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서림·민중서관 등 지역대표 서점 인터넷에 밀려 / 40여년간 전주시민 약속 장소·배움의 공간으로 각광
지난 2006년 문을 연 교보문고 전주점이 지난 3월 18일 영업을 종료했다. 그간 경매에 부쳐져 있던 입주 건물이 어느 대기업에 낙찰되면서다. 교보문고측은 "건물주가 바뀌게 되면서 양도계약이 무효화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당초 매출이 영 신통치 않았던 교보문고 전주점이 이번 계약변경을 이유로 철수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내기도 했지만, 어찌됐건 그동안 교보문고를 이용하던 전북 도민들에게는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2006년 처음 교보문고가 들어서면서 지역 서점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지역 서점을 대표하는 서점들이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고, 정든 자리를 떠나야 했다. 지역 서점들은 대부분 고사했고, 지역 도서 시장은 앙상해졌다. 그런데 이제, 교보문고마저 떠나버렸다.
△ 교보문고 빈자리에서 지역 서점을 추억하다
교보문고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며 문득 6년 전이 떠올랐다. 교보문고가 들어오기 전까지, 지역의 대표 서점은 홍지서림과 민중서관이었다. 4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두 대표 서점은 지금은 '구도심'이라 불리는 경원동, 고사동 일대를 상징하는 장소였다. "민중서관 앞에서 만나." "홍지서림에는 (책이) 있을 거야." 와 같은 말은 전주 시민들의 일상 용어였고, 누구나 다 알아듣는 지역 공통어이기도 했다. 두 서점은 전주시민들의 소통창구였다.
홍지서림의 역사는 지난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자 천병로씨가 전주시 경원동에서 165㎡ 남짓한 공간에 문을 연 홍지서림은 지금보다 더 문화적 혜택이 열악한 시절 시민들의 교양과 상식을 채워주는 공간이었다. 당시 마땅한 서점 하나 없던 전주에서 꽤 규모있는 서점이었기에 전주의 문청(文靑)치고 이곳에서 공부하지 않은 사람 없었고, 홍지서림이 타 서점들과 다르게 허용했던 서점 바닥에 앉아서 죽치고 책읽기는 많은 청소년들을 서점으로 모이게 만든 중요한 이유가 됐다.
소설가 양귀자 은희경 최명희 등은 홍지서림에서 책을 읽으며 성장한 대표적인 문인들이다. 당시 홍지서림에는 어찌나 사람이 많았던지 천병로 회장은 "학기 초에는 참고서를 사려는 학생들이 서점 앞 큰 길까지 줄을 서는 바람에 경찰이 배치 돼 교통정리를 해야 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홍지서림과 비할 수 있는 서점이 있다면 바로 민중서관이다. 과거 전주 최고의 번화가였던 관통로 사거리에 위치한 민중서관은 홍지서림보다 6년 늦은 1969년 조정자 대표에 의해 처음 문을 열었다. 서점 이름은 조 대표가 다니던 출판사 이름을 그대로 따다 쓴 것이다. 이후 1992년부터 강준호 대표가 사업을 이어받아 운영했다.
민중서관은 전주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곳이다. 대로변에 위치해 있어 큰 사건·사고 대부분 민중서관 앞에서 벌어졌다. 서슬 퍼렇던 1980년대에는 연일 이어지는 가두 집회와 시위로 최루탄 냄새가 가실 줄을 몰랐고, 2002년에는 붉은 응원 물결로 넘실댔다. 2008년에는 광우병에 분노한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밝히기도 했다. 40여 년 동안 한결같은 자리에서 민중서관은 전주의 역사를, 시대의 흐름을 지켜왔다.
두 서점 모두 시민들의 뜨거운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성장한 곳이다. 두 서점을 꾸준히 애용하고, 사랑하고, 아껴온 시민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학생들에게 문제집을 팔던 서점이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구비한 종합서점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창업자들 역시 "우리 서점은 지역민들이 키웠다"고 말할 정도가 됐다.
