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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 그곳에 가면 고향이 있다

추억 한 되…인심 한 말…- 사람(人), 정(情)이 있는 전통시장

▲ 20여 년 바지런하게 시골장을 찾아다닌 사진작가 이흥재(전북도립미술관 관장)의 흑백사진은 추억 너머로 사라져가고 있는 아름다운 장날 풍광으로 안내한다. "담배 한 대도 마음이 없으면 안 권하는 것이여!" 정(情)과 사람(人)이 오가는 시골장이 아름답게 기록됐다. 사진 제공 = 이흥재 전북도립미술관 관장 제공
선거철만 돌아오면 정치인들은 전통시장에 나타난다. 그리고 시장 국밥을 먹고, 길거리 떡볶이를 찍어 먹으며, 생선과 과일을 산다. 삶이 우울한 사람들에게 의사는 새벽 시장에 다녀오라는 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왜 전통시장일까.

 

'아프리카 전통시장에서는 기린도 판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쉽게도 아프리카에 가본 적이 없어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전통시장에는 없는 게 없다'는 애교 섞인 과장으로 미뤄 짐작해 본다.

 

전통시장. 이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허전하고 죄스럽고 밀린 방학 숙제가 한아름 쌓인 답답함을 느낀다. 지난 봄부터 전주를 중심으로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취해졌다. 기업형 슈퍼마켓, 대형마트의 주말 강제 휴무.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시행된지 몇 달이 흘렀지만, 사람들이 전통시장을 찾는 횟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속 시원한 통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다. 전통시장 상인들의 체감온도로 보면 그다지 효과는 없는 것 같기도 하다.

 

△ 사람사는 문화가 녹아드는 장(場)

 

5일마다 한 번씩 마을의 중심 혹은 시장의 중심에서 열리는 시장을 보통 우리나라의 전통시장이라 한다. 시장 인근에 사는 농가들이 키운 병아리나 돼지·송아지 등 가축을 내다 팔기도 하고 배추·고추·무 등 채소류나 산나물 등을 직접 들고 나와서 팔기도 하는데 가난한 농가들에게는 꽤 쏠쏠한 보탬이 되었다.

 

장(場)은 이 동네 저 동네 사람들이 한 번씩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면서 세상 소식을 듣는 유일한 소통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소비자들이 직접 생산자를 만나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대체로 5일장의 물건들은 가격도 저렴한 데다 믿을 수 있었다. 그날 하루 동안 자신의 물건을 홍보하기 위한 각종 호객행위가 볼만한 구경거리이기도 하다. 자연히 오랜 세월을 통해 그 지역의 특색 있는 상품이나 놀이가 발달해 자리를 잡게 되는데, 그 고장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장(場)은 사람 사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곳이다.

 

△ 대형마트에 밀리는 전통시장

 

최근 7년 사이 전국의 전통시장 178곳이 사라졌다. 중소기업청과 시장경영진흥원 등 집계를 보면, 전통시장은 2003년 1695곳에서 2010년 1517곳으로 감소했고, 전통시장의 점포 수도 2005년 23만9200개에서 2010년 20만1358개로 5년 사이 3만7000개 이상 줄었다. 우리 지역이라고 해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도내 전통시장은 총 73개로, 상설시장 32개, 상설시장·5일장 8개, 5일장 33개로 점포수는 총 6619개이다. 전주와 군산, 익산 등 시단위 상설시장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군단위 5일장(정기시장) 중 상당수는 전통시장으로서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의 공세에 밀리면서 남아있는 전통시장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도내 몇 군데 전통시장의 역사를 보면, 조선시대 남문밖 시장이 오늘까지 이어져 남부시장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상인들이 진출하면서 동·북·서문밖 시장이 쇠퇴하고 1923년 전주남문시장으로 통합되면서 해방 이후에도 전북의 상업 금융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1977년 (사)남부시장 번영회가 점포들을 사들여 남부시장이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전국의 생산 및 유통정보가 이곳에 총집결했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 덕분에 신선한 농수산물은 남부시장, 전주에선 두번 째로 큰 규모를 자랑했던 중앙시장은 값싸고 질 좋은 의류 등을 파는 곳으로 분류됐다.

 

익산시 남중동 북부시장은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에 이어 전국 두 번째로 큰 5일장이다. 장날이면 5배 크기로 상설시장이 선다. 인근 군산, 논산 상인들은 물론 전남 구례, 곡성과 충남 서천, 서산 등지에서 1000여 명의 상인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룬다.

 

97년 역사를 자랑하는 군산 공설시장은 2002년부터 합선으로 인한 화재 등이 잇따르면서 기존의 건물을 허물고 국내 최초 '마트형' 전통시장으로 새 단장해 지난 3월 개장했다.

 

△ 젊은 장사꾼 시장속으로… 전통시장 눈물 겨운 노력

 

'범이네 식충이(식충식물화원'), '그녀들의 수작(핸드메이드 소품 체험공방'), '같이 놀다 가계(키덜트 놀이문화 술집)', '뽕의 도리(뽕잎 수제버거)', '미스터리 상회(재활용 업싸이클링 공방'), '송옥여관(디자이너들이 운영하는 잡화점)'. 간판이 톡톡 튄다. 젊은 사람들이 사장이다.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17명의 '청년 사장'들이 전주 남부시장에 모여 장사를 시작했다. '문전성시 청년장사꾼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남부시장 2층에 각자의 개성과 철학을 담은 상점을 열었다. '전통시장의 부활' 프로젝트답게 버려진 가구, 목재, 돌 등 재활용품을 이용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 내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또한 다양한 재주를 가진 청년 사장들이 공동으로 기획하는 음악, 설치미술 등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마트형' 전통시장인 군산 공설시장은 지상 3층 건물은 층마다 자동보행로(무빙워크)로 연결되어 있고, 3층에는 여성들이 자주 드나드는 문화센터가 들어섰다. 옥상에는 주차장이 마련됐다. 1층에는 대형마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방앗간, 영양원 등을 비치해 시장의 향수를 자아내고 있다.

 

이같은 시도는 시장을 단순한 소비 장소가 아닌 전통문화를 느끼는 체험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젊은 상인들이 '전통과 현대를 잇자'는 철학을 가지고 주변 상인들과도 소통하기 위해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 사람(人), 정(情)이 있는 그 곳

 

전통시장 살리기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경쟁 유통업계와 차별화되는 소프트웨어 개선 등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처방책이 마련되고, 상인들도 근시안적인 당장의 지원책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시장을 되살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대책 마련에 지혜를 모아야 하지만, 이미 시장을 떠나버린 이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것은 변심한 애인 마음 돌리기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과연 경제적인 분석과 마케팅 전략으로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이다. 우리네 장(場)이 사람(人), 정(情) 이 두 단어로 귀결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왜 우리는 힘을 얻고 싶을 때, 어려울 때 시장을 떠올리고, 정이 그리울 때 그곳을 찾는지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 냄새 그리운 그 곳이 아직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우리 가족의 입맛을 기억해 주고, 나의 소비 패턴을 눈여겨 볼 줄 아는 눈썰미 좋은 시장 아주머니들이 시장에 계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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