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쟁점 자료 분석하기
<자료 1> 관용의 역설 자료>
개인적 태도로서의 관용은 타인이 어떤 종교·도덕·정치적 입장·세계관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다. 모든 규범과 가치의 상대성을 내세우는 관용은 허무주의의 구실이 될 뿐 진정한 관용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내가 아무리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사람의 신념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관용의 전제 조건이다. 또한 관용은 모든 것을 관대하게 대하는 중립적 관찰자의 태도가 아니라, 나와 다른 존재 안에서도 가능한 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에 권리를 부여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관용은 어떤 인간도 결코 오류와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통찰에, 모든 사람은 자기 관점에 얽매일 수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그러나 관용은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자기 생각에 따라 행동할 권리를 가진 자유롭고 동등한 인격으로 인정하는 데 있다. 이러한 관용은 우리 사회가 자유와 인간에 대한 존중 위에 설 수 있게 해 준다. 관용은 억압의 반대말이다. 사실 관용은 편협해지기 쉬운 사랑이나 구호에 그치는 자유보다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용은 가장 겸손한 형태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며, 개인이 자신의 한계를 이겨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관용의 실현을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이기적 욕망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관용은 우리의 선입견을 해방시켜 새로운 인식의 여지를 마련해 주는 진리의 토대이기도 하다. 관용은 갈등들을 적대적 대결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합의적 토의를 통해 공평하게 조정할 공간을 열어놓는다.
이제 우리는 자기의 유일한 존재만 확신하는 '이성적이기만 한 자아'가 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고립적이고 자아 중심적인 욕망의 포로이기만 한 세계의 주인이 아니라 그 이성의 씀씀이가 훨씬 성숙한 책임 있는 이웃으로서 서로를 마주하는 도덕적 연대의 주체여야 하며, 바로 이러한 점에서 관용이 역설되고 있는 것이다.
-볼테르, 「관용론」
<자료 2> 정의는 규범이다. 자료>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정의의 핵심 내용은 평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평등한 자유 원칙이 채택되는 것은 한정된 경우라는 것이다. 사람들 간의 차이점이 심대하여 아무도 이성에 의해 그들 사이를 조정할 방안을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원초적 입장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은 역시 자신들이 어떤 원칙에 합의할 수 있기라도 한다면 이러한 원칙에 합의하게 될 것이다. 역사상 종교적 관용에 있어서 생겨났던 이러한 관념은 다른 사례들에게도 확대될 수 있다.
따라서 원초적 입장에 있는 자들은 무지의 베일이 요구하는 대로 그들 자신이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어떤 도덕적 신념을 갖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이 받아들이는 원칙들과 이들 신념들이 상충될 경우에는 그 원칙들이 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상충이 없을 경우에 그들은 자신의 견해를 수정할 필요도 없으며 그러한 원칙들이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다 해서 그 견해를 포기할 필요도 없다. 이런 식으로 해서 정의의 원칙들은 대립적인 종교들의 요구들을 통제하는 경우와 똑같이 대립하는 도덕 체계간의 판정을 내릴 수 있다. 정의가 설정하는 체제 내에서 상이한 원칙들이 갖는 도덕관이나 동일한 원칙들을 서로 달리 조정하는 입장들이 사회의 여러 부분에 의해 채택되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이러한 요구들을 정의의 원칙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원초적 입장에서 선택되어질 원칙들은 정치적 도덕성의 중핵이 된다. 그 원칙들은 단지 인간 간의 협동 조건을 명시해 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교 및 도덕적 신념들과 그것들이 속하게 될 문화 형태들 간의 조정을 위한 규범을 정해주는 것이다.
-J.롤스, 「정의론」
<자료 3> 송시열의 예송 논쟁 자료>
두 차례에 걸친 예송 논쟁이 조선의 지배층인 사대부들에게 남긴 상흔은 지대한 것이었다. 1차 예송 때 송시열이 기년복을 주장한 것은 "천하의 예는 같다."는 사상에 다른 학문적인 차원의 것이었다. 조선 예학의 전통으로 볼 때 송시열은 김장생→김집→송시열·송준길로 연결되는 정통 예학을 계승한 인물이었다. 1차 예송 당시 자의대비의 복제가 문제가 될 때 송시열에게 자문을 구한 것은 그가 당대 최고의 유학자이자 예론의 대가였기 때문이다.
