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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혁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 (35)낙랑시대의 서예문화

전통문화 계승과 신문화의 수용…한자문화 생활상 엿볼 수 있는 귀중 자료…우리보다 앞선 日 고고학계 관심은 아쉬워

석암리 출토 귀뉴동인(王根信印)과 귀뉴옥인(永壽康寧) (desk@jjan.kr)

그동안 한국서예사를 다루면서 고대 삼국을 상한선으로 잡고 5세기 초에 수립된 광개토호태왕비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한반도에 삼국이 정립하며 각자의 문화적 정체성과 독자성을 확보하기 이전에도 고조선(위만조선을 포함)의 문화를 계승하는 한편 한의 문화를 수용하여 성대한 문화를 이룩했음을 증명해주는 유물들이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이 고조선을 멸하고(B.C.108)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그 영역 안에 설치한 한사군 중에서 낙랑은 그 문화의 수준이 가장 높았다.

 

2001년 7월 17일부터 9월 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기획한 '낙랑' 특별전이 열린 적이 있다. 이 전시는 그 해 9월 25일부터 11월 4일까지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순회 전시되었다. 지금 필자의 곁에는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간한 '낙랑' 도록이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발굴유물들을 일별하면 그 문화적 수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낙랑의 유물 중에서 최고의 수작으로 일컬어지는 금제교구(평양 석암리 9호분 출토)는 실로 화려한 금빛을 발하며 당당하게 그 문화적 수준을 대변하고 있다. 평양에서 다량으로 발굴되었다고 전해지는 봉니(封泥)와 온전한 상태로 석암리 고분에서 발견된 귀뉴동인(龜紐銅印)과 옥인(玉印)은 특수계층의 문화생활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여기에 창원 다호리 고분(1호분)에 발견된 붓과 삭도(削刀)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엽전, 요철 명문이 찍혀있는 다양한 벽돌들은 일상생활에서 사용된 유물로서 한자문화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외에도 기년명칠이배(紀年銘漆耳杯)가 눈길을 끄는데, 칠기에 기년을 포함한 글귀가 선명하게 음각되어 있어 절대적으로 빈약한 문헌자료를 보충해주는 한편, 그 필의가 실재로 쓰여진 서사에 가깝다는 점에서 서예사적 의의를 안고 있다. 해설에 따르면, 기원전 85년에서 기원 102년 사이에 지금의 중국 사천성 일대에서 만들어져 낙랑으로 수입된 것이 많으며, 명문에는 칠기제작에 참여한 인물들의 이름 등 내력이 상세히 담겨 있다고 한다. 서체로 보면 한대에 유행한 죽간의 서체와 매우 흡사한데 붓이 아닌 철필로 새겨져 있어 필획의 변화는 느낄 수 없지만, 정교한 각법과 능숙한 결구를 볼 때 한문의 생활화가 이미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앞서 소개한 점제현 신사비의 경우도 한문의 보급 정도와 토속신앙, 그리고 우리나라 고유 서체를 추적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낙랑은 한사군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존속하며 문화를 일구어왔다. 비록 한의 지배 하에 있었지만 정치적 군사적 지배보다는 경제적 의미의 조계(租界)에 불과했다. 이후 옛 땅을 되찾으려는 토착세력의 질긴 저항으로 한사군이 통폐합되어 204년 대방군이 설치될 때까지 낙랑은 존속하였으며, 313년 고구려 미천왕의 공격으로 마침내 멸망하게 된다. 청동기문화에서 철기문화로 이행되어는 과도기적 문화이행기에 속하는 낙랑의 문화는 중국의 문화를 수용하여 이를 토착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로써 널리 보급된 서예문화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면모를 지니고 있어 새로운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고조선의 토착문화를 계승한 낙랑의 문화가 후에 고구려에 흡수되는 역사적 전개에서 보면, 고구려의 서예문화 또한 낙랑과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 기록이 매우 귀한 이 시대의 유물을 우리보다 앞서 일본의 고고학계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고대사 조작에 의구심을 갖기에 앞서 이제라도 우리 문화에 대한 한량없는 관심과 체계적인 연구를 계속하여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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