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어 어디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평생 초등학교 선생을 하며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꿈에도 선생을 상상해 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졸업한 모교의 초등학교 선생이 되었다. 교사가 한 학교에서 5년 이상을 근무하지 못하기 때문에 덕치초등학교에서 5년 있다가 우리 집에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이웃 초등학교에 가서 1년을 있다가 얼른 덕치 초등학교로 다시 와서 5년을 있다가 5년이 되면 이웃에 있는 다른 학교에 가서 1년을 있다가 얼른 덕치초등학교로 와서 5년을 지냈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며 선생을 하다가 여섯 번째로 덕치초등학교로 와서 선생을 그만두었다.
나는 선생이 되어서야 책을 보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시작은 스물 둘이었다. 나는 헌책을 지게로 사다가 읽었다. 홀로 문학 공부를 한지 13년 만에 시인이 되었다. 나는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책을 사서 읽다보니 생각이 너무 많아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내가 시를 쓰고 있어서 나도 놀랐다. 나는 정말로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일찍 선생이 되었기 때문에 선생 이외의 것이 되겠다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 ‘무엇이 되어 어디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늘 중요했다. 나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대학 갈 생각을 안했다. 대학을 가면 초등학교 선생 외에 다른 욕심이 생길 것 같아서였다. 나는 지금이 좋다. 이따금 사람들이 “아이들이 그립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아니요. 나는 지금이 좋아요.”
나는 지금 강연하고, 글을 쓰고, 책도 읽고, 그림을 보며, 영화랑 놀면서 내 맘대로 산다. 강연도, 글을 쓰는 것도 내가 하기 싫으면 절대 안한다. 나는 지금도 무엇이 되고 싶은 게 없다. 사람들이 나를 ‘섬진강 지킴이’라고 한다. 나는 펄펄 뛴다. 내가 무엇을 지킬수 있단 말인가. 어떤 이는 나더러 환경운동을 한다고 한다. 나는 또 펄펄 뛴다. 나는 근본주의자도, 생태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나를 고집하거나 절대 무엇을 주장하거나 그 누구의 삶도 강요하거나 강제하지 않는다. 누가 누구에게 그럴 힘을 주었는가. 누가 저들더러 그러라고 했는가. 나는 내 삶을 내가 산다.
수능이 끝났다. 냉정하라. 이제 선택하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골라라. 좋아 해야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면 잘한다. 그러면 사회에 나가 내 몫이 생긴다. 늦고 더디고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자기가 좋아 하는 일을 찾아라. 자기가 좋아 하는 일을 평생하며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느냐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덫’이 될 수도 있다.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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