△ 지역 서점의 추억 하나 없는 사람 있을까
두 서점이 갖는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시민들이 갖고 있는 추억들도 다양하다. 아직 어린 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중년들까지 두 서점을 '학창 시절 문제집 하나 사러 길게 줄을 섰던 곳','친구들과 항상 만나던 약속 장소','지인에게 소중한 책을 골라 선물했던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필자 역시도 서점은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어린 시절 많이 했던 일 중 하나는 읽던 책을 홍지서림 근처에서 헌책방에 팔고, 그 돈으로 새 책을 사서 보는 일이었다. 3000원에 산 책을 1000원 밖에 쳐주질 않았지만, 어린 나이에 그 돈은 무척 귀한 것이었고, 기꺼이 다 읽은 책을 헌책방에 팔고 홍지서림이나 민중서관에 들러 새 책을 사곤 했다.
책을 사읽을 상황이 안되면 주말마다 홍지서림에 갔다. 원하면 누구나 책을 훑어볼 수 있고, 마음에 들면 서가 한켠에 쭈그리고 앉아 하루종일 책을 읽는 일도 가능했다. 오전 10시 쯤 서점에 가면 집에 오는 건 빨라야 4시 쯤이었다. 서점에 가면 나처럼 바닥에 앉아 하루종일 책을 읽는 아이들이 많았는지 어린이 서가는 항상 자리잡기 경쟁이 치열했다.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면 금새 누군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버려 투덜거리며 집에 가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중·고교생 시절엔 홍지서림·민중서관 앞이 만남의 광장이었다. 휴대전화가 막 보급되던 시절, 누구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어서 약속은 꼭 장소와 시간을 미리 정해두어야 했다. 두 서점은 약속장소로 딱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고, 시간을 때우기도 좋은 곳. 그래서 학생들에게 두 서점은 사랑받지 않을 수 없는 곳이었다.
△ 대형서점에 밀려 축소·폐업한 지역 서점
그러나 2006년, 대기업 프랜차이즈 서점이 전주에 상륙했다. 시내 한복판에 큰 규모로 서점을 열다보니 지역서점들에게는 큰 위협이었다. 매출은 급감했고, 경영은 악화됐다. 두 서점도 마찬가지였다. 두 서점 모두 본점이 교보문고와 가까이 위치해 있어 타격이 컸다. 교보문고에 빼앗긴 매출은 쉽게 회복되질 않았고, 여러 동네로 파고드는 동네 지점을 확장해 본점의 적자를 메우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발생했다.
그러던 지난해 2월,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던 민중서관이 먼저 본점 문을 닫는 상황이 발생했다. 같은 자리에 본점 문을 연 지 41년 만의 일이다. 당시 운영을 맡고 있던 강준호 대표는 "민중서관의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문을 닫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누적된 적자를 견딜 수 없어 폐점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의 등장으로 인해 전주 도서 역사의 한 축인 민중서관은 폐업했고, 홍지서림은 매출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6년 만에 프랜차이즈 매장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상처입은 지역서점 뿐이다.
교보문고가 사라졌다고 해서 다시 지역서점이 회생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갈수록 인터넷 서점의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출판사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니 3년 전까지만 해도 전체 매출의 25~35%에 불과하던 인터넷 서점의 매출이 최근에는 50%를 넘어서는 수준까지 올랐다고 한다. 지역 서점들은 또다시 인터넷서점들과 경쟁해야할 판이다.
우리가 떠올리는 서점은 아련한 추억과 향수와 책향기가 남아있는 곳이다. 그래서 막연하게나마 지역서점을 추억하며 약간의 기대를 가져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교보문고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며 많은 시민들이 "답답하다"고 말한다. 그 공허한 빈자리에서 홍지서림과 민중서관의 추억이 떠오른다.
성재민 문화전문시민기자
(선샤인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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