쳤다. "설마 박해일?" "혹시 김용택 시인님?" 그렇게 인사를 나눴다.

 

지난달 30일 이들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시 만났다. "어, 박해일씨?" "아, 김용택 선생님!" 잠시 후 이들은 한옥마을의 한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인은 "박해일은 전주영화제와 깊은 인연이 있는 배우"라고 소개했고, 박씨는 "제2회 전주영화제 개막작 <와이키키 브라더스> 를 찍기 위해 오거리를 배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웃었다.

 

영화 <국화꽃 향기> , <살인의 추억> , <연애의 목적> , <괴물> 등에 이르기까지 박해일은 연기자로서 거듭 변신했다. 불순물을 걸러낸 듯 해사한 모습에 서정과 애수가 서려 있는 것 같은 인상. 영화에서 사악한 역을 맡았다 해도 '뭔가 속사정이 있겠지' 하는 느낌을 주게 만드는 배우다. 그는 올해 전주영화제 방문이 두 번째. 올해도 <광기의 땅> 과 <숏숏숏 2010> 도 챙겨봤다. "부산영화제는 축제 분위기가 강한 반면 전주영화제는 차분한 정서가 있어 영화를 찾아볼 수 있게 한다"고 말하는 그는 "올 때마다 기대가 되는 영화제"라고 말했다.

 

배우'박해일'은 시인이 평소 눈여겨 본 배우다. 한국 영화사를 줄줄이 꿰고 있는 영화 마니아로서, 그의 팬으로서 호기심이 많았던 터였다.

 

시인은 화기애애해진 분위기에서 " <살인의 추억> 에서 해일씨가 범인인지 아닌지 너무 궁금했다"고 이야기를 풀었다.

 

"저도 궁금했어요. 봉준호 감독님이 가르쳐주지 않았거든요. 너무 답답해하던 차에 감독님께 물어봤죠. 그랬더니 '어차피 형사들의 시선으로 쫓아가는 거니까 너는 카메라 앞에서 범인으로 밖에 보일 수 없는 캐릭터다. 범인이 누구냐는 중요치 않고, 그 시대를 보여주는 장치적인 활용일 뿐이다. 알아서 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선의의 피해자라고만 여겼어요."

 

배우의 답변에 시인은 "복잡한 내면을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는 자세가 엿보였다"며 영화배우에 대한 동경이 길었는가고 물었다.

 

 

이때부터 '연봉 50만원' 받던 무명의 한 아동극 배우의 이야기가 풀어졌다. 험한 일은 전혀 안해보고 살았을 것 같은 준수한 외모는 편견에 불과했다.

 

"스무 살에 집을 나오면서, 아르바이트란 아르바이트는 다 해봤습니다. 어느 날엔가 아동극단 단원을 찾는다는 구직난을 봤어요. 오디션에서 <세일즈 맨의 죽음> 을 버벅거리면서 했는데, 얼떨결에'백설공주'의 왕자역을 맡게 됐죠. 초록색 타이즈 신고 보자기 모자 쓰고 난장이까지 1인 2역을 했습니다. 나중에 수고했다고 사주시는 설렁탕에 소주 한 잔, 그게 임금이었죠. 그러던 중 가족들과 아동극을 보러 온 대학가 연극 연출자의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연극 배우로서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자신이 이 길을 가야 되는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회의가 계속됐었다고 했다. 그때 두 편의 시가 비타민이 됐다.

 

"연극 포스터를 붙이고 다닐 때였어요. 그런데 마음이 너무 힘든 거에요. 그 때 너무 더워서 에어컨 바람이나 쐬자는 심정으로 백상기념관에 갔는데, 류달영씨의 '젊은 하루'란 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대 아끼게나 청춘 이름 없는 들풀로 사라져 버림도 (…) 젊은 시간의 쓰임새에 달렸거니 (…) 젊은 하루를 뉘우침 없이 살거나.' 그 순간 시가 저를 버티게 해 준 좋은 보약이 됐어요."

 

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가 지친 삶과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고 동의한 시인은 "역시 영화 안의 시적인 아름다움을 이해할 줄 아는 배우"라고 답했다.

 

푸쉬킨의 '시(詩)'도 박씨가 또 다른 숙제에 직면했을 때 위로받은 작품. 박씨는 "'의욕많은 예술가여, 네가 황제다. 고독하게 살아라' 하는 마지막 대목에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힘을 얻었다"며 "시는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지향하는 도구가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인터뷰가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시인은 "나이가 쉰 살이 돼서도 배우의 길을 가고 싶으냐"고 물었다. 박씨는 "무엇을 하든 간에 친환경적인 삶을 지향하면서, 자기 멋에 사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시인은 이날 인터뷰 말미, 섬진강 진메마을로의 초대장을 건넸다. 박씨도 웃으며 꼭 한 번 방문하겠노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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