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숙
몇 년 동안 방치해 두었던 난이 작년 봄에 꽃을 피웠다. 뜻밖의 손님처럼 반가웠지만 꽃이 진 뒤 기다림도 그리움도 키우지 않고 무심히 세월을 흘려 보냈다. 첫 만남의 감격이 컸기에 아주 잊은 건 아니어서 가뭄에 콩 나듯이 눈길을 주었을 뿐인데, 귀띔도 없이 그는 내게로 다시 한 발짝씩 다가왔다. 그러니까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이다.
그는 동지섣달 꽃은 아니지만 나 좀 바라봐달라고, 나한테 사로잡혀달라고 묵시적 신호를 보내며 장엄한 한 호흡을 시작했다. 제 구실을 다하기 위해 온 힘으로 꽃대를 밀어 올리는 저 생명의 불꽃. 세 개의 꽃대에 다섯, 일곱, 열 한 개의 마디마디에 터를 잡더니 꽃 고추마냥 연둣빛으로 봉긋하게 부풀어진다. 날이 갈수록 여인네 버선코 모양을 하고 수줍은 듯 금방이라도 터질 것같이 탱탱해졌다.
며칠 후, 노랑 봄 나비가 나풀나풀 춤을 추듯 꽃망울들이 하나씩 벙그러지기 시작했다. 오늘을 위하여 먼 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속내를 꽃으로 노래하고 있으리라. 가슴에 고이는 이 두근거림, 나날이 애틋해지는 꽃. 나는 꽃과 마주하면서 사랑을 듬뿍 담은 여인이 되기도 하고, 명절을 기다리며 가슴 설레는 어린아이가 되기도 했다.
꽃과 사랑노름을 하다가 잠이 들어 이튿날 일어나보면 간밤에 나를 재워놓고 무도회라도 열었는지 꼬마천사들이 발레를 하고, 노란 참새들은 노래를 하며 꽃잎들이 박장대소 눈물까지 흘려가며 웃고 놀았는지 약간은 흩어진 이슬이 송알송알 맺혀 있곤 했다. '글쎄 요것들이, 즈떨끼리만·····.' 그러나 실은 벌·나비를 유혹할 수 있는 충분한 끼를 지녔음에도 스스로 제 사랑을 찾아 나서지도 못하는 베란다 화분 속의 난 꽃이 안쓰럽다. 오늘은 창문을 열어 벌·나비들을 초대해주어야지.
쉽게 피지 않는다는 난 꽃이 우리 집에서 두 번이나 함박지게 피어주었으니 이는 나와 특별한 인연 때문이리라. 그러한 인연 속의 우리 집 난을 막연히 난이라 부르지 말고 그만의 이름으로 불러주어야 예의일 듯싶어 인터넷을 뒤져보았지만 똑같은 꽃이 보이지 않았다. 잎이 셋인 다른 난과 달리 우리 난은 꽃잎이 여럿이다. 돌연변이를 겪은 귀하신 몸인데 진가를 몰라본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러나 꽃은 이미 다 저버리고 마지막 한 송이. 미안한 마음에 늦게나마 사진을 찍어줬다.
꽃이 피고 지는 세월 속에서 난 잎 몇 개도 혈색이 변해간다. 우리 집 난도 살아있는 생명체이니 생로병사의 굴레를 피해가지 못하는가 보다. 작년에는 한 달 남짓 꽃이 피었는데 올해에는 기간이 많이 짧아졌다. 이러다가는 다시는 꽃을 보지 못할까봐 조바심이 난다. 좁은 집에 대가족살이가 힘이 들었을지도 모르니 제금을 내 신접살림이라도 차려주어야 하나. 분신을 그리워하며 몸살하지 않도록 바로 옆에 두어 서로 바라보며 가끔 손도 잡으면서 행복하게 살다가 다시 꽃을 피울 수 있게.
이제 나는 꽃이 시들어 떨어진 뒤의 허망함을 한동안 견디면서 다시 꽃이 피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 찬란한 슬픔의 꽃을, 그리고 다시 피지 않을 나의 젊음을·····.
*수필가 이정숙 씨는 2001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지금은 노랑신호등」이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