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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혁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 (33)삼국시대 서예문화 개관

문화 비교우위보다 우리문화 독자성 찾아야

광개토호태왕 호우 (desk@jjan.kr)

오세창은 「근역서화징」에서 신라 선덕여왕 재위기에 활동한 양지(良志)를 최초의 서가로 들고 있다. 이어서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金仁問)을 들고, 다음으로 한눌유(韓訥儒)를 꼽았다. '나대편(羅代編)'이라는 제하에 서화사의 권두를 장식하고 있는 이들은, 분명 우리나라에서 그 이름이 밝혀진 서가들임에 틀림없다. 전존하는 필적을 중심으로 서자가 분명하게 밝혀진 경우로 한정한 것이지만, 양지의 경우 「삼국유사」에 기록에 근거하여 '필찰(筆札)을 잘하였다'는 단평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그가 스님의 신분이라는 점에서 불교와 서의 관련성, 필찰이 통상 편지서체를 일컫는 말이므로 모필에 의한 필사가 보편화되었다는 점 등을 유추할 수 있다. 이렇게 인물사를 중심으로 서예를 바라볼 경우 문화의 시대가 훨씬 뒤로 밀려난다는 사실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서예사 서술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전존하는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문화사적으로 재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서자의 검증에 앞서 역사적 가치를 지니는 기록에 대한 검토가 우선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고대 즉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유물들은 한결같이 역사적 가치와 더불어 미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최초로 완정본 한국서예사를 집필한 김기승의 경우에는 점선현신사비(일명 점제비)와 광개토대왕릉비로 필두로 하여 고구려시대를 그 출발점을 삼고 있다. 고구려-백제-신라인가, 아니면 신라-고구려-백제인가에 대한 것은 「삼국사기」를 집필한 김부식(金富軾) 이래 역사서술의 관점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김기승은 한(漢)의 문화를 수용하는 입장에서 중국대륙과 연접한 고구려가 가장 우위에 있다고 보고, 한의 문화가 한반도로 동전(東傳)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문화가 탄생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한사군의 설치를 그 기점으로 삼았다. 최근 한사군의 설치에 대한 학계의 새로운 의견들이 개진되고, 최근 북한에서도 이에 대한 대규모의 학술토론이 있었던 점을 참고한다면, 한에 종속된 문화적 관념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로운 해석을 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문화적 관점에서 보면 전통적인 토속문화에 외래문화가 수용되어 조화되는 경우가 있고, 또 달리 미개지역에 선진적인 외래문화가 정착하여 토착화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문화는 물과 같아서 선진문화가 후진문화로 흘러 들어가기 마련인데, 서로 다른 두 문화가 갈등하고 융화되면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고대시대의 서예사료를 수집하여 일별하면 대륙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가 발견된다. 서예사에서 권두를 장식하고 있는 고구려의 점선현신사비(일명 점제비, 85년 각석으로 추정)를 비롯하여 광개토호태왕비와 호우, 중원고구려비, 모두루묘지, 평양성석각 등을 비롯한 백제와 신라의 초기 석각 및 필적들은 당시 중국의 서체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차이점이 곧 우리의 고대문화의 특징이며 우리 선조들의 미의식이자 삶의 방식이다.

 

중국 대륙을 통털어 고구려의 광개토호태왕비만큼 웅장하고 당당한 자연석비는 없다. 비신의 규모 뿐만 아니라 그 서체 역시 당시 중국의 전통적인 서법으로는 검증하기 어렵다. 고구려의 역사와 정신, 나아가 그들의 역사인식과 미의식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해독불가능한 것이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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