송시열이 당초 기년복을 주장한 것은 효종의 종통을 부인하여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송시열은 효종이 비록 왕이기는 하지만 가통으로 따지면 장자가 아니라고 지적했을 뿐이다. 물론 왕가에 대한 이런 주장들이 왕조 국가에서 극도로 위험한 이론이란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영상 정태화가 "체이부정이란 말은 하지도 마시오."라고 손을 내저은 것은 이 때문이다. 정태화의 예상대로 남인들은 이를 이용해 송시열을 역모로 몰아 죽이려고 들었다.
예송 논쟁은 헛된 관념 논쟁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송 논쟁이 깨뜨린 공존의 틀은 조선 사대부 정치의 핵심이었다. 명분이 우선하는 성리학 사회에서 공존의 틀이 깨진다는 것은 상대방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과 같았다.
송시열의 입장에서 볼 때 효종은 자신이 열성을 다해 섬겼던 임금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제자이며 나아가 재위 기간 내내 정치적 입장을 같이 했던 동지였다. 그런 자신을 효종에 대한 반역자로 몰아가는 남인들에게 그가 어떤 감정을 가졌을지를 추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얼마 후 다시 불분은 2차 예송 논쟁 때 서인들은 자의대비의 복제를 1년복으로 정했다가 9개월로 고쳐 주장했는데, 이 때는 왕이 왕권을 업신여긴 결과라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왕은 1차 예송은 국제를 기준으로 삼고 2차 예송은 고례를 기준으로 삼은 저의가 무엇이냐며 송시열을 위시한 서인들에게 예론을 잘못 이끈 책임을 묻게 되었다.
예송 사건은 송시열로 하여금 남인의 모든 것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송시열에게 남인은 더 이상 같은 사상을 가진 성리학자가 아니었다. 나아가 같은 성리학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정치에 참여한 유학 정치가는 더욱 아니었다. 농민들을 지배하는 같은 사대부 계급도 아니었다. 송시열에게 남인은 이제 자신이 살기 위해서, 서인이 살기 위해서는 죽여야 할 정적이 되었다. 인조반정 후 남인 정승 이원익을 영의정에 추대한 것은 이제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과거지사가 되었다. 예송 논쟁 이후 서인과 남인은 자당의 권력과 상대당의 허점을 이용해 서로를 죽이는 파행적인 길을 걸었다.
-이덕일,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 쟁점 논제
1. 논술 논제
자료 1의 '관용'과 자료 2의 '정의'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자료 3에 나타난 송시열이 택한 주장의 문제점 극복 방안을 자료 1의 '관용'과 자료 2의 '정의'를 활용하여 논하시오. (900자 내외) * 보낼 곳; yimza@daum.net
2. 면접 논제
만물의 척도인 인간의 척도는 주관적이고 불완전하다. 그래서 여러 관점이 존재하는 것이고 변화가능하고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인간은 서로를 관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것(태도, 제도, 사고)을 관용해야 하는가?
