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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아동에 대한 국가의 책임

진선미 국회의원

   
 
 

태풍 볼라벤이 지나간 후 피해 상황은 참혹했다. 축사가 무너지고, 양식장이 날아가고. 수확을 앞둔 과일들이 떨어져 있는 모습에는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특히 배로 유명한 나주 지방 농민들의 피해가 컸다. 피해 복구에 힘을 보태고 농촌이 처한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문재인후보와 함께 나주의 피해 농가로 향했다. 진흙투성이가 된 비닐하우스 해체 작업을 도왔는데 의례적인 방문이 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힘을 다 했다.

 

농가 방문을 마치고 곧장 나주 경찰서와 나주종합병원으로 향했다. 그 전날에 발생한 '나주 어린이 성폭력 사건' 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7살 아이가 자던 중에 납치당하고 성폭행 당했다는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참담함을 느꼈다. 통영 어린이 성폭행, 살인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이런 일이 터지다니. 범인은 놀랍게도 아이의 부모를 다 알고 있는 이웃남자였다. 아동 대상 성범죄는 '아는 사람' 에 의해 주로 일어난다는 공식이 이번에도 들어맞았다. 살려달라는 아이에게 '삼촌이다, 같이 가자' 고 한 다음 참담한 짓을 저질렀다. 그리고 아이를 버려두고 혼자 도망쳤다. 경찰의 수사결과 아이의 목을 졸라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아이는 경찰에 발견 될 때까지 거의 12시간을 비바람이 몰아치는 길가에 이불만 둘러쓴 채 혼자 있었다. 극심한 고통으로 혼절해가며. 얼마나 무섭고 외롭고 춥고 아팠을까.

 

아이는 지금 광주의 대학병원에 있다. 파열된 장기의 봉합수술 결과는 양호한 편이고 빠르면 2주 정도 후에 퇴원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당분간은 배변주머니를 차야하고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한다. 부모는 생업을 놓고 아이의 치료에 매달려야 하며 아이의 형제자매들은 시설에 맡겨져 있다. 아동 성폭력은 단지 한 아이의 피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족을 심리적, 경제적으로 파괴하는 극악한 범죄다.

 

그동안 여성가족부, 경찰청 등 국가 차원에서 성폭력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은 계속 있어왔다. 해바라기 아동센터 등 아동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기관 또한 만들어졌다. 하지만 실질적인 지원은 아직도 부족하다. 아동 성폭행 피해자의 경우 장기손상을 입어 배변주머니를 차고 치료받아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영이' 로 알려졌던 피해 어린이도, 이번 나주사건의 피해 어린이도 그렇다. 이 경우 치료비가 문제다. 배변주머니를 차는데 드는 비용이 하루에 70만원인데 형편이 넉넉한 가정이라도 부담 되는 금액이다. 그러나 국가에서 지원되는 최대한도는 500만원이 전부다. 그 이상 지원을 받으려면 지자체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지원금 지급과 추가 지급을 위한 심사라니. 경황이 없을 피해자 가족들에게는 번거로운 절차일 수 밖에 없다. 가족을 대상으로 한 사후대책도 절실하다. 아이의 상처를 온전히 보듬고 가족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상담이나 심리치료 등 지속적인 관리를 해 주어야 한다. 국가가 치안을 유지할 책임을 다 하지 못해 발생한 이런 피해, 특히 어린이에 대한 흉악범죄에 대해서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자세로 피해 아동과 가족에게 지원해야 할 것이다. 성폭행 피해 아동 전담 기금을 신설하고 우범자 관리 시스템을 일원화 하는 것 등 실제로 효과 있는 대책이 절실하다. 민생 치안 인력의 확충도 시급하다. 이 정부 들어서 '법치' 라는 미명하에 집회시위를 차단하는 경찰 기동대의 인원이 대폭 늘었다. 그러나 민생치안 현장에서는 경찰 인력이 부족하다는 푸념이 끊이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묻지마 폭행과 성폭행 등 강력범죄는 급격히 늘었다. 집회시위 대응을 위한 기동대 인원을 민생치안의 자리로 되돌려야 한다. 권력자의 입장만을 비호하는 '법치'가 과연 무슨 의미란 말인가. 한 사회의 수준은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상대적 약자인 여성과 아동을 보호하는 것이 진정한 법치, 진정한 국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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