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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의 서예·한문 이야기] (27)春風大雅, 秋水文章(춘풍대아, 추수문장)대련

쌍낙관은 커녕 이름·호도 없어, 진품 의문

등석여'春風大雅, 秋水文章'대련. (desk@jjan.kr)

 

오늘은 추사의 작품과 함께 청나라 사람 등석여가 쓴 것도 게재하였다. 오늘은 필자가 지난 호의 말미에서 예고한 대로 어떤 이유로 추사의 이 작품을 확실한 진품으로 보기를 잠시 유보하고 '전(傳)' 즉 '추사의 작품으로 전해오고 있는 작품'으로 보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이 작품의 對句 문장은 어떤 진리나 사실을 천명한 성격의 글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 '大雅'를 시(詩)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이 글은 '시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포용력이 있어야 하고, 문장은 가을 문장처럼 깔끔해야 한다.'는 뜻이 되는데, 이 말이 비록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반드시 그래야하는 진리이거나 사실은 아니다. 가을 물처럼 시리기도 하고 날카롭기도 한 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봄바람처럼 훈훈한 문장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청치는 봄바람 같고 문장은 가을 물 같다'고 해석한다면 '大雅'를 정치로 본 자체가 비약일 뿐 아니라, 앞 구의 '정치'라는 단어와 뒷 구의 '文章'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지도 않으며 이 글을 어떤 진리나 사실을 천명한 성격의 글로 보는 것은 더욱 어색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필자는 이 대구는 진리나 사실을 천명한 말이 아니라 누군가를 칭송하는 글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는 생각을 하고서 지난 호에서 "봄바람처럼 온화한 인품(아량)은 만물을 다 용납할 수 있고, 가을 물처럼 냉철한 문장은 먼지(세속)에 물들지 않을 것일레라."라는 해석을 제시한 것이다. 원작자인 등석여가 '춘당대형아감(春塘大兄雅鑑)'이라는 쌍낙관을 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추사가 이 대구에 담긴 그런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추사도 이 작품을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서 썼을 테고, 주기 위해서 썼다면 받을 사람을 밝히는 쌍낙관을 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추사는 이 작품에 쌍낙관을 하기는커녕 이름이나 호도 쓰지 않고 달랑 도장만 두 개 찍었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게다가 찍은 도장도 문제가 있다. 이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현재의 낙관 도장이 찍힌 자리 아래쪽에 원래 도장을 찍었다가 지운 자국이 불그레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점선 원 부분) 처음부터 추사가 쓴 작품이라면 도장을 찍었다가 지우고 그보다 위쪽에 다시 찍어야 할 이유가 없다. 설령 도장을 찍은 위치가 맘에 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찍은 도장을 애써 지우고 다시 찍기까지 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중국이나 한국 서예사를 돌아보면 시대에 따른 작품의 형식 변화도 다양하다. 對句의 문장을 쓰고 쌍낙관을 하는 형식의 대련 작품은 중국에서도 청나라 때에 이르러서야 보편화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추사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창작하기 시작했다. 당시 청나라에서 유행한 새로운 형식의 대련작품을 추사가 조선 서단에 받아들여 선구적으로 선보인 것이다. 따라서 추사의 진품으로 확정할 수 있는 대련 작품에는 어김없이 쌍낙관이 있거나 협서(脅書)가 있다. 그런데 이작품은 글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반드시 쌍낙관이 있어야 할 글임에도 쌍낙관이 없는 데다가 도장을 찍었다가 지운 흔적이 너무 역력하기 때문에 필자는 추사의 작품이라고 확정하기를 보류하고 '전(傳)추사'작품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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