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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비 오는 날

농촌에 가을비 오면 정말 할 일이 없다. 봄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모종 할일이 많다. 여름비를 맞으면서도 모내기를 한다. 소꼴을 벤다. 그러나 가을비 오면 할 일이 없다. 이렇게 가을비가 오다 말다 하는 날 할 일은 딱 두 가지, 마을에 있는 샘물을 품어 미꾸라지를 잡는 일과 산골 다랑이 빈 논으로 가제를 잡으러 가는 일이었다. 마을마다 공동 우물이 두서 너 개씩 있었다. 먹는 우물도 있고, 허드레 물로 쓰는 우물도 있었다. 세수를 하거나, 체소를 씻거나 하는 공동 우물이 우리 동네에는 두 군데 있었다. 가을이 되면 텃논에 살던 미꾸라지들이 겨울을 지내기 위해 이 샘으로 모여들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가을 비 부슬거리는 날을 잡아 미꾸라지를 잡았다. 우물물을 품어 미꾸라지도 잡고 그동안 우물물을 사용하며 이렇게 저렇게 쌓인 우물속의 돌멩이나 쓰레기들을 치웠다. 도랑치고 가제 잡는 식이었다. 우물속의 미꾸라지는 크기도 했고, 또 많기도 해서 새로 나온 시래기를 넣고 추어탕을 끊이면 동네잔치가 되었다. 가을 비 오는 날 딱 안성맞춤인 동네 작은 잔치요 축제였다. 커다란 샘 물 물구멍 속에서 물을 따라 누런 미꾸라지들은 꾸물꾸물 기어 나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른들이 그렇게 샘을 품어 미꾸라지를 잡는 동안 우리들은 주전자를 들고 깊은 산골 빈 논으로 가제를 잡으러 갔다. 아니 주우러 갔다. 비가 오면 산골 빈 논다랑이에 물이 고이기 마련이다. 산골 다랑이 논들은 뒷 논두렁에 작은 도랑들을 만들어 놓았다. 도랑 물 속에는 바위들도 많고 가제들이 살만한 작은 물구멍들이 많았다. 비가 오면 가제들이 자기들이 살던 구멍을 나와 논바닥으로 기어다녔다. 정말 많기도 했다. 빈 논으로 나온 가제들을 다슬기를 줍듯 그냥 주워 담으면 되었다. 잠깐이면 금새 주전자가 그득하였다. 어쩔 때는 커다란 남생이들이 엉금엄금 기어 다니기도 했다. 가제를 잡아다가 애호박을 넣고 지져 놓으면, 푸른색 애호박과 붉게 익은 가제는 정말 색깔이 기막히게 어울렸다. 먹지 않고 보기만 해도 그 빛깔의 조화에 탄성이 절로 났다.

 

가제와 미꾸라지는 샘이나 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생태계의 주인공들이다. 작은 우물 속에도 반듯이 가제들이 살았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샘에서 사는 가제를 잡으면 안 된다고 했다. 가제가 샘의 물구멍이 막히지 않게 늘 뚫어 주기 때문이었다. 자연의 생태와 순환을 돕던 것들이 사라지고 깊숙이 숨어버렸다. 마을이 심심하다.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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