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영 삼도헌 운영실장
따라서 글의 책임은 모두 '이근영'에게 있다. 술자리의 뒷담화는 가능하나, 현명한 독자라면 비난과 비판과 비평을 필자에게 해 주시라. 이메일(planner21@naver.com)은 늘 열려있으니.
전주시립극단에 입단한 1986년을 전라북도 문화예술계 데뷔로 치면 어느새 26년이 되었다. 그사이 서울과 광주에서도 일했고, 한 눈도 팔고, 가끔 쉬고, 가끔 놀았다. 그렇다고 해도 15년이 넘는 시간을 전북의 방송계와 문화판에서 뒹굴었다. 지금은 '근영아, 근영 씨, 이근영 씨'라고 부르는 사람보다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 문화시설·축제·지자체사업 등에 대해 필자의 의견을 묻는 기자들도 생겼다.
각설. 필자의 고백은 '한 문화예술인'이 된 사연이다.
"○○○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거 취재에요?"
"아니요, 우선 공부부터 좀 하려고요."
안심한 나는 전화기를 잡은 손이 저려 올 때까지 떠들어댄다. 근질근질한 내 '입'은 잠시 시원해진다.
"어머, 어쩜, 저랑 생각이 똑같으세요! 방금 하신 말씀 기사에 써도 될까요?"
'아마추어'처럼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댄 나는 머뭇거린다.
"어? 그게, 아, 좀……."
"아! 네, 곤란하시지 않게 잘 써볼게요. 고맙습니다."
뱃고동은 진즉 울렸고, 배가 떠난 지도 한참이었다.
그날 나는 해당 신문의 인터넷 판에 관련기사가 올라오는 시간까지 안절부절못했다. 내 의견은 앞뒤가 잘렸다. 가장 자극적인 멘트만 덩그러니 올라가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기자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래도 안심이다. 그 기사 앞에 내 이름은 없다. 다만, '지역의 한 문화예술인'이 있을 뿐이다. '아찔'하면서도 '짜릿'했다. 비록 익명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한 문화예술인'으로 둔갑한 적이 몇 번이었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틀림없이 비겁했다. 부끄럽게도 나의 익명 비평은 문제의 핵심을 변화시키거나 여론을 환기시키는데 아무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문화예술인'들은 갈수록 늘었다. 결국 나를 비롯한 '한 문화예술인'들의 주장은 '신뢰와 공감'이 아니라 조롱거리가 돼가고 있었다. 혹시 또 다른 '한 문화예술인'들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진심으로 부탁드린다. 제발 실명으로 코멘트해주시라! 그럴 수 없다면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키시길.
실명의 의견 하나. 전북 지역 문화계의 일자리는 대부분 1-2년 계약직 신세다. 그러나 계약기간이 남아있어도 해임 될 수 있다는 선례가 생겼다.
·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해임에 대한 말이다. 그래서 이 일은 '그 사람의 해임'만이 아니다. 그리고 해임당한 당사자가 과정과 결과를 설명할 일도 아니다. 해임 권한을 가졌던 사람들이 이 일이 '권한 남용'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권한과 책임은 쌍둥이기 때문이다.
·그 권한이 정당했음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영화계와 전라북도 문화예술계 후배들의 눈을 어찌 바라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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