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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의 봄

▲ 임주아 우석대신문 편집장

얼마 전, 믿기 힘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고향 친구의 소식이었다.

 

온라인상으로는 여러 번 묻고 답했지만 실제로 목소리를 듣는 것은 몇 년 만이라 미안함과 반가움이 뒤섞였으나 그녀는 그럴 틈도 없이 폭탄선언을 하고야 말았다.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단 폭소로 격하게 호응하고 다시 또박또박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미니홈피에서 커플 사진을 간간히 보긴 했지만 이렇게 진전됐으리라곤 상상도 못한 터에 배신감과 궁금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리고는 이 커다란 충격과 공포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다 여중시절로 빙의된 나는 육두문자로 심정을 대신했다. 친구는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며 자지러지게 웃다가 한방을 날렸다. "애기가 벌써 4개월이야!"

 

친구는 아기를 가진 사실을 알고 혼자 끙끙대며 힘들었다고 했다. 한 달 동안 아무에게도 얘기 못하고 혼자 어떻게 해버릴까 생각도 했었단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그럴 거면 헤어지자며 프로포즈(?)를 했고, 부모님께도 사실대로 말씀 드렸다고 했다.

 

다행히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지만 친구는 아직 걱정이 많다. 둘 다 직장이 있지만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싶고 친구들은 한창 열심히 자기 계발하고 하고 싶은 것 할 나이에 홀로 유부녀가 된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하기까지의 숱한 고민과 망설임도 모성애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듯싶다.

 

벌써 뱃속의 딸 자랑을 늘어놓는 걸보니 이상하게 부럽기도 하고, 처음부터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십년 전만 해도 주변 친척이나 이웃 언니가 이십 대 초반에 결혼하는 걸 흔히 봐왔지만 지금은 스물다섯도 빠르다고 야단법석을 떠는 시대가 왔다. 대한민국 여성 평균 결혼나이가 서른에 육박하는 수치를 보고도 그러려니 하고 스물 초중반에 결혼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외계인 보듯 하는 것도 일상이 돼버렸다.

 

흔히 결혼적령기가 늦어지는 이유를 대학 입학자가 80%에 달하고 여성이 사회진출이 많아졌다는 말로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뉴스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금 결혼의 개념마저 상실한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 같다. 경제여건으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란 말이 88만원세대 보다 더 암울하게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아, 연애마저 포기해야 하다니!

 

하지만 모든 것을 감수하고 당당히 첫발을 내딛은 친구가 대견스럽다. 이제 하나를 위해 전부를 포기해야할지도, 혹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나머지를 희생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씩씩하게 잘 해낼 거라 믿는다. 지금이야 처음이라 주변에서도 호들갑을 떨지만 몇 년 만 더 지나면 누구나 똑같은 고민을 할 것이다.

 

그 때는 다 겪은 선배로서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고 있겠지.

 

하지만 잊지 않겠다. 학교 축제 때 저 혼자 단상에 올라가 췄던 몹쓸 막춤이며, 우리 오빠에게 전해달라며 꼬깃꼬깃 접어준 고백편지며, 2002년 모든 여학생이 '안정환'에 미쳤을 때 '홍이(황선홍)'을 외쳤던 굳은 의지며, 쉬는 시간 때마다 온 교실이 떠나갈 듯 고성방가를 해대던 천방지축 소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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