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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기적과 노인복지관 북카페

장세길 전발연 문화관광연구부 부연구위원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예수를 쫓아온 무리 중에서 어린아이가 내놓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여자와 어린이는 뺀 숫자)을 배불리 먹였다는 이야기다.

 

필자는 광주시 광산노인복지관의 '더불어 락(樂) 북카페'를 보면서 오병이어가 떠올랐다. 시설 이용자들이 내놓은 5000원에서 시작해 1억 4000만원의 북카페 건립비용을 관의 도움 하나 없이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한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이 울적해 하는 여자주인공에게 신생아실의 갓난아기를 보여주며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일종의 '베이비테라피'다. 광산노인복지관이 6년 된 휴게실을 개조해 북카페를 만들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1세대(노인)와 3세대(아이들)가 자연스럽게 교류함으로써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세대교류공간, 즉 노유(老幼)복합공간으로서 북카페를 구상한 것이다.

 

문제는 1억4000만원이었다. 주무관청에 도와달라고 눈빛을 보냈지만 신통치 않았다. 그때 누군가 십시일반으로 만들어보자는 말을 꺼냈다. 모두가 공감했고, 곧바로 추진위를 꾸려 노인들을 한명한명 만나면서 기금을 마련했다. '누가 선뜻 돈을 내놓을까?' 우려 했지만 반응이 의외였다. 적게는 5000원에서 많게는 30만원까지 내놓았다. 여세를 몰아 일일호프도 열었다. 그렇게 4900만원을 모았다.

 

부족한 돈은 재능기부로 해결했다. 돈을 내기 힘든 노인들은 건축, 설비, 전기기술을 살려 공사를 도왔다. 이번에는 지역주민이 나섰다. 주변상점에서 물품을 협찬했고, 한 가구회사는 성탄 전야에 책상과 의자를 직접 들고 와서 열람석 30개를 조립해줬다. 책은 '기적의 책꽂이' 사업에서, 그리고 보험회사와 출판사 등에서 5500권 정도를 기증받았다. 한 초등학교 학생들은 커튼을 보내왔다. 정말 십시일반으로 광산노인복지관에 125㎡의 '더불어 락(樂) 북카페'가 탄생한 것이다.

 

개관식에는 지역주민 1000명이 초대됐다. 노인복지관 북카페이지만 지역주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동의 공간이라는 얘기다. 북카페 안에는 영화도 보고, 락(樂)콘서트도 할 수 있는 정말 작은 무대가 있다. 낮은 책꽂이에는 아동도서가 빼곡해 방과 후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가 되고 있다. 함께 온 부모들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고, 아이 옆에서 책을 보는 노인들은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치료효과를 얻는다. 주중 밤이나 주말이면 대학생이 찾는다. 저녁 10시까지, 그리고 토요일, 일요일도 문을 열기 때문이다. 도서관 사서와 카페 바리스타 등 인력도 자원봉사다.

 

광주 광산노인복지관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두 가지다. 공공시설(문화시설, 사회복지시설) 유휴공간을 활용해 세대통합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는 것과 이 모든 일을 시설 이용자와 주민 스스로 해냈다는 사실이다. 사회복지시설, 문화기반시설은 관이 책임져야할 공공시설이다.

 

하지만 시설을 활성화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시설 운영자와 이용자, 나아가 지역주민의 역할이 크다. 그런 점에서 십시일반으로 기적의 북카페를 만든 광산노인복지관 사례는 문화기반시설, 주민자치센터, 사회복지시설, 관청 유휴공간을 문화공간으로 활성화하려는 전라북도가 반드시 눈여겨봐야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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