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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기사

신의 숨결

이강만  한화그룹 상무

 
"라면, 순대, 빵, 청소기, 물티슈, 생리대까지…"

 

돈벌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일부 재벌가 자손들이 최근 언론의 호된 비판을 받으면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업 영역을 제한하거나 어떤 사업 분야에서는 특정인을 배제한다고 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간, 언젠가 읽었던 옛날 이야기가 그대로 가슴에 와 박히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가을걷이를 마친 들판에서 누추한 옷을 걸친 아낙네와 고아로 보이는 아이들이 떨어진 이삭을 줍고 있었습니다. 흘끔 흘끔 주위를 살피면서 정신 없이 낟알을 담고 있는데 돌연 그 땅의 주인이 나타나서 그들이 애써 주워 모은 이삭을 내 놓으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닌가?

 

자기 논에서 나온 이삭이니 자기 것이라는 주인의 거드름과 버려진 이삭을 주었으니 제발 가져가게 해달라는 빈자의 애걸이 한동안 팽팽히 맞서고 있었지요.

 

이때 마침, 온 동네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어른이 그 광경을 보고 다가와 그 주인을 크게 꾸짖었습니다.

 

"네가 이 논의 주인이라 해도 한번 땅에 떨어진 이삭은 취하지 마라. 그 이삭은 너의 것이 아니라 신의 창고에 속한 것이다. 그 이삭은 과부와 고아를 먹이기 위해서 신이 마련한 것이니 과부와 고아들이 주울 수 있도록 놓아 두어라. 그 이삭은 신의 숨결이다. 신에게 속한 것을 신의 창고에서 함부로 훔쳐내지 마라."

 

누군가가 지어낸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이지만 아주 절묘하게 작금의 상황을 비틀고 있는 것 같아 가슴에 확 와 닿는 것이리라.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던 사람은 집에 감나무 한 그루쯤은 있었을 것이다. 감이 익어 홍시가 되면 긴 대나무로 만든 감전지로 감을 따곤 했는데 어른들은 항상 감 서너 알은 따지 않고 그냥 남겨두곤 했다. 까치밥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처럼 하찮은 날짐승까지도 배려하는 따스한 마음씨와 '더불어 사는' 미덕과 지혜를 가지고 있었는데 요즘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다고 사회 일각의 비판처럼 재벌기업이 사회적 해악을 밥 먹듯 해대거나 그저 탐욕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거대한 기업을 운영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또한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회기여 활동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행하고 있다.

 

내가 속한 그룹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각종 행사를 주최하고 있으며 거의 모든 임직원들이 매년 몇 일 이상 사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작년 6월, 중소기업형 사업인 소모성자재구매(MRO)를 대기업이 앞장서서 뛰어들고 있다는 사회적 비난 여론이 일자마자 그룹에서 맨 먼저 과감히 사업을 철수하였고 삼성, SK가 뒤를 이어 사업을 접기로 했을 때는 안도를 넘어서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노력들을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 최근에 벌어지고 있다. 일부 재벌가 3세 딸들이 너도 나도 중소 영세상인이 영위하는 사업에 뛰어든 일 말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나만 잘 나가면 되지'라면서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선대 회장들의 투철한 기업가 정신은 배우려 하지 않고 그냥 쉽게 돈을 벌려는 생각이 이런 현상을 초래한 것이 아닐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돈 가지고 내가 알아서 투자하는데 무슨 시비냐고 항변할 사람들을 향해서 수 천년 전에 기록된 성경 한 구절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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