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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 목욕탕'과 무주 예찬(禮讚)

장 세 길 전발연 부연구위원·문화관광팀

 

작고한 건축가 정기용씨를 다룬 영화 '말하는 건축가'를 보면 목욕탕 이야기가 나온다. 2000년에 행정자치부 시범사업에 선정돼 면(面) 주민자치센터를 짓게 된 무주군이 모든 설계 권한을 그에게 넘겨준 이야기다. 그는 주민을 찾아다니며 주민자치센터에 어떤 시설이 있으면 좋을 지 물었다. 뜻밖의 답이 나왔다. 목욕탕이었다. 가까운 목욕탕이 없어 1년에 몇 차례 버스를 대절해 대전까지 목욕탕을 간다는 말을 들은 그는 설계도에 목욕탕을 집어넣었다. 이렇게 해서 행정기관 최초이자 지금도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든, 면민(面民)의 자랑 '1000원 목욕탕'이 태어났다.

 

안성면 주민자치센터 목욕탕을 찾았을 때는 홀수 날로 남자목욕 날이었다(짝수 날은 여탕·홀수 날은 남탕). 입장료부터 기가 막혔다. 노인이 1000원, 일반인이 1500원이었다. 싼 게 비지떡? 아니었다. 규모는 168.3㎡(인원 32명 수용)이지만, 없는 게 없는, 한마디로 시내의 동네 목욕탕과 똑같았다. 화려한 찜질방, 한증막이 대세인 요즘, 얼마나 이용할까 우려했지만, 이 역시 기우였다.

 

지난해(12월 19일 기준)에 면 인구 4833명의 3.6배인 1만7616명이 이용했다. 하루에 72.6명 꼴이었다. 노인 인구(1461명)만 놓고 보면 이용자가 7.4배(1만786명)에 달했다. 노인에게 필요한 건강 행위로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정기적 목욕을 안성면 노인들이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전북에는 320개의 목욕탕이 있다. 이 중 211개는 동(洞)에, 38개는 읍(邑)에 있다. 면에 있는 것은 71개다. 숫자로만 따지면 적지 않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심각하다. 145개 면에서 목욕탕(한증막, 찜질방, 호텔·콘도사우나, 골프장목욕탕 포함)이 있는 곳은 45개 면뿐이다. 100개 면, 26만6075명(2010)이 목욕탕이 없는 지역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젊은이야 차를 타고 쌩하니 읍내로 가면 되지만, 고령인 노인은 누구의 도움이 없으면 힘들다. 더구나 목욕요금 5000원에 차비까지 더하면 만만찮은 액수다. 기름 값 때문에 집에서 목욕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러하니 지역주민이 '1000원 목욕탕'(무주 무풍·부남·설천·안성면, 순창 동계면)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제가 없진 않다. 많은 지역에서 1000원 목욕탕을 벤치마킹 왔다가도 1년 적자가 3000~4000만원이라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가더란다. 지열, 태양열시스템을 써봤지만 효율이 10% 정도고, 연일 치솟는 기름 값으로 적자폭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복지예산이 아니고 일반운영비로 충당하니 공무원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일 수 있다. 차라리 '목욕바우처'를 시행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주가 더 자랑스럽다. 무주가 다른 군보다 예산이 많은 것도 아니다. 매년 상당한 적자를 내면서도 10년 가까이 1000원 목욕탕을 운영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주군의 결단으로 무주 노인들은 전국 최고 수준의 노인복지를 누리고 있다. 단돈 1000원으로 펄펄 끓는 탕에서 한국 목욕 문화의 참 맛을 느끼고, 개운한 기분으로 옆에 있는 보건소에서 무료진료를 받는 것, 다른 면에 거주하는 노인들도 '당연히' 누리고 싶은, 그리고 누려야 할 복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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