(면접은 주변 학생들과 해보기 바람)
■ 쟁점 자료 비판적 읽기
<제시문 1> 인간 본연의 충동은 자기와 낯선 것을 불신한다. 그래서 자기와 다른 의견이나 주장이 나오면 무엇보다 먼저 방어 또는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인류 역사는 이렇듯 불신의 역사로 가득찼던 것이다. 수많은 종교의 역사가 이를 보여준다. 다른 세계의 문화를 불신하여 '미개 문화'로 보았던 것도 관용이 아니라 불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 불신 속에 인간의 '비인간성'이 들어있는 것이다. 제시문>
<제시문 2> 존 롤스가 제시한 정의의 원칙은 두 가지이다. 롤스의 제 1원칙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기본권과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평등의 원칙'이다. 제 2원칙은 사회의 가장 약자에게 이익이 돌아갈 경우에만 사회·경제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는 균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기회균등의 원칙'이다. 제시문>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가치 측정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공선, 도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제시문 3> 송시열의 잘못은 크게 일관성의 상실, 관용적 태도의 결여로 볼 수 있다. 제 1차, 제 2차 예송논쟁에서 송시열은 주장의 근거를 달리 했기 때문이다. 일관된 기준이 아닌 자의적 기준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제시문>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기 이전에 관용의 측면에서 자기가 속한 정당의 정치적 판단을 인정한 후에 자기의 주장을 펼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정의의 관점에서 왕조의 주장도 일단은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는 정치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쟁점 확대하기
1. 열정, 책임감,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가. 정치가는 권력과 정치가에게 부과되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윤리적 문제의 영역에서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치가는 자기 손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여도 좋은가라는 윤리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 인간은 공감을 발전시킬 수 있는 존재인가,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계산하고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인가? 제러미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등 많은 책에서 '공감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인간은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키거나 세계를 이성적으로 분석하는 존재가 아니라, 공감을 통해 대상과 교감하는 '가장 사회적인 동물'이다.
다. 개인은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다--이것은 사회생활의 진실이며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늘 기억해야 하는 판단의 준칙이다. 혼자 제 아무리 튼튼한 행복의 조건들을 구비하고 있어도 그가 상호 신뢰, 참여, 호혜성 같은 가치들이 잘 작동하는 공동체에 살고 있지 않다면 그 혼자서 행복과 안전을 확보할 방법은 없다. 밤에 동네 공원으로 산책 나간 사람이 칼에 찔리거나 지갑을 강탈당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노상 시달려야 한다면 그는 그 동네에서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신뢰, 호의, 연대, 결속, 연결망, 동료애, 참여--이런 가치들이 공동체 성원의 행복을 좌우하는 무형의 자본이다.
2.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기 어렵다
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이웃 사랑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일찍 지적하였다. 인간에게는 사랑하는 감정 못지않게 미워하고 파괴하고 고통을 가하려는 공격본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 인간은 도덕적 감정이 우리의 정에 호소하여 그리는 사랑에 갈증을 느끼는 온화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에게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내재되어 있지 않다. 명령은 타인을 이 세상에 등장시키는 방식이고 또 타인의 존재가 사랑 안에서 우리에게 부과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다. 권력의 추구는 순전히 개인적 자아도취를 목표로 한 순간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대의'를 저버리게 된다. 그때부터 정치가는 직업의 신성한 정신에 대한 배반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정치영역에서는 단 두 가지 종류의 치명적 죄악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객관성의 결여와 무책임성이 바로 그것이다.
■ 쟁점 기출문제
1. 논술 : 2011학년도 성균관대 수시 2차 인문계열 문제
[문제 1] <제시문 1> ~ <제시문5> 는 사회 정책의 윤리적 토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제시문들을 상반된 두 입장으로 분류한 후, 각 입장의 핵심주장을 정리하시오.(30점) 제시문5> 제시문>
[문제 2] [문제1]의 두 입장 각각에서 <보기> 의 상인을 평가해 보시오.(20점) 보기>
[문제 3] 주어진 표를 참고하여 다음 두 문제에 각각 답하시오.(15점)
