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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지적장애 앓다 세상 떠난 누나…" '맑은 영혼이 그린 그림' 눈물로 엮어

임철완 전북대 명예교수 '우리 누나! 임일순' 출간

▲ 故 임일순 여사가 생전에 그린 그림들.
▲ "누나와 동생이 닮았어요." 동생 임철완 전북대 명예교수(왼쪽)와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故 임일순 여사.

'누나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가을 어느 날 오후 나하고 같이 집 밖에 나왔다. 별 생각 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면 볼수록 그렇게 내 마음이 아프다. 두 손을 마주 모아 다리 위에 올려두고 힘없이 입을 벌리고서 혼자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외로와 보일 수가 없다.' (서문에서)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임철완 전북대 명예교수(66)가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임일순(본명 임광례) 여사의 그림을 모아 펴낸 책 이야기다.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적은 '우리 누나! 임일순'(아사히 出版)은 오랜 시간 무관심했던 동생이 뒤늦게 장애를 앓으며 외로웠을 누나를 그리며 가슴에 꾹꾹 담아온 눈물 편지다.

 

임 교수는 '부모님을 여의고 나서야 누나의 행복을 겨우 생각했다. 회갑을 지나고 68세가 되도록 한 번도 자신의 의견을 말해보지 못했던 누나, 슬퍼도 슬프다는 말을 못했던 누나, 날마다 자신의 의견이 무시를 받았어도 못살겠다고 큰 소리 한 번 못하고 남이 모르는 그 작은 가슴 속에 다 파묻어 버리고 산 누나였다'고 기억했다.

 

책에는 임철완 교수와 누나 임일순 여사의 그림을 지도해준 양수남 순천 선혜학교 교사 글 등과 함께 누나가 그린 경치·사람·동물·식물부터 글자쓰기·색칠공부 흔적까지 빼곡히 담겼다.

 

76년 간 2급 지적장애를 앓았던 임일순 여사는 펜과 종이를 친구 삼아 끄적거리는 걸 좋아했다. 달력종이, 복사용지 등에 볼펜과 사인펜, 색연필로 쓱쓱 그렸다. 13세 때 6·25 피난 가서 보았던 밭과 허수아비부터 자주 봐왔던 가족들, 집 밖의 세상을 상상으로 풀어낸 풍경까지 어린아이와 같은 맑은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모든 것이 따뜻하게 기록 돼 있다.

 

1-3 집안의 그림엔 세 명의 가족이 집 안에 옹기종기 있는 반면 집 밖에 유독 큰 허수아비가 있다. 무기를 양팔에 든 허수아비는 울타리를 만들어 가족을 보호하고픈 자신. 평생 동물원을 가보지 못한 누나는 코끼리도 사자도 맘껏 그렸다. 가장 중요한 코부터 덩치에 맞지 않은 참새 다리까지 그려낸 코끼리 그림을 보고 임 교수는 '그래도 다리까지 그렸다는 것이 훌륭하다'며 따뜻한 눈으로 보듬었다.

 

지난 8년 간 누나와 눈맞춤하며 살아온 임 교수는 웃은 날보다 가슴 치며 운 날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든 시련과 고난이 그에게 축복이지 않았을까 싶다. 평생을 합리적 이성에 입각한 의학 공부에 매달려온 그를 누나는 신(神) 앞에 온전히 무릎 꿇게 만들었다. 자신의 하찮은 보살핌에 뛸듯이 기뻐하는 누나를 보면서 그것처럼 감동시키는 것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세상에 한 여자로서 감당해야 하는 불행과 행복의 임계치란 게 있다면, 임일순 여사는 겪은 불행과 행복은 필경 그 너머의 것일 게다. 그러나 이제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미소짓지 않을까. 자신이 그린 그림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게 되어서, 착한 동생이 자신을 그토록 그리워해준다는 게 고마워서.

이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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