[문제 4] [문제1]의 두 입장 가운데 한 입장을 선택하여 <보기> 의 논란에 대해 다음 키워드를 사용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25점) 보기>
■ 쟁점 관련 도서
소유의 종말
정의로운 삶의 조건
■ 쟁점 관련 영화
부러진 화살
도가니
■ 쟁점 관련 영상
지식채널 e, 루퍼트 머독
■ 학생 글과 교사 총평
논제 : <자료1> 과 <자료2> 의 대비점을 분석한 후, <자료3> 에 드러난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설명하시오.(본보 1월 18일자 제시문에 대한 학생글) 자료3> 자료2> 자료1>
1. 학생 논술문
언어와 사고 간의 우선 형성에 대한 갑론을박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자료1> 은 언어가 사고보다 우선하며, <자료2> 는 사고가 선행한다고 논리가 담겨있다. <자료1> 은 한 언어공동체가 모국어를 사용함으로써 생각하고, 행동하고, 서로 공감하며 민족의 기억과 미래를 구성한다고 하였다. 언어에 따라 사고가 달라지는 것이다. 반면에 <자료2> 는 영아의 언어가 형성되기 전에 지적 구조가 조직되어야 언어를 구사한다고 하였다. 이는 언어 없이도 사고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자료1> 과 대비된다. 자료1> 자료2> 자료1> 자료2> 자료1>
언어는 생각,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에 쓰는 음성, 문자 따위의 수단 또는 그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사회 관습적인 체계로, 사고는 생각하고 궁리함으로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사전의 뜻풀이만 본다면 사고가 언어보다 우선 형성된다는 <자료2> 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러나 언어와 사고간의 관계는 결코 간단히 정의될 수 없다. <자료3> 의 소년은 수학문제를 풀 때 문제를 보고 단순히 답만 떠올린다. 자신의 사고 과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떠오른 답만 말하였다. 이 상황을 보면 언어와 사고는 유리되어 둘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성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받아쓰기의 경우는 더 복잡하다. 언어란 음성언어와 문자언어, 내적언어와 외적언어로 차원이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소년은 받아쓰기를 할 때 머릿속으로는 충분히 인식한 내적 언어를 외적 언어인 글자로 전환하여 쓰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비록 소년의 문자언어와 외적 언어는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소년의 생각과 사고는 또래 소년들보다 성숙하다. 이것은 어느 정도 사고와 언어가 독립적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 생각과 사고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소년의 음성언어와 내적언어인 점을 고려할 때 언어와 사고는 긴밀히 연결된 상호보완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3> 자료2>
언어와 사고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며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와 사고의 우선형성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은 무의미한 시간 낭비일 뿐이고 어느 것이 먼저 형성되었다고 해도 두 개념 모두 서로가 존재하지 않으면 그 자신도 존재 의미를 잃게 된다.
한상호(전주 해성고 2학년)
2. 교사 총평
이번 논제는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관한 것으로 고등학교 문법 교과서 첫 단원에 제시된 내용인 만큼 친숙한 테마입니다. 하지만 각 관점을 주장과 근거로 논증하여 풀어내는 능력은 평소 논리적 글쓰기 연습을 한 학생과 하지 않은 학생 사이에 차이가 납니다.
△제시문에 대한 이해분석력
논술의 제시문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논제에 맞게 재단하며 읽어야 합니다. 논제에서 <자료1> 과 <자료2> 의 대비점을 분석하라고 했는데, 대비점을 분석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우선 공통요소를 찾는 것이며, 그 후에 차이점을 가려 정리하면 됩니다. 제시문의 공통요소는 언어와 사고의 관계이며 그 관계의 차이점을 찾아내고 <자료 3> 의 상황에 적용해 논증하는 것이 이번 논술의 핵심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상호 학생의 답안은 다소 장황한 면이 있지만 일정 수준 이상 접근하고 있습니다. 자료> 자료2> 자료1>
△창의적 사고력
논술에서 창의적 사고력이란 논제에 초점을 맞춘 상태에서 폭넓고 깊이 있는 생각을 펼치는 것입니다.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설명할 때, 언어의 차원을 문자 언어와 음성 언어, 내적 언어와 외적 언어로 분화하여 생각한 점을 칭찬합니다.
△문제해결력
주요 개념에 대한 사전의 정의를 생각해 보는 것은 개념에 충실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습관입니다. 그러나 굳이 분량을 초과하면서 그 사전의 정의를 그대로 옮겨올 필요는 없습니다.
△문장력 및 표현력
제한된 분량 안에 논제에서 요구한 내용과 깊이 있는 사고를 담기위한 문장 쓰기 연습이 필요합니다. 제시문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압축적이면서도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는 표현으로 다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언어와 사고의 우선형성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은 무의미한 시간 낭비일 뿐이고'와 같은 표현은 논제 자체를 부정하는 표현이니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강수연(전주 해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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